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가셔서 십 만원만 더 부쳐 주실래요?
비어 있는 가게를 편물가게가 바꾸어 들어온다 하니,
보증금 십 만원 더 받고, 십 만원만 더 들면 편물가게 하던 자리에
미장원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머니는 배우시면서 손님 관리하고,
정옥이가 학교공부 끝나고 같이하면,
미용사 한 명하고 배우는 애 두 명만 두면 된다고 정옥이가 그러더군요,
다른 장사하고는 틀려서, 처음에만 돈이 들지 안 들어 간데요,
내 친구 집이 미용 재료가게 하는데, 명의는 쉽게 빌릴 수 있고,
정옥이가 곧 시험 봐서 합격하면,
정옥이 명의로 하면 되니까 어려울 것 없어요,
우리 가게라 세 나갈 걱정 없고, 인건비는 일하는 만큼 주는 거라서 괜찮다고 하는 군요,
개업할 때까지 친구네 집에서 책임진다고 하고,
돈도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네요,
처음은 힘들더라도, 가게 셋돈도 두 가게에서 삼 만 원쯤 나오니까 염려 없어요,
제가 잘 돌아갈 때까지는 여기 있을게요,
집도 손볼 곳이 여러 군데 있고 하니, 한 동안 내가 여기에 있을 가 봐요.”
“그래라,
자재관리나, 일하는 것이나, 이번에 집 장만 하는 것이 나 보다 오히려 낫다.
가서 이십 만원 부칠 테니 잘 하고 올라 와라,
그리고 어머니에게 얘기 들었는데 은행에 다니는 아가씨와 사귀고 있다며?
너 지연이 없으면 죽는다고 하더니,
이제 지연이 하고는 완전히 정리 된 거냐?”
“그 날 결혼식에 걔하고 같이 갔습니다,
걔도 처음부터 저를 좋아 했다고 하고,
저도 처음 볼 때 얘가 나하고 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나에게도 걔를 보여줬지요,
이제 누나와 완전하게 끝냈습니다.
그 날 돌아오면서 걔와 제가 서로 확인도 했고,
누나하고는 처음부터 아닌 거였나 봐요, 걱정시켜 드려 죄송해요,
사실은 그래서 말씀 못 드렸던 겁니다.”
“잘 정리 되서 다행이다,
오늘까지도 사실은 그 일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그 아가씨 결혼생각까지 하는 여자지? 하하하
이 아버지를 본받지 말고 너는 한 여자와만 일생을 잘 살아야 한다.”
“어머니에게 삼척 일 말씀 했어요?
자꾸 미루시다 보면 점점 더 말씀하시기 힘들 텐데요.”
“염치가 없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아 얘기 못했다,
애까지 있으니 이제 정리하기도 그렇고 어째야 좋을지 나도 지금은 모르겠다,
너라도 어머니에게 더 잘 해야 한다.”
“여기 집에 손 볼 데 끝낸 다음에 미장원이 잘 되 가면 바로 갈게요,
그 전에라도 제가 급히 필요하시면 전화하세요,
신청한 전화는 삼일 후에 나온다고 했어요,
참! 전화번호 적으셨지요?”
“그래, 차 떠난다,
그만 가라. 너 용돈은 아직 좀 있지?
이십 만원 보낼 테니 남으면 네가 써라,
자! 어서 가, 네 덕분에 네 엄마와, 네 동생들에게 그동안에 못 했던것을
조금이나마 해서 내가 면목이 섰다 고맙다.”
친구들과 만나니,
그전에는 정길이 그들이 부러워 피해 다녔었는데,
이제는 친구들이 정길을 부러워한다.
자신들이 보기에 금의환향이 다름이 아니다,
본래 인물이 좋았던것은 사실이지만, 항상 얼굴에 그늘이 있고,
머리를 숙이고 다니던 녀석이 하루아침에 귀공자가 되어서 나타나,
커다란 집에 이사를 들어가는 것을 보니 배가 아파온다.
