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NK가 중국 선양(瀋陽)에서 입수한 비디오 CD ‘조선 김일성’에는 김일성이 사망하기 직전 소집했던 ‘최후의 회의’가 잠깐 스쳐 지나간다.
김일성이 사망하고 나서 북한이 제작한 기록영화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에는 1994년 1월 1일부터 7월 7일 사망 직전까지 김일성의 활동 내용이 담겨있다. 이 기록영화 역시 7월 6일 김일성이 소집한 경제일꾼 회의가 최후의 활동 모습이다.
이 회의는 남북정상회담 실무준비를 점검하는 회의였다. 당시 82세의 고령이었던 김일성은 상당히 들뜬 기분에서 회담을 준비했다고 한다. 김정일에게 모든 실권을 남겨주고 일선을 떠난 지 10년이 훌쩍 지난 때에 자신의 존재를 과시할 수 있는 ‘빅 이벤트’가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갑작스런 과로가 김일성 사망의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데일리NK가 이번에 공개하는 동영상은 김일성이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김일성은 1994년 6월 15일~18일 평양에서 카터를 만났다.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한다. 북한의 핵개발 문제로 전쟁 일보 직전까지 치달았던 상황에 극적인 반전을 불러온 정상회담 소식이었다. 정상회담은 1994년 7월 25일~27일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정상회담 합의 이후 김일성은 회담을 준비하고 농촌을 시찰하는 등 정력적인 활동을 펼친다. 7월 6일의 경제일꾼 회의에서는 최근 경제현황에 대해 보고받고 상당히 화를 냈던 것으로 알려진다.
동영상에도 나타나지만 7월 6일 회의까지 김일성은 외형상 멀쩡했다. 지도를 보면서 이것저것 지시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7월 9일 북한은 선전매체를 통해 일제히 “7월 8일 새벽 2시 심근경색으로 사망하였다”고 알렸다. 쓰러진 시점은 7월 7일 저녁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과 김정일 사이에 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일부 견해도 있다.
데일리NK가 입수한 비디오CD는 약 1시간 분량으로 '김일성 혁명생애' '주체사상' '최후시광'(最後時光) 등 세 편으로 이루어져있다. 이 비디오는 중국의 한 영상제작업체에서 제작하였으며, 중국인들에게 김일성의 위대성을 선전하려는 의도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표지에는 ‘가장 객관적인 김일성 전기(最客觀的金日成傳記)’라고 소개하고 있다.
1994년 여름,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82세의 고령인 그는 미국 전 대통령 지미 카터와의 회담에 친히 참석했다. 제1차 회담과 연회활동 등 모두 6시간에 걸친 회담에 참가하여 중간에 20분밖에 휴식하지 못하였다.
낮에는 회담에 참가하고, 밤에는 문건을 처리하였다. 카터가 돌아간 다음 김일성은 여전히 휴식을 하지 못하고 ‘북남회담’ 방안 심의를 마친 뒤에 또다시 잠시도 쉬지 못하고 농촌부문 시찰에 나섰다.
북한은 이때 이미 여름 수확철이었다. 각급에서는 항상 생산량을 허위 보고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김일성은 그들을 믿지 않았다. 농업문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자신이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농촌 문제에 대해 강력한 지시를 준 다음, 여름 사무를 보곤 하는 묘향산 별장에 가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떠났다.
1994년 7월 7일 밤, 김일성이 탄 전용열차는 한동안 흔들거리며 희천에 도착했다. 아직 편안히 쉬지도 못한 김일성은 비서더러 최근에 나타난 정황에 대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나 경제파탄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협동농민들이 굶주린다는 소식을 들어서인지, 곤란해 더는 방법이 없다는 브리핑을 들어서인지 뜻밖에 김일성은 한숨을 내쉬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