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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불자모임광장 원문보기 글쓴이: 일 행
현대 불교에 대한 진짜 위협
― 사아사나(Saasana)에 대한 도전 ―
나타샤 잭슨 지음 /박 승 정 옮김
Natasha Jackson (Bodhi Leaves NO. B. 42)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Kandy, Sri Lanka
`사아사나(Saasana)'라는 말은 서구의 불교 저술가들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 용어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사아사나'라는 말을 잘 알지 못한다. 냐나띨로까 주3) 스님은 불교사전 에서 사아사나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아홉 부류의 교설[九部經]로서 그것은 계경·중송·수기·고기송·무문자설·본사·본생경·미증유법·교리문답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4) 이와 같이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사아사나'라는 말은, 부처님이 평생 설하신 교설[一代敎]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부처님의 가르침 또는 종교적 체계로서의 불교를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지금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접하고 있는 우리들은 모두 사아사나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부처님의 탄생과 성도 그리고 열반을 기념하여 지극한 공경심과 신심으로 베사카제(Vesaakha祭) 주5) 를 봉행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고 또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오늘날 우리가 서구에서 갖는 이 행사는 스리랑카나 태국과 같은 불교 국가들에서처럼 거창하지 못하고 조촐한 의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사아사나가 아시아 대륙은 물론 유럽, 호주에까지 퍼져나가 그 불후의 특성을 빛내고 있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고 기리는 기회가 된다는 점에서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런 행사의 축복감에 도취된 나머지 혹시라도 만사가 다 잘되어가고 있고 저 지평선 위에 떠있는 구름 속에 천둥번개가 들었을 리 없다는 식으로 제멋대로 낙관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선 안될 것이다. 낙관론이거나 비관론이거나 극단을 치닫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므로, 될 수 있는 대로 모든 관점에서 사물을 빠짐없이 살피도록 노력해서 어렵고 불쾌한 사실도 외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긍정적인 면으로는 불교교단이 2510여 년간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존속해왔다는 엄연한 사실을 들 수 있다. 그 기간에는 퇴폐기, 박해받던 시기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이슬람교도들의 침입으로 승려와 신도들이 학살당하고 불교사원과 대학, 도서관, 미술품 등이 무차별 파괴되어 버린 참담한 격변기도 있었지만 불교는 살아남았다. 뿐만 아니라 유럽인들의 식민통치 기간에 가해진 그 집요한 정치적 경제적 압박조차도 스리랑카, 미얀마 그리고 인도차이나의 국민들의 마음에서 불교를 지워내지는 못했다.
다시 불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들자면, 불법 자체의 유다른 특성을 어떻게 견지해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이는 부처님 재세시부터 있던 일로서 불교가 안고 있는 영원한 숙제이기도 하다. 부처님 당시에도 부처님을 단멸론자(Annihilationist) 주6) 와 동일시하려 들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사띠(Sati)비구처럼 자아 또는 영혼을 식(識)이나 또는 어떤 다른 것으로 봄으로써 이들 개념을 불교에 도로 끌어넣으려 든 사람들도 있었다. 주7) 단멸론자는 전적으로 회의론적 입장인데 반해 영혼불멸설은 독단론이다. 독단론자는 일반적으로 지겹도록 고집불통이며 그 논리는 해롭다. 반면 전적으로 회의론자는 기여하는 것이 없는 방관자이며 따라서 쓸모가 없다. 부처님은 독단론자도 아니셨고, 전적 회의론자도 아니셨다. 하지만 자아나 영혼, 에고의 문제에 대해서만은 확고부동한 입장을 견지하셨다. 그 분은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넘어가는 어떤 주체란 있을 수 없고 다만 그 개인이 취한 행동과 말과 생각의 축적된 효력[業]이 존속하는 것일 따름이라고 주장하셨다.
