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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인도하심을 앞서지 마라
사도행전 16:6-10
행 16:6-10 / [바울이 본 환상] 그 다음에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그냥 통과하였다. 성령께서 아시아 지방에는 가지 말라고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7) 그들이 무시아 지경 가까이 이르러 북쪽 비두니아 지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또다시 예수의 영이 허락하시지 않았다. 8) 그래서 무시아 지방을 통과하여 곧장 드로아로 갔다. 9) 그날 밤에 바울은 바다 건너 마게도냐에 사는 사람 하나가 `이리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는 환상을 보았다. 10) 우리는 곧 마게도냐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하나님께서 그곳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자 우리를 보내시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라와 함께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는 바울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제자로 삼은 후 에베소(아시야)로 직행하고 싶었다. 그 당시 에베소는 아시아 최대의 무역 항구였으며 아시아의 모든 물건이 수집되어 유럽으로 건너가고 유럽의 물건들이 아시아로 들어오는 국제 상업도시였다. 이런 곳에서 전도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아시아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바울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성령께서 그 길을 막으셨다. 바울은 할 수 없이 비두니아 쪽으로 가려했으나 그 쪽도 역시 허락지 않으셨다.
바울은 어쩔 도리가 없이 소아시아 북쪽 마지막 항구인 드로아로 들어갔다. 사도행전은 성령의 행전이다. 사도들은 성령께서 명하시는 대로 순종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께서 인도하셨고, 그들은 단지 성령께서 쓰시는 준비된 그릇이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란 자기가 성령의 은사를 충만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정결하고도 비어 있는 그릇처럼 되어 성령께서 그를 충만하게 사용하실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람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고 또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그런 사실을 이렇게 힘주어 설명하고 있다.
빌 4:13 / 내게 힘을 주고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다할 수 있습니다.
바울이 마게도냐에 머물 때 성령께서 막으신 이유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밤의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바울에게 건너와서 자기들을 도와달라고 간청하였다. 바울 일행은 그때서야 성령께서 그들이 아시아에 머무는 것을 막으신 이유를 깨달았다.
만일 바울이 아시아(에베소)로 직행하는 것을 허락하셨다면 유럽 전도는 3년 이상 늦어질 뻔하였다. 왜냐하면 나중 제3차 전도여행 때 바울은 에베소로 직행하여 3년을 묵으며 전도했기 때문이었다. 유럽 전도의 시급함을 아시는 성령께서 바울의 발걸음을 먼저 유럽으로 인도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에베소보다도 먼저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그리고 아덴, 고린도 같은 유럽의 중심지에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이다.
1. 나의 갈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❶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천지만물을 지으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나의 가는 길을 만들어서라고 그 길을 가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즉 광야에도 길을 내시는 분이시다.
사 43:19 / 보라, 내가 이미 새로운 일을 시작하였다. 그 일이 이미 새싹처럼 돋아났는데 너희는 아직도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바로 내가 광야에 큰길을 내고 죽음의 사막에 생명의 강줄기들이 흘러가도록 하겠다.
❷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가는 길이 때로는 막힐 때가 있고 장해물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장해물을 없애버릴 전능하신 분이시다.
사 45:2 / 주께서 고레스 자신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 앞에 먼저 가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겠다. 청동의 성문들도 내가 산산조각으로 박살을 내버리고 무쇠 빗장도 쳐서 부러뜨리겠다.
❸ 유익하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믿는 이들을 유익하도록 인도하시고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시지 절대로 잘못된 길로 인도하시지 않는다. 가서 안 될 길로 즉 망하는 길로 인도하시지는 않으신다.
사 48:17 /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 너희의 해방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너희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희에게 유익한 것을 가르치고 너희가 어떻게 살아야 옳은가를 가르쳐 주겠다. 나의 가르침은 모두 너희에게 유익한 것이다.’
❹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하는 중에 어떤 문제로 말미암아 가이드가 안내하기를 포기하고 여행자들을 버리고 떠나므로 인하여 큰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절대를 우리를 도중에 버리지 않으신다. 영원토록 인도하신다.
시 28:9 / 주님의 백성을 건져 주소서. 주님의 차지인 이 백성에게 복 내리소서. 이 백성의 든든한 목자 되시어 영원토록 돌봐주소서.
히 13:8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다 아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갈 길을 인도하신 것 같이 오늘도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피 흘리시기까지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힘입고 강하게 담대하게 힘찬 발걸음을 내 딛자.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대로 전진하자. 주저하거나 망설이거나 뒤로 물러서지 말고 오직 전진만 하자.