대학을 나와도 취직하기가 어려운 때에,
벌써 아버지 회사에서 중직을 맡고 있고,
고등학교도 검정고시 시험으로 내년에는 졸업자격을 얻는다 하니,
저만큼 앞서있는 정길이 경쟁의 상대가 안 된다는 것에 아예 포기를 선언한다.
허우대만큼 자신 있다 하는 운동깨나 한 자신들의 몸보다 잘 빠진 정길의 몸을 보니,
불과 삼사 년 사이에 어떤 일이 그에게 있었던 것인지 너무 궁금하다.
“야! 뭘 그렇게 보냐? 보아 봤자 너희들 형이지 어!
남들한테 물어봐 내가 형이라고 하지.”
“진짜 너 우리가 형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겠다.
우리 하고는 너무 달라서 완전 별세계에서 온 사람 같다.”
“자! 어디든지 가자, 내가 한 턱 쓸 테니까,
너희들 모두 이삿날 힘써서 도와준 거 오늘 충분하게 갚아주지,”
“정길아, 영구가 미군 홀에서 기도 보거든,
준걸이는 깜둥이 홀에서 기도 보고, 오늘 거기 가서 한 잔 하자,
그 새끼들한테 잘 보이면 그 맛도 보여주거든,
벌써 여러 놈 걔들이 딱지 떼어 줬다,
걔들 거기서는 끝 발 좋아, 중학교 졸업하고
몇 년 놀다 거기에 취직했는데, 벌써 2년 이상 했을 걸.”
“야! 임 마 아직 좆 대가리에 털도 없는 놈들이 그 짓 밝히다
나중에 장가도 가기 전에 뼈 삭는다,”
“네가 뭘 모르는데,
송탄은 특별한 곳이라 이 바닥에서 스물이 되도록
딱지 못뗀 놈은 병신취급 당한다,
여기 있는 애들 중 딱지 못 뗀 놈 하나도 없다.”
“얌마, 이제 한 달 정도면 사회인이야,
내가 학교 늦게 들어가서 그렇지 그 때 벌써 어른이었거든,
같은 학년들보다 좆 털도 2~3년 빨리 난 것을 알아야지 위 털이야 봐라,
이제는 봐 줄만 하지 않아? 내 나이 벌써 스물 하나 다,
옛날 같으면 애가 한 서넛은 있었을 거다.”
“너 술 안 먹는 다더니, 아주 술떡이 돼서 정신을 잃고,
친구들에게 떠메어 들어오면 어쩌니?”
“친구 모두들 이삿짐을 날라줬는데 어떡해요?
정말 몇 년 만에 만나는 거라 어제만 어쩔 수 없이 그랬어요,
이제부터는 안 마셔요.”
‘전화개통을 했으니 은숙이에게 먼저~
음, 따르릉 따르릉 바쁜가?
왜 안 받아, 조금 있다가 다시 따르릉, 옳지 받았다.’
“지금 바쁜 시간이지? 오늘 전화 개통 했어,
시간 있을 때 전화 해, 번호는 경기도 송탄 2760번이야,
많이 바빠? 그럼 있다가 꼭해,
내가 아니고 어머니가 받게 될 거야,
전화가 미장원에 있으니까, 응?
여 동생이 미장원 개업할거야.”
“손님 잘 알았습니다,
일 끝나고 나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여러모로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여간 둘러대기는, 그냥 애인한테서 전화 왔다 하면 될 것을,
나중에 어차피 그들도 알게 될 거잖아.
에이! 다시 걸어서 사랑한다고 큰 소리로 대답하기 전에는
전화 안 끊는다고 할까? 흐흐흐.’
아버지가 돈도 보내왔고, 정옥의 보채는 탓에 서둘러 미장원을 개업했다,
편물가게 하던 곳이라 벽이 별로 더럽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디 부실한 곳이 없나 살펴보고,
벽도 새로 칠을 하고, 하루 뒤 미용 재료 상에서 와서,
인테리어와 기구들을 들여놓고, 전기시설까지 다 하는데,
삼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사람을 구하고 간판을 걸고 나자,개업식을 좀 과하게 했다.
