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청와대 방문기념 손목시계
등인스님은 어떤 불자님에게 받은 청와대방문기념 봉황문장이 박힌 손목시계를 큰스님에게 선물로 드렸다. 그런데 큰스님은 그 시계를 가지고 중국에 가셨을 때 사람들에게 한국 총통을 만나 선물로 시계를 받았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고 당신께서 직접 우리들에게 전하셨다. 그 말씀을 들은 우리는 큰스님께 물었다.
“큰스님께서 한국의 대통령을 직접 만나지도 않았으면서 왜 거짓말 하셨습니까?”
큰스님께서는 간단히 대답하셨다.
“무료한 일상에서 사람들과 재미난 얘깃거리로 말한 것뿐이다.”
그런데 큰스님은 그 시계를 소중히 여기셨던 모양이다. 2007년 큰스님이 입적하시고, 2009년 봄 보정 거사님이 큰스님 전기문을 펴내고자 큰스님 관련 자료조사를 위하여 중국 거주 큰스님의 가까운 인연을 초청하여 한국에 왔을 때. 그분들이 큰스님 유산이라며 대통령 시계를 귀히 싸서 가져와 전해 주는 것이다. 큰스님께서는 입적하실 때까지 손목에 차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는 그 시계를 전혀 돌려받을 가치나 필요성이 없었으나 가져온 정성으로 봐서 받아놓지 않을 구 없었다.
<10> 하루에 한 양동이의 물을 넘게 쓰지 않는다.
큰스님의 절약하는 습관은 대단하셨다. 사소한 소비물도 결코 함부로 허비하지 않으셨으며 최소한으로 사용하셨다. 서울 인사동 여래선원에 며칠씩 머무시거나 망경산사에서 잠깐 지내실 때마다 느끼는 것은 사소한 일상 소비물을 무엇이든지 매우 아끼신다는 점이다. 해우소에 가실 때 쓰는 화장지도 절취눈금의 두 세 바닥 정도만 쓰시는 정도였다. 어쩌다 외부에서 해우소 이용하실 때도 화장지를 넉넉하게 뜯어드리면 조금 쓰시고 나머지를 되가져오셨다. 특히 큰스님은 일상에 물 쓰는 것을 경계하셨는데 우리가 물을 충분히 떠드려도 세숫물, 양칫물, 발 닦는 물 등 극소량의 물만 쓰셨다. 하루는 왜 물을 그렇게 작은 양으로 쓰시는가 여쭤봤다. 큰스님께서는 단호히 말씀하셨다.
“출가 사문은 하루에 한 동이의 물을 넘게 쓰지 않는다!“
<7> 큰스님의 뜻을 펴는 활동
(1) 아미타사 개원과 무량수경 강좌 및 정토불교대학
큰스님은 2004년 만경사 중창불사 회향식을 가졌을 때 참석하신 것을 마지막으로 한국 방문이 이어지지 못하셨다.
2005년 우리 스님들이 관정 스님과 인연을 맺은 뒤 염불수행을 하며 인사동 여래선원에서 이사하여 종로 와룡동 비원 앞에 아미타사라는 이름으로 포교당을 개설하였다. 정식 명칭은 ‘나무아미타불 아미타사’였다. 아미타사 법당에 모신 불상은 인사동 여래선원에서 관정 큰스님이 직접 점안을 해주신 아미타불 고불상이고, 불단 양 옆에는 관정 스님이 직접 써주신 ‘南無阿彌陀佛’과 ‘願生西方蓮’ 대련 글씨 족자를 걸었다.
2005년 7월 10일 아미타사 개원식을 갖고 첫 사업으로 정토경전 가운데 가장 내용이 많고 중요한 「무량수경」 강좌를 열었다.
법보신문과 현대불교신문에 광고를 내기도 하였고, 강의 신청한 불자는 50여 명이 신청하여 효란 스님의 강의를 들었다. 7월 20일 개강하여 매주 수요일 저녁 2시간씩 진행된 강의는 원래 3개월 예정이었으나 거의 6개월 동안 진행되었다.
이 강의에는 관정 스님으로부터 법명을 받은 굉명 전병롱 . 굉혜 박병규를 비롯하여 연당 한순남 . 해인향 양경옥 보살처럼 관정 스님을 만난 인연이 깊은 제자들이 참석하였고, 도안 . 홍명화 . 혜명화 . 반야심 . 무량심 . 여래심 같은 불자들도 이미 관정 스님의 정토선 염불을 하고 있었다. 그밖에 이미 염불법문을 많이 공부한 덕암 박종린 거사와 삼보제자 편집을 맡은 평등심 보살 같은 정토수행인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무량수경」 강의가 끝난 뒤 아미타사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미타정토 불교대학을 개설하였다. 이 과정은 6개월 과정이라 기간도 길고 강사진도 실제 정토를 닦는 염불인들이라서 수행에 크게 도움이 되는 강좌였다.
