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하여 닥치는 대로 아무렇게나 썼던 글 몇 편을 정리해 보았다.
바쁜 분들은 그냥 지나가시고 교양을 넓히시려는 분들만 보시라. 공부해서 남 주나?
포모란 무엇인가? (호모가 아니고.)
우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예를 들어 보자. 전통적으로 고부간의 관계는 통제와 순종 아니면 암투와 갈등의 구조였다. 곧 시어머니가 될 우리 집 사람은 시어머니 수업으로 인터넷에서 매일 같이 미즈토크를 섭렵하고 있다. 집사람의 일일 보고에 의하면 요즘은 고부간의 양상이 계약관계, 고용관계, 선후배 관계, 사둔의 팔촌 관계, 배 째라 관계 등등 다양하단다. 그 중에서 우리 집사람은 앞으로 며느리 될 사람과 친정어머니 보다 더 가까운 인생 선후배관계로 자리매김을 하기로 정했단다. 이렇게 바로 전통적 고부관계가 다양하게 발전 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시대인 것이다.
이야기 하나 더!
옛날 어떤 산골에서 태어난 아이가 탄생하면서 엄마의 젓부터 시작해서 이유식을 통해서 밥을 먹게 되었다. 오랫동안 밥만 먹던 아이가 커서 어느 날 장날에 엄마를 따라 왔다가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 맛을 보게 되었다. 얼마나 맛이 있던지 그 다음부터 이 아이는 외식 할 때는 언제나 자장면만 먹어야 하는 줄 알게 된다. 그러나 아이가 더 커서 분식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음식점도 여러 가지고, 음식점 마다 메뉴도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욱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 와서 보니 세계 각국의 음식이 널려있어 무엇을 먹어야 될지 모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포모는 본질적으로 근대가 완성한 동일성에 대한 해체를 주장한다. 동일성과 일원성의 해체는 포모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반이며 이는 곧 바로 다원성에의 강조로 이어진다.
한 마디로 다양성! 더 이상 ‘통뼈는 없다.’ 이 말이다.
사실 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하여 잘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안다. 그러나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날 수도 있다. 그게 무슨 그렇게 차이가 나느냐고?
모르시는 말씀, 그만 하시라. 얼마가 차이가 나느냐 하면 칼럼버스와 당대의 보통 사람들만큼의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사실 컬 씨는 신대륙에 대하여 아무 것도 몰랐다. 오죽하면 발견해 놓고서 그것을 인도로 잘못 알았을까? 그러나 적어도 새로운 땅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끝까지 배를 몰고 나가다 지구 끝으로 떨어질 수도 있을(아직도 지구가 둥글다는 것에 대하여 확신이 없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겁 없이 항해를 해나갈 수 있었던 거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시대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라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대부분의 개신교 목회자들은 후자 쪽이다. 몇 개 없는 호주의 신학교들-전자동화 생산라인 시설을 갖춘 공장 같은 한국의 신학대학들에 비하면 동네 목공소 같은- 중에서도 단 한 곳만이 유일하게 포스트모더니즘시대를 이해하는 신학을 공부 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의 신학교는 어떨까?
포스트모더니즘은 한 마디로 20세기 후반의 시대정신이요, 새로운 세계관을 의미한다. 그것은 하나의 운동이나 경향이 아니고 여러 현상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명칭이라서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요 모호한 현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는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동시에 계승하는 모순이 되는 것 같지만 두 가지 측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은 합리주의에 대한 철저한 비판, 관계적 세계관, 통전주의, 상대주의, 다원주의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성의 자율성, 과학의 효능, 역사의 진보를 맹목적으로 신뢰해왔던 계몽주의를 비판하고 또 그 환상을 깨트렸다는 면에서는 기독교와 코드가 맞는다고 볼 수 있다.
호주 사람들 보통 한국 사람들과 비교하면 지적으로 별 볼 일이 없다. 이런 사람들이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어렸을 적에는 교회에 다녔지만 하이스클에 들어가서 종교는 과학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집어치웠다는 소리들을 많이 한다.
