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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황구의 눈물
02/01/08
NW/SK
남원에 광한루가 있다. 춘향이 몽룡을 만나 첫 인연을 맺은 곳이 거기다. 순탄하기만 한 사랑이 어디에 있으랴. 그래도 춘향의 경우는 유별났다. 그의 사랑을 위협하는 요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서도 변 삿또의 협박이 가장 심각하였다. 삿또는 수청을 들지 않는다고 춘향을 투옥하기까지 하였다. 위기의 사랑을 지키느라고 춘향은 많이도 울었다. 연인을 처음 만나 즐겁다고 울고, 연인이 곁을 떠나 슬프다고 울고, 변 삿또 겁박에 무섭다고 울고, 자기 신세 처량하다고 울고, 연인과 재회하여 기쁘다고 또 울었다. 춘향이 울면서 흘린 수많은 눈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이것이 궁금하였다. 그러한 나의 궁금증이 풀린 것은 우리가 광한루를 지나 요천에 놓인 다리를 건너갈 때였다. 요천의 물이 춘향이 흘린 바로 그 눈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춘향의 눈물이 아니고는 하필 광한루 앞으로 내가 저토록 도도하게 흘러 갈 수가 없을 터이니 말이다.
요천 다리를 건너자 우리는 바로 나타난 덕음봉 자락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지난 해 연말 어느 날 오후의 일이었다. 영국에 사는 딸 내외가 찾아 왔었다. 내가 김 선생과 함께 그들을 환영하는 뜻에서 덕음봉 산행을 계획하여 두었었다. 덕음봉은 높지 않고 오르는 길의 기복도 심하지 않다. 그래서 남원 시민들이 즐겨 오르는 산이다. 김 선생도 그렇다. 그는 매일 아침 덕음 봉을 오르는 것으로 그의 일과를 시작한다. 나는 두어 번 정도 올라 본 적이 있을 뿐이다. 덕음봉의 북쪽 등성이를 올라 정상에 있는 팔각정에서 잠시 쉬고 남쪽 등성이를 타고 내려오는 것이 일반적인 산행길이다. 내가 처음에는 기세등등하였지만 삼분의 일이나 올라갔을까 힘이 들었다. 게다가 배가 아파왔다. 아침 먹은 것이 소화가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중도에서 산행을 포기하였다. 나는 하산 지점에서 다시 일행을 만나기로 하고 오르던 길을 거꾸로 내려왔다.
나는 아픈 배를 활명수 한 병으로 다스렸다. 그리고 나는 일행과 만나기로 약속한 곳으로 갔다. 하산지점에서 오른 쪽에 시골 마을이 있었다. 마을은 덕음봉의 남쪽 기슭에 남향을 하고 앉아 있었다. 덕음봉은 지리산 줄기가 만복대를 지나 내려와 요천 앞에서 멎어 빚어 놓은 것이다. 마을에는 바람의 흔적이 없었다. 덕음봉의 오른 쪽에 백호봉이 있고 왼 쪽에 청룡봉이 있어서일까. 두 봉우리 아래로 두 줄기 개울이 흘러 동리 입구에서 하나로 모여 밖으로 빠져 나간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길지는 이 마을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 마을의 위쪽에 홀로 떨어져 집 한 채가 있었다. 이 집의 자리는 길지 가운데서도 명당에 해당이 되었다. 지리산의 정기가 덕음봉을 거쳐 이 집을 거쳐서 그 아래 마을로 내려간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런데도 이 집은 허름하기 그지없다. 신석기 시대의 움집이라고 해도 이보다는 못하지 않았으리라. 그래도 집에 당당함이 배어 있는 것은 지리산의 정기가 충만한 때문이 아닐까.
얼마 뒤에 일행이 내려왔다. 나는 마을과 외딴 집에 대하여 김 선생에게 이야기하였다. 김 선생은 반색을 하였다. 그는 그 집에 팔순 노파 한 분이 산다고 하였다. 그가 노파와 매우 친한 사이라고 덧붙여 말하였다. 그는 매일 아침 하산 길에 그 집에 들려가곤 한다는 말도 하였다. 김 선생은 무역업에서 은퇴하고 여기 시골에 와 살면서 나와 친구가 되었다. 그는 맹인, 나병자, 정신병자를 비롯하여 늙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일로 하루하루를 산다. 나는 그 집 노파가 김 선생의 보살핌이 필요한 분이라는 점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우리는 김 선생의 뒤를 따라 그 집에 들어섰다. 그는 팔순 노인치고는 아직 꼿꼿하였다. 다만 일생 겪어온 온갖 풍상을 그의 얼굴이 숨기지는 못하였다. 헛간에는 황구 한 마리가 목이 쇠줄에 묶인 채 서 있었다. 그의 눈이 천진하였다. 딸이 개가 순하다고 말을 건내자, 노파는 말했다. “멍청이는 처먹기만 하고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요. 짓지도 못해요.”
