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 18일(일) 제72회 동아마라톤대회
(09:30) 광화문 네거리는 일만여명의 마라톤 참가자들의 열기가 가득하다. 대형아치와 풍선들만 보아도 마음이 들뜬다. 출발선 앞에는 갖가지 복장으로 국내외 등록선수, 그 뒤엔 풀코스참가자, 하프코스참가자들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하프코스참가자들은 1시간 30분, 2시간, 2시간 30분이라고 적힌 팻말을 보고 자신의 능력에 따라 대열을 이루고 있다. 급조된 임시화장실 앞에는 수십 명씩 줄을 서있고, 주변 빌딩관리인의 통제로 화장실을 못 찾은 참가자들이 주변빌딩 잔디밭에서 십여 명씩 방뇨를 하고 있다. 출발 5분전 런닝복장으로 갈아입고 짐을 재석에게 맡긴다. 전직장 후배인 재석은 마라톤대회를 구경도 하고 내 얼굴도 보기 위해 나왔다.
오늘의 목표는 2시간이내 완주하는 것이다. 3월 4일 처음으로 서울마라톤에 출전하여 2시간 17분에 완주하였는데, 왕초보가 "2주만에 출전하는 것은 무리하는 것이다"라는 주변의 충고도 아랑곳하지 않고 병천군과의 내기와 자신과의 승부를 위해 2시간이내 완주라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생활이 무료한 데서 기인한 것 아니냐?"는 일정이의 말이 맞는 지도 모른다. 참가자들 중 40대가 40%로 제일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을 보면. 21km를 1시간 59분에 뛰려면 전구간을 100m를 34초, 1000m를 5분40초에 달려야한다. 나름대로 구간을 정하고 목표를 세운다. 1-3구간(각5km)을 28분, 마지막 구간(6km)은 35분에 달리기로 마음을 먹는다.
(출발) 풀코스참가자들이 출발하고 5분후 하프코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린다. 광화문 전광판에 우리의 출발 모습이 TV로 중계되고 있다. 나의 모습이 잠깐 화면에 스친다. 우측으로 고건서울시장 김한길장관등 정관계 인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출발선을 힘차게 밟고 2시간이내 그룹에 속해 달린다. 종로거리엔 행인들이 깃발을 흔들면서 응원을 한다. 중년분들이 화이팅을 외치면서 적극적이다. 전문선수도 아닌 일반참가자들에게 열정적으로 응원하고 있는 모습이 정겹다. 저분들의 행동도 생활의 무료함과 관련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문득해본다. 이마엔 피카추 딱지를 몇 개 붙이고 흰머리에 흰 수염을 한 기이한 노인이 화이팅을 외치면서 달리는 모습에 길가의 군중들은 웃음과 환호성으로 반겨준다.
95%의 참가들이 반바지에 반팔 티셔츠 복장인데 비해 나는 통아저씨 복장이다. 하의는 검은색 긴타이즈에 상의는 검은색 긴팔 런닝복이다. 아내가 남 보기에 창피하다고 하의 타이즈 위에 반바지나 런닝팬츠의 착용을 애원하다시피한 기억이 난다. 구름 속에서 햇빛이 나타나면서 기온이 계속 오르는 모양이다. 바람도 없는 포근한 봄 날씨다. 복장선택을 잘못한 모양이다. 머리에 땀이 맺힌다. 과감하게 장갑과 모자를 버리고 달린다.
(3km) 갑자기 발목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달리기를 멈추고 길옆에서 몇 차례 발목운동과 조깅화 끈을 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통증이 심해진다. 준비운동이 소홀했던 모양이다. 대회전 연습량이 부족하여 준비운동으로 힘을 소모하지 않고, 서서히 달리면서 몸을 풀려고 했는데 잘못된 모양이다. 2시간 목표에 집착하지 않고 제한시간 2시간 30분이라도 완주해야겠다. 5km마다 35분씩 시간을 체크하여 늦는 참가자들은 회수차량에 탑승되여 올림픽공원까지 운송된다. 그러한 모습 가족들에게 보여주기는 싫다. 서서히 통증이 약해진다. 다행히 몸이 풀린 모양이다. 집을 나설 때 먹은 진통제가 효력을 발휘하는 줄도 모른다.신설동 로터리 부근 지나가던 아주머니와 남자 어린이가 갑자기 대열 안에 합류하여 달린다.
(5km) 1차 급수대가 보인다. 19개 테이블에서 음료를 공급한다. 조금이나마 시간을 줄이기 위해 앞쪽의 번잡스러운 테이블 피해 한산한 마지막 테이블에서 음료를 마신다. 시간은 35분이 경과되고 있다. 목표에 7분이나 초과했다. 두 번째 5km도 목표시간을 초과하면 목표달성은 불가능하다. 무리해서라도 달려야한다 장안동 4거리 인도에 " 태백아빠! 화이팅!"이라고 적은 플랜카드를 들고 가족들이 서있다. 앗! 주인공이 나타난 모양이다. 가족들의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주인공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화답하고 계속 달린다. 아파트 분양광고를 등에 붙이고 뛰는 건설회사 마라톤동호회원들도 보인다. 지금까지는 평지거나 완만한 내리막길이었는데 첫 기다란 오르막길에 급수테이블이 보인다. 평소 4.19탑에서 아카데미하우스까지 구간을 연습한 탓에 웬만한 오르막길은 문제없다. 보폭을 줄이고 속도를 늦추면서 달린다. 이제 내리막이다. 보폭을 줄이면서 무게중심을 낮추어 충격을 완화하면서 속도를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