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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1648, 유화, 루브르박물관
레오나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이 예수님의 이세상 최후의 만찬이라고 한다면 “엠마오의 저녁 식사”는 예수님의 부활 이후 첫 번째 저녁 식사로서 렘브란드의 걸작중의 하나이다. 렘브란드는 17세기 화란 태생으로 당시 미술에서의 섹스피어라고 말할 만치 유화는 물론 드로잉과 에칭등 여러 장르에 걸쳐 천재적 재능을 발휘한 미술가였다. 그는 주로 광채와 그림자를 잘 다루면서 성경의 주제로 많은 성화를 그렸다. 이 그림은 예수님이 부활 직후 예루살렘 근처 엠마오라는 마을에서 두 제자를 만난 뒤에 날이 저물어 여인숙에 들어가 식탁에서 빵을 뗄 때 어둠 속에서 예수님이 발하는 광채를 묘사한 것 이다. 렘브란드는 작품의 중심을 항상 밝은 빛으로 묘사하였는데, 이 그림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빛으로 두 제자와 여관 종업원을 압도하면서 그들의 눈이 밝아지고 어두운 세상을 상징하는 어두운 방 전체를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인제 가야 할 행선지인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은 겸손한 자세이면서 경건함을 보여 주고 있다. 성경에 심취하여 살던 렘브란드는 엠마오의 이 장면을 여러번, 여러 작품으로 반복하여 제작하였다. . (해설 :노성두/ <천국을 훔친 화가들>)
렘브란트는 엠마오에서 나눈 저녁 식사를 모두 여덟 차례 다루었다. 그림 구성은 여유롭고 쾌적하다. 높은 벽 앞에 등받이가 넓은 의자가 놓여 있고, 식탁을 마주 보고 예수가 앉아 있다. '눈이 열린' 기적이 일어나기에 적당한 곳이다. 왼쪽 창문으로 비쳐든 빛이 식탁을 밝힌다. 빵을 떼는 예수의 손이 식탁 위에 놓여 있다. 여관 주인은 식탁을 응시하고, 두 제자는 예수의 얼굴을 바라본다. 식탁 차림은 조촐하다. 제자들이 자세와 표정에도 과장이 없다. 절제된 식탁과 등장인물들의 무리없는 동작은 예기치 않은 눈앞의 기적을 내면화하는 수단이다. 렘브란트는 레오나르도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서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반사 행동에 관한 회화적 규범을 배웠다. (해설 : 임이섭)
렘브란트, 엠마오의 만찬, 1628년 파리 자크마르 앙드레 미술관
「엠마오의 만찬」은 렘브란트의 예술적 성취를 가장 교과서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그림이 숯덩어리로 그린 것처럼 시커멓다. 시커멓지 않은 부분은 허옇다. 꼭 한 가지 색밖에 사용할 줄 모르는 화가처럼 그렸다. 그림 구성도 무척 단순하다. 그림을 좌우로 잘랐는데, 왼쪽은 어둡고, 오른쪽은 밝다. 그림 속의 광원은 둘이다. 엠마오의 만찬 이야기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뒤에 일어난 기적을 다루고 있다. 예수의 제자들은 스승의 죽음을 목격하고는 무척 낙담해서 뿔뿔이 흩어진다. 그 가운데 두 명은 엠마오로 향했다. 그리고 길을 가다가 우연찮게 만난 사람과 길동무가 되었는데, 아니 글쎄, 저녁을 먹다가 다시 보니 낯선 길동무가 바로 조금 전에 처형당한 예수였다는 것이다. 렘브란트의 그림에서 주인공은 예수가 아니다. 이런 것은 좀 드문 일이다. 예수는 빛을 등지고 앉아 있어서 시커먼 윤곽선밖에 보이지 않는다. 한 제자는 그림 앞쪽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기적을 깨닫고 순종한다. 그러나 다른 제자는 놀란 표정으로 눈을 흡뜨고 눈앞의 기적을 의심한다. 그런데 그가 그림의 중심을 차지한 것은 그가 맡은 극중 역할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 의심하는 제자는 바로 우리들의 의지와 믿음을 비추는 진실 게임 속의 자화상인 것이다. 여기서 빛은 깨우침이고 어둠은 무지이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 몸을 담그고 있는 제자의 일그러진 얼굴에는 표현적 실물감과 입체적 조형감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에 비하면 다른 모든 등장인물들은 검은 색종이로 오려붙인 꼭두각시처럼 보인다. 여기서 빛과 어둠의 구성은 줄거리를 추동하는 동력을 제공한다. 이런 것을 미술에서는 명암법이라고 부른다. 빛은 공간의 깊이와 시간의 전후를 쪼개고 붙일 뿐 아니라, 교훈성과 상징성도 내포한다. (노성두)
