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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 길안면 天地甲山(462m)을 가다.
글 쓴 이 旲 熀 高 達 五
7월26일 한 더위다! 23일이 중복(大暑)이었으니 년 중에 가장 혹서기(酷暑期)인 셈이다. 복(伏) 中에 특식이 그 새 소문이라도 났는가? 참가 인원이 60명이다. 준비물은 또 얼마나 많은지...
1톤 트럭에 한 차는 되겄슴니다 그려! 山行은 건강을 증진하기 위한 ‘레져문화’인데 지나친 과식, 과음은 되려 건강을 헤치지나 않을는지 염려가 되며, 이제 건전하고 간소한 산행문화가 정착되었으면 합니다.
동명휴게소에서 간단한 조식(朝食)을 하고 차는 신나게 달려 남안동 IC에서 다시 35번국도를 따라 영천 방향으로 30여 분을 달려 “천지갑산” 주차장에 당도하니 시계는 9시40분을 조금 지나있다.
소박하게 가꿔진 소공원에는 아직은 시간이 일러서인지 인적이 드물고 심어놓은 나무들은 어려서 숲 그늘이 약하다. ‘남산대형플랑카드’를 펼치고 모두들 단체로 기념촬영을 한 후 일렬로 등산을 시작합니다.
잔디밭을 지나 산모롱이를 돌아드니 우뚝솟은 천지갑산의 암봉(巖峰)들이 다가오는데~ 작지만 예사로운 경치가 아니다! 육각정자를 지나 가파른 경사로에는 철책 나무계단을 잘 시설해 놓아서 오르기가 한결 수월합니다.
산행시작 첫 2~30분은 탐색전이라 쉼 없이 댓바람에 제1봉에 올라 모두들 구슬땀을 딲으며 잠시 휴식한 다음 너도 나도 차례 차례 도착하는데로 ‘제1봉 팻말’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합니다.
등산로 주위에는 아람드리 노송(老松)들이 즐비하고, 기이한 바위와 요초(瑤草)들이 많기도하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슴인가? 산행에 동참하신 분들도 대부분 낯선분들이 많으며 수 개월만에 오신분, 또 몇 년만에 오신분들도 계시고, 처음 오신분들도 많이 계신다.
다시 20여 분을 올라 ‘제2봉’에 이르니 제법 주위의 풍광들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오늘따라 화창한 날씨에 바람기도 없어 여름산행 날씨로는 무척이나 힘든다. 몇몇 회원님들에게 사진촬영을 해 드리고 필자(筆者)와 황까페지기님, 김해진님 셋이서 길안천(吉安川)이 휘감아도는 “한반도지형”을 촬영하기 위해 벼랑으로 접근합니다.
소나무와 잡목을 비집고 벼랑끝 자리에 서서 내려다 보니 그 높이가 실로 아찔하도다! 송사리 마을을 ‘새을(乙)자’ 또는 ‘∽(무한대)’ 모형으로 휘감아 흐르는 吉安川의 모습이 참으로 장관이다!
山과 물(水)은 음(陰)과 양(陽)의 이치로 서로 얼싸안고 돌아가니 천지(天地)의 조화가 이 안에 다 들어있으며, 山은 하나의 정점에서 수 천 수 만갈래로 나뉘어지는 것이요! 물(水)은 수 천 수 만갈래의 물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니, 이 어찌 조화롭다 아니 하겠는가! 그래서 고금의 진리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했는가 봅니다.
렌즈의 한계인가? 기술의 한계인가? 아무리 애를 쓰도 카메라에 다 담기지를 않는다. 필자만 그런가 했드니... 사진작가 김해진님도 역시 다 담기지 않는다고 하신다. 山川(被寫體피사체)의 모습이 너무 가까운 탓이리라!
아쉬운 발걸음으로 다시 제3봉을 오르니 개념도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등산로 주위에는 보이지 않으며, 조금 더 오르니 정상 표석(標石)이 자그마하게 세워져 있다. 주위에는 쉬어갈 수 있도록 벤취(긴의자)도 몇 개 보이고 이정표에는 연점산(5Km)으로 가는 갈림길이 새겨져 있다.
선착하신 회원님들과 후미에 도착하신 회원님들에게 차례 차례 정상기념촬영을 해드림니다. 언제나 만세를 부르시는 황까페지기님, 꼭 1년만에 참석한 내자(김도연)와 옛 총무님 두분(박태옥, 금복주), 디카멘 김해진님, 벽송대장님, 구회장님, 윤갑용 총무님, 행복님 등 끝이 없슴니다.