황구는 누런 털을 가진 개를 이르는 한자어이다. 그러나 황구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저마다 제각각이다. 어린이들은 황구라고 하였을 때 정을 함께 나누는 가족원과 다름이 없는 개를 연상하기 마련이다. 외딴 집에 사는 이거나 돈이 유별나게 많은 이에게 는 밤에 도둑을 지켜주는 경비견의 이미지가 먼저 다가올 것이다. 도시 아파트에서 발발이 애완견을 키우는 이는 시골에서 아무거나 먹고 아무데나 뒹구는 천박한 개를 연상할지 모르겠다. 복중에 몸보신을 고대하고 있는 이에게 있어서 황구는 고단백의 영양을 공급하여 주는 개 이상의 이미지는 별로 없을 것이다. 개장수에게는 황구가 얼마 정도의 값을 가진 개의 이미지가 강할 것이다. 그 개장수에게 강아지를 키워 크면 파는 이에게서는 황구가 얼마 정도의 무게를 가진 개 이외의 이미지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이 개념으로 이해되건 이미지로 받아드려지건 황구는 보통명사이다.
그러한 황구를 노파는 “멍청이”라고 불렀다. 그의 고유한 이름이 멍청이라는 뜻이다. 노파는 황구를 멍청이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그가 무능하다는 점을 애써 말하기도 하였다. 경멸 투의 황구 부르기에서 노파의 정이 느껴질 리 없었다. 무능을 탓하는 멸시조의 황구 말하기에는 노파의 저주마저 서려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심사를 몹시 불편하게 하였다. 노파는 자신과 황구와의 관계를 말하였다. 그는 개장수에게 강아지를 받아 키워서 개가 성장하면 돈을 받고 그에게 다시 넘긴다고 하였다. 그러면 개장수는 사들인 개를 보신탕집에 가져가 판다는 것이었다. 그는 생후 4 달된 저 황구를 여름이 오면 개장수에게 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우리는 황구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이 더 맑아 보였다. 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빠, 아빠가 저 개를 사서 키울 수 있는 사람에게 줄 수 없을까?”
연말연시는 바쁜 나날이었다. 딸 내외는 영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딸과의 약속을 실천에 옮기기로 하였다. 나의 주거가 주택이 아니라서 나는 개를 키울 수가 없었다. 김 선생도 사정은 매한가지였다. 내가 아는 이들 가운데에도 그럴만한 이가 없었다. 지역정보지에 글을 올려 개 키울 수 있는 이를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주위 분들이 말렸다. 그렇게 하여 보아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김 선생 아는 분 가운데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는 이가 있었다. 김 선생은 그에게 부탁하여 도장 옆 빈 터를 빌리자고 하였다. 거기에 개집을 만들어 키우자는 것이 김 선생의 복안이었다. 결국 나와 김 선생 그리고 태권도 관장, 이렇게 세 남자가 역할을 분담하여 개를 돌보기로 하였다. 나는 서둘러 김 선생과 함께 노파의 집으로 향하였다. 혹시라도 개장수에게 팔리기 전에 황구를 노파에게서 사는 것이 중요하였기 때문이다. 김 선생이 노파에게 들은 바로는 황구의 값은 7 만 원이라고 하였다.
