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마당 한 모퉁이나 사립문 앞 텃밭에는 상추가 몇 포기씩 있었다. 이 상추는 봄부터 초가을까지 논에서 힘들게 일하시던 아버지의 깔깔한 입맛을 되찾아 주고 밭에서 김을 매면서도 식구들의 반찬거리를 걱정해야 했던 어머니의 고민을 덜어 주었다.
그리고 먹성 좋은 시골소년에게 배부름의 기쁨을 선물해준 독특한 향과 맛을 가진 채소였다.
상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쌈 채소이다.
지중해 지역이 원산지로 기원전 약 2500년경 고대 이집트 왕궁의 무덤에서 발견되었고 기원전 6세기의 페르시아에 기록이 있으며 그리스・로마시대에는 일반적으로 이용되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풍요의 신인 ‘민(Min)’에게 제물로 상추를 바쳤다고 한다. 다산을 기원하는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학명의 Lactuca는 라틴어 lac(우유)에서 유래되었으며 잎줄기에서 분비되는 유액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는 6∼7세기의 인도, 티베트, 몽골, 중국을 통해 도입되어 13세기 이전부터 재배되었고 상업적인 재배는 20세기 초부터 이루어 졌다.
국화과 채소 중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일반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채소작물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샐러드용으로 이용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쌈용으로 소비가 많다. 제철이 없을 정도로 시설재배를 통하여 연중 공급되고 있다.
잎 색과 줄기 형태에 따라 결구상추, 버터헤드상추, 코스(로메인)상추, 잎상추, 줄기상추, 라틴상추로 구분된다.
현재 재배되고 있는 품종들은 16∼17세기 유럽에서 주로 개량된 품종들이다. 양상추라 부르는 결구상추는 해방 이후 미군들에 의해 들여온 채소인데 군납용으로 재배되기 시작해 차츰 호텔 납품과 외식업이 발달되면서 전국적으로 재배가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잎상추는 대부분 국내육성 품종이 재배되고 있으며 다른 상추 품종은 대부분 해외 품종에 의존하고 있다.
《해동역사》에는 고구려 상추 맛이 좋아 수나라ㆍ당나라 사람들이 비싼 값에 씨를 사들여 ‘천금채’라 하였고 중국 문헌인 《천록지여》에 고구려 사신이 상추씨앗을 비싼 값에 팔아 ‘천금채’라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상추가 남자에게 좋은 채소라서 많이 심으면 안주인이 음욕이 있다고 하여 남이 보이지 않는 뒤란에 심어 은근슬쩍 먹었다고 해서 ‘은근초’라 하였다는 속설도 있으나 문헌상 기록은 없다.
상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채소이다.
우리나라는 주로 잎 모양이 매우 다양한 잎 상추를 먹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결구상추나 반결구 상추를 먹는 것이 보편적이다.
《성종실록》에는 호조참의 신수근이 종기로 고생하자 상추 줄기를 가루로 만들어 환부에 붙이면 낫는다고 하였고 《연산군일기》에는 경기 감사에게 상추, 마늘, 파를 시들지 않은 상태로 바치게 하였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는 양반이 쌈을 먹을 때 얼굴모양이 흐트러지는 것을 경계하여 《사소절》에서 상추 먹는 방법까지 기록하였다.
상추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친숙한지 ‘고추 밭 상추는 서방님 밥상에만 올린다.’거나 ‘가을상추는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 ‘가을 상추는 시어머니도 안 드린다.’라는 속담도 있지만 한번 잘못을 저지르면 늘 의심받는 다는 의미의 ‘상추 밭에 똥 싼 개는 저 개 저 개한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사찰음식 중에 ‘상추불뚝전’이라는 것이 있는데 상추 잎을 따먹다 남은 줄기로 전을 부쳐 먹는데 기운이 불뚝 솟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6.25 전쟁에 참전하여 치열한 전투 중에서도 어머니를 그리다가 끝내 젊음을 조국에 바친 중학교 3학년 학도병은 주머니에 부치지 못한 편지를 남겼다.
‘어머니 편안하신지요.? 아들입니다. 오늘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중략)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중략)
저는 꼭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오늘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도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에 노인 상추가 얼마나 그리웠으면...... 가슴이 메어진다.
6.25 전쟁 중에 참전한 미군들은 식재료로 채소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쟁터로 조달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밭작물에 인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기생충 감염의 문제가 발생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국민들의 90%가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었고 밭 채소의 50∼75%가 감염되어 있는 실정이었다. 따라서 미군은 미국 본토에서도 거리나 시간의 제약이 많은 만큼 일본에서 수경재배로 기른 채소를 공군수송기를 이용하여 전선의 군인들에게 1950년에 상추 1,000톤, 1951년 1,580톤을 공급하였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수경재배를 통하여 미군에 채소를 공급하기에 이르렀다.
중국 원나라 때에는 고려시대 쌈과 같은 음식을 먹는 풍속을 ‘고려양’이라고 하여 유행한 적이 있다 하니 한류의 열풍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원나라 사람 양윤부가 적은 ‘향기로운 나물을 모두 수입해 들여온다. 고려 사람은 생채에 밥을 쌈에 싸서 먹는다.’는 것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 풍속은 지금까지도 오히려 그러해서 채소 중에 잎이 큰 것은 모두 쌈을 싸서 먹는다. 그 중 상추쌈을 제일로 여기고 집집마다 심으니 이는 쌈을 싸 먹기 위해서이다.’라고 하였다.
중국 의학서인《본초강목》에는 ‘상추는 맛이 쓰고 차가운 성질을 갖고 있는데 젖이 안 나올 때, 소변 누기가 어려울 때 효과가 있다’고 기록하였다.
유럽의 중세시대에는 샐러드를 만드는 푸른색 채소는 모두 샐러드라고 불렀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크레송(물냉이)을 즐겨 먹다가 루이 14세가 타라곤(프랑스에서 주로 이용하는 향신채소), 오이풀, 바질, 제비꽃으로 향을 낸 양상추 샐러드를 즐기는 것을 계기로 17C 이후 양상추 샐러드 문화가 확산되었다고 한다.
상추의 줄기를 자르면 쓴 맛이 나는 하얀 즙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락투신이라고 하는 사포닌의 일종인 물질이 들어있다. 이는 신경안정과 통증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나타낸다. 특히 칼슘과 철분함량이 높아 빈혈이나 골다공증이 생기기 쉬운 여성들에 맞춤인 채소이다.
쌈으로 한 바구니 준비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샐러드도, 매콤한 겉절이도 만들어 보자. 맛깔난 양념된장도 준비하여 입이 미어터지는 기쁨을 누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