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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으로 퍼갈 수 없습니다.* 괴산의 오지마을-갈론계곡 글/사진: 이종원 여행작가인
한 선배가 갈론계곡을 가보았냐고 물어본다.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소리에 허를 찔린 것 같았다. 괴산은 아버님 고향에다가 내가 군복무(?)를 18개월동안 한 곳이 아닌가? 전국의 어느 지역보다 자주 찾았던 곳이고 청년시절 감물면 중대본부에서 용감한 방위생활을 했었기에 누구보다 괴산을 잘 안다고 자부했던 곳이기도 하다. 왠지 오기가 발동했다. 오지마을에 대한 궁금증과 그동안 고향을 소개하지 못한 죄책함이 나를 괴산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오지의 추억 충청도에서
괴산은 외딴 곳이다. 거기다 속리산 자락으로 깊숙히 들어 가면 사람이
그리울 정도의 오지마을이 여럿 있다. 군대생활 했던 감물면 증산동도
산속 깊은 오지였다. 예비군 훈련 통지서 달랑 한장 들고 중대본부를
나섰다. 2시간여를 오솔길 따라 터벅터벅 걸어야만 증산마을이 닿는다.
산새소리도 듣고 들꽃도 접하고 마을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기도 하고
괜한 참견까지 하다보면 3시간도 더 걸릴 때도 있었다. 매번
그렇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농사일 하러 들로 나간 것이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군인이 여기서 포기 할 수 있겠는가? 아니 2시간을 걸어온
것이 억울해서라도 훈련대상자를 꼭 찾아내야 한다. 낮잠을 자고 있는 옆집
할아버지를 깨어 밭이 어디냐고 물어 그를 찾아간다. 또 다시
산길을 걸으니 쏟아지는 땀을 주체할 수 없었다. 냇가에 들려 손바가지로
물을 떠마시고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주책맞게 노 래도 불러보기도 한다. 무슨
노래? '멋진 사나이' 드디어 저 멀리 고추밭에 물을 뿌리고 있는 농사꾼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나를 맞이 하고 있다. 그 역시 사람이 반가웠던 것이다. 그 잘난 예비군 통지서 한장 전달해 주면서 말한다. "아저씨...빨리
도장 찍어 주세요. 저 지금 가야돼요." 또 기다려야 한다. 아무렴 어떤가? 대한민국 국방부 시계는 째각째깍 흘러가니까.... 갈론마을 가는 길 갈론마을은 칠성면소재지에서 작은 길을 따라 12km나 들어가야 할 정도의 외딴마을이다. 한참을 가다보면 괴산 수력발전소가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지금은 작고 낡았지만 괴산수력발전소는 1957년 국내기술진에 의해 완공된 최초의 수력발전소란다. 그렇기에 50-60년대만 해도 공무원의 견학코스이기도 하다. 그러나 수력발전소 가 들어서면서 갈론마을은 섬아닌 섬으로 변했다. 배를 타고 드나 들수밖에 없었다. 80년대가
되서야 비로소
발전소옆에 호수길이 놓여 졌고 작년 12월에는 아스팔트 포장까지
된 것이다 . 이것이 아쉬운 대목이기도 하다. 교통이 좋아지면서
갈론마을은 더 이상 오지마을이 아니었다. 금년엔 유난히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서
물은 많이 더러워졌고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으니 말이다. 일단
댐을 넘어가면 드넓은 괴산호가 펼쳐지면서 새로운 세계에 접어든다. 기암절벽과 모래톱
그리고 맑은 물이 갈길
바쁜 탐승객의 발목을 잡는다. 자연이 만든 산수화에 흠뻑 반해 몇
번이나차를 세웠는지
모른다.
지금은 포장이 되어 쉽게 드나 들 수 있다. 중간중간에 차가 교차할 수 있는 공간이 여럿 있다.
