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호러] 그 림 자 나 라
어린시절 세 소년은 소원이 든 타임캡슐을 묻으며 약속했다.
먼 훗날 그 타임캡슐대로 멋지게 성장해서 다시 만나기를...
제11화
아국이 자신의 오피스텔로 돌아왔을 때, 그의 몸은 녹초가 되어있었다.
새벽같이 차를 달려 점심때가 되어서야 집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의 머리속은 너무나도 복잡했다.
과거의 시간들이 그의 뇌속을 꼬불꼬불하게 파고들어서 단단하게 꼬여있는 것만 같았다. 어디서 부터 풀어야 할 지 도무지 그 시작을 알 수 없는 미로만 같은...!
아국으로선 우선 몇시간이나마 쉬고 싶었다. 그도 그럴것이 거의 하룻밤을 꼬박 세었던 터라 갑작스레 피로가 몰려들었다. 몸이 천근만근이나 된 듯이 묵직했다. 육체가 무거우니 정신까지 무거워졌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고, 이해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혼란스러웠다.
모든 것을 잠시 잊고 쉬어야만 했다.
그러나 아국이 자신의 오피스텔 현관앞까지 왔을 때, 그는 누군가가 문앞에 우뚝 서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얼굴은 한나였다.
무릅까지 내려오는 원피스 위에 긴 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이었다. 한나는 아직 아국이 다가왔음을 모르고 있는 듯, 계속해서 발밑의 복도무늬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나야!"
아국의 낮은 음성이 복도에 울리자 비로소 한나는 깜짝 놀랐는지 고개를 들었다.
"어, 오빠! 언제 왔어?"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대체 언제 온거니?"
"엉? 나? 좀 전에..."
"좀 전에 언제?"
아국이 재빨리 다그치자 한나는 멋적은 웃음을 흘렸다.
"그냥... 몇시간 전에..."
"뭐? 몇시간전에? 그럼, 아침에 왔었단 말야?"
전혀 예상치 못한 한나의 돌발적인 행동에 아국으로선 적잖게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침부터 와서 언제 돌아올 지도 모르는 자신을 무턱대고 기다리고 있었다니...!
"너두... 참! 내가 언제 올줄 알고 무턱대고 기다린 거니?"
"그냥, 조금만 더 기다리다가 안오면 가려고 했어!"
그렇게 말하는 한나의 얼굴에 아주 희미하게 수줍음을 띤 미소가 보였다.
"참, 이럴때 보면 너 꼭 어릴때 같애..."
"어릴때? 핏, 어릴때 내가 어쨌다구...?"
한나는 피식 웃으며 두 팔로 어깨를 감쌌다. 그러고 보니 꽤 쌀쌀한 날씨였다. 이 추위에 그녀는 서너시간을 기다리고 서 있었던 것이었다.
"내정신좀 봐. 자, 한나야 들어가자. 밥은 먹었니?"
아국은 그제서야 한나가 추위에 가볍게 떨고 있음을 눈치채고는 서둘러 그녀의 손을 붙잡게 방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나 한나는 아국의 손을 가볍게 뿌리쳤다.
"아냐... 나 그만 가봐야 해!"
"그게 무슨소리야? 가긴 어딜가?"
의아해 하는 아국의 시선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한나.
"나, 오늘 멀리 떠나... 그래서 마지막으로 오빠 얼굴이나 볼까하고 온거야."
"뭐?"
"오빠 얼굴 봤으니까 됐어... 난 또 못보고 떠나나 했는데..."
"한나야.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요람교회를 떠난다구? 어디로? 어디로 가는데? 무슨 일 있는거야?"
아국은 뭐가 그리 다급했는지 여러개의 질문을 동시에 던지고 있었다.
"일은 무슨... 그냥 떠나고 싶어. 마리 수녀님 간호하는 것도 이제 지쳤어. 너무 힘들어... 그냥 멀리 떠나고 싶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서 새롭게 내 인생을 펼치고 싶어..."
"한나야..."
