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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
(1코린 1,-2014년 1월
18-25일-13)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 세계교회협의회 신앙직제위원회
추모
랄프 델 콜레 교수 (1954-2012)
로마 가톨릭 조직 신학자로, 미국 마케트 대학교(위스콘신 주 밀워키 시) 신학과 부교수였던 랄프 델 콜레 교수가 2012년 7월 29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랄프 델 콜레 교수는 1998년부터 ‘가톨릭 - 오순절 교회 대화 국제 공동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약하였고,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와의 비공식 대화(2001-2002년)에 참석하였으며, 1998년 짐바브웨 하라레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 가톨릭 공식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하였습니다. 그는 언제나 대화 모임에 기쁘게 헌신적으로 기여하였습니다. 델 콜레 교수는 어떠한 토론 주제도 회피하지 않고 생동감과 통찰력을 가지고 진리에 헌신적으로 봉사하였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든, 일치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기꺼이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하였습니다.
마가렛 오가라 교수 (1947-2012)
토론토 세인트 미카엘 대학의 신학 교수 마가렛 오가라 박사가 2년간의 병고 끝에 2012년 8월 16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로마 가톨릭 신자로서, 교회 안에서 교도권과 교회 일치 대화에 관한 전문가였던 오가라 박사는 35년 이상 교회 일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여러 교회 일치 대화 위원회에서 활약하였습니다. 실제로 오가라 박사는 1983년에는 ‘그리스도의 제자회 - 로마 가톨릭 교회 국제 대화 위원회’의 위원으로, 1994년에는 ‘미국의 루터교 - 로마 가톨릭 교회 대화 위원회’의 위원으로, 그리고 2008년에는 ‘캐나다 복음 교회 - 로마 가톨릭 교회 대화 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되었고, 18년(1976-1993년) 동안 ‘캐나다의 성공회 - 로마 가톨릭 대화 위원회’의 위원으로, 그리고 12년 동안(1995-2006년) ‘루터교 - 로마 가톨릭 교회 국제 일치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또한 그녀는 ‘아메리카 가톨릭 신학회’ 회장과 ‘북아메리카 교회 일치 전문 학술원’ 원장을 역임하기도 하였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본 그리스도인일치기도주간 국제준비위원회는 고인이 되신 이 훌륭한 교회 일치 운동가 두 분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에 맡겨드립니다.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연중 일치 추구
전통적으로 북반구에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으로 정해진 기간은 1월 18-25일이다. 이 주간은 1908년에 폴 왓슨의 제안에 따라 성 베드로 사도좌 축일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 사이의 기간으로 정해졌기에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1월이 휴가철인 남반구의 교회들은 흔히 다른 날들을, 예컨대
교회 일치를 상징하는 날인 성령 강림 대축일 무렵을(1926년에 ‘신앙직제운동’이 제안한 기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으로 지내기도 한다.
이 기간은 신축성을 가질 수 있으므로, 여기에 제시된 자료를 활용하여, 연중 어느 때이든, 여러 교회가 이미 누리고 있는 친교를 드러내고
그리스도의 뜻인 완전한 일치를 위하여 함께 기도하기를 바란다.
자료의 수정
이 자료는 지역 차원의 용도에
맞추어서 언제든지 수정해도 좋다는 양해 아래 제공된다. 수정할 때는 그 지역의 전례나 신심 관행, 전반적인 사회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여야 한다.
수정 작업은 일반적으로 교회 일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몇몇 지역에서는 자료 수정을 위한 교회 일치 기구들이 이미 조직되어 있다. 우리는
다른 지역에서도 수정 작업을 위하여 그러한 기구들이 생겨나기를 바란다.
자료의 사용
· 공통된 하나의 예식으로 함께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지내는 교회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에게 일치 기도 예식서가 된다.
· 교회들과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각자의
고유한 예식에 기도 주간의 자료를 끼워 넣어 사용할 수 있다. 일치 기도 예식서의 기도들이나 ‘8일 간의 성경 묵상과 기도’, 또는 이 자료에
첨가된 기도 가운데 일부를 각자의 환경에 맞추어 사용할 수 있다.
· 또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지내는 공동체들은 그 주간 동안
날마다 예배를 드릴 때 ‘8일 간의 성경 묵상과 기도’ 내용들을 그 예식에 도입할 수 있다.
· 또한 이 기도 주간의 주제에 관하여 성경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이들은 ‘8일 간의 성경 묵상과 기도’에 제시된 성경 구절들과 묵상 자료를 기본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날마다 벌이는
토론은 청원 기도로 마무리할 수 있다.
·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자료가 그들의 기도 지향을
한곳으로 모으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그리스도 교회의 더욱 명백한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과
친교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주제 성구
1코린 1, 1-17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오로와 소스테네스 형제가 코린토에 있는 하느님의 교회에 인사합니다.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다른 신자들이 사는 곳이든 우리가 사는 곳이든 어디에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들과 함께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나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총을 생각하며, 여러분을 두고 늘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어떠한 말에서나 어떠한 지식에서나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에 튼튼히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또한 여러분을 끝까지 굳세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흠잡을 데가 없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모두 합심하여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오히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 분쟁이 일어났다는 것을 클로에 집안 사람들이 나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이 저마다 “나는 바오로 편이다.”, “나는 아폴로 편이다.”, “나는 케파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 하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 바오로가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기라도 하였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바오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나는 여러분 가운데 크리스포스와 가이오스 외에는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은 일을 두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아무도 여러분이 내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스테파나스 집안 사람들에게도 세례를 주기는 하였습니다. 그 밖에는 다른 누구에게도 세례를 준 기억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제 소개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
(1코린 1,1-17
참조)
1. 캐나다 사람들은 언어와 문화, 심지어 기후에서도 다양성이 두드러지는 나라에서 살고 있고, 캐나다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리스도 신앙의 표현에서 다양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다양성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당신 제자들의 일치를 바라시는 그리스도의 뜻에 충실하려면, 우리는 코린토 1서에 나오는 바오로의 도발적인 질문에 성찰을 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 신앙 안에서 우리는 “아닙니다!”라고 대답하지만, 부끄럽게도 우리 교회 공동체들은 여전히 계속 갈라져 있다. 코린토 1서는 또한 우리가 지금 갈라져 있어도 다른 이들의 은사를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을 가리켜 준다. 그것은 바로 일치를 위하여 일하라는 격려다.
2. 캐나다는 산과 숲, 호수, 강, 밀밭, 삼면의 해안 등 빼어난 자연 경관으로 유명하다. 캐나다의 영토는 동쪽으로는 대서양, 서쪽으로는 태평양, 남쪽으로는 미국, 북쪽으로는 북극과 맞닿아 있다. 캐나다는 농업이 발달하고 천연 자원이 풍부하다. 또한 캐나다에는 다양한 민족들이 두드러진다. 캐나다 원주민과 이누이트족(Inuit)과 메티스족(Metis), 그리고 전 세계 각지에서 이곳으로 정착하러 온 많은 이들이 살고 있다. 캐나다의 공용어는 영어와 프랑스어, 두 가지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캐나다인들은 자기 조상들의 고국에서 물려받은 문화와 언어 유산에 애착을 갖고 있다. 캐나다의 사회적 정치적 구분은 흔히 언어, 문화, 지역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국가적 정체성이 캐나다의 건전한 다양성에 이바지한다는 것을 점차 이해하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고유의 예배 방식과 직무 방식을 가지고 이러한 다문화의 환경을 풍요롭게 해 왔다. 바오로 서간은 다양성을 지닌 우리가 개별 지역 교회로서 외따로 지내거나 서로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들과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다는 것을 깨닫도록 초대하고 있다.
3. 올해 우리가 묵상할 성경 구절은 바오로 사도가 힘찬 어조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내는 서간의 시작 부분이다. 오페라의 서곡이나 교향곡의 도입부처럼, 이 성경 구절은 분명히 이 서간에서 다룰 내용을 미리 알려 주고 있다. 이 본문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이 세 부분은 모두 오늘날 여러 교회와 사회 안에서 함께 살며 일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성찰을 위하여 힘들지만 확고한 바탕이 된다.
4. 첫 부분(1코린 1,1-3)에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과 그리스도인 형제 소스테네스, 둘로 이루어진 작지만 진정한 공동체로서, 그들보다 훨씬 크고 활발한 공동체인 코린토 신자들에게 인사한다. 바오로는 코린토 신자 공동체를 ‘하느님의 교회’라고 부른다. 이는 그들을 단순히 지역 분파가 아니라, 세상 속 그들의 지역에서 살아가는 교회를 온전히 표현하고자 그렇게 부른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그들이 ‘부르심을 받은’, 곧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라는 점을 일깨워 준다. 다시 말해, 코린토 신자들만 별도로 그리고 그들 자신의 힘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신자들이 사는 곳이든 우리가 사는 곳이든 어디에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들과 함께”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코린토 신자들은 “다른 신자들이 사는 곳이든 우리가 사는 곳이든 어디에서나” 참으로 하느님의 교회이고, 신앙 고백에서나 사는 곳에서나 주님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들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그러고 나서 바오로 사도는 그의 모든 서간에서 그러하듯이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를 비는 힘찬 인사를 건넨다. 바오로의 언어에서, ‘은총’은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선물과 그분의 선하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우리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이웃에게 자애를 베풀도록 이끌려는 것이다. 바오로가 보기에 우리에게 가장 충만하고 성숙한 ‘평화’는 하느님 안에서 이루는 친교(koinonia)이다.
