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6월 18일 출생 Mobberley, Cheshire, England 1924년 6월 8일 또는 9일 사망 사망당시 37세 직업: 교사, 산악가 영국 산악인 조지 말로리와 안드류 어빈은 1924년 6월 8일,제 6캠프를 떠나 에베레스트로 향했다. 6캠프에서 그들의 등반을 지켜봤던 오델에 따르면, 바람과 함께 구름이 그들을 가렸고,다시 구름이 걷혔을 때 더이상 두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그 이후 영영 보지 못하게 된다. 사실 이 등반에서 그들의 죽음만큼이나 유명해진 것은, 다름아닌 전문 산악인 이자 유명인이었던 조지 말로리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그는 등반대원 중 가장 나이 어리고 등반 경험이 전무한 어빈을 파트너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이들은 산소통을 사용했는데, 1920년대의 산소통은 무게도 무게거니와 고장도 잣았다. 어빈이 공대생인 걸 감안하면 노련한 등반가였던 말로리의 선택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론 실패했지만 말이다. 이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유족들을 뒤로하고, 과연 조지 말로리와 안드류 어빈이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는가 그렇지 않았는가에 대해 논란이 거세졌다. 1933년 영국의 4차 에베레스트 원정대는 9년 전의 피켈 한 자루를 발견했는데 이것은 1924년에 실종된 어빈의 것으로 밝혀졌다. 어찌 되었든 이들의 실종 및 등반완료에 대한 논란은 언제나 영국 산악계에서 거론되었다. 1999년 다국적 탐색대는 산악인 에릭 시몬스(Eric Simonson)를 필두로 원정대 및 다큐멘터리 팀을 구성하여 말로리의 시체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그들은 조지 말로리의 시신을 발견했다. 에릭 시몬스 등반대는 중국 산악인 왕홍바오의 진술에 크게 도움을 받았는데, 왕홍바오는 1975년 에베레스트 등정 중 북쪽 루트에서 세계대전 이전 차림새의 영국인 시체를 목격했다고 말했다. 말로리의 존재를 몰랐던 그는 이 사실을 1979년에 함께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선 일본인 하세가와에게 처음 알렸으나 하세가와는 바로 다음날 눈사태로 사망해 위치 단서가 사라지고 말았다. 어찌되었든 그들은 시체를 찾았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말로리의 정상 등정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등반을 떠나기전 한 부인이 "왜 에베레스트에 등반하기를 원하느냐"고 묻는 질문에 말로리는 대답한다.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Because it is there)" |
출처: 민성막국수 원문보기 글쓴이: 민성
첫댓글 그냥 퍼왔어요...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Because it is t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