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1/03 18:57
[과학세상]박석재/"아이들의 눈에 별을 담게 해주자"
지난해 어린이날을 즈음해 국내 최초로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대전 시민천문대’가 개관했다. 지금까지 6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이곳을 다녀갔는데 다른 지역에서 온 관람객들은 한결같이 “우리 고장에도 이런 시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했다.
무엇이 그리 좋았을까. 무엇보다도 부모 자식 사이에 이야깃거리가
생겨서 좋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부모보다 먼저 북극성을 찾았다고 자랑하는 아이, 별자리 이름을 두고 아이들과 내기를 걸고 직원에게 판정을 요구하는 부모…. 가족이 함께 별을 헤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토요일 밤마다 음악회까지 열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물하고 있다.
▼과외로는 배울 수 없는 감동▼
천문학자로서 부모들에게 꼭 권해보고 싶은 일이 하나 있다. 아이에게 “밤하늘에 별이 몇 개나 있느냐”고 물어보라는 것이다. “별이
많다”고 대답하면 정말 다행이다. 도시에서 자라는 아이들 대부분은
“넉넉잡아 20∼30개 정도”라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뭐 그렇게 중요한가, 천문학자나 관심을 가질 질문이 아닌가
하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실상은 결코 그렇지 않다. 밤하늘에 별들이 쏟아질 듯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자라는 아이들과 ‘많아봐야 20∼30개 정도’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결코 같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차이는 평생 영향을 미치게 되며, ‘고액 과외’로도 결코 메워질 수 없다.
어른들은 달빛에 사람 그림자가 생긴다는 사실도 모르고 자라는 요즘
아이들에게 별을 되찾아줘야 한다. 달 그림자를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이 과연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가슴으로 느끼고, 커서 달빛
속 데이트를 즐길 수 있을까. 40대 중반인 필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도시에서 밤에 손전등이 없이 걸어다니면 도랑에 빠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별은 잘 보였는데 요즘 도시의 밤하늘은 밝은 별만 열댓 개 보일 정도로 밝아졌다. 이것도 세상이 점점 더 삭막해지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한다면 과언일까.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곳이 바로 시민천문대다. 아이들에게 별과 우주에 대한 꿈을 심어주는 곳, 아이들이 시험을 망쳐 울적할 때 별을 보면서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곳, 부모들에게 옛 추억을
되살려 줄 수 있는 곳, 외지에서 손님이 왔을 때 자랑할 수 있는 곳…,
바로 그런 곳이다. 시민천문대에서 별을 보며 자란 아이들은 과학자
SF작가 우주만화가 우주음악가 우주미술가 우주비행사가 될 것이며,
영화를 만들면 한국판 ‘스타워즈’를 만들어낼 것이다.
어느 아시아 천문학자들의 모임에서 일본의 한 천문학자는 일본에 공립 시민천문대가 200개가 넘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로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립 시민천문대까지 합치면 300개가 넘는다.
우주공간을 향해 열려있는 이 수많은 창을 통해 ‘은하철도 999’ 같은 SF 만화영화가 나올 수 있는 저력이 키워진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현재 대전 영월 김해, 단 세 곳에만 시민천문대가 있다. 인구가
2000만명에 이르는 수도권에는 정작 시민천문대 하나 찾아볼 수 없다.
서울 시민천문대는 시내 한복판, 예를 들어 종로에 세워도 아무 상관없다. 서울 근교에서 은하수가 보이는 건립지를 찾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어차피 연구용 천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울 한복판에 시민천문대를▼
주로 해 달 행성만 관측하게 되고 플라네타륨(Planetarium·별자리
투영기) 같은 시설을 이용하면 은하수가 보이는 밤하늘을 재현할 수
있기에 더욱 문제가 없다. 플라네타륨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천체 현상을 보여주는 기계로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투영한다. 겨울철에 여름철 별자리를 보여 줄 수도 있고 적도 남반구에서나 보이는 남십자성 같은 별도 보여줄 수 있다. 그렇지 않고 교통이 불편한 산꼭대기에 시민천문대를 지으면 누가 찾아가겠는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영화 ‘이유 없는 반항’이 촬영된 그리피스 천문대를 꼭 한번 방문해보길 바란다. ‘이유 없는 반항’의 주연을 맡았던 제임스 딘의 흉상이 세워져 있는 이 시민천문대가 로스앤젤레스 생활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럽게 느껴질 것이다. 최근 50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우리 영화 ‘가문의 영광’에서도 시민천문대에서 별을 보며 사랑을 키우는 청춘남녀의 이야기가 나오는 등 우리 시민들의 우주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지고 있다. 이제 우리 서울도 멋진 시민천문대 하나쯤 가질 때가 되지
않았는가.
박석재 찬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