5. 여러분의 지역 교회, 여러분의 더 넓은 공동체, 그리고 여러분의 나라에서 여러분은 하느님의 은총과 평화를 찾아볼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여러분이 여러분과 직접 연관된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뛰어 넘어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세상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겠는가?
6.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공동체를 나무라기 전에,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코린토 신자들에게 “베푸신 은총”에 감사를 드리며 두 번째 부분을 시작한다(1코린 1,4-9). 이는 그저 의례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 공동체에 베푸신 은총에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그들을 계속 북돋운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느 모로나 풍요로워졌습니다. ……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그들이 끝까지 굳세게 될 것이고 “하느님은 성실하신 분”이시라는 확신을 북돋워 준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 아드님과 맺는 친교(koinonia)로 부르신다. 이 친교는 우리 캐나다 교회와 민족들에게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두루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7. 캐나다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다른 그리스도인 공동체들 안에 깃든 하느님 은총에 늘 기뻐하지는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교회 일치 정신으로 이 바오로 서간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복을 베풀어 주심에 진심으로 기뻐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더욱 잘 깨닫게 된다. 캐나다에 그리스도 신앙을 처음으로 들여온 이들은 흔히 토착민들의 은사와 통찰력을 무시했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베푸신 복을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는 우리 캐나다에 다양한 민족들과 신앙 표현들이 있음에 매우 감사하여야 한다. 비록 역사적으로 상호 존중과 서로에 대한 지지가 부족했던 사례가 많지만, 캐나다가 자국과 전 세계의 협력과 평화 추구를 토대로 세워졌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인 자연의 혜택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고, 이 물적 자산의 번영과 관리 사이에서 조화로운 균형을 잘 이루지 못하여 분투하고 있다. 우리는 또한 캐나다인으로서 우리 모두 자부하는 가치들을 실현하고자 애쓰고 있다. 그리스도인들로서 또한 교회들로서 우리는 다른 이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총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국가 전체와 전 세계에 대한 감사와 관심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도록 요청받고 있음을 느낀다.
8. 여러분의 교회와 여러분의 공동체, 여러분의 나라에서 감사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그리스도인들이나 여러분이 속한 공동체의 다른 이들에게 있는 하느님의 영적 선물과 (또는) 물적 선물을 체험해 본 적이 있는가?
9. 세 번째 부분에서(1,10-17),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뼈 있는 말을 한다. 그들이 “나는 바오로 편이다.”, “나는 아폴로 편이다.”, “나는 케파 편이다.” 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고 공동체의 일치를 깨버렸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지도자라고 주장하던 이들에게조차 바오로는 칭찬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다른 이들과 그들 자신을 구별하는 데에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 주변에 벽을 쌓을 수 없다. 그분의 이름은 분열이 아니라 친교와 일치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 바오로 사도는 강한 지도력을 중심으로 공동체들이 형성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근본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바오로가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기라도 하였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바오로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클로에 집안 사람들은 그들 가운데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서 이를 밝히고자 하였다.
10. 바로 이러한 분열의 상황에서, 바오로 사도는 모두 단결하고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라고 호소한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이 글을 읽는 이들과 코린토 신자들에게 “합심”하라고 권고한다. 바오로 사도는 그들이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고 무슨 일이든 동일한 방식으로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 구절은 바오로나 아폴로나 케파의 지도력을 제쳐 두라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둔 우리는 우리 단체에 속하지 않는 다른 이들이 교회의 공동 사명에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하여야 한다. 다른 이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총을 인정할 때, 우리는 신앙과 사명 안에서 더욱 가까워지고, 예배와 삶의 진정한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신 그 일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다.
11. 바오로 사도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근본적으로 일치시켜 주는 그리스도 제자직의 두 가지 핵심 요소인 세례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강조한다. 우리가 바오로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것도 아니고 또 바오로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일치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에게서 우리는 생명과 구원을 얻는다. 또한 우리는 모두 어떤 개별 단체에 참여하고 있고, 우리 지역 교회는 신앙 안에서 우리를 길러 주고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서 걸어가도록 도와준다. 바오로에게나 우리에게나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개별 교회에 소속감을 갖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기쁜 소식의 선포, 곧 우리가 믿음으로 기쁘게 응답한 바로 그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 메시지를 세상과 나누어야 한다. 바오로 사도의 결론은, 우리가 서로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지니고 있는지, 또는 우리가 심지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바오로 사도의 말을 빌리자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면서까지 분열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볼 것을 요구한다.
12. 우리 캐나다 그리스도인들은 협력과 상호 지지의 굳건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의 역사에는 공동 노력과 공동 사목, 심지어 교회 연합의 모범적인 사례들이 담겨 있다. 교회들의 유기적 일치가 가능하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자주 공동 노력과 공동 사목을 맺어 왔으며,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굳건해 지는 우리의 일치를 보여 준다. 캐나다 교회들은 가난과 사회 정의와 관련한 사안들에서 함께 행동해 왔다. 또한 많은 캐나다 교회들은 그리스도를 닮지 않는 방식으로 캐나다 토착민들을 대했던 우리의 자세에 함께 책임을 통감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일치를 향한 이 고무적인 움직임들이 있음에도, 우리 캐나다 교회들은 여전히 우리의 복음 선포를 일그러뜨리는 분열과 불일치 속에 있다.
13. 우리는 또한 클로에 집안 사람들에 대한 말을 듣게 된다. 바로 클로에의 지도 아래 이 무리는 코린토 교회의 분쟁과 분열을 확인하고 밝힌다. 우리의 모든 교회들에는 여자든 남자든 그들과 같은 증인들이 또 그들의 화해와 일치의 직무가 계속 필요하다. 그러한 증인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때, 우리는 바오로 사도가 바라는 공동체, 곧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생각과 같은 뜻”을 지닌 공동체를 실현시키는 데에 한걸음 더 나아갈 것이다.
14. 여러분과 여러분의 교회가 다른 교회들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뜻과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음을 어떻게 식별할 것인가? 여러분의 나라 또는 도시의 교회들 사이에 존재하는 예배에 대한 서로 다른 접근 방식과 형태를 여러분이 존중하고 경험한다는 것이 어떻게 하면 가시적인 그리스도인 일치를 향한 노력에서 결실을 맺겠는가? 세상을 다른 이들을 위한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하여 여러분이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수행할 공동 사명이 있다면 무엇인가?
15. 결론적으로, 우리 캐나다와 우리 민족들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께서 베푸신 많은 복과 은총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서로서로를 그리고 우리 삶의 터전인 이 땅을 품위 있게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에게 참회와 고백을 요구하고 또 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새롭고 지속 가능한 방식을 추구하도록 이끈다.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큰 복을 베풀어 주셨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 동포 캐나다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포함시키지 않고서는 그 어떤 단체도 국가 자원을 이용하는 방식을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높여 주었다.
2014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의 자료 준비
올해 일치 기도 주간 자료의 초안은 캐나다 교회일치운동본부와 프레리(Prairie) 교회일치운동본부의 초대로 캐나다 전역에서 모인 책임자 단체가 마련하였다.
우리가 특별히 감사드리고자 하는 분들은 다음과 같다.
· 버니스
바라노프스키(Bernice Baranowski) 여사, 로마 가톨릭 교회, 캐나다 교회일치운동본부, 몬트리올
· 산드라
비어드솔(Sandra Beardsall) 목사, 캐나다 연합 교회, 성 앤드류 대학 교회사와 교회일치운동학 교수, 새스커툰
· 미셀
벨질(Michel Belzile) 목사, 침례교, 그린버로우 공동체 교회, 토론토
· 도널드 볼랑(Donald Bolen) 주교, 로마
가톨릭 교회, 새스커툰 교구
· 아만다 커리(Amanda Currie) 목사, 노스 서스캐처원 장로교 성직자, 캐나다 장로교회,
새스커툰
· 니콜라스 제슨, 로마 가톨릭 교회, 교회 일치 담당자, 새스커툰 교구
· 노르망 레베스크, 로마 가톨릭 교회, 캐나다
교회일치운동본부 임시 본부장, 초록 교회 프로그램 담당자
· 앤소니 맨소어(Anthony Mansour) 집사, 미국 정교회, 캐나다
교회일치운동본부 전임 본부장 (2006-2012), 몬트리올
· 데이비드 맥라클란(David MacLachlan) 목사, 캐나다 연합
교회, 아틀랜틱 신학교의 신약 성경학 교수, 핼리팩스
· 존 윌슨(John Wilson) 목사, 캐나다 연합 교회, 서머사이드, 프린스
에드워드 섬
또한 자료 초안 작업과 사려 깊은 제안을 해 주신 아래의 분들께도
감사드린다.
· 캐런 해밀턴(Karen Hamilton) 박사, 캐나다 연합 교회, 캐나다 교회협의회 사무총장
· 질
루티에(Gilles Routhier) 박사, 로마 가톨릭 교회, 퀘벡 라발 대학교 신학대학 학장
우리는 또한 2014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위한 준비 모임을 발족한 새스커툰 교구장 도널드 볼랑 주교님과 본 국제준비위원회의 활동에 협조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드린다.