한 겨울의 냉기에 마을이 꽁꽁 얼어붙었다. 응달에 숨어 있는 얼음의 서슬이 퍼렇다. 노파의 주름은 더 깊어졌다. 그의 집은 더 작아졌다. 황구의 목에 걸린 쇠 목줄은 더 무거워졌다. 20 만 원을 호가하는 노파의 목소리는 거역하기 어려울 만큼 단호하였다. 나는 두 말 않고 값을 지불하였다. 그의 표정에 온순한 기운이 떠올랐다. 그의 얼굴에는 온기까지 감돌았다. 그러나 그것은 일순간의 일이었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황구의 눈에서도 물기가 보였다. 그것이 겨울 햇살에 반사되어 빛났다. 노파는 짐짓 말하였다. “저 멍청이, 짖지도 못해요.” 그 때 나의 머리를 스치는 말이 있었다. “개똥아, 이 빌어 처먹을 놈아, 허구한 날 놀기만 하냐?” 정의 미학은 정 떼기에 있는 것이 맞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가와바다의 “설국”이나 불후의 명작에서 그러한 정의 역설을 말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멀리 덕음봉 너머로 지리산이 보였다. 가까이에서는 개울 물 흐르는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An English Version)
Tears of A Brown Dog:
A Dedication to Suwha and Tim
ref. the Hong Family
February 1, 2008
NW/DAD
In Namwon is the Kwanghan Pavilion, a witness to a love between Ch'unhyang and Monglyong. Ch'unhyang met her lover for the first time there. She was happy and yet confronted with many impediments after her lover left for Seoul. A serious threat came from Magistrate Byon. The Magistrate had a maggot in his head and urged to date her with him. She refused his offer. The Magistrate let her stand in trial and finally put her into jail. She cried on and on. Crying was the only means by which she could defend her love in crisis and comfort herself. When her lover left, she cried for sorrow. When she found no solace in anything, she cried for desperation. When her lover appeared unexpectedly before her, she cried for happiness, too. What a life in tears! Where did the tears she shed so many times go? I had not met the answer to such a question until we were crossing a bridge over Yoch'on Brook. I came to believe that the flow of the brook was made possible by the tears of Ch'unhyang. Without her tears, the water of the brook could not have flowed with a rush before the Kwanghan Pavilion.
We walked through the bridge over the brook. And then we started to climb up Dokum Peak. It was one of the last days of December, last year. My daughter and her husband came here from London to visit me. I and Mr. Kim had planned a mountain trip with them as a welcome event upon their arrival. Dokum Peak is neither so undulated nor so high that the Namwon citizens like to climb up the peak. Mr. Kim makes a practice to go up there every morning. On the contrary, I have been there several times only. I am so lazy. Climbers usually go up along the northern ridge until they arrive at Octagonal Pavilion standing at the summit where they make a stop for a while. They use, in most cases, the southern ridge when they come down. I am not a good climber. I felt pain at my feet and thus I determined to come back in middle of way. Coming down, I promised my party to wait for them at a meeting point at the end of the southern ridge.
After I took a respite, I went to the appointed place. There I found a village at the southern foot of Dokum Peak, a mound created by Mount Chiri when it stopped before Yoch'on Brook after it ran through Manbok Peak down. No wind was felt within the village. There was Tiger Hill to right and Dragon Hill to left, both serving as fortresses to frustrate the wind's any possible attempts to trespass on the warmth and tranquility of village. And also there were two streams flowing under the foot of the hills respectively until they met each other near the entrance of the village to form a rivulet running south. A cottage sat at a place separated and isolated from other houses in the village. As far as geomancy is concerned, the essence of Mount Chiri comes through Dokum Peak down to this cottage and then flows through whole the village. In this sense, the village must be one of the most ideal sites and the cottage must be one of the most propitious sites for living.
Before long, my buddies came down from the peak. I spoke to them about what I felt about the village and the cottage as well. Mr. Kim, with a smile on face, said that an old lady lived alone in the cottage and that he had struck up on acquaintance with her. He went further to say that he would drop by her residence to say hello to her on the way back from his mountaineering. He, a business man retired, sought his new job in Namwon. He looks after the handicapped-- psychopathic patients, the blind and dumb, and lepers--and others in need of help. From his warm tone of voice, I inferred that the old lady had been under his take-care. He guided us to the cottage and then knocked the door. She looked younger than her age of eighty. A life long hardships were however obvious on her face. By her was a storeroom by which a brown dog was standing. The dog held an iron chain around the neck. This female dog had very naive eyes. My daughter paid compliments to her by saying, "You"re very cute." She turned toward the lady and said: "She's a good dog." The lady responded: "Idiot has nothing to do. She can't even bark. Eating is all she can do!"
The concept of a brown dog may be defined as a dog that has brown-colored hairs on the surface of its body. But the imagery of it is not necessarily identical with the concept of that. Imagery is another thing. When it comes to a brown dog, what the people imagine in relation to that dog may be different from each other; children tend to regard it as one of their family member to whom they had been emotionally tied; a rich man is inclined to think it as a guard-dog; one staying with a pet at an apartment probably thinks it as a dog of low birth which eats anything and sleeps anywhere; a gourmand imagines a dog rich in albuminose substance; what about a dog seller or buyer? he/she is likely to show interest in both the weight and the price of it. Whether it is understood by its concept or by its image, a brown dog is a common noun.