솔향기 그~윽 한 숲 그늘에 앉아 가져 온 간식들을 나눠 드시며 잠시 주위를 둘러 봅니다. 이 곳 천지갑산(462m)은 낙동정맥(洛東正脈)의 구암산(807m) 부근에서 서쪽방향으로 베틀봉, 면봉산을 거쳐 영천의 보현산에서 다시 서북쪽으로 석심산 방각산 산두봉을 지나 구무산(676m) 부근에서 보현지맥과 갈라지맥으로 나뉘어 져서 ‘갈라지맥’을 따라 황학산 기룡산 갈라산을 거쳐 천지갑산에서 그맥을 길안천에 떨구고 있으니, 천지갑산은 작지만 정기(精氣)가 단단히 뭉쳐 있으며 경치 또한 수려하고 산세도 험한편이다.(박성태 저 신산경표 참조)
연하여 정상표석 바로 옆에는 이름모를 고혼(孤魂)이 한분 잠들어 계시는데, 주위의 숲 그늘에 덮혀서 봉분에는 풀 한포기 없는 흙무덤이다. 정상 봉우리는 수 백리를 달려 온 용맥(龍脈)이 볼록하게 솟아 거의 돌혈(突穴)에 가깝고, 전순(前脣) 아래는 자연석축(自然石築)이 단단하게 박혀있어 비교적 괜찮은 자리라 생각되는데~ 이 높은 곳까지 옮겨 모신 그 정성은 지극하지만 후손들의 관리가 소홀(疏忽)하여 더욱 외롭게 보입니다.
오래 오래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제5봉, 제6봉 가는길은 하산길이라 한결 수월하고, 제5봉 주위에는 아람드리 노송(老松) 한 그루가 기이하게 벌어져 굽어오른 가지가 있어 모두들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감탄을 연발하며 기념촬영을 합니다!
이 밖에도 가마바위, 초롱바위, 장수바위 등 볼거리는 지천으로 널려있어 보는 눈이 즐거우며, 그럭저럭 제7봉을 지나 모전석탑(模塼石塔)에 이름니다. 주위는 그 옛날에 조그마한 전각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며 제법 넓은 터가 다듬어져 있다. 안내문에 “안동 대사동 모전석탑(安東 大寺洞 模塼石塔:경북문화재자료 제70호)”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추정하며, 해발 380m의 천지갑산 중턱에 자연암반 위에 세워져 있다.
하층기단은 자연암반을 기단석(基壇石)으로 하여 그 위에 자연석과 다듬은 돌로 축조(築造)되어 있는데, 현재 상층기단과 초층지붕돌만 남아있다. 기단부 높이가 60Cm, 폭이 120Cm이며 초층몸돌높이가 50Cm, 폭이 50Cm, 초층지붕돌은 높이 60Cm, 폭이 160Cm로 기록되어 있다.
자료에 신라시대 “갑사(甲寺)”라는 큰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하도 많아서 한 승려가 빈데를 잡으려고 불을 놓다가 절이 다 타버리자 승려 한명은 인근 ‘용담사’로 가고, 또 다른 한명은 ‘불국사’로 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아마도 큰절의 위치는 지금의 “소공원” 주위일 것으로 생각되며, 이 곳 모전석탑(模塼石塔)이 있는 곳은 “갑사”의 속암(屬庵)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선채로 3배의 예(禮)를 올리고 곧 바로 경사진 언덕길을 내려갑니다. 모두들 조심~ 조심~ 우측으로는 길안천이 흐르는 물돌이 천변(川邊)이라 절벽을 끼고 나려가는 길이 상당히 위험합니다.
20여 분을 걸어서 출발지 근처에 이르니 선착한 회원님들은 널찍한 반석(盤石)의 냇가에서 발을 담그고 땀을 씻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옷을 입은채로 물에 들어가 “다슬기”를 잡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2시간 여를 산행하고도 점심때(12:30분) 까지는 아직 30여 분의 여유시간이 있어 모두들 도착하는데로 각자 물놀이를 하며 휴식을 취합니다. 오늘은 년중에 가장 혹서기라 산행은 간단히 하고 충분한 휴식과 점심후는 “행운의 추천뽑기”를 할 계획이라 합니다.
점심 후 13시 30분 부터는 능선(운영위원장)님의 진행으로 ‘행운의 추천뽑기’를 시작하여 1시간 여 동안 오락과 여담(餘談)으로 행사를 하는데... 많은 분들의 찬조와 선물 협찬이 있어 자리를 빛내주고 있슴니다.