여기에 제시된 본문은 세계교회협의회 신앙직제위원회와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가 지명한 국제준비위원회의 회의에서 완성된 것이다. 2014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위한 국제준비위원회는 캐나다 대표자들과 함께 2012년 9월에 몬트리올의 섬의 북서쪽에 위치한 피에르퐁의 예수회 피정의 집 ‘빌라 세인트 마틴’(Villa Saint Martin)에서 만났다. 우리는 특히 이 모임을 주관하고 몬트리올의 성 요셉 대성당 방문도 주선해 준 캐나다 교회일치운동본부와 프레리 교회일치운동본부에 감사드린다. 또한 우리가 캐나다에 머무는 기간에 교회 일치 학회를 준비해 준 몬트리올 맥길 대학교에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일치 기도
예식
예식 소개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
(1코린 1,1-17 참조)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예식을 위하여 한데 모인 우리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노래와 성경 말씀과 상징적인 몸짓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맺는 상호 관계를 새롭게 하고 강화하고자 한다. 이 거행은 또한 코린토 1서 1장 1-17절의 성경 구절에 관한 8일 간의 성경 묵상과 기도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라는 바오로 사도의 도발적인 물음은 인간으로서 또 그리스도인 공동체로서의 자기 성찰과 기도로 우리를 이끄는 기쁜 도전이다. 이번 주제 성구와 예식은 이 도전을 여러분 상황에서 새롭게 숙고해 보는 기회가 된다.
여기에서는 올해 예식의 특정 측면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약간의 사전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공동체의 모임 단계에는 캐나다 원주민의 전통에 따른 기도로 초대한다. 이를 위하여 신자들은 여러 방향을 향하여 몸을 돌리게 된다. 전례 거행에서 회중이 시계 방향으로 몸을 돌릴 수 있도록 동서남북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회중은 이내 다시 정면으로 몸을 돌려 ‘위’와 ‘아래’ 방향을 향한다. 지리적 여건에 따라 이 기도는 수정될 수 있다.
‘교회 일치를 위한 영적 은사의 교환’은 코린토 신자들이 분파로 갈라진 데 대한 바오로 사도의 염려에,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라는 그의 물음에 응답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저마다 외따로 살아가면서 서로 일치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우리는 서로의 은사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주어야 하는 은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다른 이들을 고려하고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 전체를 풍요롭게 하는 은사들을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이 ‘교환’을 아래에 상세히 설명해 놓았는데, 약간의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우리의 제안은 다음과 같다.
1. 여러분 지역의 여러 다른 교회의 대표들을 초대하여 모두 서로에게서 어떤
‘은사’를 받았는지 함께 묵상해 보게 한다. 다른 이들이 “받았다.”고 동의할 수 있는, 각각의 공동체에서 받은
하나의 은사를 함께 확인해 보자는 것이다.
2. 이상적으로는, ‘교회 일치를 위한 영적 은사의 교환’ 중에 여러분이 제시할 은사에 대한
상징적 표현을 찾아야 할 것이다.
3. 은사들을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이나 비슷한 말로 그 은사를 밝힌다.
“우리는
________ 교회로부터, 여기 _____로 상징되는 ______의 은사를 받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이 ‘교회 일치를 위한 영적 은사의 교환’은 물론 각 지역 상황에 맞추어 수정될 수 있다.
청원 기도에서는 국제 연합의 ‘밀레니엄 8대 목표’를 강조한다. 우리는 예배 회중이 그 기도에 담긴 구체적인 목표를 잘 알 수 있도록 이 기도문의 인쇄를 권장한다.
예배에 참석한 이들에게 일치를 위한 다짐의 여덟 가지 응답이 이 자료에 포함된 ‘8일 간의 일치 기도’의 주제들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도 바람직하다.
노래하는 이들은 “두 배로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특별히 이번 2014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위하여 캐나다인 찬송가 작사가와 작곡가에게 의뢰하여 완성된 곡들 가운데에서 적절한 찬송가와 성가 몇 곡을 제시하였다. 이 곡들은 웹사이트 www.ecumenism.net/music/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여러분이 이번 교회 일치 예배에 음악을 최대한 활용하기를 바란다.
예식
순서
I. 희망과 일치의 모임
+ 인도자
◎ 회중
입당 성가
예식 인도자와 그 밖에 다른
이들은 입당 행렬을 할 수 있다.
공동체의 모임
+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1코린 1,3).
이 예식은 캐나다에서 준비한 것입니다. ‘캐나다’라는 단어는
본래 캐나다 원주민인 이로쿼이족의 말로 ‘마을’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가정의 구성원인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실제로 한 ‘마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기도할 때,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갈등과 희망으로 가득 찬 거대한 마을인 지구촌에 결합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과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 이 기도를 함께 바칩시다.
◎ 아멘.
+ 사랑하는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저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며 하나 되도록 저희의 가정과 직장, 저희가 일하는 광산과 공장, 밭과 가게, 어선과 목장, 학교와 병원, 교도소나 구치소에서 저희를 부르시나이다.
◎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가 하나 되게 하소서.
+ 캐나다 원주민들은 여러 방향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오래된 예식을 간직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들과 함께 각 방향을 바라보며 한 마음으로 기도합시다.
동쪽을 향한다
+ 해 뜨는 동쪽에서 우리는 평화와 빛과 지혜와 지식을 받습니다.
◎ 하느님, 이 모든 은총에 감사하나이다.
남쪽을 향한다
+ 남쪽에서 우리는 따스함을 얻고
인도를 받으며 또 생명의 시작과 끝이 여기에서 나옵니다.
◎ 하느님, 이 모든 은총에 감사하나이다.
서쪽을 향한다
+ 서쪽에서 우리는 비를,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지탱해 주는 정화의 물을 받습니다.
◎ 하느님, 이 모든 은총에 감사하나이다.
북쪽을 향한다
+ 북쪽에서는 우리에게 힘과 인내를
가져다주는 차갑고 강한 바람과 흰 눈이 비롯됩니다.
◎ 하느님, 이 모든 은총에 감사하나이다.
정면을 마주하고 위를 바라본다
+ 하늘에서부터
우리는 어둠과 빛을 받고 우리가 숨 쉬는 공기를 얻습니다.
◎ 하느님, 이 모든 은총에 감사하나이다.
정면을 마주하고 아래를 바라본다
+ 우리는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 하느님, 하느님께서 훌륭하게 빚으신 피조물과 이 지상의 거처를 저희에게 마련해 주심에 감사하나이다.
+ 찬양을 받으시는 하느님, 저희가 하느님과 함께 예수님의 이름으로, 또 생명을
불어넣어 주시고 이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과 함께 선한 길을 걸어가며, 이 지상에서 서로의 축복에 기뻐하고 서로의 슬픔을 함께 나누는
참된 형제자매로 살아가게 하소서.
◎ 아멘.
찬미가
참회 기도
+ 코린토 공동체에 보낸 바오로 사도의 호소에 따라 우리 죄를 고백합시다.
+ 은총을 베푸시는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저희를 그리스도 예수님과 결합시키시어 저희를 말과 지식에서 풍요롭게 해 주셨습니다. 저희는
교만하게도 이 은총들을 저희의 공으로 여기고 그 참된 원천을 깨닫지 못하였나이다. 주님, 저희를 용서하소서.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또는 자비송(노래할 수 있음).
+ 은혜로우신 하느님, 저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풍부한 영적 은사를 누리면서도
자주 너무 의기소침하거나 저희 자신만 생각하여, 생명을 주는 이 놀라운 메시지를 이웃과 나누지 못하였나이다. 주님, 저희를 용서하소서.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또는 자비송.
+ 은총의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친교를 이루도록
저희를 부르시나이다. 저희는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 되려는 열의가 부족하고, 저희 사이에 끊이지 않는 분열과 다툼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나이다.
주님, 저희를 용서하소서.
◎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또는 자비송.
+ 은혜로우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저희의 나약함을 보시고도 언제나
진실하시나이다. 분열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는 형편없는 죄인인 저희를 용서하소서. 성령의 은총으로 저희가 하느님과 이웃과 모든 피조물과 맺은
일치의 계약을 지키고 실천할 수 있도록 저희의 열정을 새롭게 하소서.
◎ 아멘.
II.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기
독서
이사 57,14-19; 시편
36,5-10; 1코린 1,1-17; 마르 9,33-41
강론
III. 신앙과 일치 안에서 응답하기
신앙 고백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사도 신경, 또는 그 밖의 신앙 고백을 할 수 있다.)
신앙과 사명의 찬미가
교회 일치를 위한 영적 은사의 교환
이
예식을 준비한 이들은 사전에 모여 공동체 안에서 교회들의 다양한 은사들에 대하여 묵상해 왔다. 그 지역의 은사나 더욱 폭넓게는 각 교회의 고유한
전통에 따른 은사 가운데에서 선택할 수 있다. 서로 다른 교회의 대표들은 그리스도인 공동체 전체에 가져다주는 그들 교회의 전통 은사를 상징하는
물건을 가져온다. 은사를 앞으로 가져와 탁자 위에 놓는다. 인도자는 다음과 같은 말이나 비슷한 말로 그 은사를 밝힌다.