아국은 자신의 시선을 애써 피하는 한나에게서 뭔가 좋지 못한 예감을 느꼈다. 한나는 숨기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엔 여러가지 감정들이 묻어 있었다.
문득 한나가 고개를 들어 똑바로 아국을 바라보았다.
"그만 갈께... 비행기 시간 늦겠어... 잘있어... 오빠..."
"...."
"요한오빠!"
이상하게도 그 마지막 말이 아국에겐 영원히 마지막이 될 것만 같은 안타까움과 불길함이 내포된 듯 했다.
이제 영영 한나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한나는 커다란 눈망울로 한동안 아국에게 뭔가를 호소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이윽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성큼성큼 복도를 걸어나갔다.
아국에겐 그녀의 뒷모습이 굉장히 애처롭게 느껴졌다.
어째서 일까...!
아국은 당장에 달려가서 한나를 끌어안고 싶었다. 힘껏 껴안아서 어딘가로 도망가지 못하게 붙잡아 두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나는 이제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갈 것만 같았다.
붙잡아야 한다....!!
점점 더 멀어지고 만 있는 갸날픈 한나의 어깨! 가는 목덜미!
by -제이슨 친구- suttlebus@hanmail.net
그림자 나라 - 11
진호는 잠복중이었다.
그는 차안에서 큼직한 식빵을 씹으며 허기를 채우고 있었다. 그의 매서운 두 눈은 아까부터 맞은 편에 위치한 2층양옥에 고정되어 있었다. 붉은 지붕의 양옥.
그 양옥집은 전직 검사를 지냈던 조필구의 집이었다.
진호의 정보통에 의하면 오늘 밤, 그 집에서 마약 밀거래가 있을 예정이었다.
진호의 눈빛이 더욱 사납게 빛나며 다소 신경질 적으로 빵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거리엔 벌써 어둠이 깔리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있었다.
그 때였다.
별안간 진호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쩍인다 싶더니 그의 눈에 두명의 건달들이 포착되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 건달들은 두리번 거리며 사방을 주시했다. 그리곤 발걸음은 예의 그 양옥집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집어넣고는 불량끼 넘치게 걷고 있었다.
"걸렸어~!"
빵을 집어던지며 진호가 낮게 소리쳤다.
그는 서둘러 차에서 내릴 차비를 했다. 그의 오른 손엔 어느새 커다한 쇠몽둥이 하나가 들려져 있었다.
또다시 어둠속에서 눈을 떴다.
아국은 이제 이 무시무시한 악몽이 진저리가 날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그 느낌이 예전과는 틀렸다.
그는 어둠속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마치 사지가 결박당한 듯 움직여 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안간힘을 다해봐도 손가락하나 까닥하지 않았다.
그 때!
언제나와 같이 그 거대한 괴물이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국은 이제 더이상 그 모습에서 처음과 같은 심한 공포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과 그 괴물의 몹시도 흉칙할 것이라는 게 조금 괴로울 뿐이었다.
허공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괴물은 가만히 다가와서 아국을 쭉 훑어보았다.
하지만 아국의 눈에는 그 괴물의 모습이 정확히 보이지가 않았다. 괴물은 철저히 어둠속에 그 모습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괴물이 아국에게 뭔가를 건내주고 있었다.
아국으로선 전혀 의외의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괴물이 건내준 것은 다름아닌 날이 시퍼렇게 선 식칼이었다!
칼날에는 누군가의 피와 살껍질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분명 자신에게 건내지기 전에 누군가를 도살했음직 했다.
아국으로선 그 꺼림찍함에 칼을 받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꼼짝도 않고 있던 자신의 오른손이 저절로 움직이더니 허공속으로 올려졌다.
"싫...싫어...!"
아국이 애써 그렇게 부정해 보았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오른손은 덥썩 그 피묻은 칼을 받아버렸다.
"싫어... 싫다...니까..!"
쥐어진 오른손에 칼에서 흘러내린 피가 만져졌다. 미끈하면서도 끈적거리는...