아울러 금일 동참하신 각 산악회 임원님들의 소개도 하시면서~ 만백산악회, 5.7산악회, 앞산산악회 등 서로간에 우의를 돈독(敦篤)히 할 것을 다짐하면서 삼복더위를 기지(機智)와 해학(諧謔)으로 식혀 봅니다!
하오(下午)의 행사가 끝나고 15시 10분쯤 되어서 나머지 시간은 임원님들의 요청과 임기사님의 협조로 안동과 청송 일대의 ‘문화유산’을 답사하기로 합니다.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묵계종택”에 이르니, 더운 날씨에 인적은 드물고 거대한 느티나무아래 주민들 7~8명이 모여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슴니다.
간단한 수인사(修人事)를 드리고 솟을삼문을 들어서니 소담한 정원 왼편으로 “보백당(寶白堂)”이 정면3칸 측면2칸의 홋처마 팔작지붕으로 세워져 있으며, 그 우측으로 용계당(龍溪堂)이 같은 양식으로 세워져 있다.
또 ‘보백당’과 ‘용계당’ 사이에는 사당이 모셔져 있으며, 대문에는 “존조(尊祖) 중종(重宗)”이라 새겨져 있다. 보백당 김계행(金係行. 1431~1517)은 성종 11년(1480)에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부제학(弘文館副提學), 대사간(大司諫), 대사성(大司成), 대사헌(大司憲) 등을 엮임 하였으며, 연산군 때 낙향하여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청백리이다.
안 쪽에 “ㅁ”자 형 정침은 전형적인 안동지방의 주택양식으로 정면6칸, 측면6칸의 팔작지붕으로 연결되어 있고, 현재 후손들이 살고 있어 다 볼 수 없으며 별당은 정면3칸, 측면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제사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몇몇 회원님들과 ‘용계당(龍溪堂)’ 뜰에 올라서 잠시 주위 산세를 둘러 봅니다. 주산(主山)은 낙동정맥의 구암산 일대에서 서북방향으로 내리 뻗은 ‘구암지맥’을 따라 노래산, 화부산을 거쳐 우뚝솟은 계명산 아래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으며, 또 보현산 부근에서 발원한 길안천(吉安川)이 좌에서 우로 휘감아 흐르고, 그 뒤로 보현산에서 흘러내린 ‘갈라지맥’이 수 백리를 달려와 적당한 거리에서 안산(案山)과 조산(朝山)의 역할을 하고 있으니... 천하의 길지라 하겠슴니다.
아울러 청룡(靑龍)쪽의 허한 공간을 적당한 거리에 숲을 조성하여 비보(裨補)하였으며, 게다가 안산의 강한기운을 차단하기 위하여 중간에 수 백미터의 비보림(裨補林)을 조성하여 보완하고 있으니... 옛 선현들의 지혜에 그저 감탄할 뿐입니다.
여러 회원님들과 함께 쪽문을 나와 다시 묵계서원이 있는 곳으로 걸어 갑니다. 삼복더위라드니~ 바람한점 없이 고요한 폭염의 날씨라 모든님들이 지쳤는지 많이들 힘들어 하시는 것 같슴니다.
호젓하고 여유로운 작은 동산길을 따라 2~3분 걸어가니 마을과는 약간 떨어져 있어 조금은 외진 곳에 “묵계서원(黙溪書院)”이 고즈넉이 자리하고 있슴니다. 안내문에 이 서원은 조선 숙종(肅宗) 13년(1687)에 건립되었으며, 보백당(寶白堂) 김계행과 응계(凝溪) 옥고(玉沽. 1382~1436)선생을 봉향하고 있다.
대원군 때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다시 복원되어 강당과 읍청루, 진덕문, 동재, 사당이 있으며, 강당은 정면5칸 측면2칸으로 좌우 각 1칸에 온돌방을 두었다. 연하여 왼쪽으로 정면6칸, 측면5칸의 “ㅁ”자형 주사가 있다.
울창한 송림(松林)사이에 들어서 있어 한결 시원하고 여유로와서 모든님들이 읍청루와 대강당에 올라 기념촬영을 하시느라 분주합니다. 몇 걸음을 옮겨 ‘선장대(仙莊臺)’에 이르니 솔숲 사이로 길안천이 유유히 휘감아 흐르고, 그 좌우로는 ‘구봉지맥’과 ‘갈라지맥’의 연봉들이 감싸고 있어 참으로 보기 좋슴니다.
선장대를 배경으로 옛 총무(박태옥 금복주)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솔 숲길을 한바퀴 둘러나오니, 뒷 담길에는 배롱꽃(백일홍, 紫薇樹)이 만발하여 낯선 이방객을 반갑게 맞아 주심니다.