The old day called this dog "Idiot." She bestowed the dog the name of "Idiot," a proper noun. Going further, she alleged how stupid and uncapable Idiot was; her contemptuous allegation conveyed no mercy; the satiric and sarcastic tone of her voice carried no respect for life. I even felt as if she had called down a curse on her own dog. I was embarrassed at her unfriendly attitude toward the dog. She said she would raise a puppy bought from a dog seller. Once the puppy grew up, she would sell it to a dog buyer who turned the dog bought from the lady to a restaurant which specialty was soups of dog's meat. Usually epicures find a great demand for dog soups at the peak of summer. The dog had several months left. She was doomed to be killed in heat of the coming summer. I found naivety in the dog's eyes. I found tears in my daughter's eyes. She asked me in a lowered voice: "Would you buy that dog and seek for one who is willing to raise her, please?"
The year was turning. The streets were bustling. The days were hectic. I was busy. A year was gone. Another came. My daughter and her husband went back to England. A mission was left to me; rescuing the brown dog from being killed in months. What mattered most was to find out one who wanted to take care of the dog with affection. I and Mr. Kim are not in a position to raise her due to our residential condition of non-appropriation. A realistic suggestion came from Mr. Kim. He said that he could borrow a storeroom from his friend whose building had spacious garden accompanied by a storeroom. He added that we could, by turns, raise her in a dog house there. His talk sounded great. I felt that all we had to do was buy the dog from the old lady. What if she wouldn't sell the dog? We hurried our way to the lady.
The wintry cold froze whole the village. The ices hiding themselves into the shadow boasted their sharpness. We arrived at the lady's cottage. Her face more deeply furrowed. The dog's iron chain weighed heavier. The lady asked me two hundred dollars for the dog. I immediately paid the price. A smile passed through her face. A softness sneaked into the tone of her voice. In a minute, however, a cruel wind invaded and occupied our territory. At that moment, I saw tears in her eyes. I also saw waters in the dog's eyes. Light reflected from those waters. The lady pretended to be calm. She told us in a determined and irresistible tone of voice; "Idiot" can't even bark!" At the same time, I heard another voice rushing out of layers of time or maybe out of a tunnel of antiquity, too: "Bullshit, you do nothing every day!" The farther the affection, the deeper the affection. That's a paradox of affection, which still deserves notice and respect. Mount Chiri standing beyond Dokum Peak came into my eyes. Sounds of a stream flowing near to us came into my ears.
첫댓글 데미앙님. 저의 '짧은 시공간 속에서' 의 글에 다신 댓글이 예사롭지 않아서 글 솜씨가 좋으시니 좋은 글 올려 주십사고 부탁을 드렸지요. 제가 정확히 짐작한 것 같네요. 영역한 글까지 올려 주신 성의에 감사드립니다. 황구와 노파의 정 떼기가 눈물겨운 장면이군요. 거금을 주고 사신 데미앙님의 따뜻한 마음씨에서 계속 좋은 글이 올라 오리라 기대해 봅니다. 건필하세요.
데미앙은 데미안을 그리 에둘러 말하심이던가요...,인연으로 시작하여 그 인연을 끊고 인연으로 이어받으시는군요.저는 엉뚱하게도 데마안이 에밀의 묵은 인연을 끊어내고 자기 품으로 안아들이는 헤세의 마음을 떠올려봤습니다. 지금쯤 지리산 자락의 골짜기에도 봄은 와 눈물이 흐르겠지요. 고운 글 반가운 마음에 횡설수설해봤습니다.
운명일까요 숙명일까요... 올 여름이면 많은 이들에게 보신용으로 쓰여질 황구가, 데미앙님을 만나 천수를 누리게 되었네요. 짖지도 못해 설음받던 황구와 할머니..... 이별 앞에선 키운정이 무엇인지 눈물 반짝이는 황구와 할머니의 정을 느껴보네요. 따라서 생명의 존엄성도, 인간애도 함께 느껴보고 흐믓한 마음되어 댓글 남기고갑니다. 건필하세요.
황구가 흘린 눈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가슴에 찡해 오는군요
순하기만 한 황구를 보내는 마음도 정든 할머님을 떠나는 황구의 아픔이 눈물로 미화 된 좋은 글 앞에서 잠시 머물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명을 존엄시 하시는 데미앙님 !부녀간의 약속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춘향전에서의 숱한 눈물과 황구랑 할머님의 눈물의 미학을 보고 모든건 정에서 비롯 한다는걸 깨닫고 갑니다.좋은 글 감사 드립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대단 하시군요. 지금은 년중 개들의 수난시대 입니다. 황구가 좋은 임자를 만나 천수를 다 하기를 바랍니다 . 건필하새요 !
황구도 천수를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하고 싶네요, 데미앙님의 동물 사랑에 찬사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