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무렵 제자들이 점점 늘어나자,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히브리계 유다인들에게 불평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들의 과부들이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 홀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열두 사도가 제자들의 공동체를 불러 모아 말하였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 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 (1~4)
본문에서 '불평'으로 번역된 '공귀스모스'(gongysmos)는
'투덜댐' 또는 '원망'이라는 의미의 명사이다.
이것은 특히 70인역(LXX; 구약의 히브리서를 희랍어로 번역한 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도자 모세와 주 하느님을 향해 원망한 것을 묘사할 때 쓰인 단어가
본문의 단어와 동일한 명사와 그 동사형이라는 점(탈출16,7; 민수14,27)을 감안할 때,
그리스계 유다인들의 불평이 하느님의 교회에 심각한 피해를 주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사탄은 교회조직 내에 있는 구성원들의 투덜거림과 불평을 통해
교회를 위기에 몰아 넣으려 했던 것이다.
여기서 히브리계 유다인들은 팔레스티나에서 살면서 유대의 풍습을 따르고
아람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은 디아스포라 유다인들(그리스계 유다인들)에 비해 자긍심이 강했지만,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계 유대인들에 대한 구제(사도2,45)를 소홀히 한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는 온 신도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유무상통하는 아름다운
공동체였지, 사람을 차별하는 집단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사도4,32).
다만 그리스계 유다인들의 과부들이 구제에서 빠지게 된 것은 아마도 그것을
관장하던 히브리계 유다인들의 행정 착오 때문이었을 것이다.
초대 교회는 비교적 넉넉한 사람들의 봉헌금(사도4,34~37)으로 상대적으로
가난한 신도들의 필요를 채워 주었으며, 특히 생계 유지가 힘든 과부들
(사도4,31~37)은 매일 구제의 대상이 되었다.
여기서 '매일 배급을 받을 때에'로 번역된 '엔 테 디아코니아 테 카테메리네'
(en te diakonia te kathemerine)는 초대 교회 당시 매일 행해지던 구제를
일컫는다.
이것은 의지할 데 없는 과부들을 돌아보라는 하느님의 명령(탈출22,20; 신명10,18)에 따라
유다인들이 지켜온 아름다운 전통을 계속 이어가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리스계 과부들은 언젠부턴가 그 매일의 구제에서
조금씩 제외되기 시작했다.
'홀대를 받았기'의 의미로 번역된 단어 '파레테오룬토'(paretheorunto)의 원형
'파라테오레오'(paratheoreo)는 '간과하다'(overlook), '소홀히하다'
(neglect)라는 의미의 동사이다.
본문에서는 어떤 일의 반복이나 계속됨을 나타내는 미완료 과거 수동태로 쓰였다.
이것은 그리스계 과부들이 그 매일의 구제에서 단 하루 제외되어서 원망했던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제외되어 온 데에 대한 불만을 참지 못해서 원망했던 것이다.
그래서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불평을, 사탄은 교회를 위기에 몰아넣는 기회로
사용하여 히브리계 유다인들과 그리스계 유다인들이 일치를 이루는데 어려움이
생기게 한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는 유념해야 할 중요한 단어가 있다.
이는 '배급'(구제)으로 번역된 '디아코니아'(diakonia)라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섬김'(1코린16,15), '직무'(2티모4,5). '봉사'(사도21,19)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리고 '구제'(자선, 희사)를 가리키는 단어는 '엘레에모쉬네'(eleemosine)라고
따로 있다(마태6,2; 루카11,41; 사도10,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행전의 저자가 '구제'를 표현하면서 굳이 '직무', '섬김',
'봉사'를 의미하는 단어 '디아코니아'를 사용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이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 단어를 사도행전 6장 1절과 4절에 함께 사용함으로써
중요한 원리를 말하고자 한다.
사도행전 6장 4절에 '말씀 봉사'(말씀 전하는 것; te diakonia tu logu;
테 디아코니아 투 로구; the ministry of the word)에서 '봉사'(전하는 것)로
번역된 단어도 '디아코니아'인데,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보여준다.
즉 사도들의 말씀 선포의 직무와 평신도들의 구제하는 등의 직무가 우열의
차이없이 모두 하느님 앞에서 동등한 직무라는 사실을 동일한 단어의 사용을
통하여 보여 주고자 한 것이다.
다만 말씀 봉사와 구제 봉사는 직무의 성격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또한 사도들의 말씀 전하는 직무는 신도들에 대해 지시하고 신도들 위에
군림하는 권리를 부여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제의 직무처럼
신도들을 섬기고 교회가 성장하도록 돕는 봉사의 직무라는 것을 사도행전
6장 1절과 4절의 '디아코니아'라는 단어의 사용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에페소서 4장 11절에서처럼 사도와 예언자, 복음 선포자, 목자와 교사의
순으로 말씀을 전하는 직무의 우위성이 드러난다.
그러나 사도행전 6장 1~4절에서는 그 일에 봉사하는 사람들의 정신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