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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라
누가복음 8 : 26 - 39
방송을 통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서울 어느 교회 부인 집사가 집회에 참석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고 보니 너무 좋아서 더 많은 은혜를 받기위해 기도원에 갔습니다. 남편은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하고 집에 와 보니까 아무도 없고 식탁에 ‘여보 나 기도원에 가니까 짜장면 시켜다 식사하세요’라는 메모를 보고 전화를 하니까 ‘오산리 기도원인데 내일 아침에 갈께’라고 하더랍니다. 남편은 화가 나서 그길로 집을 나가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은혜 받았다고 집안 일을 돌보지 않고 기도원에 가서 철야를 하는 것은 성도로서 잘하는 일이 되지 못합니다. 남편에게 화가 나서 밤새워 술을 마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은혜 받았다고 해서 가정을 살피지 않고 남편이나 자녀들을 돌보지 않고 교회에 사는 것은 은혜를 잘못 받았습니다. 교회 봉사한답시고 가정을 억망진창으로 만드는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았다면 가정을 더 잘 돌보아야 하며, 남편에게 아내로서, 자녀들에게 엄마로서, 부모에게 자녀로 더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직장에서도 사원으로, 사장은 사원들에게 더 잘 해야 합니다. 어떤 장로님은 큰 회사의 사장으로 직원들에게 고되게 일만 시키고 노임을 짜게 주니까 교회를 욕 합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가 이런 면에 문제가 있습니다. 교인들을 교회에 붙잡아 놓고 기도회를 하거나 성경 공부를 하거나 전도를 하거나 기도원으로 데리고 다닙니다. 온갖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일같이 교인들을 참여 시키니까 교회에 매여 가정을 돌볼 시간이 없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귀신을 쫓아내 주셨습니다. 귀신들렸던 사람은 자신을 온전한 사람으로 고쳐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을 떠나기 위해 배에 오르자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습니다(38). 그러나 예수님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39). 그리고 “주께서 네게 어떻게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은 네 가족에게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은혜 받은 성도일수록 가정을 중요시하여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은혜 받은 성도는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것을 예수님은 원하십니다. 매일 교회에 모여 기도하며 성경 공부하고 전도하는 것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았다면 세상일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일 하는 것은 부정하고 교회를 중심으로 사는 것만 성결한 것이 아닙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자신에게 귀신을 쫓아내어 온전한 사람이 되도록 해 주신 예수님에게 감사해서 예수님을 따르며 섬기고자 했던 것입니다. 귀신에 매여 그동안 인간답지 못하게 살았습니다. 오랫동안 옷을 입지도 아니하고, 집에 살지도 않고, 무덤 사이에 살다 싶이 하였습니다. 사람이면서 사람답게 살지 못했습니다. ‘군대 귀신(많은 귀신)’이 들려 아무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지만 그 맨 것도 끊어 버리고 광야로 나갔습니다.
귀신은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는 존재입니다. 귀신이 들리므로 자신도 괴로울 뿐 아니라 부모 형제들까지도, 이웃 사람들까지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귀신들린 자신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자신의 고통을 참지 못해 들로 산으로 무덤 사이로 뛰어다니며 울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의 부모도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아들이 귀신들려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얼마나 속이 탔겠습니까? 그 동네 사람들도 고통스러웠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귀신들린 사람을 잡아 쇠사슬과 고랑으로 매어 지키기까지 했지만 쇠사슬을 끊어버리고 도망 다니는 것을 보고 무서워하며 괴로워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귀신들린 사람은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 주시고 온전한 사람으로 회복 시켜 주셨으니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귀신 나간 사람이 예수와 함께 있기를 구한 것은 자신을 온전하게 해 주신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면 좋을 것 같아서 함께 하자고 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자신을 고쳐주신 은혜가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예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구나’라고 하시며 ‘그래라’고 하지 않으시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은 그에게는 가족들과 친족들이 있었기 때문에 돌아가서 그들 모두에게 자신이 받은 놀라운 은혜를 전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아들로서 하지 못했던 일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귀신 들렸던 자에게는 고침 받은 대가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책임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 책임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제자로서 십자가를 지는 고통의 짐이 아니라 그가 이제 정상인으로 돌아가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쳐주셨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직장에 매여 교회 일을 잘 할 수 없다고 해서 직장에 사표를 내고 전도하는 것은 성도로서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장로직을 잘 수행하기 위해 국가 요직을 사표를 낸다면 믿음 좋은 장로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국가 요직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장로직을 사표내고 그 일을 잘 감당하기를 예수님은 원하십니다. 직장도 하나님이 주신 일터입니다. 교회 일만 잘 한다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 일도 교회일 못지 않게 잘 해야 합니다. 불신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성도로서 더 열심히 할 때 전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길거리를 다니고 집집마다 전도지를 들고 전도하는 것만이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에 맡은 일을 잘 하므로 해서 회사를 살리고 매출을 올려주었을 때 불신 사장도 감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회사가 나에게 주신 선교 사역지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고행도 아니요, 험한 곳으로 가는 고난도 아닙니다. 단지 정상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란 꼭 어려운 고행의 길을 통해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일상의 삶속에서 변화 받은 자신의 바르고 아름다운 인간됨을 보이면 되는 것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정상적인 삶을 살므로 성도다운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는 정상적인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아들 이상 더 큰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남편의 정상적인 아내가 되고, 아내의 정상적인 남편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에 대한 정상적인 부모가 되는 것이요 부모에게 정상적인 자녀가 되는 것이 은혜 받은 성도입니다.