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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재현양의 어머니 이미숙씨(왼쪽)와 아버지 오덕환씨
"딸은 연예인처럼, 아빠는 매니저 같이…"
'독학으로 토플 iBT 만점' 뒤엔 아버지가
“다른 집도 딸을 소중히 키우겠지만 아버지는 ‘스폰서’에 불과하죠. 저는 딸을 ‘연예인’, 스스로는 '매니저'로 생각합니다. 회사생활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정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어려운 점이 많겠지만 아버지들이 더욱 분발해야 합니다.”해외연수나 사교육 없이 독학으로 토플 iBT 만점을 기록해 화제를 모은 민족사관고 2학년 오재현(15)양.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전지역의 수재로 자랐던 그의 뒤에는 뜨거운 교육열을 가진 아버지의 뒷바라지가 있었다. 오덕환(44)씨의 유별난 자녀교육법을 들어봤다.
◇ 공부하는 부모는 학원 강사보다 훌륭하다
오씨는 수년째 한 인터넷서점의 프리미엄 회원이다. 오양이 인터넷서점의 ‘온라인 장바구니’에 사고 싶은 책을 올리면 아버지가 즉시 결제한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딸이 부모에게 “책 사달라”고 매번 말해야 하는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한 아버지의 아이디어였다. 이렇게 구입한 책만 3년간 1000만원이 넘는다. 책을 결제할 때마다 오씨는 기쁘다. “내 딸이 지식을 키워간다는 증거거든요.”
회사원 오씨와 학원 영어강사인 아내 이미숙(44)씨 부부는 대전 서구 관저동 소재 아파트에 살고 있는 평범한 중산층. 하지만 자녀교육에 대한 열정만큼은 서울 강남 8학군 학부모 못지않다.
아내 이씨는 세 살 때부터 딸에게 영어 그림책과 동화책을 사주며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는데 주력했다. 오양이 뛰어난 재능을 보이자 취학 후에도 학원에 맡기지 않았다. 돈도 돈이지만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가르치는 곳을 찾기 어려웠기 때문.
오양 혼자 공부를 시키되,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함께 연구했다. 수학은 아버지가, 영어는 어머니가 담당했다. 공부를 가르치려면 자신들도 공부를 해야 했다. 우선 집안에 TV부터 없앴다. 부모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이자 아이도 공부가 습관이 됐다. 중학교에 들어갔다. 딸은 보내주겠다는 학원도 한사코 마다했지만 항상 전교 1등을 유지했다. 지금도 오양은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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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만난 오재현양
◇ “소풍 안 간다”는 딸의 말에 어머니 눈물
아무리 유순한 성격에 착실해도 부모 속 썩히지 않은 자식은 없는 법. 모범생 오양도 예외는 아니었다. 4년 전 중학교 1학년이었던 오양이 소풍 전날 저녁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나 소풍 안 가면 안 돼?” 이씨는 울고 있는 딸을 안고 함께 소리 내 울었다.
초등학생 시절 오양은 반장을 도맡을 정도로 교우관계가 좋았다. 중학교에 들어서자 친구가 급격히 줄었다. 내신성적에 예민해진 사춘기 여학생들이 “쟤는 공부밖에 모른다”며 수군거렸다. 모여서 어디를 놀러 가도 일단 오양은 제외대상. 체육시간에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는데 다가가고 싶었지만 “쟤가 공부 안 하고 왜 여기에 왔지?”라고 할까봐 용기를 내지 못했다. 수업시간에 발표도 하지 못했다. 불편한 교우관계는 예민한 여중생에게 상처가 됐다. ‘이럴 바에 공부는 해서 뭐하나’하는 생각에 슬럼프가 찾아왔다.
오씨는 소식을 듣자마자 집으로 달려와 딸과 긴 대화를 나눴다. 그날부터 딸과 함께 음악공연을 관람하고 시내에서 자주 ‘데이트’하며 웃음을 되찾아줬다. 딸은 머지않아 안정을 되찾았다. 마음 맞는 친구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심리적인 안정 속에 아이가 흔들림 없이 공부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이 공부 한 자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려면 부부싸움부터 하지 말아야겠죠.”
◇ “아버지들, 힘들지만 나서야”
평소 오씨는 자상한 아버지다. “아이들은 관심을 먹고 자란다”는 육아철학을 가진 오씨는 공부에 지친 딸을 데리고 아내 몰래 영화관람 등 데이트를 즐긴다.
오씨는 술과 사람 좋아하는 평범한 샐러리맨이지만 딸 교육만큼은 ‘국가대표’를 꿈꾼다. 주요임무는 정보 수집. 그는 5년 전 딸을 공주대학교 과학영재교육원에 넣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영재교육을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터넷으로 알게 됐어요. 창립 초기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죠. 교수들의 토론식 교육을 받은 덕분에 아이가 수학, 과학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관심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빠듯한 살림살이 속에 학비 역시 정보력으로 아낄 수 있었다. 민족사관고 학비는 한해 약 1500만원선. 수소문 끝에 한 장학재단의 지원을 받아 숨통을 텄다.
오씨는 딸과 공부 계획도 함께 세운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무엇을 할 것인지 매일 일정을 짜고 철저히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경시대회나 자격시험에 응시케 했다. 한 번은 온 가족이 부산에 간 적이 있었다. 오씨는 가족여행을 겸해 1박 2일로 일정을 잡고 딸을 시험장으로 인도했다.
옆에 있던 아내 이씨는 “이제껏 정보 수집 및 실용화는 애 아빠의 몫”이었다면서 “딸은 참으로 운이 좋았다”며 웃었다. 오씨는 시종일관 아버지의 역할을 강조했다. “자녀의 능력을 관심을 갖고 지켜보면 어떤 것을 흡수할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힘들지만 아버지들이 학원과 아내에게 미뤄둔 자녀 교육에 조금 더 신경 쓰게 되면 비약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