25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똑같은 논쟁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불법은 공공연한 적대자들보다도 오히려 자칭 불교신자 혹은 지지자라는 사람들로부터 더 해를 입고 있다. 식민지 시대에는 불교에 대한 차별대우가 공공연하였다. 그렇게 차별하는 지배권력의 의중이 불교를 기독교로 대체시키려는 것인 줄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오늘날에 와서 그 갈등은 더 음흉한 양상으로 바뀌었다. 즉 불교를 유신론적 교리 또는 베단타(Vedaanta) 사상 주8) 과 동일시함으로써 불교 고유의 독특한 가르침을 파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기독교인들보다는 소위 불교 신자나 지지자라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
자칭 불교신자나 지지자가 불교에 끼치는 해독은 주로 불교교리의 가장 기본적 특징을 이루는 무아사상을 깍아없애려는 일련의 집요한 움직임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불교해석의 서방측 권위자 노릇을 스스로 맡은 이들 비교적 소수파들은 기독교적인 신의 개념 및 불변불사의 영혼개념을 자신으로부터 떨쳐내는 일에 분명히 실패한 사람들이다. 어린 시절에 주입된 관념에 집착하는 현상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런 현상은 이전에는 모호하게 사변적 방식으로밖에는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인 이클즈(Eccles) 박사가 뇌에 관한 그의 저술 속에서, 아주 어린 시절의 성격 형성기에 뇌 속에 인상지워진 사고형태가 전 생애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내었다. 그에 따르면 영원불변의 영혼의 관념이 마음의 심층 속에 일단 각인되면 이것을 제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된다. 그러한 사람들이 인간은 한낱 과정으로서 존재한다는 생각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중세기에 살던 사람들의 대다수가 이 지구는 둥글다는 생각을 수용 못하고 평평하다는 통념을 완강히 고집하던 것과 매일반이다.
콜럼부스는 신대륙 발견을 위한 항해에 동승할 승무원을 모집하느라 제일 애를 먹었는데 그것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 멀리 항해하다보면 땅끝까지 가버리게 되어 텅 빈 허공 속으로 곤두박질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알량한 영혼이라는 관념에 완강하게 집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텅 빈 허공처럼 생각되는 곳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한다. 오늘날 과학적 훈련으로 무장된 사람들조차도 물질을 끝까지 분석하면 곧 에너지라는 사실 그리고 또한 에너지가 물질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아무리 믿어지지 않는 괴이한 얘기라 해도 사실이 그런 것을 어찌 하겠는가?
이들 선량한 사람들이 어떤 교리를 믿건 간에 그것은 그들의 자유이며, 스스로 판단하고 싶은 개인의 권리를 간섭하려들 사람도 없을 것이다(하지만 버트란트 러셀의 다음 질문에 그들이 어떤 대답을 할는지 자못 궁금하기는 하다. `인류가 아메바로부터 진화해온 그 기나긴 도정 중에 어떤 단계에 이르면서 우리 조상들은 불사의 영혼을 갖기 시작한 것일까?). 여기서 문제가 되는 점은 이 사람들이 영혼을 믿고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부처님이 영혼을 가르쳤다고 우겨대며 사뭇 공세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신학적 논쟁으로 괴롭히기 작전을 편다고나 하면 알맞을 그런 자세로 그들은 계속 논문을 써, 온 세상에다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리스 데이비스 부인 주9) (리스 데이비스 교수가 아니란 점을 주의하기 바람.) 이나 게오르게 그림 주10) , 그리고 아난다 초오마라스와미 주11) 같은 부류의 대가들을 인용하고 곁들여서 경전의 구절을 자기 문맥에 멋대로 끼워맞추는 식으로 인용한 논문들로 말이다.
불교 교리에 능통한 사람들이나 아니면 적어도 빠알리 경전에 대해 어느 정도나마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남들이 아무리 `보다 높은 자아'니 `참 자아'니 또는 `온갖 등급의 자아'를 떠들어도 이 말들이 부처님이 가르치신 바하고는 전연 엉뚱한 내용인 줄 알기에 미동도 않은 채 시종 미소를 띠고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비불교적 개념들이 신심깊은 사람들을 혼란시킬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아직 불법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해 노력 중에 있는 초발심자들에게 혼란과 분열을 일으킬까봐 두려운 것이다.
불교 체제를 혼란시키는 또다른 그룹의 소위 불교의 `친구들'은 불교를 아예 힌두교 또는 베단타와 동일한 것이라고 떼쓰고 있는 사람들로서, 그들 중에는 동서양인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부처님은 힌두교도에서 태어났고 힌두교도로 죽었다."고 한 사람은 라다크리슈난 박사 주12) 였다.
