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Bangkok Post 2012-11-29 (번역) 크메르의 세계
태국정치 뒷담화 : 보수파 반정부 시위 중단에 따른 소문들
Pitak Siam rumour mill hums

기사작성 : 워싸나 나누웜 (Wassana Nanuam: 군사안보 전문기자)
보수 성향의 태국 반정부 단체 '피탁 사얌'(Pitak Siam: 태국의 수호자)이 지난 토요일(11.24) 잉락 친나왓(Yingluck Shinawatra) 총리 정부에 대한 반정부 시위를 '로얄 플라자'(Royal Plaza)에서 개최하다가, 그 지도자인 분럿 깨우쁘라싯(Boonlert Kaewprasit, 별명-세아이[Seh Ai, 아이 장군]: 아래 사진) 예비역 장군이 시위 개시 불과 9시간도 채 되지 못한 시점에서 '시위 중단을 선언한 일'은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반정부 시위의 갑작스런 중단은 많은 소문들을 무성하게 만들었다. 가령 분럿 장군이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 전 총리에게 돈을 받은 것이 아닌가? '피탁 사얌' 지도부 내에서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가정적이기로 유명한 분럿 장군의 부인이나 자식들에게 신변 위협이 가해졌던 것은 아닌가? 등등이다.
아마도 이러한 소문들 중 가장 그럴듯한 것은 분럿 장군이 자신의 친구이자 '추밀원'(Privy Council: 국왕자문기구) 위원인 수라윳 쭐라논(Surayud Chulanont) 장군으로부터 시위를 중단하라는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다. 분럿 장군은 "세아이는 죽었다"면서 '피탁 사얌' 단체의 지도자 직을 사임한다고 말한 후, 시위 중단 결정을 발표했었다.
그러나 분럿 장군은 모든 소문들을 일축했다. 그는 "어느 누구도 나에게 그런 명령을 내린 바 없다"면서, 수라윳 장군이든 누구든 자신에게 시위 중단을 강제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럿 장군은 반정부 시위에서 사상자가 나오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시위에서는 이른 시각부터 경찰이 시위대에 최루탄을 사용하면서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더구나 집회장 주변의 고층 빌딩들 위에는 보안 요원들이 배치된 모습이 포착되어, 특히 밤 시간에 시위대에 대해 저격수나 M-79 유탄발사기를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분럿 장군은 시위 중단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발표했었다.
"나는 시체를 밟고서라도 권력을 취하려는 유혈 타입의 인간이 아니다. 나는 신사로서 내 말을 지키는 사람이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검문에 차단되어 집회장에 오지 못했지만, 시위 참가자 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따라서 나는 시위를 중단하고 이후 어떠한 시위도 이끌지 않을 것이다." |
분럿 장군은 자신이 '피탁 사얌'의 지도자는 그만 두며 향후 어떠한 지도자 자리도 관심이 없다고 말했지만, 향후에도 군주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모든 활동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군부의 분열을 초래하고 싶지 않다면서 <군사예비사관학교(AFAPS: 고교과정) 재단>(=총동문회)의 회장 자리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상처받았다. 나는 군대가 경찰에 의해 탄압받은 사람들을 돕지 않는 한, 더 이상 군대에 관한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만일 우리가 이 이상 시위를 하려면, 우리는 무기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맨손으로는 더 이상 싸울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는 것이 그런 일인가?" |
그는 자신이 시위를 중단하는 이유가 군대가 자신을 무시했기 때문이란 점을 인정했다. 그는 경찰이 시위대에 최루탄을 살포했을 때 자신이 '왕립 태국 육군'(RTA) 제1군구(방콕 및 중부, 서부, 동부 관할) 사령관인 파이분 쿰차야(Paiboon Khumchaya) 중장에게 전화를 걸었었다고 밝혔다. '제1군구 사령부'는 집회장소인 '로얄 플라자'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다. 그는 군대가 시위대를 보호해주길 바랬다고 한다.