떡도 많이 하고, 머리고기와 수육도 충분하게 준비했다,
목사님이 와서 개업예배를 드리며 놀라워한다,
옛날의 동네잔치를 보는 것 같았기에,
신자들을 더 부르라고 하면서, 예배를 드린 후에
모두들 광고를 내 일같이 하라고 채근한다,
본래 손이 큰 정길의 모친이 모자라는 것 같으니 더 시키라고 정길에게 말 한다,
소문이 난 개업식이 되었다.
불과 일 주일도 걸리지 않고, 후다닥 개업했어도
어디 부족함이 없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온 손님들마다 칭찬을 한다,
며칠 동안은 주변의 여자들과 성도들로 인해,
정신을 차릴 사이가 없이 바쁘다가 열흘이 지나자 좀 한가하다.
미처 손을 보지 못했던 곳과, 빠진 기구들을 더 보충하고,
미용실 내의 인테리어를 더욱 아름답고, 고급스럽게 보강했다.
“어머니 힘들거나 괜히 했다는 생각은 안 드세요?
어머니가 재미를 느끼셔야 미장원이 더 잘 될 텐데, 손님이 적다고 심란해 하지 마세요,
조금만 더 지나면 손님이 귀찮아 질 정도로 많아 질 거예요.”
“아냐, 재미있다,
매일 모르던 일 배우고 손님들하고 수다 떠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돈을 만지는 재미가 제일 쏠쏠하단다,
이정도만 되어도 굶을 염려 없으니 이제 조금만 더 있다가 올라가도 되겠다.”
“집문서는 은행금고에 맡겼고,
어머니 도장은 내가 가지고 가니까 도둑맞을 염려는 없어요,
그리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누가 보증 서 달라고 하면 도장도 없고,
이 집도 아들의 이름으로 돼서 서주지 못한다고 하세요,
곤란하도록 조르면 저에게 전화하세요,
어머니는 마음이 약해서 남을 도와주기를 좋아하시니까,
사람들에게 이용당할 수가 있어요,
남들이 이제 좀 살게 되었으니 어쩌고 하면서 벗겨 먹으려고,
별 짓 다 할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되요,
저 냉면 집에 있을 때, 친구에게 속아서 은행에 빚보증 잘못 섰다가
그 냉면 집 사모님 집에서 쫓겨나는 걸 봤잖아요,
아버지께 올라가는 건 염려마세요,
이제 한 달 다 되가니까 미장원 수입하고,
가게세 받은 돈이 모두 얼마나 되나 결산 좀 해보고 됐다 싶으면 올라갈게요,
돈 쓰시는것도 정옥이와 상의를 해서 하세요,
내가 정옥이에게 가르쳐 주고 갈 테니까,
미장원이 잘 될 때까지는 생활비를 줄여야 해요, 뭐 줄일 것도 없지만.”
모친과 자신이 떠나고 나서 어떻게 해야 될 것의 말을 끝내고 나서 쉬려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은숙에게서 오는 전화 벨소리가 들려온다.
“예, 달빛 미용실입니다,
예? 정길이요? 정길아, 가게 나와서 전화 받아라,
조금 기다리세요, 누구라고요?
아! 은숙이, 아! 엄마 맞아요, 그래요 반가워요,
우리애가 얼마나 자랑하는지, 목소리라도 들으니까 좋네요, 호호호
그래 편하게 할 게,
웬 선물을 그렇게 많이 사서 보냈어, 어쩜 그렇게 잘 샀는지,
너무 눈썰미가 좋은가 봐, 정말이지 하나 같이 맘에 드는 것뿐이야,
우리 만나야 되는데,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정길이 못 볼 때보다 더 보고 싶네,
그 목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예쁠지 눈에 그려지네,
은숙이가 오던지 내가 가든지 시간을 만들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