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이 본 53선지식 12, 38 이육사 시인의 민족
이육사 시인이야 말로 민족사에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육사는 본래 안동이 고향이다, 안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민족에 대한 역사관을 몸으로 수련했다고 본다,
안동지역에는 학문을 중심으로 삼았던 지역이기도 하나는 점에서 이육사의 문학관 대한 토대를 삼았던 것은 민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시인에 대한역사성을 전승할 수 있는 민족이다,
이육사는 41세에 시 17편을 남기고 민족 시인으로서 식민지 시대에 가장 저항한 시인이락 칭할 수 있기에 우리는 이육사에 대한 전승의 역사를 찬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위대한 민족시인
우리의 위대한 민족 시인을
찬양하는 전 국민 운동으로 나서자
그리하여 이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아 국토위에 거목으로 자라게 해야 한다,
민족시인 에 대한 찬양을 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민족상을 제정하는 것이며
이육사를 잊지 말자는 위미이기도 하다
우리의 민족 시인을 영혼여여 기리 빛내자구나
오늘에 있어서 민족이라고 하는 시인가운데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는 것을 후대에 전하고
영원히 민족 사랑으로 전승하게 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이다.
이육사 시인의 시를 탐독하는데
내 마음에 별이 되어 어두운 세상을
밝은 빛이되는 동방에 등불이라고
우리는 찬양하고자 한다,
이육사가 일본에 유학을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는 ㅈ머이다, 물론 윤동주는 일본에 유학을 가기 위하여 창씨개명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한용운도 일본에 유학을 다녀왔지만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시인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켰던 것을 지켜볼 수 있음이다, 우리문학계에 있어서 민족 시인이라고 칭하는데 이육사에 대한 민족 시인의 전승이라고 볼 수 있다,
이육사 시인에 대한 찬양의 마음을 학습하게 위하여 안동에 있는 이육사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았다, 수일에 기회를 택해 안동에 가보려고 계힉을 세우고 이글을 종결하려고 한다,
2022년 1월 25일
출처: 불교평화연대 원문보기 글쓴이: 진관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