+ “우리는 ________ 교회로부터, 여기 _____로 상징되는 ______의 은사를 받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 하느님, 이 은사에 감사하나이다.
본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님, 일찍이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화를 두고 가며 내 평화를 주노라.” 하셨으니,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이
천상 도성을 평화롭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소서. 주님께서는 성부와 성령과 함께 천주로서 이제와 항상 영원히 살아계시며 다스리시나이다.
청원 기도
캐나다 교회들은 다 함께
국제 연합의 ‘밀레니엄 8대 목표’를 받아들여 왔다. 이 목표들을 제시하며 다음과 같은 기도들을 바친다.
+ 날마다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가난한 이들의 불안한 삶은 분열의 원인이 되곤 하오니,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정의와 평화를 회복시켜 주소서.
◎
은혜로우신 하느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랑으로 응답해 주소서.
+ 보편 교육에 힘쓰는 모든 이를 위하여
기도합시다.
교육자들의 앎에 대한 목마름이 저희 교회들을 잇는 다리가 되어 저희가 서로의 차이를 존중할 수 있게 하소서.
◎
은혜로우신 하느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랑으로 응답해 주소서.
+ 남녀의 동등한 존엄과 권리를 위하여 노력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모든 남녀가 지닌 하느님의 모습이 존중받게 하소서. 특히 남녀가 동등하게 직업과 재화와 서비스에 다가서야 할
필요성을 되새기며 비오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된 저희가 남자와 여자의 은사들을 모두 온전히 받아들이게 하소서.
◎ 은혜로우신
하느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랑으로 응답해 주소서.
+ 환우 아동들과 아동 건강 증진을 위하여
노력하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저희가 어린이들을 보살핌으로써 바로 예수님을 맞아들이게 하소서.
◎ 은혜로우신 하느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랑으로 응답해 주소서.
+ 임산부와 모성 건강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새 생명을 잉태하여 모성애로 하느님의 한결같은 사랑을 일깨워 주는 임산부들을 저희가 정성껏 돌보게 하소서.
◎ 은혜로우신 하느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랑으로 응답해 주소서.
+ 후천성 면역 결핍증(HIV/AIDS), 말라리아, 그 밖의
다른 질병들과 싸우고 있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품위 있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저희가 귀 기울이게
하시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이 존중받고 사랑받는 세상을 이룩하는 데에 앞장서게 하소서.
◎ 은혜로우신 하느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랑으로 응답해 주소서.
+ 피조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고통 받는 모든 이들과 멸종 위기에 놓인
모든 동식물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지속 가능한 환경을 보전하도록 저희를 이끄시어, 저희가 피조물과 화해할
수 있게 하소서.
◎ 은혜로우신 하느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랑으로 응답해 주소서.
+ 국제 연대와 세계 협력 관계를 이룩하고자
애쓰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저희가 공정 무역을 촉진하고 최빈국의 채무를 탕감해 주며 정의를 위해 힘쓰게 하소서.
◎
은혜로우신 하느님,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랑으로 응답해 주소서.
+ 주님, 이 모든 바람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는 저희가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주님께서 기도하신 하느님 나라를 향하여 함께 나아가게 하소서. 저희는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를 바칩니다.
주님의 기도(낭송이나 노래)
평화의 인사
+ 16, 17세기에 캐나다에 도착한 프랑스인들은 자원이 풍부한 땅을 발견하였고 그곳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퀘벡 시의 설립자는 감사의 뜻으로 자신의 배 이름을 ‘하느님의 선물’(Don de Dieu)’이라고 붙였습니다.
캐나다에서 사용되는 여러 성찬 예식에서 사람들을 영성체로 초대할 때 “이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하여 주시는 선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하는 일치는 우리 사이에 회복된 교회적 친교로, 그 표징은 우리가 함께 성찬의 선물을 받아 모시는 것입니다. 가시적 일치를 향한 여정 중에도 우리는 하느님 백성을 위한 하느님의 선물을 서로서로 주고받습니다.
오늘날,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퀘벡 주에서, ‘하느님의 선물’(Don de Dieu)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대중 문화 안에서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그들의 조상들이 캐나다 원주민들과 함께 감사를 드릴 수 있던 때부터 비롯된 하느님 은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되새겨 줍니다. 평화의 인사로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서 받은 은사를 인정하는 표시로, 캐나다 사람들과 함께 프랑스식으로 서로 “하느님의 선물”(Don de Dieu)이라고 말해 봅시다.
예배 참석자들은 서로 포옹이나 목례나 악수로 인사하며
말한다.
◎ 하느님의 선물(Don de Dieu)
봉헌 성가 (성가를 부르는 동안 헌금을 할 수 있다.)
IV. 세상 속으로 힘차게 나아가기
일치를 위한 다짐
+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코린토 그리스도인들이 명심하고 이를 행동으로 보여 주라고 말하였듯이, 우리에게도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지닌 일치를 더욱 온전히 실현하라고 권고합니다.
어디에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들과
◎
함께, 우리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 어느 모로든 하느님께 은총을 받은 모든 이들과
◎ 함께,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합니다.
+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친교를 맺도록 베푸신 은총으로 풍요로워진 모든
이들과
◎ 함께, 우리는 영적인 온갖 은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사랑과 봉사를 위하여 우리에게 굳센 힘을 주신다고 확신하는 모든
이들과
◎ 함께, 우리는 하느님께서 진실하신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 있는 모든 이들과
◎ 함께, 우리는 친교를
맺도록 부름 받습니다.
+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된 모든 이들과
◎ 함께, 우리는
합심하고자 합니다.
+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에 대한 우리의 다툼을
극복하여,
◎ 함께,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께 속합니다.
+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
◎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함께 전하려고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파견 성가
강복과 파견
강복은 다음 양식이나 그
밖의 다른 양식으로, 여러 명의 예배 인도자들이 함께 할 수 있다.
+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 또한 사제와 함께.
+ 주 예수님의 사랑이 이 교우들을 주님께 이끌고,
주 예수님의 힘이
주님께 봉사하는 이 교우들을 굳세게 하며,
주 예수님의 기쁨이 이 교우들의 마음을 채우게 하소서.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여기 모인 모든 이에게 강복하시어 길이 머물게 하소서.
◎ 아멘.
+ 가서 평화를 나눕시다.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서로 맞이하고
어울리며,
서로 섬기고 양식을 나누도록 합시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퇴장 성가
8일 간의 성경 묵상과 기도
제1일
함께, 우리는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탈출 19,3-8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시편 95(94),1-7 우리는 그분 목장의 백성, 그분 손수 이끄시는 양 떼로세.
1베드 2,9-10 여러분은 한때
하느님의 백성이 아니었지만 이제는 그분의 백성입니다.
마태 12,46-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묵상의 세 요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우리는 다 함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거룩하게 되었다”(1코린 1,2). 탈출기에서는 하느님 백성의 이 모임을 하느님의
소중한 소유, 사제들의 나라, 거룩한 민족으로 묘사한다.
베드로 1서에서 보면, 우리가 성도의 친교에 참여하게 되는 자격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다 함께 선택된 겨레, 임금의 사제단, 당신 소유가 된 백성으로 부르신 결과로 이해된다. 이 부르심과 더불어, 우리는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위업을 선포하라는 공통의 명령을 받는다.
또한 우리는 마태오 복음에서, 우리가 일치를 위하여 함께 기도하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자 노력할 때, 성도들의 친교를 이루는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됨은 가족과 부족이나 계급을 뛰어넘어 확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묵상 질문
· ‘성도들의 친교’라는 말은
여러분에게 또는 여러분의 교회 전통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 ‘거룩한 민족’이 되라는 부르심은 우리를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 지역
교회의 상황을 넘어서도록 만드는가?
기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갈라져
있는 저희를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들과 함께 성도로 부르시고, 저희를 선택된 겨레, 임금의 사제단, 거룩한 민족이 되게 해
주시니, 하느님 성령의 힘으로 저희를 다 함께 성도들의 친교로 이끌어 주시고, 저희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위업을
선포할 수 있도록 저희에게 힘을 주소서. 아멘.
제2일
함께, 우리는 서로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은총에
감사합니다
신명 26,1-11 주님께서는 저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시편
100(99)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그 이름을 찬미하여라.
필리 1,3-11 나는 여러분을 기억할 때마다 나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요한 1,1-18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묵상의 세 요지
신명기에서, 감사란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주위에 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깊이 깨닫고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다. 이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그리고 그
어디든 모든 사람들 안에 생생히 활동하고 있음을 깨닫고 하느님께 감사드릴 줄 아는 능력이다. 이 은총에서 흘러나오는 기쁨은 매우 커서 “너희
가운데에 있는 이방인”, 곧 우리 가운데 사는 이주민들에게까지 확장된다.
교회 일치라는 맥락에서, 감사란 다른 그리스도인 공동체들 안에 있는 하느님 은총의 선물에 기뻐할 수 있는 자세, 곧 교회 일치 차원에서 은총을 나누고 서로에게서 배우는 열린 자세를 의미한다.