수강생들은 모두 36명이었는데 「무량수경」 강좌에 참가했던 불자들과 새로 원왕생 임헌상 거사를 비롯한 많은 염불수행자들이 등록하였다.
본 강의가 진행되는 동안 정토법문의 권위 있는 강사들을 모셔서 듣는 특강도 진행되었다. ① 만오 스님(고성 건봉사) ② 자림 스님(의정부 포교원) ➂ 정목 스님(양산 정토원장) ➃ 공파 스님(부산 원효센타) ➄ 선용 스님(음성 용운사) ➅ 능행 스님(청주 정토마을) ➆ 주경 스님(강릉 성원사) 같은 스님들이 강사로 초빙되었는데, 그 가운데 음성 용운사의 선용 스님이 공개적으로 관정 스님의 정토선을 소개하였다. 아울러 만오 스님, 자림 스님도 관정 스님과 인연이 있는 스님들이고 특히 정토마을 능행스님은 초청하지 않았는데 관정 스님이 찾아가 도와준 인연이 있는 스님이기도 하다.
6개월 과정의 아미타정토 불교대학 기본소양과정을 모두 마친 회향법회가 2006년 9월 15일 아미타사 법당에서 열렸다. 특별히 이 자리에는 그 동안 강의를 들으며 신심을 일으킨 불자들과 강의를 듣지 않더라도 불문에 들어갈 것을 결심한 불자들을 위해 대승보살계 수계의식도 함께 열려 뜻 깊은 회향법회가 되었다.
이 강좌는 망경산사 스님들과 아미타사 주지 등원 스님의 협력과 노력 때문에 가능했다. 이러한 모티브는 물론 관정 스님이 전한 정토선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분이 모두 관정 스님으로부터 처음으로 정토선을 배워 정토수행을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네 분 스님들 뿐 아니라 앞에서 보았듯이 강사로 참여한 굉선 . 굉명 . 굉혜를 비롯하여 만오 . 자림 . 능행 스님들이 모두 관정 스님과 인연이 있었던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2) 아미타삼존불과 33관음성상 석불봉안
종로 아미타사의 본사는 영월의 망경산사와 만경사 두 절이다. 관정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우리는 서울 시내에서 정토수행 보급에 나서는 한편 본사인 만경사에 아미타삼존불과 33관세음보살을 모시는 불사를 진행하였다. 이는 2002년 관정 스님을 따라 중국에 가서 관정 스님이 일생 동안 불사한 절들을 돌아보고 온 등인 스님을 비롯한 스님들은 만경사도 정토도량의 면목을 갖추는 불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이룩한 불사였다.
만경사는 2004년 관정 큰스님이 친히 오셔서 점안을 해 주신 절이다. 이제 관정 스님은 참석하지 못하지만 제자들이 스스로 이루기로 발원을 하고 불사를 시작했다. 드디어 1년 남짓 준비 끝에 2006년 10월 15일 만경사 도량에서 ‘아미타삼존불 및 33관음’성존 봉안 점안법회를 진행하였다. 그동안 아미타삼존불과 33관음 성상 시주 불자들은 각 가정별로 배포한 사경자료 ‘아미타경’과 ‘관세음보살 보문품’을 정성으로 사경하여 공덕탑에 봉안하는 등, 등인 스님은 여법한 정지 환경 조성의 장엄을 위해 불철주야 온힘을 쏟아 부었다.
관정 큰스님이 투병중이시라 한국에 오실 수 없어 법회에 스승인 큰스님을 모시지 못했지만 정토선법의 선양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당일 법회는 성황리에 치러졌다. 영월지역 주민들과 지역사회 단체장을 비롯 서울, 부산, 대구 등지에서 온 인연불자님들이 200명 넘게 참석한 보람 있는 행사였다.
이 행사를 기하여 망경산사에서는 별도로 무주고혼을 위한 천도재가 2부 순서로 오후에 진행되었는데 이 지역은 과거에 탄광지역으로 탄광에서 희생된 영가들이 많았기 때문에 도량내외 유주무주고혼 등 특별히 탄광 근로자들 가운데 사고로 희생된 영가들의 천도재를 지낸 것이다.
이로서 관정 스님이 길을 열어주신 망경산사 . 망경사 . 아미타사가 정토선 수련을 위한 중요한 터전이 되었다. 이제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은 지 10년이 넘어 만경사 주지라는 중책을 맡아 현장에서 정토선을 수행하고 펴면서 큰스님과 함께 하며 입은 가피를 늘 마음속에서 떠올리고 그 혜명을 펴는데 더 열심히 매진하고자 한다.
나모아미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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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무량공덕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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