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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들 중세 유럽 로마 군제 개혁 역사 (후반부)
마법의활 추천 0 조회 2,033 07.11.30 15:06 댓글 6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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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2.06 18:29

    트레드골드에 따르면 아르메니아-이베리아의 군대는 '놀고 먹는 군대'가 아니라 최근 투르크인과의 교전을 통해 '실제로 싸우는' 군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일단 트레드골드 역시 병사 해산조치는 '필요하다'라고 했지만, 콘스탄티노스의 방식은 '무엇을 해산해야하고, 무엇을 해산하지 말아야할지'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는거죠. 즉, 이미 상비군이 군의 주력이 된 국경 테마, 해군 테마, 타그마쪽에는 적용했어야 했지만, 이것이 남부 이탈리아와 아르메니아까지 확대 적용되면서, 동방과 서방 양쪽 모두에 치명적인 부작용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 07.12.06 19:12

    메소포타미아를 공격한 투르크인의 규모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메소포타미아 자체가 주력 테마도 아니고(규모도 썩 많지 않고, 이 지역은 오랜 평화로 군대 훈련도 떨어졌으며), 아르메니아에서 테마 병사들이 받았전 지형적인 이점을 잘 살릴 수 있는 지세도 아닙니다. 테오도시우스 때부터 상류 유프라테스는 제국 방어의 약한 고리를 이루고 있었고 메소포타미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따져보면 투르크인을 가장 잘 저지할 수 있었던 지역은 아르메니아이고, 이 아르메니아 방어선이 붕괴한 시점은 1054년, 즉 1053년 테마병사들을 해산시키고 그 지역 방어를 타그마타와 용병부대에 위임한 시기와 맞물립니다.

  • 07.12.06 18:46

    정리하자면, 1048년의 성공적인 방어사례의 예시로 볼 때, 이미 아르메니아의 테마 둔전병들은 실제로 군역을 지고 있었고 이를 잘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평지라면 몰라도, 산지가 많고 요새가 뿌려져 있으며, 무엇보다 제국 최정예 테마를 제공하는 아르메니아의 사정은 메소포타미아와는 다르게 봐야합니다. 이 상황에서 콘스탄티노스가 해산시킨 둔전병은 [놀고 먹는 병사] 외에 [실제로 싸우는 병사]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세금을 높여 용병대를 고용한 뒤, 아르메니아 수비를 맡겼으나, 결과는 테마가 수비하던 때와는 다르게 아르메니아 방어선 붕괴와 그에 따른 일련의 동방 테마 붕괴입니다.

  • 07.12.06 19:12

    테마 둔전병으로서 아르메니아 방어를 맡았을 일부 군대들은, 로마노스 4세의 시기까지도 아르메니아에서 싸우면서 투르크와 제국의 완충지대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서방 페체네그의 위협도 1026~27년까지 콘스탄티노스 디오게네스의 지휘하에 제국군은 이를 격파한 바 있었습니다. 32~36년까지 페체네그의 침입도 있지만, 페체네그의 침입이 더욱 치명적으로 다가온 것은 토르니키오스의 반란과 그에 따른 서부 테마가 타격을 받은 이후입니다. 양쪽 모두 테마의 붕괴가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죠.

  • 07.12.06 19:14

    콤네노스님 말씀대로 테마의 전투력 향상, 그리고 상비군의 증강 요구가 꾸준히 이루어져왔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전시에 어느 정도의 훈련과 경험만 있다면 테마의 둔전병들은 '최소한' 방어전에 있어서는 자기 능력을 잘 선보여 왔습니다. 아르메니아나 아나톨리아의 테마 병사들은 꾸준히 공격에도 동원되었으며, 테오도시우스나 레오의 개혁 이후에는 테마의 병사들도 용병보다는 못해도 상당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 07.12.06 19:18

    효율성이라면, 분명 전투력 자체는 테마는 용병보다 떨어집니다. 하지만 클라우제비츠가 말했든, 전쟁에서 '머릿수' 자체가 주는 장점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그만큼 '머릿수'를 동원하는것 만으로도 쓸데가 많으니까요. 최대한 병참을 줄여야 하는 공격전이라면 몰라도, 방어전에서 이들은 여러 요새에서 배치되기도 하고, 이들 덕분에 깊은 종심 방어와 다양한 작전수행도 가능합니다. 1054년 용병에 의존한 아르메니아 방어선이 붕괴되자 2,3차 방어가 불가능해진 제국은 순식간에 상류 유프라테스까지 쫓겨났고, 평상시 같으면 패배했더라도 후방에 남아있는 둔전병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어야 할 shadow tactics 역시 좌절되었습니다.

  • 07.12.06 19:27

    굳이 사이프의 예를 든 것은, 페체네그인이 발칸까지 내려왔다고 하여 그것이 제국군 방어체계의 무력함을 상징한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슬람, 사이프는 물론, 사무엘의 군대는 펠로폰네소스까지, 클레이디온 전투 이후에도 불가르 약탈대의 일부도 콘스탄티노플 인근까지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하지만 위 사례가 제국 방어체계가 총체적으로 무력했다고 할만한 증거가 되지는 못하지요. 페체네그인의 습격은 빠른 기동과 약탈에 의한 것이지, 이 전투에서 특별히 제국군의 대군을 격파했다거나 하는 실적이 없고, 본질적인 지배권을 흔들지도 못했다면, 이를 '방어체계의 무력함'과 연관짓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 07.12.06 19:36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메소포타미아와 1071년 붕괴는 여러 복합적인 이유를 띄고 있습니다. 콤네노스님께서 이야기하신 정치적 불안정과 요새 넘겨주기도 큰 문제가 맞지요. 하지만 아르메니아의 경우를 볼 때, 테마가 보다 잘 조직되어 있고(지형상, 그리고 평화와 권귀의 세력확대로 무력화된 메소포타미아, 혹은 기타 테마와 차별되게), 로마노스 디오게네스가 계획했던 대로 테마를 재조직시킬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면(역으로 테마 둔전병 체제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면) 동방 방어체계가 그리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 07.12.06 19:36

    마지막으로...음, 이제 곧 기말고사라는 개인적인 사정도 있고해서-_-;; 한 번 논쟁을 하려면 한 시간이 넘어가는 이런 고급 논쟁을 계속하기는 힘이드는군요;; 콤네노스님의 고견은 잘 들었고, 제 부족한 점을 메꿔주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드문 토론 자리를 만들어주신데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07.12.07 02:11

    배...백플이다... 귀찬싸 공께서 두분 모두 궁형에 처할지도...ㄷㄷㄷ;;;

  • 07.12.07 09:38

    게볼공의 테마제의 역량에 대한 견해는 저도 같은 생각이지만, 콤네님의 제국의 용병들의 역량에 대한 논의도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군요. 올만에 좋은 논쟁 잘 봤다능~.~

  • 07.12.07 19:18

    어휴...두분다 내공빨이 쪄네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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