삶 전체가 하느님의 선물이다. 세상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생애와 행적을 통하여,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고, 우리 서로 안에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 드러난 은총과 진리의 선물을 두고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묵상 질문
· 우리가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이미 체험하고 있는, 다른 교회 전통에서 온 하느님 은총의 선물들은 무엇인가?
· 서로 다른 전통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다양한 은사를 더욱 잘 받아들이고 함께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기도
지극히 자애로우신 하느님, 저희가 저희
전통과 다른 교회들의 전통 안에서 맛보는 하느님 은총의 선물에 감사하나이다. 하느님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저희가 서로 만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일치의 선물을 끊임없이 새롭게 체험하면서 계속 더욱더 감사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제3일
함께, 우리는 어떠한 은사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욥 28,20-28 주님을 경외함이 곧 지혜다.
시편
145(144),10-21 당신의 손을 벌리시어, 모든 생물을 호의로 배불리십니다.
에페 4,7-13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마르 8,14-21 너희는 어찌하여 빵이 없다고 수군거리느냐?
묵상의 세 요지
욥은 모든 것이 사라져도
주님을 경외함, 곧 지혜는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인 우리는 모두, 우리의 분열로 보잘것없게 되기는 했지만,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데에 필요한 다양한 은사를 풍성하게 받았다.
그러나 하느님의 약속과 예수님께서 아낌없이 내어 주신 생명과 사랑에도, 우리는 마르코 복음에 나오는 제자들처럼 이따금 우리의 진정한 부요를 잊어버린다. 우리는 분열되어 부를 쌓아만 두고 마치 우리에게 ‘빵이 없는’ 듯이 말하고 행동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갈라지시지 않았다. 함께 우리는 서로서로 그리고 ‘모든 생물’과 나누어 가지기에 충분한 은사를 지니고 있다.
묵상 질문
· 우리는 어떤 식으로 하느님
은사의 풍요로움을 잊고 오히려 ‘빵이 없다’고 단언하는가?
· 우리가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라고 우리에게 맡겨진 영적 물질적 은사들을 더
잘 나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기도
진실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 지혜와
봉사의 은총과 양식을 주시며 저희가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는 데에 필요한 모든 은사를 베풀어 주시니 찬미하나이다. 저희가 하느님의
풍요로움을 드러내는 표지가 되게 하시고, 영원무궁한 하느님 나라의 은사를 고통과 결핍이 있는 모든 곳에 가져다 줄 수 있도록, 저희를 일치 안에
모아들이소서. 저희는 성령으로 가득 차, 저희를 위한 생명의 빵으로 이제와 항상 영원히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제4일
함께, 우리는 하느님께서 진실하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애가 3,19-26 주님의 자애는 다함이 없네.
시편 57(56),7-11
주님의 진실은 구름까지 닿도록 크십니다.
히브 10,19-25 약속해 주신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루카 1,67-75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호의를 베푸신다.
묵상의 세 요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영원한 일치는 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끌고 하느님께서 이 세상에서 펼치시는 사랑과 자비와 정의의 활동에 참여하도록 요구합니다. 자비와 정의는
하느님 안에서 서로 떼어지지 않으며, 오히려 하느님께서 우리와 또 모든 피조물과 맺으신 계약에서 드러난 변함없는 사랑 안에서 서로
결합된다.
아버지가 된 즈카르야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시며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시라고 증언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계약에 성실하신 분이시다.
우리가 교회 일치를 위하여 계속 기도하면서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우리가 함께 만나고, 서로의 힘을 북돋우며, “하느님께서는 진실하시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사랑과 선행으로 나아가도록 서로를 독려하는 것이다.
묵상 질문
· 여러분은 지난해에 여러분의
생활과 여러분 공동체의 생활 속에서 하느님께서 진실하신 분이심을 어떻게 식별해 왔는가?
· 하느님의 진실성은 우리가 계속해서 그리스도인
일치를 추구하도록 어떻게 우리를 독려하는가?
기도
진실하신 하느님, 하느님의 자애는
다함이 없고 하느님의 진실은 구름까지 닿도록 크시니 감사하나이다. 저희가 기쁜 희망을 품고 당신 교회의 완전한 가시적 일치를 위하여 협력하고
함께 기다리며 기도하오니,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으로 저희를 가득 채워 주소서. 이제와 영원히 한 분 하느님이신 성령의 힘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하나이다. 아멘.
제5일
함께, 우리는 친교를 이루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사 43,1-7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시편 133(132)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
1요한 1,3-7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됩니다.
요한 15,12-17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부른다.
묵상의 세 요지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과 친교를 이루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가 삼위일체 하느님과 더욱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그리스도인 일치 안에서
서로서로 더 가까워진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당신의 관계를 변화시키시어 우리를 종이 아니라 친구로 부르신다. 이 사랑의 관계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는 권력과 지배의 관계에서 벗어나 서로간의 친교와 사랑으로 나아가도록 부르심을 받는다.
예수님께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아직 복음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미 들은 이들에게도 복음을 증언한다. 이 선포는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는 것도 포함하며, 이에 응답하는 이들 사이에 친교를 이루게 해 준다.
묵상 질문
· 여러분은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음을 어떻게 체험하는가?
· 하느님께서 여러분 교회 안팎에서 여러분이 다른 이들과 친교를 이루도록 어떤 방식으로
부르고 계신가?
기도
사랑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저희를
아드님과 친교를 이루도록 부르시고 저희가 복음의 증언을 통해 그 열매를 맺게 하셨나이다. 당신 성령의 은총을 통하여 저희가 서로 사랑하고 일치
안에 함께 머물러 완전한 기쁨을 맛볼 수 있게 하소서. 아멘.
제6일
함께, 우리는 합심하고자 합니다
판관 4,1-9 당신께서 함께 가시면 저도 가겠습니다.
시편
34(33),1-14 평화를 찾고 또 추구하여라.
1코린 1,10-15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
루카
22,24-30 사도들 가운데에서 말다툼이 벌어졌다.
묵상의 세 요지
코린토 1서 1장
12-13절에 나온 분열은 그리스도의 메시지의 온전함을 손상시키면서 복음을 왜곡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클로에 집안 사람들처럼 분쟁과 분열을
인정하는 것이 일치를 이루기 위한 첫 걸음이다.
드보라나 클로에 같은 여인들은 분쟁과 분열의 때에 하느님 백성 가운데에서 예언자의 목소리를 높여 우리가 서로 화해할 필요가 있음을 깨닫도록 해 준다. 그러한 예언자적 목소리는 사람들이 새로운 행동을 위한 일치로 모일 수 있게 한다.
우리는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고자 노력하면서, 시편 작가가 쓴 것처럼 주님과 그분의 평화를 찾도록 부르심을 받고 있다.
묵상 질문
· 고통스러운 교회 불일치에 대한
예언자적 고발이 더 큰 일치를 향한 새로운 노력의 시초가 된 경우를 기억하는가?
· 교회 일치 모임인 우리 가운데 여전히 분열을 야기하는
사안들은 무엇인가?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더욱 큰 일치를 향한 방안들은 무엇이 있는가?
기도
사랑하는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분쟁과
분열의 때에 예언자적 증인들을 저희에게 보내 주시나이다. 주님, 주님을 찾는 저희에게 주님의 성령을 보내시어 저희가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 되고 화해의 일꾼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제7일
함께, 우리는 그리스도께
속합니다
이사 19,19-25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구원자를 보내실 것이다.
시편
139(138),1-12 당신 얼을 피해 어디로 가겠습니까?
1코린 12,12-26 한 지체가 고통을 겪으면……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
마르 9,38-41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지지하는 사람이다.
묵상의 세 요지
이사야는 이집트인들과
아시리아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어 이스라엘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날을 내다보았다. 그리스도인 일치는 온 인류를, 그리고 실제로 온 우주를 한
데 모으시려는 하느님 계획의 일부이다. 우리는 하나의 믿음과 하나인 성찬의 친교 안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그 날을 위하여 기도한다.
우리는 다양한 교회 전통의 은사들로 복을 누리고 있다. 우리가 서로 안에 있는 그 은사들을 알아볼 때 우리는 가시적 일치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으로 결합된다. 우리 개별 교회들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에게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가 우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일깨워 준다. 우리가 모두 한 몸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나는 네가 필요 없다.”(1코린 12,21)고 말할 수 없다.
묵상 질문
· 어떠한 표징들로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가?
· 어떤 경우에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라는 말이 그리스도인들을 일치시키기보다 갈라놓는
데에 사용될 수 있는가?
기도
하느님, 성령의 은총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인 저희 모두에게 강복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비오니, 저희가 서로를 지지하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들어 부르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의 일치를 위하여 일하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제8일
함께, 우리는 복음을 선포합니다
이사 61,1-4 주 하느님의 영이 …… 나를 보내시어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시편 145(144),1-7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 당신 업적을 기리리이다.
1코린 15,1-8 나도 전해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루카 4,14-21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묵상의 세 요지
이사야서에서 예언되고 우리
주 예수님 안에서 실현되었으며 바오로 사도가 전하고 교회가 받아들인 그 기쁜 소식을, 이제 우리가 함께 선포한다. 우리가 지닌 차이와 우리가
속한 교파의 특수성을 솔직히 직시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도록 우리가 함께 파견되었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은 “복음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며,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1코린 1,17)임을 밝힌다. 바로 이 십자가의 힘으로 우리는 일치의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선포하는 복음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으로 또 그리스도인 공동체 생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업을 증언할 때, 실제로 구체화되고 실효성을 지니게 된다.
