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9월 14일 산악인 엄홍길이 태어났다. 엄홍길은 세계의 고봉인 히말라야 14좌를 한국 최초로 완등했다. 이어 히말라야 얄룽캉(8,505m)과 로체샤르(8,400m)를 2004년과 2007년에 등정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8,000m 이상의 모든 봉우리를 완등한 산악인이 되었다.
김광섭의 <산>은 산을 말한 시 중 나의 기억에 가장 뚜렷하게 각인된 명작이다. 일부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산은 양지바른 쪽에 사람을 묻고
높은 꼭대기에 신神을 뫼신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기슭을 끌고 마을에 들어오다가도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
산은 나무를 기르는 법으로
벼랑에 오르지 못하는 법으로
사람을 다스린다.
산은 울적하면 솟아서 봉우리가 되고
물소리를 듣고 싶으면 내려와 깊은 계곡이 된다.
아무런 해설도 필요하지 않다. “산은 사람들과 친하고 싶어서 / 기슭을 끌고 마을로 들어오다가도 / 사람 사는 꼴이 어수선하면 / 달팽이처럼 대가리를 들고 슬슬 기어서 / 도로 험한 봉우리로 올라간다”는데, 무슨 설명을 덧붙일 것인가! 읽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 뿐이다. 대한민국의 산들은 머지않아 사람 사는 도시와 거리가 까마득한 곳에만 남아 있게 될지도 모른다!
최연호 선배가 살아계실 때 <산을 오르며>라는 시를 썼다. 영어영문과를 졸업했지만 시인은 아니었고, 다만 산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진정한’ 산사람이었다. 여기 ‘진정한’이라는 수식어를 덧붙이는 것은, 산사람을 자칭하지만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며>는 결코 그렇지 않았던 ‘진정한 산사람’ 최연호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산이 거기 있으므로
오르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산에는 일찍 밤이 오기에
몸을 숨기려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우리가 산을 오르는 것은,
생채기가 나고 때로는 피도
눈물도 땀도 쏟으며 거기에
오르려 세월을 보내는 것은
거기서 해가 뜨기 때문이다.
거기서 달이 뜨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며
우리들의 생애가 저무는 줄이야
어쩐들 모르랴마는
그래도 우리가 거기를 오늘도 오르고 있음은
내일 우리의 딸과 아들이
좀 더 쉽게
좀 더 빨리
오를 길을 만들기 위함이다.
이 시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
포항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의 중3 고 이우근 학도병의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를 시 형태로 연과 행을 구분하고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라는 제목을 붙여 2005년 9월 14일 오마이뉴스에 게재함으로써 널리 알려지게 한 일과, 2003년 8월 31일 한겨레21의 원고 청탁을 받아 하계유니버시아드 관련 기고문을 쓰면서 류근삼 선생의 <단풍>을 인용해 유명 시로 만든 일은 나의 잊을 수 없는 보람이다.
이제는 최연호 선배의 <산을 오르며>가 널리 읽혀지기를 소망한다. '건강이 제일'이라는 비논리적 시쳇말을 중얼거리며 산을 더럽히는 사람들이 허다한 우리 사회를 정화(?)하는 과업에 이 시가 한몫을 감당해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