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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깊이 들여다보기]
맛있는, 때로는 찡한
오 인 태
백석과 안도현은 닮았다. 백석도 말년에 주로 ‘우화동시’ 또는 ‘동화동시’라 일컫는 동시를 썼고, 안도현도 ‘어른을 위한 동화’, 예컨대 『연어』, 『관계』, 『짜장면』, 『나비』 외에도 동시집 『나무 잎사귀 뒤쪽 마을』을 낸 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실만을 공통점의 근거로 내밀기엔 부족하다. 시를 쓰다가 동시를 쓰는 시인이 어디 한둘인가.
정작 두 시인이 서로 닮은 점은 딴 데 있다. 바로 음식에 대한 천착이다. 백석이 음식을 재료로 삼아 시를 많이 썼다는 것은 일찍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다. 안도현은 재작년, 그러니까 2008년 초에 펴낸 그의 최근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에서 음식에 관한 시 몇 편을 선보였다. 여기서부터 음식을 공통분모로 하여 안도현을 백석과 연관 짓기 시작했을 테다. 사실, 요즘 와서 백석과 안도현이 닮았다는 말은 부쩍 흔해졌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 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 겨울밤 쩡하니 익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 이 조용한 마을과 이 마을의 으젓한 사람들과 살틀하니 친한 것은 무엇인가 / 이 그지없이 고담(枯淡)하고 소박(素朴)한 것은 무엇인가 (백석, 「국수」 부분, 『백석전집』, 김재용 엮음)
군산 째보선창 선술집에서 막걸리 한 주전자 시켰더니 병어회가 안주로 나왔다 // 그 꼬순 것을 깻잎에 싸서 먹으려는데 주모가 손사래 치며 달려왔다 // 병어회 먹을 때는 꼭 깻잎을 뒤집어 싸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입 안이 까끌거리지 않는다고 (안도현, 「병어회와 깻잎」 전문, 『간절하게 참 철없이』)
평생에 걸쳐 음식에 관한 글을 즐겨 썼던 미국 저술가 피셔에게 사람들이 이렇게 묻곤 했다. “왜 당신은 다른 작가들처럼 권리와 안전을 위한 투쟁이나 사랑에 대해서 쓰지 않고 음식에 대해서 쓰는가?” 그는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배가 고프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가장 쉬운 대답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이 있다. 음식, 안전, 사랑이라는 세 가지 기본적인 욕구는 뒤섞이고 뒤엉켜 있어서 그중에 어느 하나만을 따로 생각하기란 쉽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내가 굶주림에 대해서 쓸 때면, 실제로는 사랑에 대해서, 사랑에 대한 굶주림에 대해서 쓰게 된다. 포근함에 대해서, 포근함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따뜻함에 대한 굶주림에 대해서 쓰게 된다. 그것들은 모두 하나다. (……) 빵을 먹고 와인을 마실 때면, 거기에는 우리의 육체를 넘어서 있는 것들과의 영적 교감이 있다. 그것이, ‘왜 당신은 전쟁이나 사랑이 아니라 굶주림에 대해서 쓰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내 대답이다.1)
피셔의 음식에 대한 관심이 “사랑에 대해서, 사랑에 대한 굶주림에 대해서, 포근함에 대해서, 포근함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따뜻함에 대한 굶주림에 대해서”였다면 백석과 안도현의 음식에 대한 관심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실체는 무엇일까.
먼저, 백석이 그토록 음식에 천착한 것은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과 향수의 발로였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연보2)에 따르면 백석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 오산고보를 졸업할 때까지 고향에서 살았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조선일보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동경 청산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34년부터 조선일보에 근무하다가, 1936년 4월에 함흥 영생고보에 영어교사로 부임한다. 이보다 조금 앞선 그해 1월에 그의 첫 시집이자 유일한 시집인 『사슴』이 나왔다. 알려진 백석의 시 100여 편 가운데 거의가 『사슴』을 낼 무렵, 『조광』과 『조선일보』에 발표한 것들이었다. 1938년에 영생고보 교사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와 활동했으니 백석의 시에 나타난 음식들은 대부분 어릴 적 그의 ‘경험 속의 음식’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소래섭이 쓴 『백석의 맛』에는 재미있는 자료가 눈에 띈다. ‘백석의 음식 지도’3)다. 이 지도는 백석의 시에 나오는 음식을 지역별로 나누고 있는데, 백석의 음식은 크게 다섯 지역에 분포한다. 만주 일대, 평안북도 정주 일원, 함경도 일원, 창원, 고성, 통영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 남해안 일대, 그리고 일본 이즈 반도가 그곳이다. 이 가운데 그의 고향인 평안북도 정주 일원과 인접한 함경도에 가장 많은 음식의 가짓수가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백석의 음식에 대한 기억이 어렸을 때의 경험에 따른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또 흥미로운 점은 경상도 남해안 음식에 관한 것인데, 예의 음식 지도에는 이 지역 음식으로 아가미젓, 건반말, 전복, 해삼, 호루기, 도미, 대구, 파래 따위가 목록에 올라있다. 김재용은 백석시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지방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쓴 시가 많다는 점’을 든다. 그러면 평안도와 함경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백석은 왜 머나먼 남녘 바닷가까지 발걸음을 했을까?
