양점숙 시인의 시집 [아버지의 바다]가
2011년 12월, 도서출판고요아침에서 나왔다.
양점숙 시인은
제1회 이리익산 문예백일장 장원으로 등단하여
시집 [하늘문 열쇠], [꽃그림자는 봄을 안다] 외 다수 발간.
현재 [가람시학] 주간.
다음은 '시인의 말'의 일부이다.
"... 언제부터일까 아버지의 굽었던 등이, 반백의 남편과 아들의 뒷모습이 썰물처럼 겹쳐온다.
이 시집은 딸들을 짝사랑하며 눈물 감추시던 나의 아버지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께 바칩니다."
다음은 이경철 문학평론가의 해설 '오늘의 삶과 현실을 우주의 비전으로 이끄는 시의 이미지'에서
발췌하였다.
" ... 특히 삶의 무게를 매달고 해맑은 봄 햇살에 하얗게 피어오르는 냉이꽃 같은 양점숙 시인의
그 웅숭깊은 이미지의 시세계 앞에서는, 시인의 연륜, 눈높이에 맞춰 익어터지는 이 시집 속의
빛나는 이미지에는 지난 우리네 삶과 꿈과 원과 한, 그리고 지금 여기의 역사와 현실이
오롯이 매달려 있다..... 시에서 이미지는 시인이 온몸으로 느낀 것을 독자들 또한 온몸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언어로 구체적으로 형상화해 드러낸 것이다. 그러기에 이미지는 운율과 더불어 시를 시답게 하는
양대 요소가 된다. 세계와 시인, 시인과 독자를 온몸과 혼으로 이어주는 것이 바로 이미지인 것이다.
.... 세계에 대한 느낌의 표상, 대상성의 내면화라는 서구 시의 이미지론은 동양에서는 미학의 핵심인
정경론(情景論)에 다름 아니다. 시인의 정과 사물의 경의 접점에서 묘하게 교융하며 태어나는 것이
고래로 무릎 치게 하며 경탄해 마지않는 좋은 시의 이미지 아니던가. 하여 서구의 합리적 이성과
프로이드의 무의식 콤플렉스에서 이미지를 해방시킨 바슐라르가 말한
'순간화 된 형이상학으로서의 포에지'가 바로 우리네 정경교융의 이미지인 것이다.
전 우주의 비전과 하나의 혼의 비밀, 그리고 여러 대상의 비밀을 동시에 드러내는 순간의 표상이 바로
시의 이미지 아니겠는가. 시인과 세계의 정조가 극도록 고조돼 이미지가 익어터지는 그 '순간'은
과거와 미래가 함께하는 영원한 현재진행형으로서의 순간,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 플래시 터지듯 찾아드는
예감의 찰나이다. 그래서 빼어난 자연 풍광 혹은 사진이나 영상에 온몸과 혼이 감전된 순간, 우리는
'한 편의 시 같다'며 감동하지 않던가....
... 이미지가 최첨단 현대를 이끄는 우리 시대, 이미지를 상업적 쓰레기문화로 치부하고 외면만 해서는 안될 일이다.
특히 이미지가 독자와 살갑게 소통하는 살이 되는 시에서는.
이미지가 범람하는 이 정처 없고 부황한 시대, 양 시인의 선명하고 뿌리 깊은 이미지들이
삶의 깊이와 위의와 풍류를 불어넣고 있어 믿음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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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바다 1 - 부안 염전에서 / 양점숙
품고 벼리면 눈물도 환한 꽃으로 이는
갯골의 전설들이 살 속으로 길을 내니
푹 골은 고무래를 밀던 등은 하얀 소금꽃
짜디짠 그 생계를 퍼 올리던 무자위에서
숨을 곳 없는 맨발 너 하나의 그리움으로
해당화 한 등 올리는 물길 따라 가는 4월에
불은 손금에 매달린 목숨이라 속없으랴
발원의 물목에는 그림자도 목이 길어
몸 비운 아비의 바다 한 움큼 사리로 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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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 / 양점숙
어둠침침한 현관
소리 맑은 종을 달았다
갇혀 사는 외로움도
삭히노라면 말문 트는
사람만 살았다 할까
때론 혼자 우는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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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 양점숙
어둠
벗은
하늘길
종소리 하나 걸고
멍든 가슴도 비워 멍울멍울 한기 풀고
윤삼월 붉은 울음이 혼백 흔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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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래 - 시작노트 / 양점숙
곁에서 들꽃이나 꺾으며 놀고 싶었다.
때로는 펼쳐놓고 마른 가슴 적셔도 보고
철없어 낯선 꼬리표 그림자에 묶어도 보고
언제부터 난 그의 고단한 노예였을까
시샘 많은 애인의 찬 손을 보면서
절망에
긴 목을 놓고 울다 웃어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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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소도 얼룩소 - 촛불 집회 / 양점숙
그들 노래 때론 어미 떨어진 송아지울음
달무리로 번진 화인 채찍으로 얼룩진
화면 속 발버둥치던 그 소 언제 죽었을까
몇 밤을 해바라기하던 불의 밤은 깊어
비릿한 고해성사 풀어놓으니 만장이네
가슴께 묻어둔 울음 혼불 빠지듯 빠져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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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점숙 시인을 몇 번 뵌 적 있다.
익산에서 열리는 가람 이병기 선생 기념행사 자리에서이다.
코스모스처럼 가녀리다고 할까,
동백꽃처럼 강단 있다고 할까,
약한 듯 보이지만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먼발치에는 그림자처럼
한 분이 계셨는데, 부군이라고 들었다.
참 보기좋게 길을 걸어가는 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