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예악을 두드려 울리다
공자께서 노나라 (음악 교육을 관장하던) 태사악에게 말씀하셨다.“음악에 대하여는 대체로 (이해하여) 알고 있습니다. 음향이 시작될 때에는 마치 막 피어나는 꽃망울처럼 가볍게 천천히 펼쳐지면서 소리가 납니다. 이어 작은 소리에서 큰 소리로 바뀌어 가면서 순수해지고, 뒤에 절정에 달해 격정적이거나 대단히 장엄하게 울린 다음 악곡의 연주가 끝나고, 마지막에는 다하지 못한 깊고 깊은 뜻이 있는 듯 끊어질 듯 이어져 여전히 여운이 감돌면서 완성됩니다.”
子語魯大師樂曰:樂其可知也。始作, 翕如也。從之, 純如也, 皦如
자어로태사악왈악기가지야 시작 흡여야 종지 순여야 교여
也, 繹如也。以成。
야 역여야 이성
이것은 공자가 음악의 원리와 작용을 말한 것입니다. 태사악大師樂은 고대에 음악 교육을 전문적으로 관장하던 관직명으로, 주요 관장 업무는 음악을 정치적 교화와 결합시키는 데 있었습니다. 물론 당시의 일반 음악도 포함되었지요. 이 이야기가 나오니 생각나는 것은 전통 문화에서 아주 안타까운 일로서, 중국에 원래 있던 옛 음악이 이미 없어져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들을 수 있는 것은 단지 명청明淸 이래로 남아 있는 음악입니다.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현재 이웃 한국에서는 어렴풋이나마 당태종이 천하를 통일하고 난 후의 대악장大樂章인 「진왕파진무」秦王破陣舞와 「예상우의곡」霓裳羽衣曲의 고금곡조古琴曲調를 엿볼 수 있고, 중국의 옛 음악과 옛 악기의 유풍유운流風遺韻을 아직도 감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울러 시詩ㆍ사보詞譜를 중국의 옛 악기로 연주해 낸다고 합니다. 한국 외에 일본에서도 약간의 그 그림자를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중국 문화의 쇠락을 온통 우리 당대만의 책임이라고 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남의 조소에 대해 스스로 변명하면서, “이것 역시 우리 민족의 위대한 점이야. 우리들이 우리 문화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좋은 것이 너무 많으니 잃어버려도 조금도 개의하지 않거든.” 하고 말한다면, 외국인은 정말 한심하여 듣고서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공자와 노나라 태사악이 음악의 원리를 토론하고 있습니다. 공자는 아주 겸손하게 “음악의 원리를 대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는데, 사실 공자는 음악에 대해서 정통했습니다. 이어서 그는 국가민족의 정신을 대표하는 한 악곡에 대해 담론하기를, “음향이 시작될 때에는 마치 막 피어나는 꽃망울처럼 가볍게 펼쳐지면서 천천히 소리가 납니다. 이어서 작은 소리에서 큰 소리로 바뀌어 가지만 순수합니다. 뒤에 절정에 도달해 격정적이거나 혹은 대단히 장엄하게 울린 다음 이 악곡의 연주가 끝납니다. 그러나 그 뒤에도 다하지 못한 깊고 깊은 뜻이 있는 듯 여전히 여음이 감돕니다. 이런 것이 바로 성공한 음악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공자는 비록 가르침을 청하는 태도로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의 말은 그가 이미 음악의 수양에 깊이 통했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듣는 국내의 대중 음악을 보면 확실히 문제가 큽니다. 전통적인 것도 아니고 서양적인 것도 아니고, 경박함은 넘치지만 온유돈후함은 부족하니 정말 한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일체의 문화가 오늘날 모두 동서고금의 것이 뒤섞여 한꺼번에 변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 처해 있어 줄곧 불안정한 상태에 있습니다. 옛것은 이미 타도하였지만, 새것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은 여전히 우리 세대의 계속적인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의儀 지방의 국경 관리인이 공자를 뵙고 싶다고 청하면서 말하였다.“군자가 이곳에 오시면 저는 만나 뵙지 못한 분이 없었습니다.”
