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4일 BBS 에서 성오스님께서 법문하신 내용입니다.
불교의 깨달음은 眞我인가, 無我인가!
〚찬탄문〛
존귀한 분, 공양 받을만한 분,
완전한 깨달음을 스스로 이루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불교의 理想은 智慧와 慈悲의 完成에 있습니다. 발심한 수행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신명을 다하는 것은 지혜의 완성인 열반을 성취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지혜의 완성자는 중생을 향한 한량없는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중생구제의 자비행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교를 자비와 지혜의 종교라 합니다. 제가 미얀마에서 수행할 때 공부를 성취했다는 노스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스님께서 공부를 성취하시고 나니 그 경계가 어떠하셨습니까?”
“열반을 얻고 난 직후 심경은 ‘휴~ 나는 천만 다행으로 생사 강물을 건넜구나. 이제 나는 안전해’ 하고 돌아서려는 찰나에 나도 모르게 저 강 건너 고통에 신음하는 중생들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내가 도와서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하는 자비심이 넘쳐흘렀습니다. 그때 나는 이생에서 내 능력이 미치는 날까지 그들을 도우리라 하고 서원하고 수행을 지도하고 수도원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청정한 수행자의 삶속에서 우리는 불교의 참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며, 그것은 깨달음과 절대자의 은총에 있다고 믿습니다. 佛敎는 無我를 깨달아 열반을 성취하고, 힌두교는 眞我를 깨달아 해탈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에서 용맹정진 끝에 일체지를 얻으시고 어리석은 무명과 번뇌로 인하여 “나”가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업을 지어서 윤회해 왔음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은 갈애이며 갈애는 내가 있다(有我)는 집착으로부터 시작된 것을 아시고 철저히 무아를 깨달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감흥어를 읊으셨습니다.
[부처님의 오도송]
한량없는 생의 윤회 속에서
「오온의」 집을 짓는 자 「갈애」를 찾아 구하였지만,
깨달음을 얻지 못해 이리 저리 헤매면서
거듭해서 태어났나니, 이것은 고통이었네!
아! 집을 짓는 자여, 내 이제 너를 보았으니
너는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리라.
이제 너의 모든 번뇌의 서까래가 부서졌고,
무명의 대들보는 산산조각 났으며,
나의 마음은 열반에 이르러
모든 갈애는 파괴되어 버렸네.
(법구경 게송 pp.153-154)
그 후 부처님께서는 초기불교 경전뿐만 아니라 대승 초기경전인 금강경에서도 일체 영원불변의 眞我나 實體 같은 것이 존재 한다는 사상이나 견해를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연기의 진리일 뿐 어떤 불변의 실체가 없음을 깨달으셨기 때문입니다. 그 한 가지 전거로 산스크리트 원본 금강경에서 사상(四相)에 대해 부정하신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수보리야. 보살이 만약
자아(自我)라는 상,
개아(個我)라는 상,
중생(衆生)이라는 상,
영혼(靈魂)이라는 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니라.
첫째 : 자아(自我)라는 상(atma-sanna 아뜨마산냐, 我相)
이 몸은 생사윤회를 하지만, 나고 죽음을 초월한 절대적인 “나”가 있다는 견해
둘째 : 개아(個我)라는 상(pudgala-sanna, 뿓깔라산냐 人相)
영원불변하는 개체적인 “나”가 있다는 견해
셋째 : 중생(衆生)이라는 상(satva-sanna 사뜨와산냐, 衆生相)
살아 모든 존재들에게 영원불변의 생명의 본체가 있다는 견해
넷째 : 영혼(靈魂)이라는 상(jiva-sanna 지와산냐, 壽子相)
모든 생명들에게는 불생불멸의 영혼이 있다는 견해
이러한 견해와 사상들은 부처님 당시 인도 전통 6파 철학이나 자이나교 등에서 내세우는 설(說)인데,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사상들은 아직 구경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것이며 하나의 고정관념이나 견해에 얽매여 있으므로 그런 상에서 벗어날 때에 깨달음이 온다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역경사 구마라집 스님은 이런 철학사상이 중국인들에게 이해하기 어렵고 생소하기 때문에 번역하시면서 새로운 사상(四相)을 말씀하셨습니다.
아 상 : ‘내가 있다, 내가 옳다, 잘났다’ 하는 자만의식
인 상 : ‘남이다, 너는 틀리다, 못났다’ 하는 업신여기는 차별의식
중생상 : ‘우리는 어두운 중생이다’ 생각하는 열등의식
수자상 : ‘우리의 수명은 한계가 있다’는 한계의식
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요즈음 우리 한국불자들이 법문을 듣는 가운데 혼돈이 오는 부분이 있습니다. 많은 큰스님들이 설법하시는 중에 진아(眞我), 진여(眞如) 등을 깨달음의 높은 경지처럼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무아(無我)를 설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불자들은 부처님의 無我說과 큰스님의 眞我說 중 어떤 말씀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특히 수행자들에게는 중요한 의문이라 하겠습니다. 결론은 부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성인중의 성인이요, 일체지자(一切智者)이시고,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고 신앙생활을 하는 불자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을 따라가면 부처가 되는 것이고, 중생을 따라가면 중생 신세를 면하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