히 10:38-39 /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주께 대한 믿음과 신뢰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만일 뒷걸음질 쳐 물러서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39) 우리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거나 비참한 운명에 처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확신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❺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시다.
마 6:24 / 아무도 하나님과 돈이라는 두 주인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한편을 미워하며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편을 극진히 위하며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신앙이 좋고 선정을 베풀었던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종종 궁궐을 빠져나가서 서민들과 사귀고 대화하는 것을 즐겼다. 한번은 믿음이 좋은 한 과부의 집을 찾아갔다. 여왕은 과부와 함께 신앙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 중에 과부의 믿음에 감동을 받은 여왕은 “부인을 찾은 손님 중에 가장 고귀한 분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여왕은 과부가 ‘예수님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을 기대했는데, 전혀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가장 귀한 손님은 두말할 것도 없이 여왕 폐하이십니다. 제 생애 최고의 손님이십니다.” 그러자 실망한 여왕은 “부인을 찾아 주신 최고의 손님은 예수님이 아닐까요?” 하고 물었다. 그 말에 과부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 “여왕 폐하! 예수님께서는 결코 손님이 아니십니다. 제 주인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 집에 처음부터 계신 분이십니다. 저는 그분을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예수님은 필요할 때 부르는 손님인가? 아니면 내 자신이 모시고 있는 주인이신가?
■ 후랜크 요바크 신학자는 어느 날 “하나님 제가 조금 더 기도드리고 싶고 또 기도에 능력을 경험하기를 갈망합니다.”라고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하셨다. “그럼 너의 주인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는 당연히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무엇이든 나에게 물어 보아라. 바로 네 자신에게 묻지 말고 ….” 그 말을 들은 그는 스스로 자기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했는지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씩 하나님께 질문하기 보다는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자기를 발견하게 되었다.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까? 뭘 먹을까? 누구를 만날까? 뭐라고 말할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는 결심을 하였다. 이제부터 나 자신에게 묻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묻겠다는 각오를 다짐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영적 생활이 완전히 바뀌어졌다고 고백하였다. 인간은 얼마나 자기 스스로가 주인이라고 착각하며 살아오고 있는가를...
우리는 얼마나 자신에게 속으며 살아오고 있는지 모른다. 나 자신이 잘나서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것이 좋게 느껴지지만 아니다. 우리는 바보가 되고 무능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만 유능하면 된다.
고전 3:16 / 여러분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성전인 바로 여러분 속에 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 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 해 주 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 위에 서리 내가 주인 삼은 모든 것 내려놓고 내 주 되신 주 앞에 나가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만 사랑해 주 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 해 주 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 위에 서리 주 사랑 거친 풍랑에도 깊은 바다처럼 나를 잠잠케 해 주 사랑 내 영혼의 반석 그 사랑 위에 서리 그 사랑 위에 서리 그 사랑 위에 서리
2. 바울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르는 사람이었다.
비록 예수님과 함께 3년 동안 따라다니며 생활하지는 않았지만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체포하기 위하여 가는 도중에 예수님께서 직접 나타나심으로 인하여 만난 사람으로 성령의 음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그렇지 않았던들 다음과 같은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전 3:16-17 / 여러분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영이 당신의 성전인 바로 여러분 속에 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17) 만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거나 허물어 버리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고 정결하며 여러분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4:1-2 / 여러분은 아볼로와 내가 하나님의 감춰진 비밀을 맡은 그리스도의 일꾼임을 알아야 합니다. 2) 일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예수 믿는 자들을 색출하여 교도소에 처넣는 데 앞잡이 역할을 했다. 철저한 율법주의자로 얼마나 맹신했는지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일 때에도 증인이 되었고,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하여 체포하러 가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길 위에 빛과 음성으로 다가오신 주님을 만난 뒤 그 분이 메시야이신 것을 알았을 때에는 완전히 180도 달라졌다.
