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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이쿠기행 후기
2010年 秋 俳句紀行-韓國俳句硏究院
2010年10月23日(土)
1.慶州發(08:00)
모두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서 제 시간에 출발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택하여 선도산이 보이는 서천교를 지나서 건천, 신내, 운문을 향하는 동안 슬금슬금 다가오는 단풍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20번 국도를 타고 간다. 오가는 길 어떤 추억을 만들게 될까.. 이번 하이쿠 기행에 대한 기대감도 이야기하며 고개도 넘고 골짜기도 지나며 운문댐이 보이는 망월정에 도착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2.雲門댐 (09:00)
가는 내내 비슷한 경치가 이어졌으나 고개를 지날 때마다 조금씩 단풍이 든 나뭇잎의 색조가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칡넝쿨이 감아버려 본연의 모습을 알 수 없게 되어버린 오동나무를 보며 자연의 힘을 이야기 하고 물안개 피는 골짜기를 보며 여유를 가질 수 있음에 행복하였다.
배고픈 자동차에게 기름을 좀 먹이고 동곡, 매전, 덕산리 등등 내게는 생소한 이름의 마을을 지나는 동안 길 가, 붉은 감이 가득한 나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소녀가 된 듯 나풀나풀 ..나비처럼 가벼워졌다. 곰티를 향하는 고개.. 길 가에 세워진 솟대가 멋진 모습으로 오가는 길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솟대가 그 자리에 그렇게 서 있는 것은 우리들의 오늘 여행길에 안녕을 빌어주는 것이라고 나 편할 대로 해석을 하며 누군가에게 감사하게 되니, 벌써 풀어지고 연해진 여행자의 마음이 아닌가 싶다.
3.淸道
어쩌면 그토록 청초한 얼굴일까? 돌보아주는 이 하나 없는데 양편으로 길가에 구절초가 한창이다. 부야저수지를 지나고 풍각이라는 재미있는 지명도 만나며, 계속해서 이어지는 감나무와 함께 청도를 지난다.
4.昌寧
약간 경사진 길을 오르니 고분들이 봉긋봉긋 친근한 곡선으로 우리를 맞아주고 바로 그곳 길 건너에 창녕박물관이 있다. 몇 해 전 봄에는 맘이 저리도록 제비꽃이 고왔는데, 지금은 코스모스가 가득 피어서 저 아래 숨어있던 감성을 건드리고 있다. 준비해 온 홍시를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서둘러 시내를 가로질러 나오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의령 이정표가 보인다.
5.宜寧/충익사
황강, 적포교, 필재, 이런 이름들을 거쳐서 원진교, 여배교..(다리도 많구나^^) 신반을 지나 충익사에 들러서 가기로 하였다. 곽재우 장군을 기리는 곳. 의병탑이 장엄하다. 입구에 가까이 가면 목서꽃 향을 맡을 수 있는데 나무가 보이지 않아도 향기로움에 절로 심호흡을 아니 할 수 없으니 그야말로 만리향이다. 연못가의 배롱나무는 또 얼마나 크고 예쁜지 누구라도 직접 보기를 권하고 싶고 주렁주렁 달린 모과나무, 청단, 홍단.. 고운 색을 자랑하는 단풍나무, 모감주나무,..작은 수반의 부레옥잠마저도 근사하지 않은 게 없었다. 마침 중학생들이 봉사활동이라며 긴 비를 이용해서 마당을 쓸고 있었는데 경건한 분위기와 주변의 아름드리나무들, 선생의 제단에서 흘러나오는 한줄기의 향내까지 어우러져서 청소하는 모습마저도 그림이 되고 있다.
원장님은 곽재우장군의 후예라서인지 감회가 남다르신가보다. 헌금을 하시고, 분향도 하시는데 그냥 묵념만 하고 돌아선 내가 부끄럽다. 대신 기록사진이나 열심히 찍어야지..^^참배를 마치고 진주로 향하였다. 나가는 곳을 지나치게 되어 길을 조금 돌아갔지만, 우리 일행 중 아무도 가본 적이 없는 그 길은 드라이브 전용코스라고 해도 될 만큼 호젓하였고 내가 이름을 모르는 길 가의 핑크색 꽃은 마리린몬로의 립스틱 색상을 떠올릴 만큼 고왔다.
6.晉州着(12:40)/中食
이제 네비게이션이 필요 없다고 호언하시는 원장님의 능숙한 운전으로 진주성에 도착하였다. 주차장 길 건너편에 중국음식점이 보인다. 익숙한 음식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맛나게 점심식사를 하고 진주성에 입장하였다. 진주시민이 아니니 각자 입장료 1,000원을 내야하는데 바로 옆에 있는 박물관은 무료이다. 김시민 장군전공비와 촉석정충단비를 보고 천자총통도 보고, 호국의 종을 지나 촉석루로 향하였다. 마침 무형 문화재 토요상설공연을 준비 중이었는데 오늘은 진주교방굿거리춤과 진주오광대의 안내가 붙어있다. 극장(실내)이 아니라 촉석루에서 이런 공연을 한다니, 남강 바람을 맞으며 관람하는 재미가 한 층 더 할 것 같다.
