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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말합니다.
어때요? 여러분은 이렇게 전하는 게 바울이 해석한 기독교일까요?
예수를 믿고 성령의 은사를 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말씀 순종하고
복음을 땅 끝까지 증거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자 아멘 할렐루야! 합니다.
얼마나 거창하고 멋있고 그럴듯한 슬로건이며 얼마나 타당한 웅변입니까?
그럼에도 왜 교회에서 그 사랑을 구경하기가 그리 힘이 들까요?
하나님의 나라의 기본이 의이며 그 속성은 바로 사랑인데 말입니다.
그건 지금 선 자리가 남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밖이란 말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사역의 현장에서 교제를 하는 중에 깨닫는 바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매우 친하고 입에 있는 음식까지 나누어 줄 정도이지만
말씀만 증거하면 건너편에서 방관자가 되든지 대적하는 걸 보아왔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는 남의 땅에서 종살이하면서 일하고 얻어먹었습니다.
광야에서는 남의 땅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먹고 훈련을 했습니다.
아주 좋았지만 광야는 임시로 머물고 지나가는 곳이라 그들의 땅은 아닙니다.
비록 가나안은 일곱 족속이 선점을 하고 있었지만 엄연히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들의 기업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밖은 남의 땅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 혈통, 육정, 사람의 뜻 다 남의 동네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만 우리의 영원한 영토이며 우리는 그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주권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니
평생을 믿어도 의롭게 됐지만 여전히 죄 가운데 있다는 겸손도
아닌 겸손으로 주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을 현저하게 모독하고 있습니다.
히6장과 10장과 같이 그리스도를 현저하게 욕보이는 사람들입니다.
Q. 율법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인가?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롬3:19)
A. 율법은 죄를 알게 합니다.
어느 교회에 가니까 십계명을 입구에 써 붙여 놨더군요.
또 어떤 목사는 십계명을 바로 강해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거기다가 산상수훈을 글자대로 강해를 한 책이 시중에 나돕니다.
그래서 간혹 거듭나는 것만 줄기차게 주장하는 사람보다 그들은
더 못하다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적어도 율법 아래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옮겨졌다고
주장은 할 것 아닙니까?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요구를 어떻게 이루어
사랑에 이르게 되느냐 하는 진리의 지식이 없으면 도 아니면 개가 됩니다만...
‘율법 아래 있는 자’란 율법 안에 있는 자란 뜻입니다.
성경에서 말씀 안에 있는 자와 반대 되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내 말에 거하면(요8:31) 하신 말씀과 다른 뜻입니다.
율법 안에 있는 자는 자기가 무엇이든지 스스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 안에 있는 자는 말씀이 나로 하여금 하도록 하십니다.
율법 안에 있는 자는 늘 말씀대로 살아야지 하는 의식만 갖고 있어요.
그래서 율법이란 감옥 안에 가둬 둔 것은 구속의 필요를 알도록 함이지요.
유죄 선고 된 것을 알게 한 것입니다. 요즘 병원에 가면 X레이만 아니라
CT나 MRI까지 찍어 보자고 하는데 질병의 상태를 진단하자는 뜻입니다.
그래서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에 꼼짝하지 못하고 따르게 됩니다.
그래서 율법은 죄 없다 하는 자들의 입을 막아 언제든지 심판 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듭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라고 말합니다(갈3:24) 사실은
두들겨 패서 깨닫게 하는 몽학선생이라는 말이 더 나은데 말입니다.
Q.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나요?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 이니라”(롬3:20)
A.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얻을 인간은 해 아래에 없습니다.
감옥에서 모범수가 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 죄를 깨닫고 탄원하는 것이 빠른 것과 이치가 같습니다.
유대교의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눅15장의 집 안에 있는 맏아들과 같은
모범적인 종입니다. 사도바울은 율법아래 있는 자의 입을 철저하게 막아,
죄와 심판 안에 가두고 난 다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으심과 다시 살아나신 공로를 따라 그리스도 안으로 옮겨져 그 피 안에
있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율법의 의로 살아 본 과거가 있기 때문에 철저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 아래에 있을 때를 믿지 않았을 때라고 말하는 겁니다.
율법 안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음을
아는 자들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사실은 복음을 듣고 거듭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 된 다음에 내가 불 못에
갈 뻔 했구나 하는 사실을 알고 구속하신 주의 은혜에 통곡을 하는 겁니다.
율법이 잘 못 된 것이 아니라 율법도 신령한 것이지만 우리 인간의 육신이
연약하므로 마음만 원일 뿐 결코 율법을 온전히 순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바울은 로마서7장에서 진술하면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하고 탄식하고 있습니다(롬7:24)
그런데 성경말씀의 명령동사를 자신 스스로 행할 수 있다고 고집하고 있는
현대판 유대인이 많은 걸 봅니다. 아침마다 QT란 걸 하면서 말입니다.