빌 3:4-11 / 그러나 만일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기에 충분한 사람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면만을 본다면 확실히 나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5) 나는 순수한 유대인 혈통을 이어받아 오랜 전통의 베냐민 가문에 태어났으며, 난 지 여드레 만에 유대인의 표지를 받기 위해 할례의식을 치렀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디 한군데 흠잡을 데 없는 진짜 유대인입니다. 게다가 유대교의 모든 율법과 관습을 지키기를 가장 엄격하게 요구하는 바리새파 회원이었습니다. 6) 얼마나 그악스러웠던지 교회를 모조리 핍박했고 유대교의 모든 규칙과 규정을 빠짐없이 지키려 온 힘을 쏟았습니다. 7) 그러나 한때 대단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던 이런 것들을 지금에 와서는 모조리 내던졌습니다.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고 그분에게만 소망을 두기 위해서입니다. 8) 그렇습니다. 나의 주님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존귀해서 이것과 비교하면 다른 것은 다 무가치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외에는 다 쓰레기처럼 여기고 모두 내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 9) 보다 더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거나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얻으려는 생각을 집어치우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만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10) 나는 지금 모든 것을 다 내던졌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다만 참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전능한 능력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당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아는 일입니다. 11)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분이 가지는 신선하고 새로운 생명 가운데서 사는 자가 되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
거듭난 바울은 메시아 되시는 예수님을 만난 뒤에는 그전까지 추구해 온 모든 것들을 '똥'(더럽다는 가장 잘 표현한 단어)과 같이 여겼다. 자기 속에 든 지식과 경험과 능력들을 의지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것으로 성령님 앞에서는 초개나 안개와 같은 아니 사단이 이용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폭탄과 같은 것들임을 자각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자기 마음을 그런 것들로 채울 게 아니라 오직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 삼겠다는 뜻이었다.
자기 마음을 성령의 전으로 삼기 위해서는 그만큼 성령의 조명(照明)을 받아야만 했다. 또한 성령의 조명을 받기 위해서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며 범사에 감사하고, 항상 선을 좇으며, 주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했다. 성령의 조명을 받으면 모든 위협 속에서도 믿음으로 나아갈 수가 있고, 성령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에 어떤 해로움도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윗도 시편 23편에서 이렇게 고백했던 것이다.
시 23:1-6 / [여호와는 나의 목자; 다윗의 노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그 무엇이 부족하리오. 2) 편히 쉬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시고 고이 쉬라 시원한 시냇가로 데려가시네. 3) 내게 생기 불어넣으시고 똑바른 길로만 이끌어 주시니 주님이 아니고서야 주님의 이름 아니고서야 어찌 그러리. 4) 나 죽음 그늘 드리운 깊은 골짜기 지난다 해도 아무런 두려움없이 가리라. 주께서 내 곁에 함께 계시니 목자 손에 들려 있는 지팡이와 막대기처럼 인도하여 주시니 하고 많은 시름 사라져 버리고 이 마음 이렇듯 든든하여라. 5) 원수들 두 눈 뜨고 쳐다보는데 보란 듯 이것 앞에 잔칫상 차려 주시고 귀한 손님 대접하듯 기름 발라주시며 잔이 흘러넘치라 하고 부어 주시네. 6) 아, 그 누가 이렇듯 행복하리오. 이처럼 포근하리오. 주님의 손길 살아생전 끊이지 않으리니 이 목숨 살아 숨 쉴 동안에 주님의 전에 오래도록 살으리이다.
그만큼 바울은 성령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 들인 이후에는 성령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살았다.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란 늘 복음 전파에 최선을 다했던 삶이다. 그랬기에 그가 가는 길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 본다면 바울에 대한 이야기가 사도행전 8장에서 28장까지 기록되어 있다. 마치 바울행전으로 오해를 할 정도였다. 그만큼 바울은 성령의 사람으로 성령의 뜻을 받들어 산 사람이다.
3. 바울은 성령의 막으심을 어떻게 이해하였을까?
바울의 전도 여정은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진행되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그러했다.
행 16:6-7 / 그 다음에 그들은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그냥 통과하였다. 성령께서 아시아 지방에는 가지 말라고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7) 그들이 무시아 지경 가까이 이르러 북쪽 비두니아 지방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또다시 예수의 영이 허락하시지 않았다.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에서 아시아 전도를 주된 목표로 삼으려고 했다. 여기서 아시아란 오늘날의 아시아 대륙을 말하는 게 아니다. 본래 아시아란 명칭은 바울 당시 한 지방의 명칭이었다. 오늘날 터키 영토의 서쪽 지방, 지중해 연안 지역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오늘날의 터키 지역을 바울 당시의 지역 명칭으로 구분한다면, 동쪽으로는 갑바도기아, 중부 지역은 갈라디아, 남부 지역은 루기아와 밤빌리아 길리기아, 북부 지역은 비두니아, 서북 지역은 무시아, 서쪽 지역은 아시아로 불려졌다.
바울은 우선 아시아에서 전도하려고 했다. 그런데 성령께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 아시아는 오늘날 터키의 서쪽 지역으로 B. C 133년 로마의 직할 주가 되었고, 그 주도는 유명한 에베소였다. 바울은 제1차 전도여행 때에 들렸던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지역을 거치면서 아시아 전도를 염두에 뒀던 것 같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성령께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고, 그 길을 막으셨다. 어떤 식으로 막으셨는지는 모른다.