사람들은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을 빛의 화가라고 일컫는다. 렘브란트는 명암법을 통해 빛과 어둠의 처리를 극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에서 빛과 어둠은 들숨과 날숨처럼 생명을 짓는 하나의 호흡이며, 그는 빛과 어둠을 이용해서 마음먹은 형태를 만들어낸다. 그가 1628년에 그린 <엠마오의 저녁식사>는 루카복음 24장 13-35절이 그 배경인데, 빛과 어둠의 조화가 매우 뛰어난 작품이다. 이 그림의 구성은 빛과 어둠의 변증법에 의해 지배된다. 렘브란트는 화려한 색상의 대비를 표현한 카라바조나 루벤스의 작품과는 달리 거의 단일한 색조에 명암의 변화를 통해 그림을 그렸다. 예수님을 알아보는 순간을 “빛”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렘브란트에게 이러한 단일한 색조의 그림은 의도적인 선택의 결과이다. 렘브란트가 이 그림에서 달성하고픈 것은 예수님의 ‘나타남’과 동시에 일어나는 ‘사라짐’을 한 화면에 담는 것이었고, 이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을 상상력 넘치게 포착하는 것이었다. 렘브란트는 이를 위해 다양한 색으로 초점을 흐리게 하지 않았다. 렘브란트는 공간을 둘로 구분하고, 광원도 두 곳으로 나눈다. 왼쪽 원경의 광원을 통해서는 부엌일에 분주한 여관 주인을 그렸고, 오른쪽 근경의 광원을 통해서는 제자들이 빵을 떼시는 예수님을 알아보는 장면을 그렸다. 이 순간 암흑과 광명이 예수님의 윤곽을 경계로 충돌한다. 제자들은 빵을 떼는 예수님을 보고 눈이 열린다. 한 제자는 깜짝 놀라면서 예수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고, 다른 한 제자는 의자를 밀치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렘브란트는 두 단계의 반사 행동을 연극의 진행 형식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엠마오의 두 제자 중, 이름이 밝혀진 이가 클레오파스 한 사람이라는 것도 재미있다. 아마도 빛 가운데 얼굴이 드러난 이가 클레오파스일 것이다. 이 그림에서 주인공은 예수님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둠을 자신의 몫으로 선택하셨다. 그분의 모습은 촛불을 사르는 심지처럼 어둡다. 빛을 내는 사람이 그 비춤으로 생긴 그림자 속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흥미로운 발상인가? 또한 예수님의 빛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데, 이것은 제자들이 그분을 알아보는 순간 그분께서 사라졌다는 성경말씀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그림 한 가운데 빛을 받고 있는 클레오파스이다. 그는 놀란 표정으로 빛의 발화점을 바라보고 있다. 그는 무지에서 깨달음으로 한 걸음에 건너뛰었다. 그는 그분께서 길에서 성경 전체에 걸쳐 설명해 주셨을 때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과는 달리, 그분께서 빵을 떼어 주시는 순간 눈이 열려 그분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머리 위에는 위태롭게 걸려 있는 여행보따리가 있다. 그는 이제 한 걸음에 예루살렘으로 달려가 자기가 눈으로 보고 경험했던 부활하신 예수님을 동료들에게 전할 것이다. 그는 동료들에게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뜨거운 감동을 전할 것이다. 보통 렘브란트의 그림을 읽은 때에는 빛이 어디를 비추는가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 작품은 빛이 어디에서부터 기원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 또한 흥미롭다. 그래서 빛의 발화점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인데, 예수님을 실루엣처럼 어둡게 처리했다는 것이 성경을 이해하는 렘브란트의 천재성을 말해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주시자 제자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는데,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기 때문이다. [출처] 엠마오의 저녁식사(1628) - 렘브란트|작성자 그림 읽어주는 신부
카라바조, 엠마오의 만찬, 1601, 런던국립미술관 : CARAVAGGIO Supper at Emmaus 1601 Oil on canvas, 141 x 196 cm National Gallery, London
예수가 식탁의 중앙을 점유하고 가장자리에 두 제자가 앉아 있는 대칭 구성은 엠마오 주제를 다루는 근대 이탈리아 미술에서 거의 예외없이 적용된다. 카라바조는 초록 상의를 입은 제자를 식탁 왼쪽 귀퉁이로 옮겨 두었다. 등장인물을 통해서 보는 이의 시점을 대신했다. 수염과 후광이 없는 젊은 예수는 영광과 권위의 흔적을 보이지 않는다. 굳이 엠마오로 가는 길이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예사로운 젊은이의 모습이다. 그의 왼손이 빵 위에 놓였다. 감사 기도를 드리려고 오른손을 든 순간 제자들의 눈이 열렸다. 카라바조는 제자들의 닫혔던 눈이 열리는 기적을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빵을 나눈 뒤 들어올린 손바닥에 못 자국을 새겨 두었다. 식탁 오른쪽에 앉은 제자는 못자국을 보았을 것이다. 예수의 표정은 고요하다. 그러나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제자들의 반응은 고요할 수 없다. 양팔을 펴서 가로로 벌린 제자의 자세는 의혹과 경악을 드러낸다. 십자가에 달린 이의 자세도 이와 같았을 것이다. 오른쪽 제자의 두 팔은 바로크 시대에 그려진 가장 역동적인 단축법을 보인다. 또, 회화적 공간을 폭력적으로 점거하는 붓의 위험한 도전이다. 나아가서 보는 이를 그림 안의 사건으로 끌어들이는 거역할 수 없는 초대의 손짓이다.