이게 바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결국 근대적 사고를 하는 인간에게 더 이상 중세적 종교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서구교회가 맞았던 상황인 것이다. 중세 신학의 연장인 소위 창조과학운동처럼(요즈음은 지적설계론이라는 논리로 조금 발전했지만) 이성의 도전을 극복해보려는 애처로운 노력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런다고 한 번 떠난 임이 다시 돌아올 리가 없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는 과학과 이성을 넘어선 기독교를 설명하지 못하면 끝장나는 것이다. 이성의 빛 아래서 산산이 부서진 기독교, 그것이 서구 교회의 운명이었다. 서구 교회는 신앙에 대한 근대의 도전에 KO 패를 당했지만 샤머니즘과 결합한 한국기독교는 앞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도전 앞에서 싸워 볼 것도 없이 봄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다.
재수 없는 소리 같지만 나는 지금 같은 한국 개신교는 예상 보다 훨씬 빨리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도 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구조적으로 망하지 않을 수 없는 요소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골고루 갖추고 있으니까. IMF가 심심해서 한국으로 심방 왔던가? 일어날 수밖에 없어서 일어난 거지.
그러나 내 개인적 경험으로는 어떤 이성의 도전도 내가 믿는 신앙 안에서 물리치지 못한 적이 없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지금까지 나는 성경에 관한 무슨 질문을 받아도 이성적으로 설명을 해주지 못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성적인 질문이 아니어서 문제지. 나는 바로 이런 방법이 바로 인문학적 성서해석이라고 본다. 신앙은 이성 이상이지 이성 이하일 수가 없는 것이다.
60 년대 말 ‘세속도시’라는 책을 통하여 종교가 없는 세속화 사회의 도래를 내다보던 하비 콕스(Harvey Cox)가 그 후 한 동안 남미의 아마존 일대를 헤매고 다니더니 10년 쯤 후에는 제 정신이 들었는지 [세속도시의 종교: 포스트모던 신학을 향하여](Religion in the Secular City: Toward a Postmodern Theology)에서는 종교가 소생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는 종교의 소멸보다는 종교의 재생(rebirth)을 이야기 하면서 이 시대에 기독교 메시지를 재해석하는 것이 포스트모던 시대에 신학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하는 하나마나한 옳은 소리를 했다.
원래 학자란 그런 것이다. 하나 마나한 소리를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입증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것이 그들이 밥 먹고 하는 일들이 아닌가? 학자들도 인간인지라 밥을 먹어야 일을 하니까 천하의 하비 콕스도 96년도에 한국에 와서 조용기 목사한테 용돈 좀 받고서 순복음 교회를 방문하고 헛소리 좀 하고 가셨다. 바로 이번에 조용기 목사의 뒷설거지 꾼으로 선발된 당시 국제신학원(순복음 교회 구내에 있는)원장이었던 이용훈 선수의 주가를 올려 준 사건 되겠다.
