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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5-16절
갈라디아서 5:22-26절
그리스도의 영
2011.10.30일
▣ 여러분은 자신에 대해 만족하십니까? 혹시 만족하지 못 한다면 어떤 부분을 바꾸고 싶으신지요? 저도 바꾸고 싶은 부분이 많지만 그 중에서 ‘돈’관리가 잘 안됩니다. 한 달 용돈을 받으면 초반에는 사람들 만나면 밥도 사주면서 금방 다 써버리고 하반기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래서 ‘크라운’이라고 ‘그리스도인의 재정관리’프로그램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잘 안되는 거예요. 저에게는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쓴다.”라는 의식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정에 약합니다. 저를 인정해주고 잘 한다고 칭찬하면 더 잘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인정받지 못하면 힘들어 하고, 저를 인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시간을 보내고 더욱 잘하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크다고 구박을 받습니다. 가만히 보면 이것도 다른 사람이 나의 이야기를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집중하지 못하면 더욱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과연 저의 이런 부분이 변화될 수 있을까요?
▣ 기독교의 기본진리 책에 보면 “까다로운 사람이 부드러워지고, 교만한 사람이 겸손해지고, 이기적인 사람이 이타적으로 변화 될 가능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본성 자체도 변화될 수 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예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도 변화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며 실망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의 노력으로는 나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이 아니고는 나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를 따라 살아가 려고 몸부림 쳐도 우리는 예수의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니까 그렇게 하셨지 나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실 때 우리는 주님을 닮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노력으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인 성령으로 변화되는 종교입니다.
▣ 그렇다면 이 성령은 어떤 분일까요?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가끔 기도회 할 때 “성령을 주시옵소서, 성령 받아라!”라고 기도하는 내용을 듣게 됩니다. 이러한 표현은 좋은 표현이 아닙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십니다. 마치 하나님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과 하나님을 받아라 고 외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이시고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우리가 달라고 주시고 받아라고 해서 받아지는 분이 아닌 것입니다. 그냥 “성령님 저와 함께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를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은사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많이 하는 내용입니다. 이것도 성령과 은사가 분리되는 느낌이고, 마치 은사를 주고받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성령님께 은사를 받으면 자신의 소유가 되는 것일까요?
▣ 성령의 은사는 성령님이 함께 할 때 나타나는 능력인 것입니다. ‘함께’가 중요한 것입니다. 성령이 함께하면서 나타나는 것이 은사인 것입니다. 구약 삼손이라는 사사가 있었습니다, 삼손은 성령님의 은사가 ‘힘’이었습니다. 삼손의 강한 힘의 원천이 머리카락이 아니라 성령에 있었던 것입니다. 머리카락은 하나님과 삼손의 사이의 약속의 상징인 것입니다. 삼손이 힘으로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는 순간마다 성경은 “그 때에 주님의 영이 삼손에게 세차게 내리덮쳤으므로 손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그 사자를 염소새끼 찢듯이 찢어 죽였다(삿14:6절)”라고 되어 있습니다. 삼손의 힘이 없어진 것은 머리카락을 잘려서가 아니라 성령이 그를 떠났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은사는 성령님이 함께 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동행하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은사를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은사가 목적이 아니라 성령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 이와 같이 성령은 인격적인 분이시고, 성령의 임재가 있을 때 우리들은 놀라운 역사를 이룰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14장 7절에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에서 성령을 ‘보혜사(保惠師)’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보호하고, 은혜 베풀고,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헬라어는 ‘파라클레토스(parakletos)'라는 말인데 ‘pala 라는 말은 옆으로, kletos 는 말은 불림 받은 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 옆에서 와서 우리를 돕도록 하나님께서 부르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위로해 주시고, 권면해 주시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우리를 권면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지금도 보혜사 성령님께서 여러분을 위로하시고 보호하시고 우리를 권면하여 주십니다. 이 보혜사 성령님이 바로 내 옆에 있기에 힘을 얻고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보혜사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말로 보혜사라는 말로 성령님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 두 번째로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3절에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진리의 영이라는 말은 ‘진리의 속성을 지닌 영이라는 말과 진리를 전달하는 영’이라는 말입니다. 진리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달하는 영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속성을 지니신 분으로서 하나님 그 자체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그 분의 말씀의 깨닫기 위해 성령이 아니고는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고는 우리가 주님의 뜻을 깨달을 수 없고 진리로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이신 주님 앞에 나아가는 방법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진리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진리의 성령이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진리의 영이 아니고는 진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진리의 길을 걸어가기를 바랍니다.