그의 그러한 진술들은 부처님의 전 생애와 가르침을 완전히 부정한 것으로서 반드시 규명되어야만 한다. "부처님은 힌두교도로 태어났다"는 말 자체부터가 맞지 않는다. 왜냐하면 부처님 당시에 인도의 지배적인 종교는 힌두교가 아니라 바라문교(Brahminism)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라문교의 중심교리는 조물주 또는 창조신으로서의 범천[梵天, Brahma(남성명사)]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러던 것이 8세기를 넘어서야 브라만교의 철학자인 샹까라(Sankara) 주13) 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주14) 위대한 미현자(未顯者, The great unmanifested) 또는 절대자이며, 기도드릴 대상이 아니신 분 주15) 으로서의 브라흐만[Brahman(중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게 되었다. 그러한 초월적 원리의 도입이 바라문교로부터 힌두교에로의 전환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런 브라흐만의 개념은 인도의 힌두교도와 서양의 베단타주의자(서양인은 카스트 제한 때문에 힌두교도는 될 수 없으니까) 사이에 오늘날에도 통용되고 있다.
초월적 절대자(브라흐만)란 관념을 도입·수정한 것은 참으로 기발하고 재치있는 착상이었다. 그것은 범천(Brahma)·비쉬누(Vishnu)·시바(Siva)와 같은 신들은 브라흐만(천주)의 `부분적 면모들'을 지닌 존재들, 즉 범천은 창조자로, 비쉬누는 보존자로, 시바는 파괴자로 각각 그 지위를 강등시켰다. 즉 브라흐만은 비인격적 통합원리였으며, 다른 신들은 (위대한 미현자가) 각각의 측면으로 그 자신을 드러낸 모습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렇게 되자 모든 사람이 다 즐거울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인도의 그 엄청나게 많은 못배운 대중들은 예전처럼 그들의 의인화된 신들을 예배할 수 있었으니, 범천·비쉬누·시바, 그밖에도 인도 만신전(萬神殿)의 모든 신들이 마치 큰 나무에서 가지를 친 것처럼 무성한 채 고스란히 살아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지적이어서 이러한 조잡스런 교리를 믿을 수 없었던 인도의 지식층들은 미분화(未分化)된 절대자, 즉 브라흐만이라는 불가해한 존재를 감싼 고치의 둘레에 형이상학이라는 누에 실을 치는 것으로 즐거움을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부처님이 그러한 통일원리 또는 우주적 본질의 존재를 믿었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 그러한 문제에 대해 부처님은 완전히 침묵을 지켰을 뿐이었다. 우리가 확실하게 추론해낼 수 있는 것은 다만 그가 창조신(Brahma 梵天) 또는 조물주의 관념을 거부하고 인과법칙이라는 우주의 이법(理法)을 고수하였다는 점이다. 그는 태초에 관한 밑도끝도 없는 사변을 찬동하지 않았다.
"형제들이여, 이 기나긴 여행의 시발이 언제였는지는 계산으로 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지에 사로잡혀 욕망에 묶여 있는 존재들의 이 끝없는 질주, 한없는 여행의 시발점은 드러나지 않는다."
정작 빠알리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창조신인 범천(브라흐마)에 대해서다. 우주적 본질로서의 브라흐만에 대해 언급한 곳은 경전을 통틀어 그 어디에도 없으며, 부처님이 살고 계시던 기원전 6세기의 인도에 정말 그런 개념이 유포되고 있었다고 상정할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불교를 힌두교와 동일시하며 또 불교가 범아사상 주16) 의 한 변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도부터가 불순하며, 학문적 타당성도 결여된 것이다. 파울 달케 박사 주17) 가 두 종교간의 차이를 매우 명료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불교를 바라문교에서 파생된 것이라거나 어느 정도 바라문교가 진전한 것, 또는 바라문교의 유심론적 전개라고 서술하는 것이 통례이다. 그러나 두 종교간의 관계는 순전히 외면상의 것에 불과하다."