(공자를) 따르던 제자들이 (그가) 공자를 뵙도록 안내해 주자,
그는 공자를 뵙고 나와서 말하였다.“여러분은 문화가 상실될까 어찌 걱정하십니까? (우리 문화는 이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천하가 (어지러워) 무도無道한 지 오래 되(어 문화가 이미 시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늘은 선생님을 내려 보냈고, 그의 학문과 도덕은 여러분과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입니다) 하늘은 선생님으로써 (세상을 경각시키는) 목탁을 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儀封人請見。曰: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從者見之。
의봉인청현 왈 군자지지어사야 오미상부득현야 종자현지
出曰:二三子, 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출왈 이삼자 하환어상호 천하지무도야구의 천장이부자위목탁
‘儀’(의)는 지명입니다. 옛날의 ‘封’(봉)자는 국경을 가리켰습니다. 소위 봉인封人은 제후국의 국경을 관리하던 사람입니다. 굳이 오늘날의 직무로 말하면, 토지를 관리하고 지방 행정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와서 공자를 만나고자 했을 때, 행간에 숨은 뜻으로 보아 방문 사절을 당했던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봉인은 나름대로의 할 말이 있어 말하기를, “도덕이 있고 학문이 있는 사람이 내가 있는 곳에 오면 누구든지 내가 만나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뜻은 “당신네들 선생님인 공자가 아무리 위대하더라도 나 같은 사람을 한번 접견해 봐야 한다.”는 말인 듯합니다.
봉인이 이렇게 말하자, 공자를 따르던 그 사람들은 할 말이 없는지라 그에게 공자를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공자와 그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릅니다. 봉인은 공자를 만나고 나와서는 공자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문화의 쇠퇴를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문화는 이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천하가 이토록 오랫동안 어지러워 문화가 이미 시들어 떨어지니, 하늘이 공자를 내려 보냈습니다. 공자의 학문과 도덕은 여러분과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것입니다. 하늘은 공자를 세상을 경각시키는 목탁으로 삼고자 하니, 여러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고대에 나무로 만든 목탁은 두드려 울려 경각시키는 데 사용하던 것으로, 마치 묘당에서 종과 경쇠磬를 치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는 공자가 인문 문화 교육에 종사한 것을 찬탄한 것이기에 역시 문화 정신을 말하는 「팔일」편 속에 넣은 것입니다. ‘화룡점정’畵龍點睛과 마찬가지로, 이렇게 한 데에는 그 의도가 있습니다. 다시 다음과 같이 이어집니다.
공자께서 (순舜 임금 시대의 음악인) 소韶에 대하여는“(그 시대의 국가 민족과 역사 문화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는데) 지극히 아름답고 또 지극히 선하다.”하시고, (무왕武王 시대의 음악인) 무武에 대하여는“(그 시대의 역사 정신을 나타내고 있으며) 지극히 아름답기는 하나 지극히 선하지는 않다.”고 하셨다.
子謂韶:盡美矣, 又盡善也。謂武:盡美矣, 未盡善也。
자위소 진미의 우진선야 위무 진미의 미진선야
이는 예악 문화禮樂文化에 대한 공자의 비평입니다. ‘韶’(소)는 순 임금 시대의 음악으로, 이 음악에는 그 시대의 국가 민족과 역사 문화의 정신이 잘 나타나 있는데, 공자는 그 음악이 아주 좋고 아름다우며 또 선하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서양의 개념으로 말하면, 진선미眞善美의 가치를 다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왕 시대의 음악은 그 시대의 역사 정신을 나타내고 있으며, 좋기는 좋고 정말 아름답기는 하나 지극히 선善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했습니다. 사직단의 상징물에 대한 비평과 마찬가지로 유감스러운 맛이 좀 있다는 것입니다.
남회근 선생 강의 논어별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