성령께서 바울의 아시아 전도 여행을 막으신 것은 아시아에 더 이상 복음 증거가 필요 없기 때문이 아니라 유럽 쪽에 복음 증거가 더 시급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해 바울을 유럽으로 보내려 하신 것은 소아시아가 덜 중요하고 유럽이 더 중요해서가 아니라 복음의 지경이 확장되기를 바라셨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로마는 세계 최강대국으로 전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로마와 함께 기독교가 세계 종교로 발전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것을 보는 영안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 이런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안목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주변이나 자기 환경만 보게 되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놓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길에서도 성령이 막으실 때는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셨음을 믿고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복음 전하는 일은 분명히 선한 일이다. 예수님께서 권장하신 일이요 명령하신 일이다. 그런데도 성령께서 그 일을 막으셨다면 이 점에 주목해야 한다. 누가 보더라도 선하고 옳은 일인데 하나님께서 하지 못하게 하시는 일이 있는가? 그렇다. 충분히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왜 그럴까?
복음 전도는 하나님의 때를 따라 해야만 한다. 아시아 전도는 바울의 제3차 전도여행 때에 이루어졌다. 그 때에 바울은 에베소에 무려 2년 3개월이나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했다(행 19장). 하나님이 정하신 제2차 전도여행의 주 목적지는 유럽이었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무조건 나아간다면 무모한 도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처음 열두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마 10:5-6 /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견하면서 다음과 같이 분부하셨다. `이방인이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가지 말고 6) 오직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가라.
이방인은 물론 사마리아도 일차 전도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실 때에는 복음이 점차적으로 열려져서 땅 끝까지 향하게 하셨다.
행 1:8 /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
세상 끝까지 목표가 정해졌다 해도 그 가는 길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와 절차를 따라서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삭이 애굽으로 가는 길을 막으셨다.
창 26:2 / 그때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애굽으로는 내려가지 말아라. 내가 일찍이 가서 살라고 말해 두었던 이 땅에서 그냥 살아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는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하셨다.
창 46:3-4 / `나는 네 아버지가 섬기던 하나님이다. 너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애굽에서 큰 무리를 이루게 하리라. 엄청나게 불어나게 하리라. 4)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리라. 또한 네 후손을 인도하여 다시 그곳에서 나오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요셉의 품에서 네 눈을 감게 할 것이다.'
이삭은 애굽에 내려가지 않음으로써 큰 복을 받았고, 야곱은 애굽에 내려감으로서 큰 복을 받았다. 애굽에 내려가더라도 아무 때나 내려갈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때에 내려가야 한다.
가나안 정탐 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전투를 하지 말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셨다.
민 14:42 / 올라가지 말아라.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지 않으니 적에게 패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허락지 않는 전투를 시작했다가 크게 패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전진할 때에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 하나님의 사람 발람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과 환상과 상황이 그것이다. 발람은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 당시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살았다. 그런 그에게 모압 왕 발락이 여러 신하들을 보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하고, 자기 족속들에게는 축복을 빌어 달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발락의 신하들이 오기 전에 말씀으로 발람에게 찾아오셨다. 절대로 그들의 청을 들어주지 말라는 음성이었다. 그런데도 발락 왕이 또 보내자,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발람 선지자의 나귀가 가는 길을 막아서게 했다. 발람 선지자를 태운 나귀가 길을 가야 되는데, 엉뚱하게 담벼락에 코를 박고 서 있는 것이다. 그때 발람이 화가 나서 나귀를 발길질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발람의 눈을 열어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 나귀의 길목을 막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다(민 22:32-35).
성령님은 그렇듯 당신의 음성과 환상과 꿈으로 그리고 상황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여시기도 하고, 또 막으시기도 하신다. 그만큼 우리의 관점과 우리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성령님의 조명과 성령님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게 더 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것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조금 더 살펴보자. 내가 갈 길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가서는 안 되는 길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하나님은 때때로 내가 갈 길을 보여주시기 전에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보여주시기도 하신다. 때로는 옳은 일도 하지 못하게 하신다.
여러 경로를 통해서 내가 하는 일을 가로막으신다.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게 하신다. 사업상의 길을 막으신다. 결혼 문제, 자녀 문제, 건강상의 문제 등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동원하셔서 내가 하는 일을 못하게도 하신다. 그럴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겸손히 하나님께 엎드리자.