(출처- 노성두/미술사학자- <천국을 훔친 화가들>)
1601년경 카라바조는 [엠마오의 저녁식사]에서 두 제자가 자신들과 함께 동석한 낯선 인물이 부활한 예수임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을 포착하여 그리고 있다. 그들의 놀라움이 잘 표현된 것은 화면 왼쪽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려하는 제자의 모습이다. 예수는 음식에 축복하고 감사기도를 하는 모습이고, 화면 오른편 제자는 두 팔을 크게 벌려 놀라움을 표현한다. 특히 그의 가슴에 달린 조개껍질은 순례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있는 성 야고보의 무덤으로의 순례를 마친 순례자들이 이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엠마오의 두 제자는 순례자로 묘사되기에 이러한 조개껍질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오른쪽, 홀로 서 있는 인물은 성서에는 언급되지 앉았지만 여인숙 주인으로 화가들이 그린 [엠마오 식사]에 종종 나타난다. 그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있다. 식탁 위로 시선을 옮기면 다른 음식과 함께 하얀 테이블보 위에 놓인 빵과 포도주가 두드러져 보이는데, 이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암시한다. 즉 엠마오 식탁은 성찬식이 거행되는 제대가 되는 것이다.
엠마오의 그리스도
[엠마오의 그리스도] 500 ~ 520년경, 모자이크, 산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라벤나
주간 첫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엠마오(Emmaus)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엠마오는 ‘따뜻한 샘’ 이라는 뜻으로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곳이다. 그들은 예수의 죽음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해방이 좌절되었다며 슬퍼하고 있었다. 그때 예수가 다가와 그들과 함께 걸었지만 제자들은 눈이 가리어 동행한 나그네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는 삼 일 전에 일어난 사건에 관해 전혀 모르고 있었고 그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청하였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와 예수의 죽음에 대해 설명했고, 빈 무덤이 발견된 것에 대한 의심과 놀라움을 표했다. 예수는 그들에게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했으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인지 아직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엠마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제자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누가 24:29)하며 그를 붙들었다. 예수는 그들의 초대에 응하고 함께 식탁에 앉았다. 예수는 빵을 들고 축사를 하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러자 제자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바로 그때 예수는 그들에게서 사라졌다. 누가 복음 24장 13절~35절이 전하는 이 이야기는 문학적으로도 매우 세련된 구성을 보여준다. 이 시적인 일화는 중세에 널리 퍼졌으며, 6세기경 최초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최초의 이미지 : 엠마오로 향하는 세 명의 순례자
[엠마오의 저녁식사] 6세기초, 밀라노 대성당, 밀라노
500년~20년 경 이탈리아 라벤나에 있는 산 아폴리나레 누오보의 내벽을 장식한 26점의 모자이크 중 한 장면인 [엠마오의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라벤나는 아리우스주의자였던 고트의 테오도릭이 통치를 하고 있어 이 작품은 드물게 남아있는 아리우스주의 예술의 예를 보여준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했던 그들은 대상을 자연스럽게 묘사하는 헬레니스틱-로만 양식을 따른다. 화면 왼편, 언덕 위에는 엠마오 마을이 있으며, 그리스도는 두 나그네 사이에 있다. 두 나그네 사이의 그리스도는 그들에 비해 조금 더 큰 체구이며, 머리 뒤에 십자가가 있는 후광이 있는데 이는 후에 로마 가톨릭에서 덧붙인 것이다.
