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 과 죄, 회개, 구원 (사 59:1~21)
이 말씀은 “죄와 회개와 구원”이란 세 대지로 나누어 상고하시면 좋을 줄 압니다. 1-8절까지는 “유대인의 죄와 관련된 말씀”이요, 9-15절 전반은 “선지자의 회개를 나타낸 말씀”이며 15절 하반-21절까지는 “하나님이 구원의 뜻을 나타내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1. 유대인의 죄와 관련된 말씀.(1-8절)
1)하나님은 능력이 모자라서 선민을 환란에 두시는 분이 아니시고 “선민의 죄를 응징하시는 뜻으로 외면하시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2절)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이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의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라”(1-2절)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티끌 만한 죄도 다 아십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가까워지는 관계)을 대면치 못하게 되고,(마 5:8) 기도도 응답하시지 않으심을 아셔야 합니다.(사 1:15, 요 9:31, 시 66:18)
2)유대인의 죄를 여러 가지로 거론하셨으니(3-8절) ① “손에 피가 가득한 것”(3절)으로 이는 곧 “강포하는 행습”이며(6절)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함”(7절)을 뜻하며 난폭한 성품으로 폭력과 살인을 예사로 일삼는 행위입니다. ② “손가락이 죄악에 더러워짐”(3절)이니 마치 “행위는 죄악”이요,(6절) “그 발이 행악 하기에 빠른 것”(7절)처럼 온갖 범죄를 예사로 행함을 뜻하고, ③ “너의 입술은 거짓을 말함”이니(3절) 4절에서도 “거짓을 말함”을 지적하셨습니다. 진실하지 않음입니다. ④ “너의 혀는 악독을 발함이라”(3절)하시므로 이는 언어폭력을 의미하고 ⑤ “공정한 판결을 시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4절에서 “공의대로 소송하는 자도 없고 진리대로 판결하는 자도 없다”하시므로 백성들이 공정한 판결을 구할체를 하지 않으니 이는 진리(공의)대로 판결해주는 재판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8절에서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고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한다”하신 것도 역시 공의의 상실로 평강의 길이 없고 공의가 평강을 인도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존귀를 받은 자가 부정을 행하였다면 그 나라에 공법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차라리 재판을 하느니 악으로 악을 갚으려 할 것입니다. ⑥ “허망한 것을 의뢰한다”(4절)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상 숭배를 의미합니다.(사 44:9) ⑦ “잔해(殘害;끝까지 해롭게 하는 것)를 잉태(계획하는 것)하여 죄악을 생산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나타난 죄만 밝히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악함은 물론 마음의 계획과 골방에서의 음모까지도 다 밝히시는 분입니다.(살전 2:4, 히 4:12, 눅 12:3) 5절에서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는 것”이 곧 잔해를 잉태함의 설명입니다. “독사의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와 해를 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⑧ 7절에서 “그 사상은 죄악 사상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죄악 사상은 마귀의 기본 원칙입니다.(요 8:44) 정치적 사상이 나라의 흥망을 좌우하듯 죄악을 일삼는 사상도 “황폐와 파멸을 그 길에 끼친다”(7절)고 하셨습니다. 황폐와 파멸은 곧 사망의 길입니다.(롬 6:23)
3)6절에서 “선민의 모든 범죄는 행복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짠 것”이란 5절의 “거미줄” 같은 것이요, 위선의 방법인즉 “그것으로 옷을 이룰 수 없음”은 거미줄 같은 위선으로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뜻이고, “그 행위로는 자기를 가릴 수 없음”도 역시 같은 뜻입니다. 인간의 벗은 수치(죄)는 십자가의 은혜로 가릴 수 있을지언정 인간의 악이나 위선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입니다.(창 3:7,21)
2. 선지자의 회개를 나타낸 말씀.(9-15절)
본문 말씀에 “우리”란 말이 15회 나옵니다. 이는 선지자가 유대인들의 죄에 대하여 연대적 책임을 지고 대표로 회개하면서 탄식한 것입니다.