마을 앞에는 “만휴정 700m”라는 이정표가 서 있으며, 모두들 더위에 지쳤는지 만휴정 답사길에 따라 나서는 사람들은 10여 명 정도는 될까? 좋은 것을 보려면 많은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고사(故事)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옛 선현들의 발자취를 답사하여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교훈이 될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좋을 수 있겠는가!
마을 앞 숲을 지나 길안천 다리를 건너 벽송님과 선두로 10여 분을 걸어 오르니, 송림사이로 언~ 뜻 언~ 뜻 “晩休亭”이 나타나는데... 그 아래는 수 십미터가 넘는 2단의 폭포가 흰 이빨을 드러내고 반갑게 맞아 주심니다.
민가(民家)와 다소 떨어진 호젓한 곳에 사색과 공부처소로는 아주 적격한 곳이다. 이 건물은 보백당 김계행이 조선 연산군(燕山君) 6년(1500)에 조정에서 물러나 지은 정자이다. 처음엔 “쌍청헌(雙淸軒)”이라 했다가 훗날 만휴정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동남향의 이 정자는 정면3칸, 측면2칸의 홋처마 팔작지붕양식이며, 누각 주위에는 3면에 계자각 난간을 둘렀다. 좌우 들보 아래는 선생의 유훈(遺訓)이 걸려 있는데,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내집에는 보물이 없다. 보물은 오직 청백 뿐이다.) 또 그 옆으로 “지신근신(持身謹愼) 대인충후(待人忠厚)”(몸가짐을 삼가 신중히 하고, 남을 대함에 충성스럽고 온후하게 대하라.)는 것이다.
이어서 그 후손들은 선생의 유훈을 받들어서 1993년 “청백리장학회”를 설립하여 1995년부터 지금까지 청백리 공무원 71명과 학생 338명에게 2억2천301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고 합니다.(2013년 12월 26일자 매일신문 참조)
이 밖에도 유도원(柳道源), 김굉(金宏), 김도행(金道行), 정박(鄭璞), 이돈우(李敦雨), 김양근(金養根) 등의 시판(詩板)이 걸려 있으며, 아쉬운 발걸음으로 물러 나오니 능선님이 기념촬영을 해 주신다. 그래도 내 스타일을 이해 해서인지 여자로는 집사람이 유일하다. 외나무 다리를 되돌아 나오니 마른 폭포바위에는 “寶白堂晩休亭泉石”이라 새겨져 있다.
허허로운 발걸음으로 염천(炎天)의 불볕더위를 맞으며 걸어 나오니, 보백당님의 넋이 백운(白雲)이 되어 산모롱이 위에 둥실 떠 있는데... 그 직계 후손인 김해진님이 뒤 늦게 가뿐숨을 몰아쉬며 다가 오신다.
다시 20여 분을 달려 청송군 안덕면 고와리 “백석탄(白石灘)”에 이르니 휴가철인데도 여름가뭄이 심해서인지 피서객이 한명도 없다. 흐르는 물도 적고 오염이 심해 그 옛날 느꼈던 그 청순한 암석(巖石)들의 아름다움은 많이도 반감되었다. 그래도 처음오신 회원님들은 이야! 이야! 하면서 감탄에 감탄을 연발하신다!
마치 옥같은 여울속에 하얀 돌들이 속살을 드러내고~ 실 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을 보여주시는데~ 신기하다 못해 경이롭습니다! 모두들 올록볼록 작은 봉우리에 올라앉아 기념촬영을 하면서 신기한 듯~ 여기저기를 둘러 봅니다.
일설에 조선 인조 때 경주사람 송탄 김한룡(松灘 金漢龍)이 이 마을을 개척하여 주위의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서 ‘고계(高溪)’라 칭한바 있고, 또 임진란 당시 선조 26년(1593)에 고두곡(高斗谷)이란 장수가 왜군에게 부하를 잃고 이 곳을 지나다 마음의 상처를 위로 받았다고 해서 ‘고와동’이라 개칭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단다.
아름다운 계곡에는 이름난 곳도 많아서 조어대(釣魚臺), 가사연(歌詞淵), 장군대(將軍臺) 등이 있으며 아울러 백석탄을 8경으로 낮추어 노래한 시가 있으니... “금강비폭(金剛飛瀑) 부석징담(浮石澄潭) 청탄세이(淸灘洗耳) 필봉구숙(筆峰鷗宿) 자하동천(紫霞洞天) 금화석실(金華石室) 장군석단(將軍石壇) 화전접무(花田蝶舞)”의 싯구가 번쩍입니다!
