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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21강 - 그리스도인의 황금률
whdydsla 추천 0 조회 4 08.12.03 15:5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하나님백성의 회복을 위한 내면세계의 회복 No. 21                                                굶주린 마음 ④


그리스도인의 황금률


  신구약 전체에 나오는 사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까이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 역시 우리를 버리신다는 사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버리신다는 것, 이것이 바로 황금율입니다. 황금율을 언급하고 있는 몇 성경을 찾아보겠습니다.


  역대하 15장 2절입니다.


[2]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와 함께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말라기 3장 7절입니다.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열조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 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도다


  사무엘상 2장 30절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 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야고보서 4장 8절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예레미야 2장 13절입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스가랴 1장 3절입니다.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보십시오. 신구약 전체에 걸쳐 황금율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면 하나님께서도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서도 가까이 하시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만난 바 되시고, 하나님께 돌아가면 하나님께서도 돌아오시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존중히 여기신다는 말씀입니다. 같은 의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경멸히 여기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경멸히 여기고, 하나님을 멸시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시하고, 하나님께서 돌아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피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황금율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즉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말의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영적 분별력의 중요성을 봅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모르면 하나님의 의도와 다르게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 따로 나 따로’ 식의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비극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버렸다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관점 곧 하나님의 기준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말씀을 이해하여야만 합니다.


  이사야 시대의 신앙생활의 예가 극명하게 잘 보여줍니다. 그 많은 예배와 제물, 기도와 헌신, 참으로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그들에게 “당신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십니까?”라고 질문을 했다면 그들이 뭐라고 답변할까요? 아마도 “그걸 말이라고 하시나요?”라면서 반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한 마디로 냉담하였습니다. 즉 그들이 여호와를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입니다.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참으로 무서운 부분입니다. 본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정작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버렸노라고 말씀합니다. 이 상황은 예레미야 시대에도 반복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 2장에서 그 시대를 보시며 이 백성이 하나님을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그렇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 하나님을 버려다는 말씀이 무슨 의미일까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버렸다는 말씀이나 하나님을 멸시했다는 말씀은 모두 다 신앙의 본질에서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신앙의 본질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 짤막하게 소개합니다.


  첫째, 우리 신앙의 본질은 인격체이신 하나님을 알고 전존재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호세아 6장 6절과 예레미야 7장 21절부터 23절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 [21]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22]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하지 아니하고 [23]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 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


  “번제나 희생을 말하지 아니하며”라는 부분은 하나님이 제사에 대해 말씀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왜 말씀하지 않았다고 하신 걸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번제나 희생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주된 내용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도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성경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 신앙의 본질입니다. 즉 신앙의 핵심입니다.


  둘째, 번제나 희생은 신앙의 의식으로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번제나 희생을 드리라고 하신 분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시니까요. 성수주일, 십일조, 봉사하는 일, 섬김, 금식이나 기도 등은 의식으로서 모두 다 중요한 신앙의 의식들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들이니까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살펴보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어쩌다 30만원이 생겼을 때 미처 잊어버리고 지나칠 때 하나님이 지적하십니다.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입니다. 사실, 어떨 때에는 20배가 넘는 돈을 구제헌금으로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3만원 때문에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도적질과 같기 때문입니다. 의식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셋째, 의식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본질을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 부분이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여기서 많은 분들이 혼돈을 겪습니다. 의식은 목적이 아니라 본질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는 일이 없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이 없이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의식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의식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본질을 말하다보니 의식은 마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오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은 어디까지 의식일 뿐입니다. 곧 수단일 뿐입니다. 목적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입니다. 곧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그 일입니다.


  넷째, 그러기 때문에 의식이 아무리 많아도 본질이 없으면 의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결혼식이 끝난 후 남편이 바람을 피우면 값비싼 결혼반지가 의미가 없어지듯이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식이 중요하지만, 그것이 사랑의 표현으로서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수단이기 때문에, 그 의식이 많아도 본질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주의 신앙관이란 의식을 잘 하면 신앙생활 잘 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신앙관입니다. 정확하게 거짓신앙체계입니다.


  다섯째, 의식이 본질을 대체해버리면 거짓신앙체계의 꽃인 율법주의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버렸다는 말은 본질에서 떠난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을 버린 것을 의식에서 떠난 것으로 이해합니다. 즉 예배드리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주일이면 교회 가지 않고 절에 가면 하나님을 버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십일조를 빼먹고, 철야기도를 나오지 않으면 그런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것을 두고 흔히 하나님을 떠났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당연히 포함하곤 있지만 말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것은 신앙의 본질인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그 일에서 떠난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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