또 현재 밀라노 대성당의 보물실에 있는 복음서 표지(book cover)를 장식하는 10개의 장면 중 하나가 [엠마오의 저녁식사]인데, 이 작품도 6세기 라벤나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비잔틴 황제의 선물로 추정된다. 이렇듯 [엠마오의 그리스도]는 두 제자와 함께 엠마오로 향하는 여정과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라는 두 에피소드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9세기의 상아 패널에는 시간과 공간이 다른 두 사건이 한 장면에 나타난다.
CARAVAGGIO Supper at Emmaus 1606/ Oil on canvas, 141 x 175 cm Pinacoteca di Brera, Milan
렘브란트 [엠마오의 그리스도] 1655년, 드로잉, 17x22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Supper at Emmaus 1648 Oil on canvas, 68 x 65 cm / Mus?e du Louvre, Paris
Rembrandt. The Pilgrims at Emmaus. Oil on canvas. Louvre, Paris, France.
Supper at Emmaus / TIZIANO Vecellioc. 1530 / Oil on canvas, 169 x 244 cm Mus�e du Louvr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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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age http://www.격납고.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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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12 (20:14:22) from 222.106.20X.XXX (Etc,Mozilla/5.0 (Windows NT 6.0) AppleWebKit/537.36 (KHTML, like Gecko) Chrome/30.0.1599.69 Safari/537.36) / 수정일 2013-11-28 (13:05:07) from 222.106.20X.XXX (Etc,Mozilla/5.0 (Windows NT 6.0) AppleWebKit/537.36 (KHTML, like Gecko) Chrome/31.0.1650.57 Safari/537.36) 글제목 : 나치를 속인 사나이, 판 메이헤른 #2
판 메이헤른은 다음 위조할 대상으로 얀 베르메르를 선택하고 작품에 대한 연구와 연습을 거듭했다. 네덜란드의 미술사학자와 큐레이터들에 대해 조사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여자와 그녀에게 반한 듯한 보이는 사내가 등장한다. <나자로를 부르심>그려져 있었다. 1936년 판 메이헤른은 자신의 최대 역작에 착수하기 전 올핌픽도 구경하고 나치주의 접하고자 독일을 여행했다. 잘라냈다. 표면을 닦아냈다. 캔버스는 손상된 부분을 서투르게 수선한 흔적을 남기고, 그림의 크기에 잘라 놓은 오래된 나무틀에 오래된 못으로 고정시켰다. 파시스트 체제의 이탈리아에서 도피시켰다고 속였다.
1937년 '엠마오에서의 만찬' 이라는 가짜 그림을 렘브란트 협회에 520,000 guilders에 베르메르의 그림이라고 속여 판다. 같은 해 '최후의 만찬' 이라는 그림까지 팔았다.
<괴링>
<괴링집에서 발견된 그림>
'베르메르'란 화가가 그린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인'이란 이 작품은 네덜란드의 국보였습니다 . 괴링을 족쳐 보니 '한 반 메이헤런' 이란 네덜란드 화가가 자기한테 팔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 화가를 추적해했는데......
판 것을 시인함. 그래서 메이헤런은 전범재판에 넘겨짐. 그런데......
메이헤런 : 그거 가짜에요. 재판관 : 뭐? 메이헤런 : 제가 그렸다구요. 재판관 : 닥쳐! 감히 국보를! 메이헤런 : 아! 그럼 내가 직접 눈앞에서 그려볼께요!
그래서 결국.......
그려냈음. 똑같은 그림을 또 그린게 아닌 원작자 베르메르의 또 다른 그림을 그려냈죠. 국보를 팔아넘긴죄, 전범국에 협력한죄 에서 벗어나게 됨. 이로 인해 나치를 속여낸 신의 손을 가진 화가란 별명도 얻고 자서전 예약까지 받음. 하지만 그림을 위조한 죄로 2년이란 짧은 형을 받게되는데요. 결 국 심장마비로 감옥에서 사망.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충격은..
괴링에게 받은 돈이 모두 위조지폐였다는 것.
가짜일까 진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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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그 어느날 오후 원문보기 글쓴이: 알래스카 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