이어서 신성계곡을 따라 구~불~ 구~불~ 구절양장(九折羊腸)의 길을 20여리나 달려 안덕면 신성리 181번지 “방호정(方壺亭)”에 도착하니, 이 곳도 예외는 아니어서 피서객이 없으며 상점들은 문이 잠긴 채 영업을 쉬고 있다.
方壺亭은 높은 벼랑 끝에 푸른 녹음에 싸여서 그 모습을 살포시 드러내고 있으며, 그 앞을 흐르는 길안천의 물은 좌에서 우로 휘감아 흐르는데~ 양 언덕을 가로질러 놓인 철다리는 얼마나 거대하고 튼실한지 아름다운 주변경치와는 잘 어울리지 못합니다. 좀더 자연친화적인 다리를 놓을수는 없었는지...? 모두들 아쉬움을 토로(吐露)하며 다리를 건너 방호정에 오름니다.
이곳 방호정은 낙동정맥의 구암산(807m) 부근에서 서북쪽으로 흘러내린 구암지맥을 따라 두리봉, 묘봉, 자초산을 지나 노래산(794m) 부근에서 한 작은지맥이 남쪽으로 흘러내려 그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주위는 암반(巖盤)으로 단단하게 뭉쳐있고, 또 길안천이 휘감아 돌며 주변경치 또한 빼어나서 신성계곡내에서는 단연 으뜸이다.
예로부터 “선경(仙境)에 신선(神仙)이 머문다.”고 하였는데... 이 곳에는 창석(蒼石) 이준(李埈), 동계(東溪) 조형도(趙亨道), 풍애(風崖) 권익(權翊), 방호(方壺) 조준도(趙遵道), 하음(河陰) 신집(申輯) 등이 학문을 강론하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조선 광해군(光海君) 11년(1619)에 방호 조준도가 어머니 안동권씨의 묘(墓)가 바라보이는 이 곳에 정자를 세우고 사모하는 뜻에서 사친(思親) 또는 풍수당(風樹堂)이라 하였으며, 순조 27년(1827)에 방대강당(方臺講堂)을 새로 고쳐지었다고 한다.
산수가 아름답고 고즈넉한 이 곳이 공부처소로는 더 없이 좋겠다고 생각되며, 정자 아래는 아람드리 노거수(老巨樹)가 많이도 우거져 있어 해묵은 년륜을 증명해 주고 있슴니다. 또 숲속에는 방호 선생의 유허비(遺墟碑)와 오선동오선(五仙洞五仙)의 비(碑)가 세워져 있다.
방호정을 한바퀴 휘~ 돌아 나오니... 작열하는 오뉴월 태양빛도 많이 시들해져서 조금은 시원해 졌슴니다 그려! 더운 날씨에 세 곳이나 숨가쁘게 몰아친 필자의 무모함이 님들에게 되려 누가되지는 안했는지 염려가 됩니다.
더워도 추워도 살아야제
삶이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늘인 것을
늘 지나고 나면 아쉬움만 가득 하여서
피안(彼岸)의 세계는 멀기도 하여라!
단기 4348년(서기2015년) 7월 26일
안동시 길안면 天地甲山(462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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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천지갑산 그리고
추첨행사...묵계
택..묵계서원을 답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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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휴정에는 후기에서 배우고 백석탄에서 장관들을 보면서 우리 문화역사가 대단하고
방호정까지 구경하고 보니 감개 무량 합니다.
항상 수고를 아끼지 않고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속담을 떠 올림니다
황고문님! 언제나 고맙슴니다.
40여 년이나 변함없는 사랑속에 신뢰와 존경을 드림니다.
보잘 것없는 장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바쁘고 덥다는 핑계로 산행후기가 많이도 늦었슴니다.
모든님들의 이해를 바라오며, 당일 산행에 동참하신 모든님들(60명)에게
다시한번 깊은 감사를 드리오며, 아울러 진행에 수고하신 구회장님을 비롯하여
벽송대장님, 윤총무님, 김미소총무님, 능선운영위원장님 등 모든분들께도 감사를 드림니다.
연일 폭염과 열대야로 건강에 더욱 유의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더운날씨에 선비의고을 안동,묵계서원,만휴정, 백석탄, 방호정,
역사탐방 후일 남산의 좋은 추억이 될것입니다.
당일 답사 진행에 노고가 많으신 고고문님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벽송님! 삼복더위에 잘 계시는지요?
장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리며
당일 진행에 수고 많으셨슴니다.
임원님들의 노력으로 다달이 발전하는 남산의 모습에
기쁨니다. 더운날씨에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