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자화상
2003년 가을,
20여 년 동안 살아온 사회와는 다른 성격의 군에 입대하게 됐다.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대한민국 청년이라면 대부분이 조금은 망설여지고
기분이 착잡해지는 경험을 해 보았을 것이다.
“왜 하필이면 많고 많은 나라 중에서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났을까.”
20대 초반에 군대에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며칠 밤을 새우다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입대했다는 동기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이제 군대에 들어온 지 200일이 지나가고 있다.
가볍지 않은 무게로 짓눌러 오던 여러 가지 생각이
언제부터인가 바뀌어 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강도 높은 훈련을 마치고 마시는 물 한 모금의 소중함과
흐르는 땀을 식힐 수 있었던 짧은 휴식의 기쁨,
이 짜릿한 행복의 순간들은 사회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들이다.
이제는 주위 어른들께서 군대에 가서 철들고 오라고 하시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조금만 힘들고 불편해도 짜증을 내며 화를 내던
나의 군 입대 전의 한심한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치유되고 있다.
마음이 치유되면 신체도 건강해지는 걸까.
처음에는 힘들고 귀찮던 체력단련이 이제는 가벼운 운동으로
여겨져 하루도 빠짐없이 실시해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그만큼 몸이 건강해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군생활을 통해 만난 선임마다 한결같이 앞만 바라보지 말고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며 생활하라는 말을 해 주곤 했다.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내던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거기에는 한 군인의 얼굴이 있었다.
철없고 나약한 젊은이가 아니라 씩씩하고 건강해 보이는 군인이었다.
나는 그 멋진 군인에게 살짝 웃음을 보내 주었다.
먼 훗날에도 나 자신에게 보낸 웃음을 당당하고 떳떳하게
받을 수 있는 멋진 군인이 되도록 충실히 군생활할 것을 다짐해 본다.
<일병 노주환 육군56사단 기동대대>2004.02.18국방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