논개사당인 의기사를 거쳐서 의암으로 내려갔다. 넓적한 바위.. 이곳이었구나.. 익히 들어왔던 이야기를 따라서 가락지와 함께 어떤 이미지가 그려진다. 일본인인 홍고 선생님도 여러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계신데, 일순 많은 생각이 스친다.
문득 눈을 들어 보니 남강의 잔잔한 물결위에 배가 한 척 있는데 한복을 입은 뱃사공과 논개라고 짐작되는 실물 크기의 인형이 타고 있어서 볼거리를 더한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촉석루는 성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덩굴의 고운 색으로 인해서 단층의 아름다움이 고풍스러움과 어우러지면서 오래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풍경이 되었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있는 쌍충사적비에는 제말장군, 제홍록 장군과 함께 곽재우장군이 언급되고 있었기에 오전에 충익사를 갔던 참이기도 하여 충절, 애국..이런 단어에 새삼스러운 마음이 되었다.
7.國立晉州博物館
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사를 주제로 하는 역사박물관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2층부터 보라는 직원의 권유로 임진왜란실부터 보고 1층 역사문화실을 거쳐 두암전시실을 관람하는 것으로 동선을 잡았다. 오늘은 진주의 명가라는 제목으로 여러 명문가에 관한 기획전시를 하고 있었다. 박물관을 나오는 길에 진주성을 지키던 위병들의 교대식을 볼 수 있었다. 김시민 장군으로 분한 사람은 어린이들과 기념촬영도 하는 등 역사 속에서 나와 친근한 이미지로 시민들과 함께 하는 진주성이었다.
8.統營으로 移動 /夕食/ 宿泊(第56回月曜講座)
진주부터는 새로운 고속도로를 타고 통영으로 가기로 했다. 미리 연락이 오갔던 김정미 씨와 톨게이트 근처에서 합류하여 저녁식사 장소이자 숙소인 해송 횟집으로 이동하였다. 창밖으로 바다, 배, 해안도로 등이 보이는 그 곳에 짐을 풀고 하이쿠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가 생선회와 간장소스를 끼얹은 꽁치구이, 세모가사리 장아찌, 우엉조림, 나물, 매운탕 등등 멋진 상차림의 저녁 식사를 하고 야경이 멋진 통영대교를 지나, 이곳에서도 만난 향기로운 목서꽃을 즐기면서 해안도로를 따라 해저터널까지 산책을 하였다.
책상이 없어 방바닥에 자료를 펼쳐놓은- 너무나 소박한- 모습이었지만, 본격적으로 월요강좌 프로그램을 마치고도 하이쿠에 관한 이야기가 남은 우리들. 인삼차를 한 잔 씩 앞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통영의 밤은 깊어갔다.
고맙게도 바깥 일정을 마치고 쉴 무렵..아래층 처마에 똑똑, 톡톡 부딪히는 빗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고 한 방울 두 방울 세다가 설핏 잠이 들까말까 하는데 앵하는 소리에 다시 잠을 깨고 말았다. 모기에게 몇 군데를 물리고, 이웃 방에서의 시끄러움과 가슴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이 안 오지만, 그래도 좋다. 이번 기행에서의 추억은 평생 남을 테니..자, 억지로라도 잠을 청해보자.
2010年10月24日(日)
1.朝食
엷은 수묵으로 그려놓은 바다, 목마른 만물이 오랜만에 촉촉하게 젖어있는 아침, 같이 식사하자며 숙소까지 찾아오신 김정미씨 부군을 따라나선 미수동, 전망 좋은 곳에 김정미씨 댁이 있었다. 손수 준비한 정갈한 아침밥상에 고마워하며 그 댁의 가족들과 정겨운 식사를 하였다. 빛 고운 국화차까지 마시고 (원장님의 선물인 경주빵은 어제 드렸으나) 미처 드리지 못했던 머플러를 선물로 전하며 후일을 기약, 헤어져서 박경리 선생의 기념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2.統營 구경
1)박경리 기념관
휴일, 비가 내리는데도 가족단위, 혹은 어린 학생들이 꽤나 와 있어서 속으로 놀랍고도 반가웠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하지만 박경리 선생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구나 싶어서이다. 경주의 동리 목월 문학관을 가본 적이 있어서 자연 비교가 되기도 하였는데 경주와 관련 있는 강석경 선생 기증품인 누비저고리를 보게 되니 오늘 우리는 인연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이쿠와 인연이 없었다면 함께 하는 오늘의 이 기행도 (혼자 관광차 올 수는 있겠지만) 없었으리라. 선생의 향기를 느끼고 나오다가 건물 옆 작은 화단에서 머위(후키)를 보았다. 빗물에 젖은 머위는 꽃을 오무려 씨방을 맺고 있었는데, 원장님이 앉아서 살피신다. 또 어제 내내 ‘꽃 이름이 뭘까?’ 하고 궁금해 했던 도로변의 그 예쁜 꽃도 있었는데 이름표를 보니 홍접초란다. 답답하던 속이 후련해졌으니 이곳을 찾은 보람이 더하다.
