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4년 4월 25일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가 나무에 목을 매어 자결했다. 이자성의 반란군에 북경성을 함락되자 그는 그렇게 삶을 정리함으로써 황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켰다.
국호를 대순으로 새로 정한 이자성은 기세등등한 낯빛을 지었지만 불과 40일 만에 무너졌다. 명나라 잔군과 청군 연합 세력에 밀려 북경을 비워주어야 했고, 결국 1년쯤 뒤 죽음을 맞았다. 아직 39세에 불과한 젊은 나이였다.
1926년 4월 25일 '중화中華' 중국에 이어 '소중화小中華'를 자칭해온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이 죽었다. 그는 일제의 강요로 고종이 포기한 자리를 물려받아 1907년 우리나이 24세에 즉위했고, 1910년 망국을 겪었다.
순종은 “자살은 신에 대한 반역”이라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순종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렇게 했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대왕이 32세 젊은 나이에 갑자기 병사하자 정치보복을 당하게 되었다. 그는 “아테네 시민들이 다시는 잘못된 철학을 하지 않도록 내가 떠난다.”면서 해외로 달아났다.
그에 견줘 플라톤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의연히 독배를 마셨다. 후대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죽음이 없고, 죽음이 다가왔을 때에는 이미 살아있지 않다.”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사후 세계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는 정신적 쾌락을 주장한 에피쿠로스 학파보다 150년가량 선배였는데도 그들마냥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일까?
1943년 4월 25일 우리나라 현대문학 초기의 개척자이자 민족문학의 거두인 현진건과 이상화가 타계했다. 두 사람은 유년기와 청년기를 대구에서 함께 보낸 죽마고우이자, 〈백조〉 동인 활동도 같이한 문우였다. 두 사람은 모두 독립유공자이기도 하고, 뛰어난 작품을 통해 문학사에 나란히 이름을 아로새긴 찬란한 별들이기도 하다.
현진건과 이상화가 마흔 조금 넘긴 나이에 세상을 뜬 것은 식민지 지식인의 정신적 고통을 몸이 받쳐주지 못한 때문일 것이다. ‘술 권하는 사회’의 ‘빼앗긴 들’에 살면서 무에 즐거운 일이 있었으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독립된 조국과 민주화 시대에도 “다리를 절며” 걷는 이들이 허다한데, 엄혹한 일제강점기였으니 오죽이나 괴로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