"그 내면적 성질에 있어서 불교는 바라문교와 완전히 반대되며, 뿐만 아니라 바라문교의 가장 유심론화된 형태인 베단타 사상과도 배치되니 마치 낮이 밤과 배치되는 것과 같다. 불교가 바라문교와 철저히 배치되는 것은 불교가 기독교나 이슬람교와 배치되는 것과 같으며 만일 불교가 바라문교로부터 기원했다고 친다면 이는 마치 불교가 기독교나 이슬람교로부터 기원했다는 논리와 다를 것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신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나다.'라고 하는 바라문교의 가르침은 신비의 암류(暗流)처럼 세계의 모든 종교를 하나같이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며 `모든 것은 내가 아니다.'라고 가르치는 불교만이 유일하게 그 모든 종교와 대치하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불교가 그 전개의 발판이 된 바라문교와 공통되는 유사점이라면 불교가 계속 사용하고 있는 일련의 표어 주18) 들인 바, 이는 꼭 갓나온 병아리가 아직도 몸에 달걀껍질 조각을 붙이고 있는 것과 같다."(― 이상 불자수상집 에서)
그러나 이 모든 논쟁들이 얼마나 불필요하고 부질없는 것인가? 만일 사람들이 신이나 영혼의 존재를 믿고자한다면 불교말고도 그들의 요구에 영합하는 수많은 종교가 있다. 주요한 것만도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베단타를 꼽을 수 있으니, 그 중에서 골라잡으면 될 것이다. 구태여 부처님이 평생을 바쳐서 논파했던 그 모든 독단론들을 마치 부처님의 가르침인 양 속이면서까지 불교를 왜곡시키려들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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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주
1) 황색가사 : 남방불교권에서 걸치는 가사는 대체로 노란 색임.
2) 조건지워지지 않은 상태 : 열반. ∥원문으로∥
3) 냐나띨로까(Nyanatiloka, 1878-1953) : 독일인으로 유럽인들 가운데 최초로 비구계를 받은 분. 일찍 불교철학에 이끌려 1903년 스리랑카로 건너갔다가 1904년 미얀마에서 수계하고 다시 스리랑카로 돌아와 나머지 생애를 동양에서 보냈다. 그는 빠알리어와 불법에 정통한 학자로서 명성을 누렸으며 영어와 독일어로 많은 책을 썼다. 처음 펴낸 부처님의 말씀(The word of the Buddha:1906)」은 지금도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그 외에 영문으로 된 논장안내서(Guide through the Abhidhamma Pitaka)」, 불교사전(Buddhist dictionary)」 등이 있고 더욱 방대한 저술들은 독일어로 쓰여졌는데 그 중에는 밀린다 왕문경 , 증지부경 , 청정도론 의 독어역들이 있다. 1911년 스리랑카의 도단두와(Dodanduwa) 근처에 Island Hermitage를 세웠는데 이는 곧 전 세계의 불교계에 유명해졌다. 제1차, 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독일 시민이란 이유로 영국 당국으로부터 억류되어 일체 활동을 금지당하기도 했지만, 전 세계적인 명망과 고귀한 모범을 보임으로써 많은 서양 불자들을 승가로 끌어들이게 되었다. 그의 독일인 제자들 가운데는 Ven. Sumano Samanera(1906년수계, 1910년 스리랑카에서 입적), Ven. Vappo Mahathera(1911년수계), Ven. Nyanaponika(1901년생, 1936년수계, B. P. S창설, 회장역임. 1994년입적) 등이 있다. ∥원문으로∥
4) 구부설(九部設) : 또는 구분경, 구분교. 경 가운데 서술의 형식이나 내용에 의해 경전을 분류한 체제.
1.계경(契經, Sutta): 경 가운데 장행 내지 산문의 부분.
2.중송(重頌, Geyya): 먼저 산문으로 서술한 후 다시 운문으로 읊고 있는 경의 부분.
3.수기(授記, Veyyaakarana): 주석(註釋). 수역(授譯) 또는 별기(別記)라 번역. 불제자들의 생사인과를 적거나 불법의 심의(深意)를 분명히 적은 부분.
4.고기송(孤起頌, Gaathaa): 운문체의 경문.
5.무문자설(無問自設, Udaana): 부처님이 질문받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감흥이 일어나 설한 시의 문구.
6.본사(本事, Itivuttaka):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로 시작하는 경.
7.본생경(本生經, Jaataka): 부처님의 전생담을 실은 경.
8.미증유법(未曾有法, Abbhuta-dhamma): 부처님의 공덕의 위대함을 찬탄한 부분. 또는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미증유의 일들을 기록한 부분.