그런데 콕스가 포스트모던 시대의 신학을 주도할 두 후보 선수로서 근본주의와 해방신학을 추천 하면서 해방신학을 포스트모던 시대 선두에 설 기독교 신학의 MVP 선수로 평가했다. 왜냐하면 해방신학만이 포스트모던신학에 대한 약속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근본주의는 반현대적이며 포스트모더니티에 저항적인데 반해, 해방신학은 사회정의, 가난한 자의 권리, 구원에 대한 공동적 이해, 온건한 개혁으로부터 혁명적인 것으로 확장하는 정책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해방의 신학에서 출발한 기초 공동체와 근본주의의 결정적 차이는 미래 지향적이냐 과거 지향적이냐 하는 것이다. 근본주의 운동은 고립된 개인으로 이루어진 대중에게 호소하는 반면, 라틴 아메리카에서 시작된, 기초 공동체 운동은 철저히 공동체적이었다. 여기서 키워드는 ‘공동체’ 인 것이다. 공동체적 연대성이 없는 것은 아무리 고상해 보여도 정신적인 자위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남미에서 유행했던 기초 공동체란 어떤 것이었던가? 라틴 아메리카, 특히 브라질은 가톨릭 국가로서 국민의 대부분이 태어나면서부터 자동적으로 가톨릭교도가 되는 나라이다. 광대한 영토 곳곳에 밀림이나 쓸 수 없는 거친 땅, 하천, 늪 등이 있어서 교통이 닿지 않는 곳이 많고 지역적으로 고립된 마을들, 부락들이 많았다. 수십 년간 절대적인 빈곤이 양산되고, 외채는 눈 덩이처럼 불어나 경제적인 악순환에 시달리고 있는 나라였다. 문맹률은 부락마다, 지역마다 다르지마는 전체적으로 매우 높다. 이러한 가난과 억압의 현실 속에서 신앙인들이 하느님을 찾고 자조(自助)의 길을 찾기 위한 노력 속에서 기초교회 공동체들이 형성 되고 발달할 수 있었던 특수한 사정이 있었다. 하비 콕스가 기초공동체에 대하여 희망을 발견할 80년대 브라질의 기초교회공동체의 수가 약 8만이나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겠지만.
한국 기독교는 결국 자본주의에 순응하고 자본의 논리에 자신을 맡기는 넓은 길을 택했고 그게 천국 가는 길인 줄 안다. 교회의 대형화의 논리는 자본주의적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신도의 사회적인 책임, 즉, 공동체에 대한 빛과 소금의 책임을 강조하는 일은 컬리큐럼 속에 아예 취급되지 않고 있다. 왜냐? 영업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시대의 영성은 공동체의 신비를 들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개신교의 세(勢)가 줄어들고 있다고 소리도 못 내면서 아우성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개신교가 포머 시대에 과거 지향적 개인주의로 가기 때문이다. 요즘 천주교가 뜬다고 해서 목사님들 배들이 많이 아프신 모양인데 이거 당연한 일이이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부흥하는 한국 천주교, 외국 천주교에 비하면 웃기는 짜장 이지만 일단 포장은 그럴 듯 하거든? 비록 무늬만 이지만 항상 공동체적 이미지를 주거든? 반면에 현재 한국 개신교가 주는 이미지는 자본주의적이며, 비공동체적이고, 비주체적이며, 비연대적인, 자기중심적임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
"신은 죽었다!"
포모의 조상 쯤 되는 니체가 큰 소리로 외쳐서 아직 중세 시대의 잠이 덜 깬 사람들을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인가?‘하고 허둥대게 만들었던 구호였다. 이 말은 사상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어 토론과 논쟁의 소재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말이다.
나도 옛날에는 이 아저씨가 ‘신은 죽었다’고 했다고 해서 내용도 잘 모르면서(지금도 잘 모르지만) 핏대 많이 세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니체 아찌에게 회개하는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는 바이다.
동시에 아직도 니체의 복음을 모르고 도그마의 망령에 사로 잡혀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어서 회개하고 구원받고 전향하라고 간증하는 바이다.
니체는 한 마디로 그 때까지의 서구의 모든 사상에 대하여 ‘웃기고 자빠지셨다’고 통쾌하게 조롱하고 나선 것이다.
뭣 땀시냐? 니체가 요로코롬 말함시롱 무식한 기독교인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사실 미친 것은 니체의 말을 못 알아들어먹는 무지한 기독교인들이다(실제로 니체가 말년에 육체적으로 제 정신이 아니어서 정신병원에서 죽기는 했다) 그러나 요즘도 많은 이들이 정신환자 양노원에서 죽는 경우 같은 것이다. 또 사람이 머리가 너무 좋으면 조금씩 도는 것이 아닌가?