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마치 특별한 은사를 받은 것처럼, 성자가 되어 가족도 모르고 세상도 모르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부모도, 자녀도, 남편도, 아내도 돌보지 않고 교회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원을 찾아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정상적인 자기 위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신 것은 그동안 귀신 들려 자식 노릇 하지 못한 것을 자식 노릇 잘 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예수님과 함께 있도록 하셨다면 그의 부모는 예수님께 아들을 빼앗기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귀신에게 빼앗긴 아들을 이제 예수님께 빼앗기는 것입니다. 귀신에게 빼앗긴 것보다 낫을지는 몰라도 그 부모는 계속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에게 아들 노릇 잘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귀신 들려 아들 노릇 못했으니 이제 아들 노릇 하도록 귀신을 쫓아 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라고 귀신을 쫓아내 주신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서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께서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귀신들린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던 가족들에게 가서 ‘주께서 너를 불쌍히 여기시고 귀신을 쫓아내 주신 것’을 알리므로 가족들을 불행에서 벗어나게 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은혜 받았다고 너만 좋아하지 말고 가족들에게도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은혜 받은 성도는 직장에서도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맡은 일을 더 잘 하는 것입니다. 비록 천한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은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고 더욱 열심히 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을 못 마땅하게 여기며 열심히 하지 않고 더 큰 일을 할 수 있기만을 바라고 기도하는 것은 성도로서 합당하지 않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되었을 때 억울하게 잡혀 온 것을 원망하며 종으로서 최선을 다 하지 않고 언제 집으로 돌아 갈 수 있을까를 생각만 하였다면 더욱 불행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종에서 속히 벗어나게 해 주시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종으로서 최선을 다 했을 때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고, 옥에 갇혔을 때도 죄수로서 모범적이였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둘러쓰고 옥에 갇혔지만 ‘억울한 누명을 벗겨 주시고 속히 옥에서 나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종으로서, 죄수로서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했을 때 주인도, 간수들도 모두 복을 받았습니다.
아람 군대 장관 나아만에게 사로 잡혀 온 어린 여자 아이를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군대 장관 나아만은 왕의 말이나 귀담아 들을까, 어린 여종 같은 천한 사람의 말은 들을 사람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어린 여종의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나아만은 여러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병을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다는 이런 저런 말들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신하들이나 장관들이나 하물며 왕까지도 어떻게 하면 장군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이런 저런 말들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 모두의 말을 들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종의 말을 들었다는 것은 어린 여종이 얼마나 감동적인 말을 했는냐가 아니라, 얼마나 종으로서 잘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성령께서 그 마음을 감동시켜 주셨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면에서 생각해 볼 때 그 여종이 종으로서 잘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그 어린 여종이 울고 말도 듣지 않고 애만 먹이고 있었다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내의 몸종으로 잘 했기에 감히 군대 장관 나아만이 어린 여종의 말을 들을 수가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종이 나아만과의 어떤 관계이냐는 것입니다. 가까운 친척이나 존경해야 할 분이 아닌 자신을 매우 불행하게 만든 사람입니다. 자신의 행복을 빼앗은 사람입니다. 나아만이 아람 군대 장관으로 이스라엘을 치고 재산을 빼앗고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 왔습니다. 어린 여종의 나라를 망하게 하였고, 부모도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 못할 정도로 불행하게 만든 장군입니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이럴 때 하나님께 기도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집으로 빨리 돌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 여종이 하나님께 ‘하나님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사 이 집에서 빨리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만 하고 있었다면 주인이 그의 말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종으로 최선을 다했을 때 주인도 감동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회사에 근무하는 성도는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므로 사장이나 다른 직원들이 보고 교회 다니는 아무개가 있어 우리 회사가 복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성도다운 성도인 것입니다. 자신이 맡은 일도 잘 감당하지 못하면서 사장에게 교회에 가시자고 할 수 있겠습니까? 별로 유익하게 하지 않고 교회만 생각하고 주일을 지킨다고 하면 영광만 가리우게 되는 것입니다. 주어진 일을 잘 해서 회사에 크게 유익을 남기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 받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월급이 적다는 불만을 품고 기회만 있으면 다른 회사로 가겠다는 생각으로 일 한다면 회사에서도 덕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회사로 갈 수 있는 길도 열리지 않습니다.
귀신들렸던 사람이 깨끗하게 고침을 받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신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게 되었습니다(막5:20). 그동안 귀신들렸던 자신 때문에 불행했던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은혜받은 성도로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원하셨습니다. 은혜 받았다고 교회에 살고 가정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예수님이 원하지 않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는 자신에게 주어진 곳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은혜 받은 성도는 자신의 가정부터 행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가족들에게 먼저 은혜 받은 성도로 인정 받아야 합니다. 자신이 다니는 직장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마을과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셨는지를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