묵상 질문
· 여러분이 받은 ‘복음’은
문화적 역사적으로 어떻게 전수되었는가?
· 그것이 일치에 걸림돌이 되었는가?
·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더욱 완전한 일치를 이룰
때, 이를 통하여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전해 받은 복음을 더 잘 증언할 수 있겠는가?
기도
은혜로우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성령의 힘으로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나이다. 저희를 다양성 안에서 일치시켜 주시어,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다리는 이
세상에 저희가 그리스도의 생명과 죽음과 부활의 기쁜 소식을 함께 천명하고 선포하게 하소서. 아멘.
추가 예식 자료
2014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의 추가 예식 자료는 “캐나다 교회 일치
운동(Ecumenism in Canada)” 사이트에서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으며 그 주소는 아래와 같다.
http://ecumenism.net/music/
이 사이트에 올려진
파일들은, 2014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의 주제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1코린 1,1-17]) 또는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의 주제에 관한 노래와 음악들을 수집하고자 캐나다 작곡가들에게 공개적으로 요청한 데에 대한 응답으로 마련된
것이다.
이 파일들의 일부 또는 전부를 다운받아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칠 때 사용하기를 권장한다.
캐나다의 교회 일치
운동 상황*
(이 문서는 2014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자료집을
마련하기 위하여 모인 캐나다의 교회 일치 모임의 독자적인 권한과 책임 아래 작성되었다.)
캐나다의 종교적 경험에 영향을 주는 수많은 요인들 가운데 캐나다의 방대한
영토를 꼽을 수 있다. 캐나다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로, 면적의 40%가 북위 60도에 위치한 극지방이다. 캐나다는 대서양과 태평양,
미합중국과 북극 사이에 걸쳐 있고 10개 주(州)와 3개 준주(準州)로 이루어져 있다. 캐나다는 삼면이 바다로, 곧 대서양, 태평양, 북극해에
둘러싸여 있다. 유일한 국경은 미국과의 국경이며, 거의 200년 동안 평화롭게 지내 왔다. 캐나다는 옛 영국 식민지들의 연방으로, 10개 주와
3개 준주로 된 연방 제도 안에 내각 책임제 정부 형태를 하고 있다. 이전 영국 식민지령 국가들의 연합과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은 평화롭게
이루어졌다. 오늘날 캐나다는 국제적 참여와 협력을 굳게 지지하고 있다. 캐나다 도시들 사이의 먼 거리가 각 지역의 자립과 뚜렷한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으나 이와 더불어 소외감이나 반감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캐나다는 산과 숲, 호수와 강, 드넓은 밀밭과 삼면(三面)의 해안 등 아름다운 자연 풍광으로 유명하다. 캐나다는 농업이 발달하고 천연 자원이 풍부한 나라이다. 또한 다양한 민족, 곧 원주민들, 이누이트족, 메티스족*(‘원주민’(First Nations)은 유럽인들이 캐나다에 도착하기 전에 살고 있던 토착민들의 존재를 인정하고자 사용된 용어이다. 북극해의 토착민들은 ‘이누이트족’(Inuit)라고 불리며, ‘메티스족’(Metis)은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캐나다에 정착하러 온 수많은 사람들이 캐나다 인구를 구성하고 있다. 캐나다의 공용어는 프랑스어와 영어 두 가지이고, 아직도 많은 캐나다인들은 조상들의 고국의 문화와 언어 유산을 기리고 있다.
1534년, 세인트로렌스 강을 항해한 최초의 프랑스인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는 유럽인으로는 처음으로 토착민들에게서 ‘캐나다’(Canada)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이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첫 번째 정착민들은 대부분이 로마 가톨릭 신자들이었으나 프로테스탄트들, 특히 위그노 교파 상인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있던 종교적 긴장이 뉴프랑스 지방에서는 느껴지지 않았고, 예수회 신부들은 프로테스탄트들과 기꺼이 협력하여 퀘벡 시를 함께 세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초기의 협력 시기는 차별로 변질되었고, 결국 가톨릭 신자들만이 뉴프랑스의 정착민으로 공식 인정을 받았다. 몬트리올의 원래 이름 “Ville-Marie(마리아 도시)”는 이러한 가톨릭의 뿌리를 보여 준다.
18세기 중반, 뉴프랑스가 영국으로 양도되면서 대부분이 프랑스계 가톨릭 신자들인 주민들은 성공회를 믿는 영국 왕의 신민이 되었다. 영국에서 가톨릭 신자들을 차별하는 법이 여전히 존재하던 시대에, 캐나다에서는 국왕이 종교의 자유를 언어, 문화, 교육의 자유와 함께 부여하였다. 그럼에도 이러한 체제 아래서 관용과 시련의 시기가 교차하였다. 1950년대까지 가톨릭 주교들은 프랑스어권 공동체들의 사회 시설 대부분을 감독하였다. 그 사이 나라는 계속해서 커져 갔고 여러 해 동안 이주민의 물결이 이어졌다. 18세기 말에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에서 온 이주민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19세기에도 동유럽과 서유럽은 물론이고, 남미,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에서 이민자들의 물결이 이어졌다. 20세기에는 세계 각지에서 이민 또는 난민들이 캐나다로 들어왔고, 여기에는 동유럽과 중동의 동방 정교회 신자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그리스도교 전통으로 캐나다의 [종교적] 경관이 풍요로워졌다. 오늘날 캐나다의 그리스도인들은 수백 가지 언어와 방언으로 예배에 참여하고 있으며, 풍요롭고 다채로운 문화적 종교적 모자이크 안에서 그들 문화의 고유한 특징들을 지켜 나가고 있다. 다른 종교인들도 캐나다로 와서 정착하였는데, 이 가운데에는 유다교, 이슬람교, 시크교, 힌두교, 바하이교를 들 수 있다. 캐나다의 도시들은 세계에서 가장 다문화적이고 다종교적이다. 동화를 장려하던 정부 정책은 1970년대부터 서서히 다문화 정책으로 바뀌었다. 다양한 민족적 기원을 지닌 시민들의 공헌으로 캐나다는 풍요로워졌고, 이들은 정치, 교육, 보건, 예술, 통신, 기업,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캐나다의 일부 그리스도교 교파들은 150년이 넘도록 연방 정부의 원주민 기숙 학교(Indian Residential School)의 운영 사업에 협력해 왔다. 이 기숙 학교는 대체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자녀들을 부모의 뜻에 거슬러 수용하여 교육하고 서양 문화에 동화시켰다. 원주민들의 언어와 문화를 말살하려는 목적에서 세워진 이 학교들은 종종 신체적, 감정적, 성적 폭행의 장소가 되었다. 캐나다의 주요 교회인 로마 가톨릭, 캐나다 연합 교회, 성공회, 장로교회가 여기에 연루되었고, 이들은 최근에 다양한 방식으로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였다. 이 교회들은 현재 원주민들과 긴밀히 협력하여, 국가 진실과 화해 위원회*(원주민 기숙 학교에 관한 더욱 자세한 정보는 www.trc.ca 참조.) 를 통하여 정의와 치유, 진리와 화해를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원주민 기숙 학교의 유산에 관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대응책에 속한다.
초기의 탐험과 선교 이래 캐나다 교회들은 사목 협력을 위한 직관을 키워 왔다. 1880년대부터 장로교회, 감리교회, 조합교회가 캐나다 서부에서 함께 선교 책임을 나누어 맡았다. 이러한 협력은 1925년에 캐나다 연합 교회의 창설로 이어졌다. 캐나다 연합 교회는 최초의 현대적인 교회 일치 연합체로, 그 지지자들은 이를 국가 건설 계획에서 통일된 그리스도인들의 지도력을 보여 주는 방법으로 여겼다. 오늘날의 사목 협력은 여러 형태를 띠고 있고, 영성 사목은 교도소, 병원, 대학, 군대에서 여러 교파의 사목자들이 함께 맡고 있다. 캐나다 전역에서 정식 신학 교육은 초교파 신학교들이나 연합체들(consortia)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다른 형태의 협력은 초교파 공동 사목처럼 조합 사목 안에서 발전해 왔고, 둘 이상의 그리스도교 교파들이 건물과 성직자, 또는 프로그램을 서로 공유하고 매주 공동 예배를 드리고 있다.
24개 종파들이 한데 모인 캐나다 교회 협의회(CCC)는 세계에서 가장 폭넓고 포괄적인 교회 협의회로, 성공회, 가톨릭, 개혁파, 복음주의, 자유 교회, 그리고 동방 정교회가 포함되어 있다. 합의를 의사 결정 모델로 채택하고 있는 캐나다 교회 협의회는 1944년에 설립되었고, 현재 캐나다 그리스도인들의 85%가 가입되어 있다. 캐나다 천주교 주교회의도 6개의 복음주의 교파와 마찬가지로 캐나다 교회 협의회의 정회원이라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캐나다의 복음주의 연맹(EFC)도 여러 교파와 초교회 사목, 복음주의 교파와 오순절 교파를 아우르는 지역 연합체를 포괄하고 있다. 많은 교회들이 캐나다 교회 협의회와 캐나다 복음주의 연맹의 회원이거나 참관인 자격이다. 이 두 단체는 여러 해 전부터 더욱 긴밀히 협력하여 활동하고 있다.