하지만 파이분 사령관의 부관은 최초에 전화연결을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분럿 장군이 파이분 사령관의 전화로 직접 전화를 걸어서야 연결이 되었다. 하지만 파이분 사령관은 "현재 그 문제를 논의 중"이라면서 분럿 장군의 요청을 무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분럿 장군은 그날 파이분 사령관과의 연락이 두절됐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쁘라윳 짠오차(Prayuth Chan-ocha) 육군사령관과도 통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대신 다뽕 로따나수완(Dapong Rattanasuwan) 육군 부사령관과 통화가 됐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한다. 분럿 장군은 "아무도 내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면서, 자신이 군대에 대해 경찰이 시위대를 공격하는 일을 중단시켜 달라고 요청했었다고 덧붙였다. 분럿 장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무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시위를] 중단했다. 나는 사람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놔둘 수 없었다." |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기 전에 "때가 되면" 군대가 시위대 편에 설 것이라고 분럿 장군에게 확신을 준 사람이 있었다는 보도도 존재한다.
한편, 당시 반정부 시위대 속에 쁘라윳 육군사령관의 부하들이 참여했었다는 소문들도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심지어 깐짜나부리(Kanchanaburi), 쁘라찐부리(Prachin Buri), 사깨오(Sa Kaeo) 도에 주둔하는 병력들에 출동에 대비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었다는 소문들도 존재한다.
분럿 장군은 1977년 3월 26일의 쿠테타 당시 자신이 깐짜나부리에 주둔 중이던 병력 2개 대대를 이끌고 방콕에 입성했던 사례를 가리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군대가 사람들을 돕지 않은 것에 낙담했다. 나는 군 수뇌부에게 통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응답이 없었다. 일부는 나를 피하려고만 하고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것이 고통스럽다. 내가 실패한 쿠테타에서 패배한 계파에 속했을 때보다도 더욱 고통스럽다." |
고(故) 찰랏 히란시리(Chalard Hiransiri) 장군이 이끌었던 그 쿠테타는 군내의 다른 부대들이 저지에 나서면서 실패한 바 있다.
몇년 전에 극우 왕당파 '옐로셔츠'(PAD: 국민 민주주의 연대) 운동이 사막 순타라웻(Samak Sundaravej) 총리 정부 및 솜차이 웡사왓(Somchai Wongsawat) 총리 정부에 대해 반정부 시위를 일으켰을 때도, 군부가 행동에 돌입할 것이란 소문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소문들은 단순히 증발되고 말았다.
정부가 이번에 분럿 장군이 이끄는 '피탁 사얌' 및 '옐로셔츠' 관련 단체들이 집행한 시위에 대해 과대평가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정부는 방콕 내 3개 구들에서 <국내보안법>(ISA)을 발동시키기도 했다. 시위대가 갑작스레 시위를 중단하자, 정부도 화요일(11.27)에 <국내보안법> 발동을 해제했다.
정부가 이번 시위를 과대평가한 것은 분럿 장군이 수라윳 장군 및 추밀원 의장인 쁘렘 띠나술라논(Prem Tinsulanonda) 장군과 절친한 사이라는 점이 고려됐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쁘렘 장군의 오랜 측근이자 보좌관인 파짠 땀쁘라팁(Phajun Tamprateep) 예비역 해군대장이 토요일의 반정부 시위에 참가할 것이라 선언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일은 '암맛'(ammart: 상류 엘리트 계층)이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해 총 60억 바트(약 2,100억원)를 투입하여 방콕에 사람들을 동원하고, 잉락 총리까지도 볼모로 잡을지 모른다는 소문으로도 이어졌다. 이러한 소문들 때문에 엄청난 공권력이 투입됐고, 군대에서도 총 51개 중대가 예비병력으로 대기했다. 이러한 보안 강화는 또 다른 쿠테타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럿 장군은 쿠테타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대가 양측이 충돌할 대 나와야만 한다고? 아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민주주의 원칙을 지켜야만 한다." |
이번 일에는 모두가 배워야 할만한 교훈들이 존재한다. 또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두가 그러한 교훈들을 배울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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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거..
최루탄 몇발에 눈물 좀 흘린 걸 갖고 부상이라고 안 하나..
태국의 극우 보수파가 마치 평소에 무슨 엄청난 평화주의자들이었던 것처럼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군요..
이 사람들이 평소에는 국왕폐하를 위해서라면
붉은 역적 몇만명 정도는 날려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인데..
세력이 쪼글아들어서 시위규모를 유지할 자신이 없어서 해산해놓고선..
저격수가 동원된다느니 하면서
별의별 의미 부여를 하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