2)전혁림 미술관
미륵도를 한 바퀴 드라이브 하여 통영이 낳은 또 한 사람, 화가 전혁림의 미술관으로 갔다. 외벽부터 특별한데 건물에 붙은 타일 하나하나가 작품이다. 빨강과 대비되는 화폭 가득한 푸른빛은 ‘통영의 블루’라는 애칭이 붙을 만큼 전혁림 선생만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학창시절 미술부를 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여 조금 낭만적인 기분이 되고 만다. 평소에도 멋진 풍경을 대하면 사진이나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지는데 비 내리는 날 통영의 미술관 나들이라니.. 예술을 사랑하는 고장에서의 이런 생각만으로도 오늘 아침은 무척 행복하다.
3)동피랑
미술관을 나와 길 가 모퉁이 가게에서 충무김밥을 샀다. 일인분에 4,000원이다. 그런데 이인분 이상 판다고 한다. 작게 만 김밥이 한 뭉치 그리고 다른 뭉치에는 무김치와 오징어 어묵 무침이 들어있다. 젓가락이 아닌 이쑤시개로 찍어서 먹는 것이 제격인데, 오늘 본토 충무김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구나.
아직은 시간이 이르니 일단 동피랑으로 향한다. 1길 2길이 있는 것을 모르고 윗길인 2길만 보고는 아쉬워하며 내려오다가 아랫길에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로구나, 벽화지만 그냥 벽화가 아니다. 인터넷이나 책 등의 매체로도 충분히 내용을 알 수 있지만 현지에서의 분위기, 소리, 냄새까지 알게 되는 것, 그것이 여행의 즐거움이라 생각한다.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집들..여러 지붕마저 서로 어울리고 구성지어지니 또 다른 그림이 된다. 항에 거북선이 떠 있다. 모형인 줄 알면서도 이곳이 통영이기에 현실감이 있다.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젊은이들과 스치면서 오늘 이 시간 오래 기억하고 싶어, 내 눈으로 한 번 더 동피랑 인상을 박아둔다.
3.中食
통영IC를 들어와서 진주까지 고속도로를 탔다. 하지만 국도의 정취가 더 좋으니 시간이 걸리고 품이 더 들어도 진주부터는 국도로 가기로 한다. IC를 나오기 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차에게 다시 기름을 좀 먹여주었다. 우리도, 차도 먹는 일은 중요하니까..비가 오니 밖에서 도시락을 먹을 수도 없고 적당한 곳을 찾아본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문을 닫은 관공서가 있는데 창녕군 유어면이라고 한다. 한적한 주차장에 차를 대고 차 안에서 우리들만의 뷔페식을 하였다. 충무김밥과 찐 고구마, 사과, 단감, 빵, 오징어튀김, 뜨거운 커피, 홍삼캔디 등으로..
4.慶州着(4:30)
돌아오는 길도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자연이라는 사실주의 화가의 그림 속을 우리가 간다. 은행나무 가로수, 붉은 감, 군데군데 짙고 붉은 단풍, 칡넝쿨의 입체적인 행위예술, 올리브 그린의 잎사귀들, 산허리를 감은 구름, 계곡 속에 자리한 작은 마을들, 담과 지붕을 타고 가는 호박, 구절초, 계곡에 피어나는 안개, 코스모스 그리고 미조라히바리의 간드러진 노래..가사 중의 ‘곰방와 곰방와’는 가파른 고개를 오르는 차 안을 더 한층 고조되게 하더니 결국 웃음꽃밭으로 만들었다. 오는 길에 감 작업장에서 모과도 얻고 반시를 사서 일행에게 조금씩 나눠드렸다. 많지 않은 양이지만 곶감으로 만들어 올 가을 다들 맛있게 지내시면 좋겠다. 긴 시간 운전하시고, 경비까지 대시고, 이 기행을 기획하신 한국하이쿠연구원 원장님을 비롯하여 함께 했던 우리 일행들..모두 감사함 전한다.
첫댓글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고 말 기행을 정리하여 적어주시니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다시 한번 더 수고 하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