니체의 말인 즉은, 그때까지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지상의 삶을 우습게 보는 초월적 세계와 본질의 세계를 폐기한다.'는 뜻이다. 그는 낡고 추해진 도덕과 질서 때문에 누적된 유럽의 니힐리즘이 그동안 억압된 본성을 파괴적인 방향으로 폭발시킬 것을 예측했다.
즉, 그 때까지의 서구의 전통적 도덕과 종교는 인간의 삶에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선언이다. 할렐루야!
즉, 단순 무식하게 말해서 니체는 가장 자연스럽고 즐거워야 될 본성이 죄스러운 것으로 매장되어온 시대를 그만 보아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교회가 진정으로 죄를 다스리는 것보다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그만 깨달아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신은 죽었다’라는 선언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말했다기보다는 그 때까지 서구 세계가 신주단지 모시듯이 했던 초월세계의 종말, 존재의 역사에서 최고의 존재자로 이해되었던 것의 폐기, 모든 플라톤주의적 서구 형이상학의 가치를 뒤집는 현상을 말한다.
중간은 나도 잘 모르겠고, 좌우당간 결론은 ‘플라톤주의의 끝은 허무주의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이다. 이런 건 무조건 외워야 한다.
니체는 기독교의 하나님의 사망진단을 한 것이 아니라 그때까지 인간들에게 지워진 신이라는 짐을 가볍게 해주고자 한 것이었다. 이 점은 이미 니체보다 1900년 전에 예수가 광야에서 깨닫고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느라고 수고하는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 배낭은 신소재로 만들어 졌으니 가볍고 편하다. 내 배낭을 메고 나를 따르라”고 한 것을 리허설 한 것이다.
예수는 ‘신이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라고 했다. 유대 지도층들에 의해 편집된 계약과 율법의 짐으로부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고자 유대교에서 강요하던 제사나 의무가 아닌 삶의 기쁨 속에서 신의 의미가 드러나도록 했다.
그리고 1,900년이 지나 니체는 예수가 활동한 똑같은 이유, 종교에 의해 필요 이상으로 억압된 인간 본성의 회복을 위해 신은 죽었다고 선언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도 낮잠 자다가 일어나서 한 소리가 아니라 짜라투스투라는 초인이 10년간의 사색과 수행으로 축적된 지혜를 가지고 외친 것이다. 비록 짜라투스투라는 상상속의 인물이지만.
60년대 큰 충격과 파문을 던져 준 로빈슨(John Robinson)의 ‘신에게 솔직히’(Honest to God)라는 작은 책이 있었다. 사실은 로빈슨의 독자적 사상이라기보다는 현대 서양 종교 철학과 신학의 사조를 잘 파악해서 한 방에 날려 보낸 히트작이었다. 로빈손은 이 책에서 한 마디로 2,000년 동안 서양 기독교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던 신의 개념에 대하여 의문부호를 던지며 새로운 답을 찾아야 된다고 쌍 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그는 ‘저 위에 계신 신’ 또는 ‘저 밖에 계신 신’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깊은 데 있는 신’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힌트를 주었다.
로빈손은 니체가 왜 ‘신은 죽었다’고 난리 부르스를 추었는지, 마틴 하이데거가 왜 ‘옛 신은 죽었고 새 신들은 아직 탄생하지 않는 시대’라고 했는지, 마틴 부버가 왜 현대를 ‘신식(神蝕 The Eclipse of God- 달이 태양을 가리는 현상처럼)의 시대라고 했는지, 틸리히가 왜 ’신 위의 신(The God above God)'을 찾아야 한다고 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해 주었다.
간단히 말해서 전통적 신관이 변하지 않을 수가 없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서는 새로운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니체의 외침은 새로운 신의 만남 필요한 때라는 부르짖음이다.
니체는 문명사적으로 하나님이 죽은 것 같은 경험을 토론 한 것이라고 본다.