▣ 성령은 보혜사이고 진리의 영입니다. 이 성령이 우리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 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 첫 번째로 성령은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십니다. 8절에 “그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세상의 잘못을 깨우치실 것이다.”여기서 ‘세상’은 ‘세상 사람들’을 말합니다. 성령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들여다보게 하십니다. 나의 존재가 얼마나 부족한지, 나의 연약함을 보게 하십니다. 나의 깊은 자아를 보게 됨으로 회개하게 하십니다. 돌이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나의 힘으로 살아온 나를 나의 노력으로 살아온 나를 돌이켜서 주님의 도우심과 이웃의 소중함을 발견하며 살아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들어난 죄를 합리화하고 숨기려고 할 때마다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 성령은 우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먼저 9절에 “죄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세상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라고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나와 이웃, 자연과 인간간의 관계를 분리하게 합니다. 성령은 이런 죄를 깨닫고 화해를 이루도록 돕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화해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웃과의 막힘 담을 허물기를 원하십니다.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서 보살피고 관리하며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 이어서 10절에 “의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고 너희가 나를 더 이상 못 볼 것이기 때문이요”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참되고 의로운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종교적인 무익함을 성령께서 세상에 보여 주신다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존재 즉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의식과 예전으로는 불충분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교회에 열심히 예배 참석해도 여러분의 삶 속에 성령의 인도하심과 주님의 삶을 닮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의로운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이어서 11절에 “심판에 대하여 깨우친다고 함은 이 세상의 통치자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여기서 ‘세상의 통치자’는 바로 ‘사탄’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탄을 이기고 최후 승리자임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승리를 보장 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지는 것 같지만 진리이신 주님은 반드시 이기신다는 것입니다.
▣ 이와 같이 성령은 우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세상이 잘못 된 것임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길이 참된 길임을 보여 주시고, 무엇이 옳은 길인지를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악은 분명히 멸망하고 하나님의 공의가 승리할 것을 우리에게 확신을 주십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하심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두 번째로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13절에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만 일러 주실 것이요,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우리는 어디로 걸어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다고 이제부터는 죄지을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와 반대로 갈등이 심해질 수도 잇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립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수 없게 됩니다.”이것은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일입니다. 우리를 끊임없이 죄의 욕망으로 우릴 끌어내립니다. 그리고 더욱 갈등과 번민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를 거룩으로 끌어 올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은 강력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고는 우리는 이 육체의 욕망에서 벗어 날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육체에 대해서는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앗습니다.”라고 하십니다. 이 말은 십자가에 못박았는 것과 같이 강력한 저항과 단호한 거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에는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꾸준히 주님의 인도하심에 매 순간 순종하고 따라가는 경험을 통하여 점점 우리는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성령이신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성령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십니다. 에베소서 4장 3절에 “성령이 여러분을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키십시오.”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이 경험은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경험하게 하십니다. 교회의 주인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성령으로 만났고 하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성령의 첫 번째 열매는 ‘사랑’입니다. 성령의 본질이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내주하는 자에게 사랑을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도 바로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힘이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저는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가족이라는 것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지만 가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나의 방법으로 사랑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도 그렇게 섬겼습니다. 그런데 저는 너머서교회와 보내면서 가족이라는 것이 이렇게 사랑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알고 있고, 서로의 약점이 보이지만, 그것이 사랑으로 하나 되고 연결되어 감을 발견하게 됩니다. 특별히 장례식을 통하여 더욱 간절하게 느껴지게 됩니다. 가장 힘든 순간에 가장 가까이에서 힘이 되는 모습을 통하여 성령이 우리를 사랑을 경험하게 되고 함께 나누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 요한일서 3장 14절에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습니다.”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으면 실상은 죽은 사ㅇ태라는 것입니다. 고통 가운데 있는 자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죽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가까운 성도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실상은 우리는 죽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사랑은 감정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바로 자기희생입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고 잘 되게 하려는 욕구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것이 죄의 본성이라면 성령이 주시는 사랑은 자기희생적인 사랑인 것입니다. 죄는 분리시키지만 성령은 우리를 하나 되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 우리 교회 공동체가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 되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십니다. 자기중심적인 사랑에서 이웃을 위한 섬김과 희생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한 사랑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은 우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바로 사랑으로 하나 되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경험하고 이웃에게 이 사랑을 전하는 것이 성령의 증거 되는 사명인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 성령의 임재를 삶 속에 경험하는 한 주간의 삶이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