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그 후…] 10대 아이들의 정신적 외상 어루만질 때

[유담]

[세월호 참사, 그 후…] 신뢰할 수 없는 어른, 안전하지 못한 사회

10대 아이들의 정신적 외상 어루만질 때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세월호 침몰 사고가 온 국민에게 깊은 정신적 외상을 남기고 있다. 안산올림픽기념관에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임시 합동 분향소가 마련된 첫날, 무거운 분위기 속 시민과 학생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한쪽 벽면에 국화꽃으로 꾸며진 가로 40단, 세로 6단 규모의 대형 제단은 총 240명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도록 돼 있었다. 영정 사진 위를 가로지르는 검은 선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만큼 앳된 희생자들을 바라보는 추모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직 수습되지 못한 희생자가 100명이 넘기에 영정조차 놓이지 못한 빈자리가 더 크다는 사실이 이 사고의 참담함을 아프게 전하고 있었다.
신뢰할 수 없는 '어른', 안전하지 못한 '사회' 가 만들어낸 이 참사를 지켜보는 10대 청소년의 정신적 외상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학교 현장에 '애도 수업' 매뉴얼을 제안한 세월호통합재난심리지원단 김현수 단장은 "청소년에게 친구와 동년배란 가족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이번 사고가 정서를 깊게 건드릴 수 있다" 며 "침묵을 통해 감정을 억제하거나 억압하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에 아이들이 스스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애도' 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학교와 가정이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때" 라고 당부한다.

'세월호 사고를 뉴스에서 보며 화가 나고 슬프고 안타까웠어요.
승객을 책임져야 하는 선장과 승무원들이 자기만 살겠다고 먼저 탈출한 사실을 믿기 싫어요. 탑승자 수조차 정확하게 발표하지 못하는 정부가 부끄러워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후진국 같아요. 이런 일이 일어나는 자체가 잘못된 것 같아요.'

'정부가 정말 무책임한 것 같습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눈도장을 찍으러 오고, 해주는 것 없이 가는 게 말이나 되나요?'

'사고 소식을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 알았어요.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는데도 우리 정부는 뭐 했나 마음속으로 화가 나고 우울하기도 했지만, 도와줄 수 없고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저도 안타까웠습니다.'