우리는 영적 미성년자들이다. 인생의 미성년자들이기도 하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영적 나이는 미성숙이다. 바른 길을 잘 모르고, 최선의 길을 잘 모르고, 유익된 길을 잘 모른다. 미성년자가 때를 쓴다고 무조건 들어주시겠는가? 하나님은 내가 바른 길, 최선의 길, 유익된 길을 찾기까지 내 길을 가로막고 계실 것이다.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역사를 보면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40년 동안 광야를 행진하였다. 구약에 110여 차례, 출애굽기에 39차례 언급된다. 홍해 앞에서는 애굽 군대를 가로막고 동풍으로 홍해를 가르셔서 그들을 무사히 건너게 하셨다. 심지어는 1년 동안 불기둥, 구름기둥이 움직이지 않을 때에도 기다렸다. 구름기둥이 저들 앞에 떠오를 때 일어나 길을 행하고, 구름이 떠오르지 아니할 때는 발행하지 아니했다(출 40:36-37).
때로는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나타났다.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애굽의 바로는 변심했다. 그가 다시 추격하여 왔을 때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편이 이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출 14:19~20)." 이런 경우 구름 기둥·불기둥은 구원의 방패요, 산성이요, 피난처였던 것이다.
그리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은 그야 말로 생명의 보존이었다. 사막의 밤은 기온차로 인하여 춥기가 이를 데 없다. 이때 저들에게 나타난 불기둥은 온기를 주는 생명이었다. 사막의 낮은 뜨겁다. 저들에게 나타난 구름 기둥은 강렬한 태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생명이었다. 장정만 60만, 여자와 유아까지 200만으로 추산되는 대민족 이동에 구름 기둥·불기둥의 역할이야말로 저들의 생명을 보존해 주는 결정적 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 4:35 / 여호와께서 이 모든 일을 여러분에게 보여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분만이 하나님이시고 그분밖에는 다른 아무 신도 없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가르치시는 데에 있습니다.
신 8:1-6 / [이스라엘을 가르치시다]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명하는 모든 계명을 그대로 지켜 행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이 살아남아서 번성하게 되고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 그것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2)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난 40년 동안 저 광야에서 여러분을 인도해 주신 그 여정을 모두 돌아보십시오. 그 목적은 여러분의 고집을 꺾어 겸손하게 낮추어 놓는 한편, 여러분이 과연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것인지 아닌지 여러분의 마음을 시험하여 알아보시려는 데에 있었습니다. 3) 주께서 여러분의 고집을 꺾으실 때에 여러분을 굶주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여러분도 몰랐고 여러분의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주께서 여러분에게 먹여 주셨습니다. 그 목적은 사람이 밥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주께서 여러분에게 가르치시려는 데에 있었습니다. 4) 지난 40년 동안 여러분의 옷이 해진 일이 없었고 여러분의 발도 부르튼 일이 없었습니다. 5) 여러분이 이 사실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옳게 가르치듯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가르치셨다는 사실입니다. 6) 그러므로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르쳐 주시는 길로만 걸어가면서 주님을 경외함으로써 주님의 명령을 지키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로서는 절대적인 믿음은 가지고 오직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되 그분의 인도하심만 따르도록 힘써야 하겠다.
4. 마게도냐인의 환상을 통해 무엇을 깨달았는가?
바울이 막혀진 길로 고민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
행 16:8-10 / 그래서 무시아 지방을 통과하여 곧장 드로아로 갔다. 9) 그날 밤에 바울은 바다 건너 마게도냐에 사는 사람 하나가 `이리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간청하는 환상을 보았다. 10) 우리는 곧 마게도냐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하나님께서 그곳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시고자 우리를 보내시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에 바울은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다. 무시아는 오늘날 보스포러스 해협을 끼고 있는 터키 서북단의 지역이다. 드로아는 무시아의 해변에 연한 항구로 유명한 트로이에서 약 6km 떨어진 곳에 있다.
바울이 드로아에 머물 때에 밤에 환상이 보였다. 환상은 꿈과 같이 잠 잘 때에 보이는 게 아니라 기도할 때나 생시에 보이는 현상이다. 사도행전에는 환상을 보는 장면이 많이 있다(7:31, 9:10, 12, 10:3, 17, 19, 11:5, 12:9, 16:9, 18:9). 바울이 본 환상은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손짓하며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모습이었다. 마게도냐는 현재 그리스 북부 지역으로 알렉산더의 고향이기도 하다. 바울이 통과한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의 도시가 바로 이 마게도냐에 위치하고 있었다.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은 바울이 나아갈 길을 보여준 하나님의 계시였다. 바울은 이 환상을 보면서 왜 아시아에서의 전도가 막혔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이쪽 방향으로 나를 부르시는구나!”