예수는 이데아로서 신은 우리를 떠났고 대신 아버지와 자녀의 사랑의 관계 속에 실재하는 성부, 아버지로서의 신을 말했다. 예수는 자신을 온전히 사랑에 내맡기는 귀의, 그리고 귀의하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은총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니체는 도덕적 이상으로서의 신의 죽음을 선포하고 자신의 통찰과 선택을 따르는 의지의 길을 택했다.
그런데 인간은 삶 속에 용해되어야 할 예수의 가르침을 저 높은 곳 어딘가에 달려있는 이상적인 가치로 변질시켰다. 예수가 내려놓은 야훼의 자리에 이상화된 예수를 박제로 만들어 다시 앉혔다. 그리고 그 가치에서 멀어지는 것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온갖 도덕과 질서와 죄를 만들었다. 그리고 문제가 생길 때 마다 이상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타인들을 단죄하고 체제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이것이 바로 근대 이전의 기독교의 모습이고 한국에서는 아직도 현재진행 중인 모습이다.
나도 잘 모르는 이야기를 하려니 손에 땀난다. 이럴 때는 예를 드는 것이 최고다. 뭐니 뭐니 해도 역사와 현실 속에서 니체의 열렬한 추종자라면 히틀러를 꼽을 수밖에 없고 잘못된 예수의 추종자라면 조지 부시를 들 수밖에 없다. 비록 니체가 히틀러를 탄생시킨 것도 아니고 예수가 부시를 창조한 것도 아니지만 이 두 분은 두 미친 인간에 대해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가 십자군을 만든 것이 아니라 교황과 십자군이 기독교의 사상에 자신들의 욕망을 투사한 것이고 히틀러는 니체의 초인 이미지에 자신의 파괴적인 힘을 투영하였고 마찬가지로 부시는 자신의 근본주의 신앙을 국제정치에 투영하여 우리의 삶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만들고 있다. 가르침이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가르침에 대한 오해와 기만이 해로운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정신 똑 바로 박힌 인간이라면 히틀러 때문에 니체를 부정할 수 없듯이 부시 때문에 예수를 부정하는 오류를 범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집 둘째는 한국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호주에 와서 다시 고등학교에 2년을 다녔다. 둘째는 한국에서 공부를 전혀 안하는 대신 책을 무지하게 많이 읽은 아이였다. 고교 입학 때부터 대포(대학을 포기한 학생)였기 때문에 정규수업만 마치면 자율학습을 하지 않기로 했었다. 인문계 고교의 풍토는 대학을 갈 사람이나 안 갈 사람이나 무조건 밤 9시까지 학교에 잡아놓는 것이었지만 과감하게 자율학습을 끊었다. 처음에 다른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담임선생이 곤란해 했지만 결국은 내가 “자율학습은 강제 할 수없다”는 당연한 이의를 제기해서 자유를 쟁취했다. 그래서 아이는 3 시에 학교에서 나와 부천에 있는 대형 서점으로 출근해서 일도 도와주면서 책을 읽었다.
그런데 호주에 와서는 숙제 때문에 학교에 못 다니겠다고 징징 울었다. 영어가 문제가 아니라 숙제를 내주면 그 숙제를 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은 패션에 관해서 써오라는 미술 숙제였다. 그 나이의 호주 학생들 보다 몇 십 배 많이 책을 읽었어도 패션에 관해서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어서 무엇을 어떻게 써서 가야할지 난감한 문제가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나이도 두세 살이 어리고 멍청해 보이는 호주 학생들은 숙제를 척척 해낸다는 것이다.
하도 학교를 못 다니겠다고 징징거리기에 내가 “선생님에게 이민자라서 노력을 했지만 잘 몰라서 숙제를 못해서 미안합니다. 라고 하면 되지 않니?“라고 했더니 ”어떻게 번번이 미안하다고 해요? “ 하면서 짜증을 부렸다.
남보다 나이는 많은데 영어도 못하고 숙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교에 다니려니 완전히 고문관이 되는 비참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데로 우리 애는 보통 한국학생들과 전혀 다르게 적어도 정신적으로 만큼은 자유분방하게 자랐어도 호주 학교에 적응을 잘할 수가 없었다.
