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겨울이었던가? 1992년 겨울이었던가? 어느 눈오던 날의 동구아파트(지금의 청구성조타운)의 언덕길에서 눈치우기 작업을 하러 모였던 동네 사람들 중에, 어떤 두 사람이 서로 처음 인사를 나누었는데 이상수 아우스띵과 서광호 였지요. 그 뒤에는 다른 동넷 분들과 함께 이상수 아오스띵 형제님의 부인이신 채 로사 자매님도 자연스레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저는 형제님이니 자매님이니 하는 용어를 모르는 종교가 없는 상태였지요.
그렇게 해서 이상수씨와 4년여를 만나서 친교를 나누는 가운데 예비자 교리를 받게 되었고, 그래서 1996년 7월에 영세를 받았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두 부부가 한 명을 전교하려고 공을 들인게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던것 같읍니다.
로사 자매님의 영명축일이 오늘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오늘로서 500차를 맞게 되는 저희 "바다의 별" 레지오의 2차 주회에서 같은 레지오 단원 중 한 분인 김황동 프란체스코 형제님을 통하여서 알게 되었으니... 저의 무심함이 새삼 죄송스럽군요
채 로사 자매님 ! 쪼끔은 늦었지만 영명축일을 진심으로 축하 드리며, 영육 간에 건강하시기를 주님께 기도드리겠습니다
1586년 4월 20일 페루 리마의 에스파냐 가문에서 태어나 이사벨 데 플로레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성녀는 14살 때에 로사(Rosa)라는 이름으로 견진을 받았다. 용모가 빼어나게 아름다웠던 그녀는 양친의 결혼 계획을 끝내 반대하고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모델 성녀로 모시던 시에나(Siena)의 성녀 카타리나(Catharina)를 본받기 위하여 엄격한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로사는 도미니코회 3회원이 되었는데, 그녀가 부모를 도와야 할 입장이므로 정원의 통나무 집 속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이때부터 여러 가지 신비적인 특은을 비롯하여 환시를 보았는데, 초자연적인 일들이 자주 일어나게 되자, 사제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가 그녀를 심사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들은 로사 주변의 모든 일들이 초자연적인 사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자 로사의 성덕 이야기가 퍼져나가기 시작하여 자기의 집 정원은 영성 센터로 변하였다. 건강이 나빴던 관계로 로사는 돈 곤잘로 데 마사와 그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여 3년 동안 리마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지내다가 운명하였다. 그녀는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하여 1671년 4월 12일 신세계의 첫 번째 성인으로 시성되었으며, 페루와 남아메리카, 서인도 제도, 필리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첫댓글 영명축일 축하드려요. 축일을 맞아 주님의 축복과 은총이 항상 함께 하시길 기도드려요. 언제나 행복하시고요
축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성가정 이루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