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4:25~5:1)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는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본문에 나타난 세 가지 주제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좋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좋은 과정과 희생이 요구됩니다. 우연히 좋은 결과가 생기거나 아무런 노력 없이 최상의 결과를 얻는 경우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현재에 누리는 행복과 평안은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노력과 헌신이 숨겨져있습니다. 나의 노력에 의한 것이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헌신으로 누리기도 합니다.
가을에 풍성한 수확을 거두기 위해서 농부는 이른 봄부터 준비합니다. 좋은 씨앗을 구하고, 밭을 갈아엎고 거름을 주며, 파종후에는 잡초를 제거하고 농약을 적당한 때에 살포하여 병충해로부터 막아줘야 합니다. 농부의 이러한 수고와 고생이 곁들여 있기에 우리는 먹는 농산물에 대하여 고마워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안전하게 생활하는 것도 밤낮으로 지켜주는 경찰과 군인들이 있기에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이 누리는 하나님과의 화평은 공짜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본문을 통하여 그 과정을 살펴보면서 은혜 받고자 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의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라는 말씀 속에 “우리의 범죄함”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담과 하와로 인한 원초적인 범죄와 우리 자신의 범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개함이 없습니다. 반드시 지켜야만 합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인간에게 주신 자유의지는 선하게 사용할 때에 그 가치와 효능이 뛰어나지만, 악용할 때에는 인격과 양심이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사탄은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여 인간 본연의 자리를 벗어나도록 교묘하게 유혹합니다. 간교하여 인간의 호기심을 유발하여 그릇된 결정을 하면서도, 오히려 자기 합리화시켜 당연한 것으로 여기도록 유도합니다.
사탄은 아담이 아닌 하와에게 접근하여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말라 하시더냐?”고 하면서 하와로하여금 자존심 상하는 대답을 유도했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동산 중앙에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실과 다르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편의로 왜곡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면서 자신이 하나님을 대리하는 것과 같은 망령된 짓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거나 자기 마음대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려다가 망한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거나, 영광을 가로채려는 교만한 사람들을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그래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합니다. 세상에서도 권력자 앞에서 교만한 자는 그가 가진 권세를 빼앗기는 것은 물론 목숨까지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당한 권세 앞에서의 복종은 당연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으면서도 사탄의 교활한 말에 속아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저지른 죄과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죄과는 당사자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그 후손에게 무한한 정도로 유전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사도는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롬5:19)되었다고 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의 죄의 대가는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죄의 대가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하는 입장에서 범죄한 인간을 위한 온전한 희생의 대가를 치러야 할 속제물은 피조물 가운데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인간의 죄를 대속할 온전하고 흠 없는 희생양은 오직 어린 양되시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벧전1:19)외에는 없었기에, 예수께서 스스로 죽음으로 죄의 삯을 치루게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사 독생자를 죄의 대가로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주셨고, 인간인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도록 허락 하셨습니다.
둘째, 인간을 의롭게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지만, 죽음으로 끝난다면 죄는 용서받지만 의롭게 되지는 못합니다. 그런면에서 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입니다. 찬송가 169장 3절은 “우리의 죄사슬을 풀어주시고 자유를 주시니 영생이로다 부할하신 주 승리하셨네”라고 찬송 부르면서 할렐루야를 네 번 반복합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15장 17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라고 하면서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바울 사도는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5:10)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셨다”고 하는데, 이는 의롭게 된 자만이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범죄함으로 의로움을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시119:137)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죄인된 우리들을 위하여 독생자를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의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17:21)라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부활을 통하여 구원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를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는 말씀 속에서 의롭게된자의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화평(Shalom)이란, 평화, 온전함, 안녕, 조화, 관계의 회복을 뜻합니다.
하나님과의 화평이란?
’내가 아무런 근심도 느끼지 않는 다‘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에 있다는 뜻입니다. 마음의 화평은 어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고난 염려가 있어도 하나님을 신뢰하여 마음을 지켜나가는 상태를 뜻합니다. 즉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질병, 가족문제로 고통을 받더라도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습니다. 눈물과 슬픔이 있다고 해서 믿음이 없거나 하나님과의 화평을 잃었다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 라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이 찬송과 같이 주 안에 있는 나에게 근심, 걱정이 태산 같아도 주님 앞에 내 짐을 내려놓으면 됩니다. 우리 혼자서는 도저히 지고 갈 수 없지만 주님께 나아가면 해결받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마11:28). 주님께 나아가는 것은 믿음을 가진 자만이 취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리라 확신할 수 있고, 또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습니다.
주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깨어진 하나님과의 화평을 회복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그의 자녀는 세상이 주는 평안은 물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참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환경이 좋아지고 문제가 해결될 때 얻는 안정에 머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는 평안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누리는 특권인 평화(평안)을 마음껏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예수사랑선교회 임 웅 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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