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소피아 사원의 찬란함과 테오도시우스의 오벨리스크그 웅장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건축물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이스탄불은 동서 문명이 만들어 낸 천상의 도시이면서도 신들의 이름으로 참혹한 전장을 치룬 저주의 땅이기도 했다. 성벽은 그 기억을 지워내지 못한 채 아직도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여행 마지막 날, 아야 소피아 박물관에서 조금 떨어진 2차선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지하궁전(예라바탄 사라이)이라 불리는 수장고(水藏庫)였다. 6세기에 만들었으니 천오백년을 견뎌온 셈이다. 지상에는 성벽이 있다면 지하에는 수장고가 그 때의 영광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러한 수장고는 왕궁에서 사용할 물을 저장하거나 전쟁 시 비상용수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심 여러 곳에 만들어 졌다.
가이드가 건네준 팜플릿에는 메두사의 무서운 얼굴과 함께 수장고의 규모가 소개되어 있었다. 길게 늘어선 관광객의 꽁무니를 따라 들어간 지하궁전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다. 길이가 168m, 폭이68m, 높이가 8m로 이곳에만 8만 톤을 저장할 수 있는 거대한 물탱크였다. 관광객의 발길은 마치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물 대신 달러가 수장고 안으로 밀려들어가고 있었다. 차가운 기운, 어두운 조명, 소리의 울림에 몸은 움츠려 들게 했다. 그 시절에 돌기둥을 같은 높이로 잘라내 사용하겠다는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천정을 떠받치고 있는 336개의 돌기둥은 오스만제국 시절 에페소 등지에서 신전의 기둥을 옮겨온 것이라 했다. 기둥의 모양새로 보아 크기, 굵기가 달랐다. 제작 시기나 당시의 유행했던 양식과 약탈한 장소가 제각각 이었던 모양이다. 이곳까지 수 백, 수 천 킬로미터를 운반해 오는 동안 노예들의 비참한 삶을 떠올리니 가슴이 아려온다. 천정 여기저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노예의 설움 같았다.
가장 후미진 곳에 두 개의 ‘메두사’가 있었다. 정수리가 바닥에 곤두박질친 물구나무 자세로, 또 하나는 고개를 모로 돌린 자세로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돌기둥이 너무 무거워서일까. 짓눌린 얼굴에서 뒤엉킨 뱀들이 고개를 쳐들 것 만 같다. 한을 품은 듯한 얼굴을 보는 순간 보복을 당할 것만 같아 오싹 소름이 돋았다.
너무 예뻐 아테나 여신으로부터 저주받은 여자였다. 미인박복이라 하지만 이처럼 가혹하리만치 짓밟힌 여인이 있기는 하는 걸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미인은 질투의 대상이 되는 모양이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뱀이 된 그녀의 얼굴을 푸른 이끼만이 어루만지고 있었다. 미모가 죄가 될 수 있을까. 바다의 신 포세이돈도 메두사의 미에 혹해 농락했고 아테나 여신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질투하고 시기하여 머리카락을 흉측한 뱀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그녀의 목을 베어 자신의 방패에 붙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한 여신의 질투와 저주를 담은 신화가 관광이란 이름으로 지하궁전에서 되살아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색색의 조명은 돌기둥을 채색하기 바쁘고 부채 살 모양의 빛이 물에 닿자 작은 파장을 일으킨다. 바닥에 투영된 빛은 돌기둥의 그림자를 마구 흔들어 댄다. 음침한 기운을 몰아내려는 몸짓인지, 메두사의 분노를 삭혀주려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후미진 수장고에 무시무시하고 노기에 찬 메두사의 목 잘린 얼굴을 두 개나 넣어 둔 것인지. 바라보기만 해도 돌로 변하는 메두사의 위력을 믿어서 일까. 옛 그리스 제국은 신전 머릿돌에 메두사를 새겨 악귀를 쫓았다고 한다. 이처럼 메두사를 곁에 둠으로써 물을 깨끗하게 보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자 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악귀를 내쫓는 금줄이나 부적의 의미를 담았을 것만 같다.
인간의 상상이 수천 년을 이어오는 동안 메두사는 신화라는 탈을 벗고 우리 곁에 서 있다. 음침한데다 보기만 해도 섬짓한 얼굴이 ‘베르사체’란 심벌이 되어 지구촌을 누빈다. 옷과 보석으로 또는 가방과 악세서리가 되어 뭇 여성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메두사에서 베르사체로 화려한 변신은 최고의 미인이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몸값을 올리고 있다.
군주의 욕망만큼 높게 쌓은 성(城)은 공원이 되었다. 권력자들이 남긴 장식품은 보물이란 이름으로 진열되어 있다. 정복자의 끝없는 욕망과 노예의 피와 땀의 흔적은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유적과 유물로 새롭게 태어나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성 소피아 성전의 상흔을 안고 있고 이미 오랜 전에 버려진 수장고와 이스탄불 곳곳은 역사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채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리스에서 마르마라 해협을 건너 이스탄불에 안착한 메두사는 더 이상 저주의 여신이 아니다. 포세이돈에게 농락당한 것도, 아테나에게 질투를 당해 흉측한 머리를 갖게 되었다 해서 억울해 할 필요가 없다. 참담하게 목이 베인 채 수장고를 지키는 신세라 한탄할 필요도 없다. 메두사에게 보내는 동정의 눈길 때문일까. 그녀의 분신은 오늘도 수장고를 탈출해 명품의 날개를 달고 지구촌 곳곳으로 훨훨 날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