캐나다의 여러 교회들은 국가적 차원과 지역적 차원에서 쌍방적이고 다원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가장 의미 있는 유기적 연합은 장로교회, 감리교회, 조합교회가 1925년에 함께 모여 캐나다 연합 교회를 창설한 것이나 그 밖의 다양한 형태의 협력과 친교도 진전을 이루었다. 특히 여기에는 2001년 성공회와 루터 교회가 완전한 친교에 관하여 합의한 워털루 선언을 들 수 있다. 캐나다 [그리스도교 교파들 사이의] 신학적 대화는 지역 차원의 연구와 성찰에 기여를 하였을 뿐 아니라, 국제적 차원의 대화에서도 그들의 통찰력을 나누어 왔다.
캐나다 교회 일치 운동의 혁신적인 측면들 가운데 하나는, 50개 이상의 교회 일치 연대가 형성된 것으로 1960년대에 사회 정의를 추구하면서 시작되었다. ‘플라우셰어즈(Ploughshares)’ 프로젝트, 캐나다 교회간 여성 협의회, 정의를 위한 캐나다 교회 일치 운동(KAIROS), 세계 사목 캐나다 교회 포럼을 비롯한 수많은 단체들이 캐나다 교회와 정부를 도와 복잡한 사회 문제들을 연구하고 이를 위하여 연대하고 있다.
캐나다 교회 일치 운동 본부는 1963년 몬트리올 프랑스어권과 영어권의 활기찬 환경 속에서 예수회 회원 이레네 보비엥(Irenee Beaubien) 신부가 설립하였다. 이 센터는 ?에큐메니즘?(Ecumenism) 잡지와 같은 전국적 규모의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는데, 이 잡지는 프랑스어판과 영어판으로 출간되어 40여개 나라의 구독자들에게 배포되고 있다. 사회 운동에 관한 이 센터의 끊임없는 관심은 매우 새로운 ‘초록 교회’(Green Church) 프로그램으로 입증되고 있으며, 모든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이 더욱더 훌륭한 피조물의 관리자가 되도록 돕고 있다.
1960년대 초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소집으로 캐나다 교회 일치 운동은 한층 탄력을 받았다. 캐나다 교회 일치 운동의 식견과 경험은 1962년에 발표된 몬트리올의 대교구장 폴-에밀 레제르(Paul-Emile Leger) 추기경의 사목 교서 “갈라진 그리스도인들”(Chretiens desunis)에서 현저히 드러나 있다. 이 사목 교서에서 레제르 추기경은 프로테스탄트들의 가톨릭 개종을 종용한 것이 아니라, 가톨릭 신자들이 일치를 위하여, 특히 가톨릭 교회 자체의 쇄신과 회개를 위하여 기도할 것을 당부하였다. 레제르 추기경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내다보며 “일치에 대한 관심이 현대 그리스도교의 주요 사안이 되고 있고” 이 주요 운동은 “성령의 영감 아래 태어났다.”고 밝혔다. 그리스도인들의 일치와 불일치의 신비에 관한 이 성찰에서, 레제르 추기경은 합당하게 세례 받은 모든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며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그리스도의 분명한 뜻에 비추어 볼 때 불일치는 “걸림돌”이며 “악”이라고 지적하였다. 따라서 레제르 추기경은 불일치의 책임이 양편 모두에게 있음을 인정하면서 교구민들이 일치를 위하여 기도하고 다른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대화를 나누도록 권고하였다.
세계교회협의회는, 1958년 보비엥 신부가 몬트리올에서 조직한 이래 계속 되어 온 프로테스탄트 목회자들과 가톨릭 사제들의 독자적인 월례 모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자, 1963년 몬트리올에서 신앙과 직제에 관한 제4차 세계 대회를 열기로 결정하였다. 서로 다른 교파들과 나라에서 온 450명의 신학자들이 한데 모인 이 모임은 가톨릭 신자들이 대다수인 몬트리올 시민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았고, 교회 일치 운동에서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대회 기간에 몬트리올 대학교에서 그리스도인 친교의 밤 행사가 열려 150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자리를 함께 하였다. 1967년 몬트리올에서 열린 국제 박람회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주요 교파들과 바티칸이 각각 별도의 전시관을 운영하지 않고 함께 하나의 공동 전시관인 ‘그리스도교 관(館)’(Christian Pavilion)을 설치하였다. 이는 국제박람회 역사상 최초로 교회 일치관이 설치된 경우였다.
다른 교회 일치 단체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수십 년 동안 생겨났다. 그 가운데 대서양 교회일치협의회(Altanic Ecumenical Council, 1966), 퀘벡 교회일치네트워크(1982), 프레리 교회일치운동본부(Prairie Centre for Ecumenism, 1984)를 들을 수 있다. 베르나르 드 마르제리(Bernard de Margerie) 신부가 새스커툰에 설립한 프레리 교회일치운동본부는 7개 교파의 후원을 받고 있으며, 교회 일치를 위한 교육과 양성에 중점을 두고 교회 일치 공동 사목의 국가적 자원 역할을 하고 있다. 캐나다 전역에 걸쳐 지역 차원의 교회 일치 운동은, 시골 공동체들과 도심에 자리한 성직 단체를 통해서는 물론이고 여러 교회 협의회들을 통하여 촉진되고 있다. 여러 교회 일치 운동들이 캐나다 전역에 두루 확산되었는데, 여기에는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의 공동 거행, 서로 다른 신학대학들의 공동 양성, 평화와 사회 정의를 위한 활동, 출판 등이 있다. 캐나다 교회 생활의 필수 부분으로, (구성원들이 서로 다른 교회에 속한) 혼종 가정들이 도전과 축복 속에서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대체로 교회 일치 사목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의 교회 일치 생활에서 두드러진 점은 지역의 교회 일치 모임과 예배, 대화와 공동체 사목에서 복음주의 교회와 그 목회자들의 참여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주의 교회들 사이의 내부 관계를 다지던 시기에 이어 지금은 개혁파, 복음주의, 오순절 교회 등 주요 프로테스탄트 교회들과 동방 정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 사이에 새로운 대화의 동반자적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캐나다 복음주의 교회는 다른 지역 교회들에 손을 내밀어 대화를 나누고 예배를 공동 거행하며 도시의 복음화 사업에 협력하고 있다. 오늘날 캐나다 교회들은 과거에 누리던 사회적 영향력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는 공통된 현실에 직면하고 있으며, 여러 유서 깊은 교회들의 경우 그 쇠락의 정도가 심각하다.
다른 종교 전통을 지닌 이들을 복음화하는 우선 과제 또는 그 필요성과 관련하여
그리스도인 공동체 내부의 어려움들도 협력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어 왔다. 그럼에도 종교간 대화 차원에서 그리스도인들의 협력이 최근 몇 년 동안
늘어나고 있으며 대개 교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캐나다에서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는가? 캐나다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분열이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교회와 사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에 관하여, 또 낙태, 안락사, 동성혼과 같은 윤리적 문제에서
서로 갈라져 있다. 이러한 분열은 교파의 구분을 막론하여 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사회 문제들에 직면하여 교회 공동체들은 이웃들과 새롭고
긍정적인 방식으로 사회 문제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캐나다의 역사는 긴장과 경쟁의 시기를 겪고, 서로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의 시기를 지내
왔다.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 캐나다인들은 평화로이 더불어 살아가고자 열린 마음으로 다른 이들의 가치관을 존중하는 법을 익혀 왔다. 우리는
교리와 정책, 신앙 실천에서 계속 갈라져 있고 우리 자신의 종교적 독자 노선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일치를 향한 우리의 여정은 하느님의
영감 아래 계속될 것이다.
끝으로 1967년 캐나다의 그리스도교 전래 백주년을 기념하여 바친 기도문의 일부로, 오늘날 캐나다의 현실에서도 여전한 열망을 드러내는 아래의 기도를 바치고자 한다.
“모든 나라 사람들이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하나가 된 세상을 위하여 살아가며
기도합시다. 하느님, 저희 세계와 온 누리에서 저희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투명하게 정직하고 순수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도와주소서.
