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 량첸살인기], 한국, 코미디, 2015
조정석이라는 배우에게 하나의 이미지가 고정되어 가는 것 같다. 심각한 상황인데도 가벼운 웃음을 주는 배우. 어쩌면 이 배우에게 자신 만의 색깔이 생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민식, 송강호, 황정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같은. 그리고 오달수. ㅋㅋ.
스크린에서 조정석을 처음 만난 건 [건축학개론](2012)에서였다. 집에 TV를 치운 게 몇 년 되다보니 드라마에서는 거의 본 적이 없고. 이제훈이 연기한 젊은 날의 승민 친구인 납뜩이. 항상 비스듬한 자세와 얼굴 각도, 그리고 입 모양도 삐뚤하게 "납득이" 안간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하던 모습.
[관상](2013)에서는 천재적인 관상가 내경(송강호 분)의 처남인 팽헌 역으로 나와 철저하게 속물이지만 고집스럽지 못해 이내 꺾이고 마는 성격의 캐릭터를 잘 표현했었다. 주연으로 우뚝 선 [나의 사랑, 나의 신부](2015)에서 그의 경쾌하고도 유머스러운 연기가 여배우 신민아와 호흡은 잘 맞았으나 관객을 사로잡기에는 1% 부족했었던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얘기할 [특종, 량첸살인기]에서 부부로 호흡을 맞춘 이하나와의 연기에서도 전작 [나의 사랑, 나의 신부] 냄새가 많이 풍겼다.
아직 몇 편 안되지만 배우 조정석은 앞서 말한대로 가벼운 웃음으로 심각한 상황을 연기하는 배우로 적합할 듯하다. 그래서일까? [역린](2014)에서 그가 보여준 암살자 을수 역은 너무 무거워 보였다.
방송국 사회부 기자 허무혁. 동기들은 잘 나가는데 자신만 아직도 평기자 생활에, 임신 중후반인 큐레이터 아내와는 별거 중인 그저그런 사내다. 불운하게도 자신이 취재한 기사가 하필 대기업 오너 일가와의 연관성이 밝혀지자 해당 기업의 광고철회로 인해 강제로 장기휴직을 명命 받는다. 이 와중에 걸려온 제보 전화 한 통.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연쇄살인범, 그를 알고 있다는 어눌한 억양의 불법체류 여성. 할 일 없던 무혁은 그 여성이 불러준 마포구 상수동의 허름한 지하방을 기웃거리는데.
그곳에서 온갖 살인도구와 핏자국, 살인범이 써놓은 살인 순간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적은 메모가 발견된다. 그 때 불시에 집에 들른 살인범과 맞닥뜨리지만 우여곡절 끝에 메모를 가지고 방송국으로 무사히 돌아온다. 그리고 특종보도.
동기들보다 한참 늦었던 우혁은 이 특종 한 건으로 방송국에서의 스타가 됨은 물론 사회부 차장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연속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살인범을 쫓던 우혁은 그 메모가 [량첸살인기]라는 소설의 한 귀절임을 알게 되고 이를 바로 잡으려 하지만 일은 일파만파 커지고,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을 불러오고 만다. 이제 더 이상 진실을 감출 수 없던 우혁에게 진짜 살인범이 SNS를 통해 연락해 온다.
영화 [특종, 량첸살인기]는 분명 코미디 장르다. 코미디로 시작했고, 코미디로 전개됐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는 묘하게 영화 색채가 바뀐다. 연쇄살인범이 아주 지능적이어서 마치 [량첸살인기]에서처럼 자살로 모든 것을 덮으려 하는 치밀함을 보이는가 하면, 아내가 출산한 딸에 대한 친자확인서를 읽지 않고 불태움으로써 가족 간의 화해 혹은 휴머니즘적인 색깔을 덧입혀 놓았다.
관객들에게 빵 빵 터지는 웃음은 아니었지만 시종일관 키득키득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 전개가 너무 쉽게 무너져버리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끝까지 코미디로 완결지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