칡뿌리 씹으며 은둔하는 갈론마을 핸드폰도 터지지 않아 이젠 누구도 나를 찾을 수 없다. 가끔 아무도 모르는 곳에 홀로 살아가는 꿈을 꾸지 않았던가? 하늘 무서운줄 모르고 발전하는 문명에 내가 도전한다고 하니 괜히 웃음이 나온다. 드디어 호수가를 굽이 돌아 갈론마을에 도착했다. 10여가구의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들은 고추, 담배농사를 지내며 살아간다. 이런 곳에 사는 사람들이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까지 한다. 갈론(葛論)마을의 원래 이름은 갈은(葛隱) 이었다고 한다. 칡뿌리 먹으며 은둔했던 곳이다. 그걸 말해주듯 계곡바위에는 수많은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폐교를 거닐며 마을끝자락에 폐교인 '외사초등학교 갈론 분교'가 자리잡고 있다. 교실은 달랑 하나다.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친 이승복 동상만이 외롭게 운동장을 지키고 있다. 운동장이라고 해봐야 테니스장 크기보다 작다. 10여명의 전교생앞 연단에 오른 교장선생님의 쩌렁쩌렁한 말씀이야 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지탱했던 정식적 버팀목이 아닐까? 듬성듬성 자란 잡초만이 멈춰진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느티나무 평상 밑에 누워 나의 코흘린 초등학생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언제가 초등학교 1학년 통지표를 본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등교시 손발의 청결을 요합니다.' 수 십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나는 그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부담 없는 얼굴, 가리지 않는 식성. 그래서 시골 사람들과 가까이 지낼 수 있었는지 모른다.
이제부터는 세파를 잊고 은둔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안녕 속세여'
다리를 건너면 산길이 시작된다. 더 이상 차가 올라 수 없도록 쇠사슬로 막아 놓았다. 사각사각 황톳길을 밟는 자체가 자연으로의 회귀다.
갈은구곡의 제 1경인 마당바위다. 널직한 바위 위에서 아이들이 다이빙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신이 난다. 바위 위에서 야영하는 이도 있고 낚시대를 드리우는 아이도 있다. 선계가 따로 있나?
도로가 좋아지고 메스컴에 몇 번 소개되더니 갈론계곡은 쓰레기의 몸살을 앓고 있다. 얼마나 더 자연에 부스럼을 더 내야 인간은 만족할까? 그러한 것들이 부메랑이 되어 우리를 위협할지 모를 일인데....
분명 아래쪽에 차가 못가도록 쇠사슬로 막아 놓았는데 ...계곡을 거슬러 올라 오면서 여러 대의 차를 보게 된다. 하늘로 날아왔나? 궁금하여 현지인에게 물어 보았다. "마을사람들에게 열쇠를 하나씩 주었는데..민박집 주인이 자기집에 묵는 사람들에게 열쇄를 내 준다고 하더군요."
작아도 편편한 곳만 있으면 바로 논밭이된다. 두 어평정도 될려나. 말 그래도 손 바닥만한 논이 농민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한치의 땅도 놀리지 않는 갈론 사람들이 슬슬 좋아지기 시작한다. '저 정도면 우리 식구들 일주일치 양식은 되겠지. '
올라 갈수록 피서객의 오만함은 찾을 수 없었다. 이제는 혼자다. 외로울수록 자연과 더욱 가까워지나보다. 넓게 퍼진 바위와, 병풍같은 암벽을 사이에 두고 수정같이 맑은 물이 여울을 이루어 낸다. 곳곳에 옛사람의 글씨가 보인다. 그들도 탁족을 즐기며 서 더위를 피했겠지.
수정처럼 맑은 물 물이 유리처럼 깨끗해서 발이 훤하게 보인다.
한참
올라가면 계곡이 둘로 갈라진다. 참 난감하다.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 밭에서 일하고 있는 할머니를 보고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다짜고짜 물어 보았다. "할머니.