우리 애의 경우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택하지 않은 사회에 태어나서 학습과 포섭에 의하여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존의 문화와 의식을 받아들이게 된다. 서구화된 현대 세계 속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기존의 문화 즉, 근대성과 자본의 원리, 존재론적인 원리에 던져져서 세상의 기존 질서를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고 따라가기에 바쁘다. 그러나 세상에 온통 이런 사람들만 있다면 사회의 변화, 발전의 여지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사회의식이 얼마나 편견에 치우친 것인지,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에 어떤 특정한 집단의 이해관계가 깃든 것인지를 깨닫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즉,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주체적인 인식 능력이 필수적이다.
서구 세계가 기존 질서의 물결에 탁류와 같이 휩쓸려고 가고 있을 때 마틴 하이데거는 심각하게 “오직 신만이 우리를 구원 할 수 있다."고 하나마나한 소리를 해서 사람들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소리가 아닌 것이다. 계몽주의 이후 서구 세계의 세속화가 시작되었고 신은 점차 인간들의 일상생활에서 사라져갔다. 신적인 것이 더 이상 자연현상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윤리도덕의 영역에서도 규범의 근거로 기능하지 않게 되었고 예술 영역에서도 설자리를 잃었다.
이제 신은 개인적, 사적인 영역에서만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나마도 종교자체를 사회적 현상의 하나로 설명해버리는 추세에 밀려 신은 안방에서마저도 쫓겨난 신세가 되었다.(이 때 하나님은 동양의 조선으로 피신해 온 것은 아닐까?) 이제 신은 사람들의 마음, 그것도 마음이 약한 사람들의 마음 밖에는 있을 곳이 없게 되었다.
이러한 계몽화의 과정을 꿰뚫어본 니체는 일찍이 “신이 죽었다”고 선언함으로서 그 종말을 예견했던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현대의 위기를 ‘신이 없는 세상’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해서 ‘신이 쫓겨난 세상’으로 보고 더 이상 이성에 의해서 축출 당해서 있을 자리가 없어진 신을 다시 불러들여야만 해결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보라! 얼마나 훌륭한 믿음인가? 할렐루야! 자유주의자들은 믿음이 없다고? 무식한 것들!
결론적으로 포모시대는 더 이상 시중에 나와 있는 종교시장에서 상품을 구입하지 않고 즉, 많은 사람들이 기성의 제도적 종교를 버리고 각 개인이 자기에게 맞는 종교를 개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포모 시대의 신학은 그런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 즉, 예수를 심도 있고 다양하게 개발해서 경제력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야한다. 즉, 중국제 상품 같은 저급 대량소비 품목이 아닌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다양성의 시대, 갈가리 갈려진 이 시대에 인류를 하나로 보는 공동체성을 살리는 것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필요한 영성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해답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인 것이다.
첫댓글대구 아카데미 원장으로 다비아를 이끄시는 정용섭 목사의 설교 비평에서도 피력한 ..... “니체는 .... 자신이 살던 당시 유럽 기독교 신앙을 .... 단지 사육당할 뿐인 가축떼로 평가하고, ............ 프로이트는 ......... 집단적 노이로제 현상으로 보았는데, 나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이 모습과 전혀 다르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고 밝혔다는 소감에 저는 적극적인 동감을 표하는 바 입니다.
첫댓글 대구 아카데미 원장으로 다비아를 이끄시는 정용섭 목사의 설교 비평에서도 피력한 ..... “니체는 .... 자신이 살던 당시 유럽 기독교 신앙을 .... 단지 사육당할 뿐인 가축떼로 평가하고, ............ 프로이트는 ......... 집단적 노이로제 현상으로 보았는데, 나는 오늘의 한국교회가 이 모습과 전혀 다르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고 밝혔다는 소감에 저는 적극적인 동감을 표하는 바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