사연인즉슨 이렇다. 1935년 6월, 백석은 친구 허준의 결혼 축하모임에서 한 처녀를 만난다. 그 처녀가 박경련이다. 이때 박경련은 이화여고보에 다니고 있었고, 그녀의 고향이 바로 통영이었다. 백석은 이 박경련을 만나러 통영을 몇 차례 방문했던 모양이다. 백석이 쓴 시에는 「통영」이라는 제목의 시가 두 편 있다. 특이한 경우다. 그 가운데 한 편의 「통영」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바람맛도 짭짤한 물맛도 짭짤한 // 전북에 해삼에 도미 가재미의 생선이 좋고 / 파래에 아개미에 호루기의 젓갈이 좋고 // 새벽녘의 거리엔 쾅쾅 북이 울고/밤새껏 바다에선 뿡뿡 배가 울고 // 자다가도 일어나 바다로 가고 싶은 곳이다 (백석, 「통영」 부분, 『백석전집』)
이 부분에만 벌써 ‘전북’ ‘해삼’ ‘도미’ ‘가재미’ ‘파래’ ‘아개미(젓)’ ‘호루기’ 따위, 일곱 가지 먹을거리가 나온다. 소래섭은 지금까지 알려진 백석의 시 100여 편 가운데 음식이 나오는 시는 60여 편에 이르고, 음식의 가짓수는 110여 종에 달한다고 밝히고 있다. 대부분 ‘어렸을 적’ ‘고향에 대한 아련한 기억’과 함께 퍼 올려진 음식, 그리고 연인을 좇아 나들이한 곳에서 맛보게 된 음식들이다.
새벽 서호시장 도라무통에 피는 불꽃이 왁자하였다 // 어둑어둑한 등으로 불을 쬐는 붉고 튼 손들이 왁자하였다 // 숭어를 숭숭 썰어 파는 도마의 비린내가 왁자하였다 // 국물이 끓어넘쳐도 모르는 시락국집 눈먼 솥이 왁자하였다 // 시락국을 훌훌 떠먹는 오목한 입들이 왁자하였다 (안도현,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 전문, 『간절하게 참 철없이』)
올봄 유난히 성성한 황사 속으로 개나리, 목련이 시름시름 피어나던 즈음,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집에서 안도현 시인과 해장국으로 시락국을 나눠먹던 기억이 새롭다. 천양희 시인, 김용택 시인도 함께한 자리였다. 물론 그 “비린내가 왁자”한 서호시장으로 우리를 이끈 사람은 안도현이었다. 폭음을 하고 난 아침, 쓰린 속을 어루만져주던 그 부드럽고 뜨뜻한 시락국에 대한 기억.
꽤 지난 시간의 경험을 떠올리는 기억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가지는 기억, 예컨대 감각기억, 단기기억, 장기기억 가운데 장기기억에 해당한다. 장기기억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일화기억’이고, 또 하나는 ‘의미기억’이다.4) 음식은 오감 가운데, 주로 미각, 후각으로 감각된다. 인류학자 서튼에 따르면, 미각이나 후각에 의한 기억의 특징은 ‘의미기억’보다는 ‘일화기억’에 의지한다.5)
백석과 안도현의 시에 나오는 음식이 공통적으로 어린 시절, 혹은 어떤 구체적인 장소나 상황과 연관된 것들이라고 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내가 익히 알기론, 안도현 시인만큼 곳곳의 맛집을 꿰뚫고 바지런히 찾아다니는 이가 드물다. 그만큼 그는 식도락가다. 시인이나 작가가 대체로 그런 류들이긴 하지만.
그 안도현 시인이 이번에 두 번째 동시집 『냠냠』을 펴냈다. 이 동시집에는 모두 40편의 동시가 실려 있는데, 하나같이 음식에 관련된 시다. 음식이름, 곧 글감을 그대로 제목으로 뽑은 시가 있는가 하면, 더러 제목만 봐서는 알 수 없는 것들도 읽어보면 모조리 음식 타령이다. 그 왕성한 먹성이라니. 아무래도 작정하고 낸, ‘기획성’이 다분히 엿보이는 동시집이다.
