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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1. 험한 인생길, 행복을 싣고
徐宅鎭/宇堂
바르고 옳게 살아야`
인간은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며 세상을 주도하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삶에 대해 너무도 모르고 살아 왔다.
편모슬하에서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고 자랐다.
인생은 무엇으로 살아가는 건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건지 모드고 살았다. 사랑을 줄지도 받을 지도, 그리고 바르고 옳게 살지 못했다
사람의 근본은 도덕이다. 삼강오륜 인의예지를 실천하는 것이 도리라고 배웠다. 그러나 나는 실천을 못하고 살았다.
가훈을 ''正義정의之지行행하면 萬事만사和平화평”이라 하고 매일 반성하면서 남은 인생을 바르고 옳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 비극과 고난과 위기의 극복
나는 농촌에서 태어났다. 6.25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가족은 갓 태어난 나 그리고 어머니, 3살 된 형뿐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홀어머니 슬하에서 현명하신 어머니의 보살핌으로 잘 자랐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형이 군대 입대하여 어머니의 농사일을 돕기 위해 진학을 포기하고 형이 제대할 때까지 2년 정도 열심히 일했다. 형이 제대하자마자 뒤 늦게 고등학교 입학하여 굶주린 사자가 먹이 사냥하듯이 열심히 공부했다. 고등학교졸업 하자마자 바로 군대 입대하게 되었고, 3년의 군 생활을 잘 마쳤다. 제대 후 바로 서울에서 살고 있었던 아내와 결혼하여 농촌의 두 칸 방에서 홀어머니와 형님, 형수와 함께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아내와 결혼하게 된 배경이 있다.
이솝우화 이야기에서 인용되었다는 “최진사댁 셋째 딸” 노래가사에서 나오는 칠복이 놈하고 비슷한 사연이 있다. 아내는 건너 마을 전주이씨 양반가문의 6남매 중 셋째 딸 이었다. 부모님 닮아서 활달하면서도 품격이나 됨됨이, 미모도 아름답고 공부도 잘하고 체육특기생으로 도민체천에서 입선할 정도였다 . 혈액형은 AB형이라고 했다. 중학교 다닐 때 생물 시간에 AB형은 천재형이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아 관심이 있었다. 모든 면에서 볼 때 배우자로 선택하면 2세까지도 영향 미치겠다는 막연한 욕심이 생겨 용기를 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방과 후 밤늦게 책가방을 들고 아내 집을 찾아가 마루 위에 책가방을 내 던지고 막무가내 아내를 좋아 한다고 했다. 엉겁결에 돌발 행동을 했던 터라 그 후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학생이 공부나 잘하라고 타일러 보낸 듯 싶다. 그 후로 8년 가까이 열애 끝에 양가부모의 승낙을 받고 결혼했다.
어느 날 아내가 힘든 모습으로 나에게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농촌에서 살기 힘들다. 고무다라를 이고 생선 장사를 하는 일이 있더라도 분가해서 살자며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내게 학원비를 주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 하라고 권했다. 아내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 이틀 날 임신한 아내를 시집에서 머물게 하고, 무조건 광주로 올라 왔다. 그러나 숙식할 곳도 마땅치 않아 외갓집 동생 자취방, 사찰 등을 전전긍긍하면서 열심히 준비했다.
다행히도 시험공부 시작한 지 6개월쯤 되던 때 지방공무원채용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했다. 합격 당시 아내는 시골 큰집에서 득남하고 조리 중이었다 나는 합격 통지서를 갖고 아내에게 달려가 소식을 알렸다
아내는 눈시울을 붉히며 기뻐했다.
시험 합격 3개 후 고향인 ㅇㅇ군 ㅇㅇ면사무소에 첫 발령을 받았다.