막힌 길과 열린 길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이 은혜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한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흔히 이런 권면을 한다. ❶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는 일이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열심히 경청하라. 설교를 통해서, 성경 읽기를 통해서, 혹은 묵상을 통해서. ❷ 주의 종 혹은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해서 조언을 들으라. 때로는 불신자들까지, 바울이 마게도니야 사람의 손짓을 본 것처럼 혹시 사람들의 손짓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지는 않는지? 오늘 내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짓 속에 하나님의 메시지가 들어 있을지 모른다. ❸ 내 자신에게 의욕과 의지가 있는지 살펴보라.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이루시고자 자기 자녀들에게 선한 의지와 욕구를 주신다. 바울이 아시아 전도를 원했듯이 혹은 비두니아로 가기를 원했듯이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의욕을 주신다. ❹ 환경의 변화를 관찰하는 일이다. 바울이 아시아로 혹은 비두니아로 가려는 길은 막혔다. 그 막힘이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 현상인지, 아니면 정치 사회적인 격변인지, 관리들의 방해인지, 신상의 문제인지 알 수는 없다. 어찌 되었든지 바울의 전도는 막히고, 바울이 가려던 길은 막혔다. 그리고 무시아로 드로아로 가는 길은 열렸다. 그리고 마침내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았다. 바울은 막힌 길과 열린 길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알아냈다.
오늘 내가 가려는 길이 막혔는가? 내가 하려는 일이 뜻대로 안 되나? 이것도 막히고 저것도 막혔는가? 그렇다면 열린 길은 없을까?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길이 혹 있는지 살펴보시라.
쥐를 가지고 실험을 한 결과가 있다. 미로와 같은 길을 만들어 놓고 한 곳에 먹이를 놔두면 쥐가 어떻게 할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마침내 먹이가 놓인 곳을 찾아낸다. 막힌 길은 가지 않고 열린 길을 찾아 가는 반복적인 시행착오를 통해서이다. 그런데 쥐보다 훨씬 지능이 높은 사람은 자기가 가려고 하는 길만 고집하여 목표물을 찾아내지 못하고 포기해 버린다. 쥐만도 못한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 혹시 마게도냐 사람의 손짓이 있는지 바라보시라. 그리고 그 손짓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시기 바란다.
5. 바울은 다른 사람을 통해 성령께서 보여주신 것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나갔다.
발람 선지자와는 반대로 성령께서 다른 사람을 통해 보여주신 것을 뛰어 넘어 저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간 사건이 있었다. 바울이 마지막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목이 그것이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분명히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될 것이고, 그렇다면 사형 언도를 받을 게 뻔했다. 그것은 바울 자신도 감지하고 있었고, 동료들도 성령의 감동을 통해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더욱이 빌립 집사의 딸들도 그렇게 예언을 했고, 아가보라 하는 예언자도 그 길은 결박당할 길임을 내다보고 바울에게 알려 주었다.
그렇다면 바울은 가지 않았어야 했다. 그렇다고 본문에서처럼 성령님께서 막으신 길은 아니었다. 더욱이 그것은 자기 자신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되어질 일에 대하여 예언하는 것이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자기의 뜻을 꺾었고 위험을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모두의 권면을 뿌리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결박을 당하고 로마로 압송되었다.
바울이 성령님의 막으심을 뿌리치고 나아갔던 이유가 무엇일까? 본문에 나타난 성령님과 그때 나타난 성령님이 다른 분이었기 때문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본문에서나 그때의 성령님이나 모두 동일한 분이시다. 그런데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던 것은 그것이 그가 가야 할 마지막 복음 전파의 길임을 내다보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당하실 때와 같은 상황이었다. 그전에도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고, 병자들을 치료해 주시고, 많은 공생애 사역을 할 때 수차례 잡혀갈 위기에 처했었다. 그때마다 외면하여 피하기도 하셨다. 그런데 마지막 십자가의 잔을 받아들일 때에는 당신 스스로 손을 내밀어 체포해 가도록 하셨다. 그 전날 제자들이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바로 그때가 당신 자신의 죽음을 통해 온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감지하셨기 때문이다.
바울도 로마로 압송되는 것이야말로 유럽 전역에 하나님의 생명을 놓는 초석임을 감지했기에 믿음의 사람들의 만류에도 예루살렘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우리도 그 지점에서 갈등할 일이 없을까? 분명히 앞으로 그런 일들이 있을 것이다. 더 깊은 성령님의 뜻을 헤아리기보다는 얕은 수준에서 성령님의 뜻을 분별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바울은 자신이 비록 손해 보고, 괴롭힘을 당하고, 죽을 고통에 처해도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라면 그 모든 상황을 뚫고 나갔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다.