1)9,14절에서 “공평과 의가 없음”을 회개하며 탄식합니다. “공평과 의”는 죄 안 되게 사는 표준입니다. “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두움 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로 행한다”(9절) 하셨으니 공평과 의가 없을 때 “죄악과 어두움과 희망 없는 흑암이 된다” 하셨고, 14절에서도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섣다” 하셨으니 이것은 명분과 법도가 뒤로 가고 불법과 폭력이 앞서서 인간의 양심과 공법을 짓밟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2)무지함을 회개하며 탄식합니다.(10-11절) 유대인의 무지함을 소경으로 비유한 뜻이 있습니다. 세상은 어두운데(9절) 불을 비추지 못함은 깨달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소경 같이 담을 더듬고 눈 없는 자 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 때처럼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10절)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공평을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다(11절)”고 하셨습니다. 이는 재난(앗수르의 침략 같은 것)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내용입니다. 나라의 살 길이 막막한 것을 소경의 더듬는 행위로 비유하였고, 강성하였던 나라(다윗 시대에)가 형편없이 된 것을 “강장한 자 중에서의 죽은 자”로 비유한 것입니다. 아무리 강장한 자라도 죽으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3)하나님을 배반한 죄를 스스로 책임지는 회개를 나타냈습니다.(12-13절)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거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12절)한 것은 상당한 죄를 알고 죄에 대한 책임을 느낀다는 뜻이요, 그 죄는 “여호와를 배반하고 인정치 않은 것이며 하나님을 좇는데서 돌이켜 포악과 패역 등을 일삼는 것”(앞에서 설명한 죄악들)이라고 하였습니다.(13절)
4)“성실이 없어진 것”입니다.(4절 하반-15절 전반)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함”은 성실한 자가 잘 되고 악한 자가 벌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5절에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한다”는 말씀이 그 뜻입니다. 선지자는 선민을 대신하여 그런 사회와 나라가 된 것이 그들의 죄 값임을 나타내면서 회개하며 하나님께 호소한 내용입니다.
3. 구원의 뜻을 나타내신 말씀.(15절 하반-21절)
1)하나님이 “선지자의 기도를 들으심과 함께 선민의 모든 정황을 감찰하여 아셨다”고 하셨습니다. 15절 하반에서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시고 그 세계(선민)에 공평이 없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또 인간 중에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다(16절 하반)”고 하셨습니다. 인간은 다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 중에 중재자 없음이 당연한데 왜 이 사실을 이상히 여기셨을까요? 이것은 하나님의 무지하심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민에게 베푸신 사랑이 너무 많고 수없이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의인이 한 사람도 없을 만큼 타락한 상태를 안타깝게 표현하신 것입니다.(렘 5:1)
2)그리하여 “하나님이 스스로 구원하실 것을 결심하시고 준비하셨다”고 하셨습니다.(16절 하반-17절) 인간 중에 구원자가 없은즉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셨다” 하셨으니 이 말씀이 곧 예수님을 인간으로 보내어 십자가로 의를 이루시도록 계획하신 것입니다. 17절의 “의로 호심경을 삼으심”은 예수님이 의로운 일(순종과 십자가)로 자신을 지키시고 마귀와 싸워 승리 하시므로 구원의 주 가 되신 것을 나타내신 것 입니다.호심경은 가슴에 붙이는 갑옷으로 마귀를 대적하는 영적 방패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으로 이길수 있읍니다.(히5:8)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심”도 “십자가의 의로 구원을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십자가는 호심경이 되고 구원은 투구가 되니 곧 십자가로 구원하여 승리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보수로 속옷을 삼으심”도 같은 뜻입니다. 갑옷을 입을 때 속옷도 입어야 하니 필수적입니다. “보수”란 원수를 갚아주시는 심판인즉 그것도 꼭 이루어주신다는 뜻입니다.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심”은 하나님의 열심이 구원 사역에 한몫을 한다는 것입니다.(사 9:7) 열심이 없으면 마귀의 역사에 지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인간적 표현으로 그러함)
3)18절에서는 원수에 대하여 보응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보수로 속옷을 삼으신 하나님이(17절) “대적(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바벨론 또는 불신앙의 대적들)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이방 나라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4)그리고 “구원의 복음을 만방에 펼치신다”고 하셨습니다.(19-20절) 장차 “복음의 기운(전파의 역사)이 급히 흐르는 하수처럼 몰려 오시므로(성령님의 역사를 존대한 말) 서방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두려워하겠고 해돋는 편에서도 그의 영광을 두려워할 것이라”(19절)하시므로 동서양에 복음의 큰 역사가 있을 것을 예언하셨고, 20절에서는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여(예수님이 유대 땅에 오신다는 뜻) 야곱(선민)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회개하는 자)에게 임하신다” 하셨으니 이 뜻은 예수님이 오셔서 최초에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하신 말씀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죄과를 떠나는 자” 즉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가 메시야를 영접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5)하나님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실천하실 분입니다.(창 17:7) 그리고 또 메시야가 오시면 “영원히 선민(성도)을 떠나시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21절) 21절에서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은 메시야가 성도에게 주시는 언약이요,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신(성령님)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성경 말씀)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 또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대대로의 뜻) 떠나지 아니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마 28:20에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시고 지금도 말씀과 성령님이 성도와 함께 하시는 것으로 성취된 것입니다. 이사야는 그 사실을 주전 750년 경에 예언하셨습니다. 성령님을 “네 위에 있는 나의 신”이라 하신 것은 오순절 때 성령님이 강림하시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음을 나타내신 것입니다.(요 16:7, 행 2:2, 10:44-45)
이상과 같이 본 장의 내용을 죄와 회개와 구원의 세 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