물론, 『냠냠』에 실린 시들에서도 대부분 시인의 어렸을 적 구체적 경험, 일화가 어른거린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읽힌다. 배고픈 시절, 붉은 주렴이 쳐진 중국집을 지나치면서 그놈의 ‘짜장면 냄새’에 환장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경북 예천 촌놈인 안도현 시인이라고 이런 경험이 없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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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침은 참을수록 더 왕성하게 도는 법. 희한하게도 ‘짜장면’은 냄새가 더 맛있다. 안도현 시인은 ‘자장면’을 굳이 ‘짜장면’으로 고집하여 쓴다. 그래서 그의 표현대로, 한사코 코를 잡아당기고, 코는 점점 길어진다. 이 동시의 화자도 ‘짜장면’에 항복한 것이 아니라 ‘짜장면 냄새’에 항복하고야 만다. 하긴 피자나 햄버거에 코와 혀를 빼앗긴 요즘 아이들이 이깟 ‘짜장면 냄새’에 항복하겠냐만.
그럼에도 시인은 단지 시인의 기억 속의 음식들을 아이들에게 “냠냠” 맛있다고 먹어보라 권한다. 그것들은 별다를 것 없이 흔하거나, 고작 어른들의 추억 속에나 있을 법한 음식들이다. ‘멸치볶음’, ‘누룽지’, ‘미역국’, ‘콩자반’, ‘단무지’, ‘파래무침’, ‘김치’, ‘조개탕’, ‘쑥국’, ‘주먹밥’, ‘물김치’, ‘깻잎장아찌’, ‘국수’, ‘찰떡’, ‘곰취나물’, ‘된장국’ 따위.
그가 권하는 음식들이란 게 이처럼 대부분 나이 오십 줄에 들어선 그의 기억 속에나 있는 음식, 곧 우리의 전통음식들이다. 시고, 맵고, 짜고, 비릿하고, 군둥내6)가 나는 이런 음식에 군침 흘릴 요새 아이들은 없다. 신통하게도 그는 이런 맛없는 것들을 맛있게 먹이는 비법을 가지고 있다.
파래무침에선 바다 냄새가 나 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서 있다가 파래는 파래졌을 거야 파도 소리 듣다가 파래졌을 거야 파래무침 먹으면 나도 파래질까? 바다처럼 파래질까? (「파래무침」 전문)
논에서는 쌀밥 밭에서는 보리밥 고들고들 고두밥 아슬아슬 고봉밥 이에 물렁 무밥 혀에 찰싹 찰밥 달달 볶아 볶음밥 싹싹 비벼 비빔밥 함께하면 한솥밥 따돌리면 찬밥 (「밥도 가지가지」 전문) 언뜻 보아 안도현의 이번 동시들은 가볍고 단순하다. 그리고 메시지가 아예 없거나, 빈약하거나 모호하기 일쑤다. 적어도 안도현 정도 되는 시인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왜 이렇게 유치하고, 경박하다 싶을 정도로 시의 체중을 감량시켰을까. 다시,「병어회와 깻잎」에서 군산 째보선창 선술집 주모가 “병어회 먹을 때는 꼭 깻잎을 뒤집어 싸먹어야 한다고, 그래야 입 안이 까끌거리지 않는다고 ”고 말한 부분을 상기해 보자. 바로 이것이다. 『냠냠』의 동시들은 누구나 껄끄러워하고 싫어하기조차 하는 시라는 음식을 아이들이 먹기 좋게 만들고자 하는 안도현식 동시요리법에 의해 빚어진 것들이다. 물론 이는 어린 독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 없이는 터득할 수 없는 비법이다. 그렇다고 그의 시가 아무런 의미 없이 마냥 ‘후각’과 ‘미각’만 자극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음식, 그 이상의 무엇을 ‘생각’해보게 하기도 한다.
아무리 화나도 휘두르지 않아요 주먹을 쥐고 꾹꾹 참아요 아무한테나 주먹을 휘두르는 게 아니죠 (「주먹밥」 전문) 이처럼 안도현의 음식 동시는 대수롭잖고 사뭇 싱거운 듯하면서도 마치 랩을 흥얼거리듯 입 안에서 자꾸 굴리다 보면 갑자기 노래를 멈추고 잠시 생각해보게 하는 그 무엇이 있다. 그 무엇이 뭘까? 이쯤에서, 「밥도 가지가지」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한 번 읽어보시라. “함께하면 한솥밥 따돌리면 찬밥” 어떤가? 안도현의 시는, 또는 동시는 여전히 공동체에 대한 사려 깊은 애정, 곧 건강한 사회적 상상력을 바탕에 둔 것임을 눈치 채게 되리라. 백석이 그러했듯, 이 시대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이랄 수 있는 그가 때로는 위험한 사회적 발언(그렇다. 요즘은 엔간한 사회적 발언조차 위험한 시대가 되어버렸다.)을 서슴지 않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까닭이다.
그가 아이들에게 동시를 맛있게 먹이는 비법은 또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아래 시와 같이 아이들이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로 만드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