아내가 너무 힘들어 해서 어머니와 형님으로부터 양해를 얻고 직장 부근으로 논1,800평을 어머니로부터 증여받아 분가했다. 아내는 이제 평정심을 찾고 마음에 평화가 온 것 같았다. 근무지에서 2년차 되던 해 ㅇㅇ군 부군수실로 발탁인사로 이동하게 되었다. 우리 부부는 ㅇㅇ군 소재지에서 제2의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꿈만 같았다
그러나 우리 부부에게는 큰 위기가 찾아 왔다. 사람에겐 복이 한정된 것 같다. 자연에서는 복은 주시되 관리할 능력이 없고 바르고 옳게 살 지 않으면 주셨던 복을 회수해 가는 것 같다 . 돌이켜 보면 나는 가정을 잘 돌보지 않았고, 직장에서도 성실히 근무하지 않았다.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 후 36세 되던 해까지 10여 년간 방황했다. 아내 말을 빌린다면 직장 근무가 끝나면 집으로 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 친구, 사회인들과 어울려 술이나 마시고 화투놀이 등을 일삼고 방황했다한다.
10여년 동안 생활비를 주지 않아 날일을 다니며 받은 돈으로 낮에는 남이 볼까봐 밤에 쌀 한두 되 팔아 식량을 했다고 한다 . 10여 년 동안 사글세방을 전전긍긍 하는 등 가정이 파탄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직장이나 사회로부터 불신이 거세게 일어났고, 멍한 상태에서 아내와 상의 없이 처자식은 안중에도 없이 직장에 사표를 내 던졌고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 이었다 이런 일이 있었던가?
상상도 하기 싫다. 이 지면을 통해 가족과 직장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죄송스러울 뿐이다. 나 자신과 가족, 직장 동료들에게 반성하고 사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는 나에게 채찍보다는 용기를 주었다.
산 사람 입에 거미 줄 치겠오 하며 여보 힘냅시다 라고 말했을 때 용기가 나 재기의 꿈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딸이 안쓰러웠는지 사위가 안쓰러웠는지 인자하신 장모님께서 우리 집을 찾아 오셨다.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기고 가셨다. 인간은 태어나 삶을 유지하려면 욕구가 있다 그리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한다.
그러니 실망하지 말고 몸과 마음을 잘 추스려 재도전하시게 자네는 해낼 수 있어 그리고 자네 스스로를 다스릴 능력이 필요해라고 하시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간주릴 수 있는 곳을 소개하셨다 바로 이 곳은 도덕공부를 중심으로 하는 우리나라 민족 종교인 聖德성덕道도라며 소개해 주셔서 제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 날까지 34여 년 동안 장모님을 사모하면서 사람의 도리, 사람의 인성을 갖출 수 있는 삼강오륜 인의예지에 대해 공부하고 남은 인생 목표를 세워 실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저를 버리지 않고 힘과 용기를 주시고 하늘나라로 가신 장모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감사드리고 은혜를 잊지 못해 매년 성묘를 다녀오곤 한다.
또한 아내는 가정을 다시 세우기 위해 10여 년간 보험설계사로 활동하면서 탁월한 리더십으로 10여 차례 여왕 상을 수상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아내는 그 동안 강한 태풍이 몰아 쳤어도 흔들리지 않는 유연함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고난 속에 삶이 있다는 신념 하나로 가정의 위기를 슬기롭게 잘 극복하고 실의에 빠진 남편을 재기할 수 있도록 내조하고 3남매 자녀 양육에도 힘써 온 현모양처이기도 하다.
나는 앞으로 그 동안 아내가 힘들었던 처지를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
남은 인생 목표를 세우다
나의 남은 인생 세 가지 목표가 있다면
첫 번째는 아내가 아프지 않고 건강했으면 하고
두 번째는 아내가 스트레스 안 받고 편안했으면 하고
세 번째는 아내가 살고 싶은 곳에 보급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세번째 목표는 달성했다고 본다.
나는 고향에서 은퇴 후 지금까지 광주 서구 유촌동에서 살다가 지난 2018.7월에 빛고을노인건강타운이 소재한 남구 노대동 송화마을로 이사했다. 주변이 아름답고 공기도 좋고 새소리 벌레소리도 듣고 소일걸이로 텃밭도 일굴 수가 있다. 특히, 빛고을노인건강타운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참여할 수가 있어 좋다 아내가 만족해 하니까 다행이다.
첫번째.두번째 목표는 맥락이 같다고 본다.
아내는 나에게 스트레스 안 받게 해 주는 것이 최고 선물이다고 한다. 마음이 편안하면 아프지도 않는다고 한다.