9.교리문답[方廣, Vedalla]: 인명(因明), 정리(正理)에 의거, 불법의 깊은 뜻을 자세히 설한 부분 ∥원문으로∥.
5) 베사카제 : 베사카는 양력 4∼5월에 해당하는 달의 이름. 이 달 보름에 지내는 남방의 석가탄신 봉축제. 남방에선 이 날을 석탄일과 성도일, 열반일로 기림. ∥원문으로∥
6) 단멸론자(斷滅論者, Uccheda-Vadin) : 사람은 일단 죽으면 끝나는 것으로 다시 태어나는 법이 없으며, 선악이라든가 과보는 없다고 주장하는 그릇된 견해를 신봉하는 자. 육사외도 중 유물론이 그 대표적 유파임. ∥원문으로∥
7) 부처님은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고 어떤 것도 지속되는 것은 없다고 주장하던 유물론자의 단멸론[斷見]과 영혼은 영원불멸하다고 주장하던 영속론[常見]을 둘 다 극단론이라 하여 거부하고 중도를 취하셨는데, 이 깊은 묘리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범속한 무리들이 항상 불교를 어느 한 극단으로 끌어내리려던 역사적 사실을 얘기하고 있다. ∥원문으로∥
8) 베단타 사상 : 인도에서 바라문교가 불교와 자이나교에 압도되어 쇠퇴하자 서기 2세기 이후 바라문적 전통의 부흥을 주장하는 여러 철학 학파가 일어났다. 그 중에서 육파철학, 특히 베단타 학파[후사유파(後思惟派)]가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여 왔다. 이 파는 베다성전 중에 특히 우파니샤드 철학을 절대적인 근거로 믿고 그 사상에 입각해서 철학 계통을 조직하였음. 시조는 바아다라야나(Baadaraayana)라고 하며, 근본경전은 브라흐마 수트라(400-450). 대성자는 샹까라. 한편 바아스카라의 불일불이설(不一不二設), 라아마누자(1055-1137)의 제한불이설(制限不二設) 등 반대입장을 취한 많은 파들이 생겨나 지금도 세력을 다투고 있다. ∥원문으로∥
9) 리스 데이비스 부인(Mrs. Rhys Davids) : 제2대(1922-1942) P. T. S 회장으로 불교 교학 연구에 다대한 공헌을 하였으나, 남편이 불교에 귀의한데 반해 그이는 개종하지 않고 기독교인으로 남았다. 본문에서 저자가 그이를 거명한 것은 그이의 학문적 입장이 불교적 또는 객관적 입장을 견지한다기보다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출발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인 것 같다. 저서로는 불교심리학 「인도 철학의 탄생과 불교에서의 발전 장로게송집 장로니게송집 등이 있음. ∥원문으로∥
10) 게오르게 그림(George Grim, 1868-1945) : 독일 태생의 불교학자. 수행가. 원래 카톨릭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마쳤으나, 양심상의 이유로 신부서품을 받기 전에 신학교를 그만두고 법률을 택해 판사가 됨. 철학 문제에 관심이 깊어 쇼펜하우어의 저술을 깊이 연구하다가 인도학과 빠알리어 연구에 이끌리게 됨. 점점 더 불법의 매력에 사로잡히게 된 그는 1923년 판사직을 그만두고 뮤니히주 항소법원의 변호사로 지내며 불교 관계 저술에 전념. 그의 저서 불타의 교의(The doctrine of the Buddha)」와 이성과 명상의 종교(The religion of reason and meditation)」는 세계적으로 그의 명성을 높였다. 자신이 스스로 수행을 통해 얻은 견지에 입각하여 저술을 했음. 유명한 인도 학자이며 철학자인 파울 도이센과 깊은 교우를 가졌으며 인도 학자 칼 나이덴트튀커와 같이 `옛 불교 공동체(Old Buddhist Community)'를 창립하였다. ∥원문으로∥
11) 아난다 켄티쉬 초오마라스와미(Ananda Kentish Coomaraswamy, 1877-1947) :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태어남. 런던 대학을 졸업. 인도예술사학자로서 스리랑카에 있는 박물학 연구회에 지도자적 역할을 함. `인도예술학회'를 창설하여 인도의 철학, 종교, 예술, 문학, 음악, 이슬람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많은 업적을 남김. 저서로는 <인도와 실론의 공예> <원시불교> <자바와 실론의 대승불교의 이미지> 등 다수. ∥원문으로∥