맺는 말 / 우리의 자세
흔히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 한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거의 모든 내용이 성령의 주권적인 섭리로 이루어지고 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는 주님의 명령(1:4), 천사의 재림 예언(1:11), 맛디아를 뽑은 제비뽑기(1:23-26), 오순절 성령 강림과 복음 증거(2:1-41),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하여 거짓을 심판하신 일(5:1-11), 스데반 집사님의 기사와 표적(6:8-9), 성령 충만과 순교(7:55), 빌립의 사역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신 일, 구스 내시의 전도(8:26), 바울 회심(9장), 고넬료 가정 구원(10장, 11장), 베드로 사도를 감옥에서 풀어주신 일(12:11), 최초의 선교사 파송(13장), 바울의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전도 사역(14장), 바른 교리를 결정한 예루살렘 종교회의(15장), 빌립보 간수장의 가족 구원(16장), 바울의 고린도 전도에 나타난 주님의 격려(18:9-10), 바울의 두란노 서원 사역, 거기서 일으킨 기적과 표적, 신유(19:11-12),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결행케 된 일 등등(20:22), 모든 일이 다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졌다. 복음 전파, 일군 선출, 교리적 결정, 기적과 표적, 신유, 회개, 구원, 행선지 결정, 마음의 결심, 격려와 위로 등등. 다양한 일과 사역들이 다 성령의 인도로 이루어졌다.
오늘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 주권적으로 개입하심을 인정하시기 바란다. 다윗은 이런 고백을 했다.
삼하 22:37 / 주께서 내 다리에도 힘을 주셔서 내가 큰걸음으로 걷게 되었고 주께서 내 발목에도 힘을 주셔서 내가 비틀거리지 않고 달렸습니다.
시 37:23 / 사람이 살아가야 할 도리를 여호와께서 인도하신다. 가르치신 그 길 따라 살아가는 것 여호와께서 흐뭇해하신다.
다윗을 목동들 가운데서 왕으로 뽑으신 일, 사울을 폐하고 다윗을 흥하게 하신 일, 수많은 전쟁의 승리, 반란이나 반역을 제압한 일, 자손과 왕위를 계승하게 하는 일들이 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졌다. 다윗은 그 하나님께 이렇게 소원의 기도를 드린다.
삼하 7:29 / 그러므로 이제 제가 비오니, 이 종의 왕가에 복을 내려 주셔서 제 후손들이 언제나 끊임없이 제 왕위를 계승하여 다스리게 하소서! 이것은 주께서 약속한 것이니 저의 왕가가 영원히 복 받을 줄을 확신합니다.
엘리후는 고백을 한다.
욥 31:4 / 하나님께서는 내 하는 일 일거수일투족 일일이 바라보시지 않는가. 내가 걸어가는 발걸음 하나하나를 일일이 다 세고 계시지 않느냔 말일세.
욥 34:21 / 하나님은 사람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일일이 다 헤아리고 계시지요(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오늘 내 삶의 길에도 하나님의 간섭하심은 중단 없이 계속되고 있다. 영혼의 일, 육신의 일, 물질적인 일, 인간관계, 성전의 직임, 직업적인 일, 사회적 직임 등등, 모든 일에 성령님이 개입하신다.
그러므로 오늘 성령의 인도하심에 유의하여 내 모든 삶의 길들을 결정하시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내 길을 막으시는가? 혹은 허용하시는가? 지금 내가 하는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시기인가 아닌가?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시는 비전은 없는가?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거든 지체 없이 실행에 옮겨야 한다.
❶ 하나님보다 앞서지 말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먼저 가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앞서 가셔서 그들과 싸우시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믿고 의지하는 자의 앞길에 먼저 가셔서 가는 길에 놓여있는 모든 장해물을 다 제거하신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신 1:29-33 /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이렇게 격려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을 무서워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마십시오. 30) 여러분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의 맨 앞에 서서 걸어가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을 대신해서 그들과 싸우시되 여러분을 위해서 애굽에서 하셨던 것과 똑같이 하실 것입니다. 그 모든 일은 여러분이 직접 체험하였습니다. 31) 이 광야에서도 여러분이 체험한 바와 같이 여러분이 이곳에 오기까지 여호와께서는 여러분을 업고 오시되 마치 아버지가 자식을 업고 다니듯이 하셨습니다.' 32) 여러분은 그런 체험을 하고서도 항상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않았습니다. 33) 주님은 항상 여러분보다 먼저 가셔서 여러분이 진을 치고 쉴 곳을 찾아 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을 보여주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❷ 말씀보다 앞서지 말라.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으로 자기 백성들에게 교훈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 그 말씀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
창 12:4 /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아브람을 따라 길을 떠났다. 하란을 떠날 때 아브람의 나이는 75세였다.