주변 환경도 걸림돌이 있겠지만 나 때문에 더 그렇다고 한다.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나의 거칠은 성격이라고 한다. 거칠은 성격 때문에 가장 스트레스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몸도 마음도 상했다고 한다 참으로 미안하다. 그리고 책임감도 느낀다 그리고 아내는 큰 집 가족들과 갈등이 없지는 않다 모든 것이 나의 부덕의 소치이다 가족들과의 소통이 문제인 것 같다.
그럼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지 고민이다.
먼저, 나 자신이 가장 문제로다. 내 성격 내가 잘 안다 .
하루에 몇 번씩 희로애락 같은 감정이 폭발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인간의 삶은 일과 스트레스의 연속인가 보다. 나 스스로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신앙생활과 독서와 글쓰기, 문학 활동, 취미와 여가생활 등을 통해 나의 정서를 길러 쌓고 갖추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리고 취미를 가진 사람들은 더 나은 분위기를 즐기며 삶에 흥미를 느끼고, 스트레스는 덜 받는다고 한다. 행복도 증진해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런데 아내는 취미가 별로 없다 그 만큼 각박한 세상을 살아와서 그런가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상해 보이고 늘 피곤해 보인다. 이제부터는 아내를 내가 하나하나 챙겨야겠다.
3. 내려놓음과 소통의 중요성
다음은 시집(큰집)과의 문제다.
아내는 나와 결혼한 지 45년이 되었다. 큰 집 가족들과 묶은 갈등이 있다고 본다. 남 탓은 아니지만 갈등 원인을 굳이 분석해 본다면 보이지 않은 시기, 질투, 욕심, 자격지심, 열등감 등에서 비롯되었나 싶다. 심리적으로 볼 때 하나의 사건이 상대에겐 열등감 등으로 인해 감정을 일으키게 될 수도 있다 앞으로 언행을 각별히 조심 해야겠다.
그 동안 나의 실수와 잘못으로 실추된 나의 명예를 되찾겠다는 신념과 도전정신으로 위기를 잘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본다.
저희 형과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나는 지방공무원으로서 승승장구하여 ㅇㅇ군청에서 사회복지과장, 환경녹지과장, 주민생활지원과장 등을 비롯해서 ㅇㅇ면장, ㅇㅇ읍장, ㅇㅇ읍장 등 세 지역의 읍면장을 거쳐 최고급인 서기관(4급)까지 승진하고 대통령 훈장을 받고 영예롭게퇴직한 사람이다. 그리고 현직에 근무하면서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교를 못가고 군대 가게 돼 꿈을 이루지 못해 못내 아쉬워했었는데, 아내의 배려로 직장에 다니면서 야간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했다.
특히, 갈등은 어머니 별세 후 남은 상속 문제로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생존 시 재산을 자녀들에게 모두 증여했다.
그래서 나는 남은 상속 재산은 후손(조카)들에게 물려주자고 형에게 제안했지만 형께서 거부하여 나는 형 뜻대로 하라고 포기했다.
그런데 마을에서 이상스러운 말이 들려 왔다. 형수가 나와 아내에 대해 비방하고 모함을 하고 다녔다는 것이다.
그럴 리 가없다 형님. 형수은 아량이 누구보다도 넓으 신 분 들로서 그럴 리 없다라고 나는 일축했다. 그러나 듣고 보니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자초지경을 알아 볼 필요는 있다고 느꼈다.
아내는 이런 말을 듣고 화가 낫는 지 나에게 가끔 형제지간 혈연을 단절하고 오가지 맙시다 라는 막말까지도 한다.
그렇게 하면 되겠는가? 나는 고민했다. 욕심은 서로 부딪혀 파멸을 일으킨다는 말이 생각났다. 침묵은 독이라고 했던가?
이 말에서 얻은 교훈을 생각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존심과 욕심을 버리고 대화를 하지 않으면 형제지간에 파멸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제안했다. 큰집에 가서 담판 짓고 오겠다고 하였다. 아내가 불숙 나서서 함께 가겠다고 했다. 나는 난감했다.
나만의 축적된 노하우와 특수무장을 하고 갈 계획이었는데 아내와 함께 가면 제 발휘를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로부터 양해를 구하고 그 이튼 날 큰집으로 찾아가 읍소하는 마음으로 정중히 인사 올리고 점심식사를 잘 대접 하였다.