12) 라다크리슈난(Sarvepalli Radhakrishnan, 1888-1975) : 인도의 철학자. 정치가. 마드라스의 기독교 대학에서 배운 후 인도의 여러 대학 교수를 역임. 근대 인도 철학계를 대표하는 세계적 석학. 유네스코의 인도대표(1946-1950). 말년에는 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연구, 강의하면서 지냈음. 특히 그의 법구경 번역은 가장 널리 읽히고 있으나 힌두교적 영향을 못 벗어났다하여 남방의 정통 불교인들로부터 비판당하는 경향이 있음. ∥원문으로∥
13) 샹까라(Sa^nkara), 788-821 또는 700년경-750년경) : 남인도에서 출생. 베단타 철학의 주류를 이루는 불이일원론파를 창립. 베다를 배우고 수많은 사원을 건설. 여러 나라를 편력하면서 논적을 격파, 교단을 창립. 자파의 확장에 힘씀. 특히 슈링가기니의 승원을 본거로 활동. 후에 카쉬미르에 가서 불교도와 논전을 폈다. 철저한 바라문적 입장을 지켜, 일체전적을 무시하고 베다만을 권능으로 인용하는 고답적 자세를 취한 보수주의자. 그러나 후세의 학자들과 달라 힌두교의 한 종파에 속하는 일은 없었고 오히려 힌두교까지도 무시하였다고 생각된다. 그의 주저 <베단타슈트라바아샤> 는 본문해석 부분만이 경의 원의에 가깝다고 생각되나, 주석서 전체를 통해 나타난 그의 철학체계는 경의 본문과는 인연이 멀다. <브라흐마슈트라바아샤>, 수많은 우파니샤드 주해서, 시바신에 대한 수많은 찬시 등 약 400종이 그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원문으로∥
14) 샹까라에게 영향을 주로 끼친 것은 대승불교이며, 그의 브라흐만 사상의 원형은 법신불 사상과 매우 유사한 점이 있다.
15) 기도는 현현자인 제신들에게 드려야 보응한다. ∥원문으로∥
16) 범아론(凡我論) : 우주 창조의 절대 원리인 범과 영원불변한 자아는 같은 것으로 지혜를 깨달음으로써 자아는 범에 환입한다는 사상. 베단타 학파 등 힌두교 제 학파의 사상적 근간을 이루는 이론. ∥원문으로∥
17) 파울 달케(Paul Dahlke, 1865-1928) : 독일 불교 운동의 지도자 중 한 사람. 본래 의사 겸 저명한 학자. 스리랑카에서 빠알리어를 배우고 경전 일부를 번역. 그후 계속해서 여러 책을 저술하였으며 1918년 이후에는 <신불교인지(新佛敎人誌)>와 <잡동사니(Die Brockensammlung)>의 두 정기간행물에 훌륭한 논문들을 씀. 동방에서 돌아온 후 `우리 불자들은 교회가 없고 원하지도 않고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루의 일과를 끝낸 후 정신을 고요히 쉴 수 있는 장소는 필요하다. 특히 대도시에 이런 장소를 만들도록 우리는 노력해야 할 것이다.'는 생각을 갖고 나쁜 건강에도 불구하고 애쓴 나머지 베를린-프로흐나우의에 불교 공동체 센터인 큰 법당을 지음. 이곳은 곧 전 유럽의 전시장이 되었으며, 지금은 스리랑카 스님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불법을 배우고 선정수행을 닦으려는 사람들에게 공개되어 있다. 주요 저서로는 <불자수상집>, <불교와 과학>, <불교와 인류의 지성적 생활> 등이 있다. ∥원문으로∥
18) 이를테면 고(苦)라든가 해탈(解脫) 등의 용어들. ∥원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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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Sangharaja Mawatha
P.O.Box 61
Kandy, Sri Lanka
보리수잎·여덟
불교이해의 정(正)과 사(邪)
1987년 5월 30일 1판 1쇄 발행
1998년 7월 30일 1판 4쇄 발행
출판등록 : 1989. 2. 18. 제 1-879호
펴낸이 : 한 기 호
펴낸곳 : 사단법인 고요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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