'아름다운 나이에 천사가 되신 분들에게 아무것도 못 한 제가 죄송합니다. 이 참사를 우리나라가 영원히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죄지은 건 언니 오빠들이 아닌데, 왜 언니 오빠들만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맹렬한 치기는 미뤄둔 채 불확실한 미래에 모든 것을 걸고 우리는 책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등급이 매겨지고, 등수가 떨어지면 아무 잘못 없는데도 자신을 쓰레기라 부르며 죽고 싶다는 말을 서슴지 않습니다. 죽어가는 아이들은 어쩌면 배 밖에도 있을지 모릅니다.
뭔가 잘못되었지만, 우리보다 커다란 이 세상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정답이 정해진 논술 평가와 대본이 주어진 토론 수업에서 우리는 생각하는 법을 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며칠 동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내장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어른들 진짜 후지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중·고등학생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이 글들은 분향소 앞 벽면에 붙은 추모 편지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옮겨온 것이다.
중학생 아들을 둔 김지현(가명, 45·서울 용산구 이촌동)씨는 "대다수 아이들이 기적을 바라다가 분노하다가 체념하는 분위기인데, 몇몇은 어른들에 대한 불신으로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어른들 진짜 후지다'는 얘기였다"고 전했다. 김씨는 이어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아들은 당장 수학여행 일정만 취소하면 되느냐며 애도의 시간을 갖지 않는 학교와 선생님들에게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다. 수행 평가나 시험은 칼같이 챙기고, 성적 면담은 꼭 하면서 세월호 사건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마음을 아이들과 나누지 않는 교육이 무슨 교육이냐고 반문하는데, 뭐라 답해줘야 할지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심리 치료 전문가들은 이 같은 10대 청소년의 반응을 시간이 지나면 해소되리라 넘기는 것은 곤란하다고 지적한다. 김 단장은 "사고와 직간접적 연관이 없더라도 청소년에게 동년배의 죽음은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무책임한 어른들에 의한 인재라는 점과 그 과정에서 혼란스러운 유언비어, 언론 보도 등으로 아이들은 신뢰할 수 있는 어른, 안전한 사회가 아니라는 점에서 불안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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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단장은 이어 "학교와 가정이 아이들에게 침묵과 슬픔, 고통에서 회피하도록 하는 것은 건강한 적응이라고 할 수 없다. 내적 연대감의 경험을 통해 무너진 신뢰의 일부를 회복할 뿐 아니라, 슬픔을 다룰 수 있는 힘을 길러 아이들이 스스로 건강한 정서를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부모의 죽음이나 결별, 친구의 상실, 실연, 이사, 전학, 애완동물의 죽음 등 상실의 경험이 많았거나 성적 저하, 친구 관계의 불편함, 부모와 갈등을 비롯한 스트레스 원인이 많은 아이들은 더 힘들어할 수 있다.
트라우마가 축적된다는 연구 결과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사고 이후 안산 단원고에서 학생들의 심리 상담을 맡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노규식 박사는 "미국에서 발생한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연구 결과, 예전에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이 사건으로 더 큰 트라우마에 시달린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10대 시기는 심리적 충격이 다른 연령보다 크게 영향을 받는데다, 향후 또 다른 트라우마를 겪으면 축적될 가능성이 크다" 고 염려했다.
문제는 중·고등학생들의 경우 현실적으로 정보를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 학교 현장에서 취하는 조치가 대체로 사고를 다룬 기사나 미디어의 접촉을 차단하는 데 그쳐, 청소년이 이 문제를 건강하게 해결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회피는 금물, '애도' 의 마음 표현하기 먼저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정신적 외상 치유를 위한 첫걸음은 '애도' 하는 마음 표현하기다. 학교는 물론 가정에서 이 국민적 재난을 회피하지 말고, 어떤 형태로든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 이후 급속히 확대된 '노란 리본 캠페인' 역시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현실을 인지하면서도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현하는 나름의 '의식' 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노 박사는 "간단한 묵념도 좋고, 아이들이 마음속 분노와 슬픔을 담아 추모하는 활동이나 글, 그림, 영상 등을 만들어보게 하면서 희생자들의 아픔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부분이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며 "아이들은 나름의 의식을 거치면 마음속 분노를 가라앉히고, 자신이 속한 공간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 차분하게 돌아볼 수 있을 것" 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분향소 앞에 붙은 편지 중에는 '텅 빈 교실, 사라진 웃음소리가 얼마나 쓸쓸할까. 뉴스나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온 글 등을 보며 남몰래 운 적도 있고, 마음이 아팠다' 면서도 '이 편지, 정말 진심을 다해 쓴다. 비록 언니, 오빠들이 이 편지를 읽지 못하더라도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그동안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았다. 이 마음을 이렇게 전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기쁘다' 고 표현한 학생들의 글이 적지 않았다.
김 단장은 "털어놓을 줄 아는 것은 살아가며 배워야 할 매우 중요한 태도이자 기술이다. 학교와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털어놓기와 쓰기는 그 자체로 많은 치유 효과가 있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진정성을 갖고 이번 사고를 다룰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면 흥분된 마음이 가라앉고, 일정한 마무리 효과가 생길 것" 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깊은 우울로 가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김 단장은 "이번 일을 안타까워할 수는 있지만,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다. 이번 일이 우리에게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슬퍼할 수는 있지만 우울감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주지시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학교와 가정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눌 단계적 '애도 수업' 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김 단장이 제작, 교원 연수 기업 '에듀니티' 홈페이지(www.eduniety.net)에 올려놓은 자료를 참고하면된다.

아이들의 질문, 이렇게 답해주세요

01 나는 슬프고 힘든데, 웃고 떠드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모두 동일한 시간에 똑같은 방법으로 침울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웃고 떠든다고 해서 마음속으로 슬픔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웃고 떠들수록 어쩌면 더 힘들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예민해선 안 돼요. 모두 나처럼 슬퍼해야 한다는 생각은 금물입니다.

02 친구들끼리 있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는것이 좋아요, 안 하는 것이 좋아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극단적으로, 장시간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서로 감정을 교류하는 정도는 괜찮습니다.

03 조문이나 장례식장에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조문이나 장례식장에 가서 애도할 수 있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어른들과 함께 가서 일정한 시간만 머무르다 오는 것입니다. 조문이나 장례식장에 가서는 예의를 지키고, 적절한 행동을 하는것이 필요합니다.

04 화가 나고 분통이 터져서, 너무 예민하고 힘들어서 짜증이 많이 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불행한 사고와 관련된 생각이나 이번 재난과 관련된 TV를 많이 보면 자기도 모르게 계속 흥분한 상태일 수 있고, 그런 때 누가 건드리면 화가 나거나 욱하면서 충동적으로 공격적일 수 있습니다. 복식호흡이나 명상이 큰 도움이 됩니다.
지나친 TV 방송 시청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05 악몽을 꾸고, 낮에도 집중이 안 되고 힘들어요.
TV를 자주 보고, 사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꿈에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반복되거나 낮동안 심한 스트레스 반응이 없다면 괜찮지만, 낮에도 다른 반응이 있다면 상담 교사나 보건 교사에게 의뢰하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미즈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