진정한 QT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동선을 쭉 따라 그의 은혜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 다윗처럼 보좌 우편에 앉으신 주님을 앙망하는 겁니다.
거기서 다윗은 인생의 자산을 얻고 인생의 총소득과 분깃을 받습니다(시16:5)
따라서 진정한 QT는 시편1편과 산상수훈의 8복과 주기도입니다.
아니면 로마서 1장부터 8장까지 왜 내가 구원을 받아야만 했던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구원을 받는가? 그 구원의 결과는 무엇인가? 생각하세요.
나아가서 내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그의 오심과 하늘로 오르심의
그 동선을 따라 믿음으로 그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히브리서를 묵상하세요.
에베소서 2장도 대단히 좋은 큐티의 소재가 되어 하나님의 집으로 지어져 갑니다.
Q. 율법 외에 다른 의는 무엇입니까?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롬3:21)
A. ‘그러나 이제는’(but now) 매우 강력한 외침입니다.
롬3:20절 까지는 굉장한 절망 속에 갇혀 있었습니다.
율법 외에 하는 말은 율법과 상관없는 의란 말입니다.
사실 율법에도 의가 있어요. 다 지키면 하나님이 오케이 하십니다.
그러나 율법과 상관없는 의라고 말씀하시므로 사람이 의로워 지는
것은 율법과 관계가 없는 새로운 하나님의 조치라는 말입니다.
율법으론 다만 죄를 깨닫게 합니다. 내가 심판받을 자임을 알게 합니다.
그러나 의로워 지는 것은 그 율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율법 외에 다른 한 “의” 곧 믿음으로 난 의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사도바울이 이 말을 하면 율법을 무시하게 되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그 의를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말합니다.
사도바울이 얼마나 성경을 많이 연구했기에 율법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을 선포하면서도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하겠습니까? 이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 당시로 보면 가히 혁명적입니다. 그야말로 개혁입니다.
율법과 상관없는 의 가 있다, 행위와 상관없는 의가 있다 이 말입니다.
'믿음과 행함’ 사실은 이 문제가 참 어렵습니다.
성경 말씀이 녹아 들어가서 레마로 변환이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빛을 받았다는 이 한 사건으로 바울이 바울답게
된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라비아 3년 동안의 시간을 거쳤고,
길리기아 다소로 갔고, 또 안디옥에서 성경을 가르쳤고...
거의 10여년의 기간이 지난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녹아들어 가므로 바울이 바울다워 진 것임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1997년 로마서를 강해하면서 아담 안에 있던 내가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 의와 생명이 왕 노릇하는데 옮겨
왔구나 하는 사실을 알고 예수 믿은지 25년 만에 내가 진리를 알게 되었다
소리치고 항상 예수의 죽음을 짊어지고 예수의 생명이 내 몸과 육체에
나타나기를 사모하다가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내가 모시고
있는 주님이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신 주님이시고 보좌에 앉으신 주님이
성령을 통해 내 안에 내주하고 계심을 알고 삼위 하나님 안에서
주를 경배하고 찬양하거나 주의 이름을 간절히 불러 구원을 받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를 믿는 믿음으로 의를 얻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faith in Jesus Christ)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2)
이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입니다.
막11장 22절을 보면 우리말 성경은 ‘하나님을 믿으라’이지만
그러나 원어는 ‘하나님의 믿음을 가져라’ 입니다.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보다 믿음에 포인트를 두고 생각해 보세요.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져라’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아니하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여기서도 believes in Him입니다. 그 안에서 그를 믿는 자에게...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영생을 주신다는 말씀을 믿음으로 의를 얻는 것입니다.
왜 제가 예수를 바로 믿으려고 하는 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을 강조하며 날을 세우느냐 하면 예수는 아무나 믿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과 합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었다가
다시 산 자가 되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그리스도로 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그로 말미암아 옷 입은 자가
되었기 때문인 겁니다(갈3:27) 따라서 예수를 바로 대상적으로 믿는
사람은 십자가 앞에 있으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을
통한 절차와 과정과 방법을 듣고 따라와서 믿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통과한 자리에서 새 하늘에 속한 신령한 땅에 서 있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주를 먹고 마시므로 보좌를 향해 나아가는 장자들의
총회(히12:23)에 참여하는 의인들이 되어 주를 향해 할렐루야를 외치는 겁니다.
첫댓글 아멘!
할렐루야 주께 크게 찬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