이 논 누가 지어요?" 옛날엔 저 산 위쪽으로도 수십 가구가 살았는데 무장공비가 출몰할까봐 전부 내려오게 했다고 한다. 이 곳까지는 경운기가 들어오지 않아 아직도 소가 밭을 간다고 한다. 우물이 마를까봐 걱정이란다. 그 우물로 논에 물을 댄다고 한다. 가뭄 때문에 고추가 말라 그녀의 얼굴엔 그늘이 드리어져 있다. "옛날에는 칠성 장터 한번 가려면 서너시간이 걸렸시유. 그냥 가남유...머리에 고추를 잔뜩 이고 갔지유... 참..내일 비온다는 뉴스 들었남요? " 참깨에 비 맞을까봐 걱정이 되어 비닐 씌우러 이 곳까지 올라온 것이다. 조심스레 참깨에 비닐을 덮고 있는 그녀의 굵은 손마디를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갈론구곡은 오른편 골짜기에 몰려 있다고 한다. 할머니의 친절한 설명을 듣고 다시 정자골로 향한다. 길을 찾지 못해 물에 빠지기도 하고 흙길에 넘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신선의 세계에 내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4곡인 옥류벽이 보였다. 시루떡처럼 생긴 암석이 층층계단을 이루고 있다. 비단병풍같은 5곡 금병까지 올라갔다. 벌써 6시다. 더 이상 올라갔다가는 어두워서 길을 잃을 것 같은 생각이 불연듯 들었다. '오늘 다 둘러보면 다음에 또 오기가 힘들잖아.'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하산한다. 다음에 다시 올 명분을 찾은 셈이다. 속리산 자락의 산줄기는 늘 힘이 넘친다. 그 곳에 뿌리 내린 도라지꽃이 보라빛 향내를 건내주고 있다. 이제부터 야채 하나라도 버리지 않으리라. 이렇게 힘들게 지은 농사인데...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그 감동이 어깨를 짓눌렀다. 너무나 피곤했다. 마을 어귀 느티나무 평상에 올라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웠다. 조금 전에 보았던 멋진 경치가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할머니의 굵은 손마디가 아른거린다.
갈론마을을 벗어나
칠성면쪽으로 가다가 우연히
일몰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워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주님이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셨기에 이렇게 예쁜 세상을 주셨지. 그 안에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에 감사를 드린다. 하늘을 수놓은 해는 순싯간에 넘어갔다. 그러나 그 여운은 오랫동안 남는다. 갈론마을이 내 가슴 속 깊이 감동을 새긴 것 처럼..... 노을...그리고 중첩된 산 '아! 나의 고향 괴산이여.'
모놀과 정수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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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이구, 우짜꼬!...계곡물 오염 다 시키네...쯧쯧...소소소 ..참깨터는 손이 아름답습니다...
마치 직접 다녀온 듯 구경 잘했습니다. 전에 괴산을 한번 지나친 적이 있었는데.. 2편이 기대되는군요. 금병에서 선국암까지~~~ 신선놀음 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ㅎㅎㅎ ^^*
마지막 일몰사진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것 같습니다.. 항상 찾아다니시면서 볼거리를 제공하는 종원행님 ^^ 고맙습니다 ^^
고향을 오랫만에 다녀 오셨군요.아주 보기 좋습니다
저의 고향 잘 다녀 오셨네요...갈론에 사는 친구들이 중학교를 걸어 다녔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힘들게 학교를 다녔다는 생각이 들어요...쌍곡계곡 못지 않게 갈론계곡에 피서객들이 많이 몰린다고 하더라구요...쌍곡처럼 오염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우리나란 참 넓어요...그쵸?
대장 수고 많았어요.이 순진한 백성은 그 쇠사슬로 막아 놓은데까지만 갔으니 저리도 좋은 비경은 커녕 앞을 탁 막고 서있는 산만 바라보고 왔음이랴.....다음 기회가 되면 함께 함 가십시다.먹을것과 텐트 짊머지고 말입니다. 좋은 시간!!!.
몇년전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여름휴가를 '갈론'으로 다녀왔었지요. 찾아가던 길이 좁았던 기억..계곡입구의 폐교..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정말 사람들이 없었어요. 우리 식구만 오붓하게 지내던 곳..물이 넘 깨끗해서 좋다시는 친정어머니와 아들녀석이 맘껏 물놀이 하던 곳입니다. 자~~알 봤습니다.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