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서 목사로 변신한 김금복 목사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부자요"하고 큰 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는 "부자는 두끼 중에 한끼는 나누는 사람이니 나보다 부자인 사람은 드물다"라고 부자에 관한 정의를 내린다. 11년을 한결같이 점심 약속을 지켜온 김금복(54) 목사. 그는 사단법인 "사랑채"의 대표로 서울 종묘공원에서 노인무료급식을 하고 있다.
촉촉하게 봄비가 내렸다.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에게는 반가운 단비다. 그러나 종묘공원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의 표정은 여느 때보다 한기가 더하다. 비가 오는 날은 공원마당에서 하던 배식을 지하 주차장 옆에서 한다. 점심때가 가까워질수록 늘어선 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접이식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지고 밥과 국을 담은 통에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보기만 해도 온몸에 훈기가 오르고 벌써 뱃속의 허기는 채워진 듯하다. 매일 500여 명의 식사를 위해서는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날은 교보생명 본사 직원들이 배식을 도왔다. 김치, 어묵 볶음, 계란찜이 차례로 놓여지고 밥과 국이 담긴다. "저기, 저 아가씨 옆에 자리 비었지요. 저쪽으로 가세요."
주변을 둘러봐도 아가씨는 없다. 김 목사에게 할머니들은 아가씨, 할아버지는 총각으로 불린다. 일일이 얼굴을 확인하며 건장한 젊은 노숙자의 식판에는 한 주걱씩 밥을 더 얹어 주고 파킨슨병으로 몸을 심하게 떠는 아주머니는 직접 식판을 들어다 테이블에 올려 주기도 한다.
그는 원래 경찰이었다. 주로 남산 주위를 순찰하던 그는 하루 종일 망부석처럼 앉아 있는 노인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노인들이 점심을 거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빵과 우유를 사서 노인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교회 동료들의 도움으로 버스를 사서 1993년 12월 무작정 종로의 탑골공원에서 결식노인과 노숙자에게 무료급식을 시작했다.
1년 후 그는 20년간의 경찰공무원 생활을 접고 본격적인 봉사의 길을 택했다. 지난 1998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소매를 둘둘 말아 올린 개량 한복에 앞치마를 두른 그의 모습 어디에도 고상한 성직자의 모습은 없다.
"목사도 직분이 여러 가지에요. 나는 봉사의 사역을 하려고 목사가 된 사람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는 것은 내 직분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퍼줘야만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배식을 마친 어느 날 왜소증을 앓는 사람이 그 앞에 흰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사연인 즉, 자신은 "하반신장애인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사람으로 주로 재래시장에서 이태리 타올과 방충제 등을 바구니에 담아 밀고 다니며 파는 일을 하는데 김 목사의 일에 도움을 주고 싶어 1,000원씩 내 2만 5,000원을 모았다는 것이다. 그는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 귀하고 소중한 돈이라 며칠 동안 차마 봉투를 열어 볼 수가 없었다.
"그런 분들이 제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겁니다. 여러 봉사단체도 있고, 모금 본부도 있지만 그곳에서조차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 종로에 나와 줄을 서야만 하루에 한 끼라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한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지요."
김 목사는 급식뿐만이 아니라 노인복지 전반에 관심이 많다. "사랑채 예술단"을 만들어 "노인위안열린음악회"를 열고, 외국어에 능통한 "노인봉사단"(시니어 통역봉사단)을 만들어 외국인에게 길 안내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또한 "노인권익찾기운동본부", "경로 선교회" 등 노인을 위한 일을 발 벗고 찾아 나섰다.
현재는 30여 명의 노인들을 모시고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으며, 치매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 100여 명을 모실 수 있는 노인전문요양원도 문을 열 예정이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노인요양원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한쪽에는 운행이 중단된 급식 버스가 서 있다. 종묘공원에 노숙자와 노인이 모이는 것이 달갑지 않던 구청에서 급식 버스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입구에 강철 말뚝을 박았기 때문에 운행을 못하고 있다.
"제가 공무원 생활을 오래 해서 공원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의 마음을 잘 압니다. 그래서 싸울 것도 없고, 그렇다고 그 까짓 말뚝 두 개에 그만둘 일이었으면 시작도 안 했지요. 그래서 작은 트럭을 하나 샀습니다."
각각의 입장을 이해하니 사정하거나 서운해 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10여 년 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는 절대로 구걸하지 않는다. 대기업 회장과 큰 교회 목사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고 거절당한 후 그는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둘째는 상을 받지 않는다. 상장은 내 행동의 폭만 좁게 만들 뿐이다. 셋째는 언론에 취재 요청을 하지 않는다.
이 세 가지는 그가 앞으로도 견지할 원칙이다. 그는 곧 문을 열게 될 요양원이 잘 운영되는 것과 종로에 비라도 피할 수 있는 급식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연간 10조 원이 넘는 음식 쓰레기가 버려지는 나라", 그러나 여전히 세상의 한 구석에 "밥"이 위안이고 희망인 곳에 그가 있다.
<교보생명 사보 "다솜이 친구"에서 발췌>
첫댓글 내가 만날 밥 푸는 것하고는 역시 틀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