이 나라와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이 조화와 자기 성취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기도합시다. 굶주림과 가난, 무지와 질병이 사라지고 참으로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지게 일하며 살아가도록 도와주소서. 아멘!”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의 주제 목록
1968-2014년
세계교회협의회 신앙직제위원회와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는 1968년부터 공식적으로 기도 주간 자료를 공동으로 준비하여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68년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라”(에페 1,14)
1969년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갈라 5,13)
(이탈리아 로마에서 준비 모임)
1970년 “우리는 하느님의 협력자입니다”(1코린 3,9)
(독일
니더알트아이흐 수도원에서 준비 모임)
1971년 “성령의 친교”(2코린 13,13)
(이탈리아 바리에서 준비
모임)
1972년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요한 13,34)
(스위스
제네바에서 준비 모임)
1973년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
(스페인 몬세랏 수도원에서 준비 모임)
1974년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합니다”(필리 2,1-13)
(스위스 제네바에서 준비 모임)
1975년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한데 모으는 하느님의 계획”(에페
1,3-10)
(오스트레일리아 단체가 초안 준비. 스위스 제네바에서 준비 모임)
1976년 “우리도 그분처럼 될 것입니다”(1요한 3,2) 또는 “우리는 우리
자신이 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카리브 교회 회의가 초안 준비. 이탈리아 로마에서 준비 모임)
1977년 “희망을 갖고 함께 인내하십시오”(로마 5,1-5)
(내전
중인 레바논에서 초안 준비. 제네바에서 준비 모임)
1978년 “이제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닙니다”(에페 2,13-22)
(영국
맨체스터에서 교회 일치 단체가 초안 준비)
1979년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1베드 4,7-11)
(아르헨티나에서 초안 준비. 스위스 제네바에서 준비 모임)
1980년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마태 6,10)
(구 동독의
베를린에서 교회 일치 단체가 초안 준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준비 모임)
1981년 “하나이신 성령과 여러 은사, 하나인 몸”(1코린 12,3-13)
(미국 그레이무어에 있는 속죄의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들이 초안 준비. 스위스 제네바에서 준비 모임)
1982년 “행복합니다, 당신의 집에 사는 이들!”(시편 84[83]편)
(케냐에서 초안 준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준비 모임)
1983년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생명”(1요한 1,1-4)
(아일랜드
교회 일치 단체가 초안 준비. 스위스 셀리니(보세)에서 준비 모임)
1984년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가 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1코린
2,2; 콜로 1,20)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준비 모임)
1985년 “하느님께서는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에페
2,4-7)
(자메이카에서 초안 준비. 스위스 그랑샹에서 준비 모임)
1986년 “너희는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6-8)
(유고슬라비아[슬로베니아]에서 초안 준비, 유고슬라비아에서 준비 모임)
1987년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된 새로운 피조물”(2코린 5,17-6,4)
(영국에서 초안 준비. 프랑스 떼제에서 준비 모임)
1988년 “하느님의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1요한 4,18)
(이탈리아에서 초안 준비. 이탈리아 피네롤로에서 준비 모임)
1989년 “공동체 건설, 그리스도 안에 한 몸”(로마 12,5-6)
(캐나다에서 초안 준비. 영국 웨일리 브릿지에서 준비 모임)
1990년 “그들도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그리하여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요한 17장)
(스페인에서 초안 준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준비 모임)
1991년 “주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민족들아”(시편 117편; 로마
15,5-13)
(독일에서 초안 준비. 독일 풀다 지역의 로텐부르크에서 준비 모임)
1992년 “내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그러므로 가라”(마태
28,16-20)
(벨기에에서 초안 준비. 벨기에 브뤼쥬에서 준비 모임)
1993년 “그리스도인 일치를 위하여 성령의 열매를 맺으십시오”(갈라
5,22-23)
([현재 콩고 민주 공화국인] 구 자이르에서 초안 준비. 스위스 취리히 근교에서 준비 모임)
1994년 “한마음 한뜻이 되도록 부름을 받은 하느님의 가족”(사도
4,23-37)
(아일랜드에서 초안 준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준비 모임)
1995년 “코이노니아, 하느님과 함께 또 서로서로 이루는 친교”(요한
15,1-17)
(신앙직제위원회에서 초안 준비. 영국 브리스틀에서 준비 모임)
1996년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묵시
3,14-22)
(포르투갈에서 초안 준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준비 모임)
1997년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2코린 5,20)
(북유럽 교회 일치 위원회에서 초안 준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준비 모임)
1998년 “성령께서도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로마
8,14-27)
(프랑스에서 초안 준비. 프랑스 파리에서 준비 모임)
1999년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묵시 21,1-7)
(말레이시아에서 초안 준비. 이탈리아 보세 수도원에서 준비 모임)
2000년 “하느님께서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에페 1,3-14)
(중동에서 초안 준비. 이탈리아 베르나 수도원에서 준비 모임)
2001년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1-6)
(루마니아에서 초안 준비. 루마니아 불칸에서 준비 모임)
2002년 “정녕 주님께는 생명의 샘이 있나이다”(시편
36[35],6-10)
(유럽주교회의협의회와 유럽교회협의회에서 초안 준비, 독일 아욱스부르크 근교에서 준비 모임)
2003년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2코린
4,4-18)
(아르헨티나 교회에서 초안 준비, 스페인 로스 루비오스에서 준비 모임)
2004년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3-31;
14,27)
(시리아 알레포에서 초안 준비, 시칠리아 팔레르모에서 준비 모임)
2005년 “교회의 유일한 기초이신 그리스도”(1코린
3,1-23)
(슬로바키아에서 초안 준비, 슬로바키아 피에스타니에서 준비 모임)
2006년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
(아일랜드에서 초안 준비, 아일랜드 킬대어 주 프러스페러스에서 준비 모임)
2007년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마르
7,31-37)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초안 준비, 프랑스 파베르주에서 준비 모임)
2008년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1테살 5,13-18)
(미국에서
초안 준비, 미국 개리슨 시 그레이모어에서 준비 모임)
2009년 “네 손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여라”(에제
37,15-28)
(대한민국에서 초안 준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준비 모임)
2010년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
(스코틀랜드에서
초안 준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준비 모임)
2011년 사도들의 가르침과 우정과 빵을 나눔과 기도 안에서 이룬 일치(사도
2,42)
(예루살렘에서 초안 준비 - 시리아의 사이드나야에서 준비 모임)
2012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우리 모두 변화할 것입니다(1코린
15,51-58 참조)
(폴란드에서 초안 준비 -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준비 모임)
2013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시는가?(미카 6,6-8
참조)
(인도에서 초안 준비 - 인도 방갈로르에서 준비 모임)
2014년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다는 말입니까? (1코린
1,1-17 참조)
(캐나다에서 초안 준비 -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준비 모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의 역사에서 중요한 날들
1740년경 스코틀랜드에서 북미 사람들과 연계하여 열린 성령 강림 운동. 이들의 신앙 부흥 운동 메시지에는 모든 교회를 위하여 모든 교회와 함께 바치는 기도들이 포함됨.
1820년 제임스 홀데인 스튜어트 신부가 ‘성령 강림을 위한 그리스도인 총연맹의 제안’ 출판.
1840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냐시우스 스펜서 신부가 ‘일치를 위한 합동 기도’ 제안.
1867년 제1차 램버스 성공회 주교회의가 그 결의안 전문(前文)에서 일치 기도 강조.
1894년 레오 13세 교황이 성령 강림 대축일을 전후하여 일치 기도 주간 실천 장려.
1908년 폴 왓슨 신부가 제안한 ‘교회 일치 기도 주간’ 준수.
1926년 신앙직제운동이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위한 제안’을 발표하기 시작.
1935년 프랑스의 폴 쿠튀리에 신부가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그분께서 원하시는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탕으로 ‘세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주창.
1958년 교회 일치위원회(프랑스 리옹)와 세계교회협의회의 신앙직제위원회가 협력하여 일치 기도 주간 자료 준비 시작.
1964년 예루살렘에서 바오로 6세 교황과 아테나고라스 1세 총대주교가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요한 17,21)라는 예수님의 기도를 함께 바침.
1964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Unitatis Redintegratio)은 기도야말로 교회 일치 운동의 혼이라고 강조하며 일치 기도 주간의 준수를 장려.
1966년 세계교회협의회 신앙직제위원회와 그리스도인일치사무국(현재의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이 공식으로 일치 기도 주간 자료의 공동 준비 시작.
1968년 신앙직제위원회와 그리스도인일치사무국이 공동으로 준비한 일치 기도 주간 자료를 최초로 공식 사용.
1975년 지역 교회 일치 운동 단체가 준비한 초안을 바탕으로 한 일치 기도 주간 자료를 최초로 사용.
1988년 말레이시아 주요 그리스도교 단체들을 연결하는 말레이시아 그리스도교 연합의 창립 예식에서 일치 기도 주간 자료 사용.
1994년 YMCA와 YWCA의 대표가 포함된 국제 모임이 1996년 자료 준비.
2004년 세계교회협의회 신앙직제위원회와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가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의 자료를 같은 형식으로 공동으로 발표하고 출판하기로 합의.
2008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100주년 기념.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의 전신인 ‘교회 일치 기도 주간’이 1908년에 처음으로 거행되었다.)
<원문: Resources for THE WEEK OF PRAYER FOR CHRISTIAN UNITY and throughout the year 2014, Has Christ been divided? (1Cor 1,13), Jointly prepared and published by the Pontifical Council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 and the Commission on Faith and Order of the World Council of Churches, 영어, 프랑스어 참조>
영어:
http://www.vatican.va/roman_curia/pontifical_councils/chrstuni/weeks-prayer-doc/rc_pc_chrstuni_doc_20130528_week-prayer-2014_en.html
프랑스어:
http://www.vatican.va/roman_curia/pontifical_councils/chrstuni/weeks-prayer-doc/rc_pc_chrstuni_doc_20130528_week-prayer-2014_fr.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