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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권영호
물빛문학동인 |
격주 작품토론회 22년…흔들림 없는 ‘뚝심의 詩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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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제 빛깔을 어디다 두는지./ 물풀이며 자갈이며 고요히 노는 물고기들./ 냇바닥만 새로, 아름답게 차게 비추네.// 물은 일체 제 빛깔을 미루네./ 저 시퍼런 바다를 한 손아귀 훔치면/ 과연 시퍼런가, 다만/ 손바닥 손금까지 다시 읽게 하네.// 물은 '사랑한다'는 말과 같아서/ 만상을 적셔 아연 생생하게 깨우네. 만상을 맛보며 자세히 들여다보는 눈,/ 물은 아직 제 빛깔을 말하지 않네.// 하늘 아래 일망무제로 만나는 긴 수평선./ 물의 영혼 풀잎 끝에서도 맑게 내다보네. 전폭/ 몸을 섞는 저 장엄한/ 진실, 그리고 기쁨!// 오백 날 물이 쌓여 이룬 일획의 깊이여/ 물은 비로소 망망 제 빛깔을 긋네.'
문인수 시인이 '물빛동인' 정기토론 500회에 부친 축시 '물빛, 그것은 진실입니다'를 읽으면 '물빛'의 빛깔이 보인다. 20여 년 세월 동안 대구 문학마당의 한 가장자리를 소리없이 비추어 온 '물빛'의 색깔이 보인다.
'물빛'은 1984년 이진흥 시인(전 대구시인협회장)의 문예창작강좌를 수강했던 문학도들이 결성한 문학동인이다. 그로부터 22년. 한 달에 두 번씩 꾸준히 작품토론을 해 온 것이 지난해 12월 28일로 514회가 되었다.
이 모임에서 한 해 동안 토론된 작품을 동인지로 묶은 것이 물빛동인 22집 '벽에도 상처가 있다'이다. 이번에는 김경남 김상연 김세현 김학원 박경화 박계해 신명숙 신상조 유희옥 이경순 정정지 정해영 차재희(시), 고미현 정근표(수필), 이옥희(소설), 이진흥(시평) 씨 등의 작품을 실었다.
물빛동인은 처음에는 회원자격을 수강생들로 제한했으나 95년 이후에는 문호를 개방했고, 2001년부터는 인터넷 홈페이지(www.mulbit.com)를 마련해 비회원의 작품에도 눈을 돌리는 등 문학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그 결과 2003년에는 문예진흥원 우수 인터넷문학 사이트로 선정되어 상금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물빛을 스쳐간 회원 수는 70여 명에 이른다. 그 중 등단해서 활동하는 문인들로는 정화진, 송종규, 최영선, 박계해, 이도원, 손희경, 유자란, 금이정, 강은소, 김세현, 남금희, 김상연, 차재희, 박경화, 이경희, 정근표 씨 등이 있다.
현재의 회원은 26명 안팎. 매월 둘째.넷째 수요일에 모이는 정기 작품 토론회에는 평균 12명 정도의 회원이 참가한다. 회원들의 연령은 70대로부터 3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직업도 주부·교사·엔지니어·약사 등 다양하다.
매년 두 차례의 야유회나 문학기행과 연말 출판기념회 그리고 외부 시인 초청강좌도 가지지만, 20년이 넘은 물빛은 시종일관 조용하기만 하다. 지난해 향가의 고향인 경주에서 가진 500회 모임 때 이진흥 시인은 물빛의 존재의미를 이렇게 규정했다.
"시가 메말라가고 시의 존재가 위협받고 있는 시대이다. 물질로 치닫는 인간의 욕망이 스스로의 영혼을 말살하고 있다. 하늘에 걸린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떨리고, 풀잎에 맺힌 이슬을 만나면 눈물지을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존재의 위기 시대이다. 시인은 이러한 시대를 시(詩)라는 신화언어로 회생시키는 사람이다. 가슴을 울리는 미토스의 언어로 죽어가는 사물에 이름을 주어 생명으로 깨어나게 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이 우리가 물빛이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시를 이야기하는 까닭이다."
초창기부터 '물빛'을 곁에서 지켜본 문인수 시인은 "물빛은 대외적으로 눈에 띄는 활동을 하지는 않는 대단히 조용한 문학동인"이지만 "격주로 모이는 작품토론회를 22년 동안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 왔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그 점이 앞으로 600회, 700회로 이어질 물빛의 저력이고 자랑이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