히 11:8 /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향을 떠나 약속해 준 먼 땅으로 가라고 지시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는 곳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고향을 떠났습니다.
삼하 7:21 / 주께서 저를 먼저 사랑하시어 주님의 일을 하도록 불러 세우셨고, 이제는 주께서 약속하신 일을 모두 그대로 이루어 주실 줄 확신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없으면 결코 움직이지 말라. 말씀보다 앞서지 말라, 칼뱅도 이렇게 말했다. “말씀이 가라는 곳까지 가고, 말씀이 서라는 곳에 서라. 그리하면 안전하다. 절대로 서두르거나 앞서가지 말라.”
❸ 기도보다 앞서지 말라.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라. 어떤 일을 하기 전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라. 어떤 길을 가고자 할 때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라.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신다. 응답이 온 후에 움직여라. 다시 말하지만 기도보다 앞서지 말라.
세상은 자꾸 유능한 사람, 능력있는 사람, 권세있는 사람이 되라고 하지만 권세는 하나님만 가지고 있으신다. 그 분의 권세, 그 분의 능력을 받고 따르면 된다. 그것을 자꾸 내 것으로 받으려 하지 말라.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하인들처럼 우리는 돌항아리에 물을 길어다 붓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끊임없이 공급받아서 그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면 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성령님께서 말씀하실 그때 움직이면 된다.
❹ 성령님보다 앞서지 말라.
성령께서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나타나시며 도우신다.
고전 12:7 / 성령께서는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 각 사람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감동과 감화에 민감해야 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야 한다. 감동이 오기 전에는 움직이지 말라.
요 16:13 / 그러나 돕는 자 곧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분은 자신의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 것만 너희에게 전해 주실 것이며 미래에 있을 일도 알려 주실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 없이 성공하는 사람은 없다고 믿으시기 바란다. 하나님 없이 성공한 것은 지금은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그것은 멸망과 심판만 남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에 이르렀을 때의 일이다. 여호수아는 정탐꾼 2명을 보냈다. 성벽은 두껍고 거대했으면 군사도 많았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은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방법을 가르쳐주셨다. 하나님의 군대장관인 미가엘이 여호수아를 만났다. 그리고 여리고를 공격하는 전략을 자세하게 가르쳐주었다. 하루에 한 번씩 성을 돌고 7일째 되는 날엔 일곱 번 돌고 크게 소리를 지르라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파괴하고 대승을 거두었다. 우리도 승리하려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감을 얻은 여호수아는 작은 아이 성을 공격할 때는 기도하지 않았다. ‘저 정도의 성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군사 3,000명을 보냈다. 이스라엘은 패하고 36명이 전사했다. 기도와 성령의 역사하심보다 앞서서 행동하였다가 패배하고 말았다. 기도와 성령보다 앞서면 이같이 망하게 된다.
에스더의 이야기에서도 같은 교훈을 배운다. 고아인 에스더는 사촌 모르드개의 손에 길러져 후에 왕후가 되었다. 하만이라는 사람이 왕의 총애를 받고 거만했다. 모르드개가 그의 앞을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지 않자 화가 났다. 모르드개가 유대인인 것을 알고 유대인을 말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모르드개는 왕후였던 에스더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하였다. 왕후 에스더는 금식을 선포하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3일 동안 금식한 후 왕 앞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나아갔다.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서 에스더의 소원을 듣게 하셨다. 하만은 자기 꾀에 빠져서 자기가 준비한 장대에 매달려 죽었다. 만일 에스더 왕후임을 앞세워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 자신이 하려고 했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 앞에 모든 짐을 내려놓고 기도하면 성령님께서 반드시 함께 하시고 기도의 승리자, 신앙의 승리자, 인생의 승리자가 되게 하신다. 우리 모두 이런 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자.
마감 성구
약 1:2-8 / [믿음과 지혜]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여러분이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뻐하십시오. 3) 험난한 길은 여러분에게 인내를 기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4) 인내력을 기르십시오. 여러 문제가 닥쳐올 때 거기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을 치지 마십시오. 인내력이 충분히 길러지면 여러분은 완전히 성장해서 어떤 일에도 굴하지 않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가 될 것입니다. 5) 만일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가 알고 싶거든 하나님께 여쭈어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꺼이 여러분에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후하게 나누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결코 여러분을 꾸짖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6) 그러나 하나님께 구할 때는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구하십시오. 의심하는 마음은 바람에 밀려 파도치는 물결과 같아서 침착성이 없습니다. 7-8) 그런 상태에서 정한 결단은 처음에는 이랬다가 나중에는 저랬다가 하여 매우 불안정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다면 주께 어떤 것을 기대해도 소용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