"싫어~~!!!!!!!!"
아국이 안간힘을 다해서 목소리를 높여보았다. 그의 음성은 폭발하듯 터지면서 허공속에 메아리쳤다.
그 외침때문이었는지...
칼을 쥐고 있는 아국의 손이 심하게 떨려왔다.
그리고, 언제부터였는지 괴물의 모습은 보이지가 않았다.
그 대신,
괴물이 있었던 자리에 또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누구지...?"
문득 오른손에 쥐어진 칼 끝에서 핏방울 하나가 뚝 떨어졌다.
핏방울은 정확히 아국의 눈안으로 들어갔다.
본능적으로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아국. 그것은 상당히 불쾌한 느낌이었다. 안구의 따가움이 좀 가시자, 아국은 살짝 눈을 떠 보았다.
"허어어어어억~~~~~!!"
갑작스레 아국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아국이 눈을 뜨자 마자 본 것은 바로 자신의 얼굴앞에서 빤히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누군가의 눈동자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의 주인공은
요한이었음에 분명했다.
어릴 적 그 자신의 모습. 요한!!
"으아아악!"
그 모습의 무엇에 그렇게 놀란 것이었을까.
아국은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며 그 얼굴을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퍽, 퍼억 퍽~!
붉은 지붕의 양옥집 안!
마약을 거래중이던 두 건달은 이미 그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끄아아아아악~!"
건달 한명은 이미 머리가 박살나서 죽어있었고, 나머지 한명역시 단말마의 비명소릴 지르며 쓰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쓰러져 있는 그를 향해 끊임없이 날라드는 커다란 쇠몽둥이!
쇠몽둥이는 건달들의 피와 부서진 뼈조각들과 터진 내장들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이미 의식을 잃은 건달인지라 끝없이 파고드는 그 쇠몽둥이 세레에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래도 그 몽둥이의 움직임은 멈출줄을 몰랐다.
퍽, 퍽, 퍼어억, 퍽~!!
의식을 잃은 그 건달은 아마도 지금쯤 목숨을 잃었으리라!
격렬한 팔의 움직임으로 웃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 진호는 이제 막, 건달두명을 모두 때려서 죽인 직후였다.
"으아아~ 이제 좀 몸이 풀리는 군~!"
사람을 둘씩이나 때려죽인 진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었다.
진호는 이제 몸을 돌려서 방한 구석에서 하염없이 떨고만 있는 전직검사 조필구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진호는 쇠몽둥이에 가득히 묻어나 있는 건달들의 피와 살점들을 왼손으로 싹 걷어내었다.
우수수수수
살점들은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 진호의 모습에 그만 넋이 나가버린 조필구. 그의 눈에 비친 진호의 모습은 도저히 인간이라고 볼 수가 없었다.
살인에 몹시도 굶주려 있는 미치광이로 비쳐 질 뿐이었다.
"자, 검사님... 시작해 볼까요?"
진호는 넋이 나가있는 조필구를 향해 얼음같은 웃음을 흘렸다.
늦은 밤.
아국은 잠에서 깨어났다.
식은 땀으로 침대가 흥건히 젖어 있었다.
문득 벽시계가 무거운 소음을 발산했다.
댕 댕 !
새벽 두시였다.
아국은 심한 갈증을 느끼며 거실로 나갔다.
거실 한 구석에 놓여진 커다란 냉장고.
얼음 생수를 PT병으로 열병은 마셔야 그 지독한 갈증에서 벗어날 것만 같았다.
아국은 허겁지겁 냉장고로 달려가서 문을 열었다.
어찌나 세게 열었던지 그만 냉장고 문이 덜커덩 소리를 내며 빠져 버렸다.
"이...이런...!"
그러나 아국으로선 부서진 냉장고 문에 신경쓸 겨를이 없어 보였다.
아국은 서둘러 생수통을 찾았다.
그리고
그만 경악을 하며 쓰러질 수 밖에 없었다.
냉장고 속에는 피투성이의 제이슨이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서 아국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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