두 분 표정이 나쁘진 안했다. 예감이 좋다고 판단했다.
두 분은 그 동안 우리 집안의 기둥으로써 가장 역할을 해 왔으며 모든 애경사 등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고 집안에 헌신하고 봉사해 오신 분들입니다. 특히, 홀어머니 살아 계실 때 극진히 봉양해 오신 노고에 대한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정중히 올리고 그 동안 나는 차남으로서 예를 다하지 못한 점 그리고 어머니께 불효한 점 등에 대한 사과도 함께 드렸다.
나는 형과 형수님께 처음 드린 말이기도 하다. 참으로 부끄럽기도 하다. 왜 진즉 이런 말을 두 분께 못 했을까? 자존심 상할까 그랬을까 하고 반성했다. 역시 두 분의 표정이 밝았다.
그러면서 두 분 모두 오늘 잘 왔다, 뜻 깊은 자리였다며 긍정적인 표정을 지었다. 나는 힘이 생겼다. 그래서 45년 된 묶은 갈등에 대한 자초지경을 다 털어 놓고 대화를 시작했다.
두 분께서도 이해를 하는 듯 수긍하는 눈치였다. 화기애애한 대화를 마치고, 나는 두 분께 45° 각도로 공손히 인사하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렇게 인사하니 두 분 표정이 어리둥절했다 왜 갑자기 동생이, 시동생이 저럴까 하고 의심의 눈초리였다.
나의 속마음은 형제지간의 묶은 갈등을 풀자는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여 준 것뿐이다 특히, 아내와 모든 갈등을 풀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며칠 후 1차적으로 성과가 나타났다. 형수님으로부터 아내가 점심 초청을 받은 것이다 4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 생겼다. 아내 표정은 내색은 않지만 밝아 보였다.
나의 작전이 먹히고 있는 것 같아 흐뭇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양보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진리가 떠올랐다.
가정이나 사회의 갈등이 없으면 오죽 좋으련만 인간의 욕망과 욕심은 해결하기 어려운 것일까?
4. 나의 다짐과 남은 인생 마무리
우리의 마음은 가만히 두면 어수선해 진다고 한다. 남은 인생 취미생활 등을 하면서 여가를 잘 보내야 하겠다 그리고 사랑으로 가족들과 친애하고 친구, 이웃들과 소통하면서 더불어 사는 모습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하였든가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 괴롭다는 말도 있다. 욕심과 집착을 떨쳐 버리고 가정과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면서 사랑으로 함께 살아갔으면 한다.
생로병사는 자연의 이치요 연속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피할 수 없다
자연에서 태어나 나이 들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다. 두려워할 필요 없다고 본다. 누구나 한정된 시간을 보내고 나의 삶에 대한 발자취를 후대에 남기고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것뿐이다.
그 동안 나는 짧은 기간에도 좌절과 실망, 그리고 성공과 실패가 있었고, 나 스스로를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칠전팔기의 도전 정신으로 재기하여 오늘의 가치 있는 나를 만들었다고 본다.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 갈 것인가? 인간의 근본인 도덕 즉 삼강오륜 인의예지를 실천하면서 사랑으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사랑이 없다면 가족이 있을 수 없고, 사랑이 없다면 친구가 있을 수 없고, 사랑이 없다면 의욕이나 꿈도 있을 수 없다.
정의지행(正義之行)하면 만사화평(萬事和平)이라는 가훈을 가슴에 새겨 바르게 옳게 살아가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으리라 믿는다 .
이젠 험했던 추억 가슴속에 묻고 남은 인생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행복을 싣고 묵묵히 가려 한다.
★ 聖德道(성덕도) : 1952년 창립한 우리나라 민족종교로서 사람으로서 행할 삼강오륜 인의예지를 공부해 인간악성을 고쳐 해탈할 수 있도록 깨우치게 하는 종교다
p.s: 우당선생님의 인생일대의 성공사례를 보는 듯 한 진솔한 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문장쓰기는 1인칭 나를 쓰지 않아야 하고, 문장이 끝나는 마침표와 쉼표 느낌표가 감정을 표현하기에 중요합니다.
첫댓글 다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