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을 다녀올 때마다 느낌이 새롭습니다. 그저 한 장면, 한 장면 여러분들과 함께 느낌을 나눴으면 하는 생각으로 앵글에 담았습니다. 이번에는 방송통신 컨퍼런스에 강연차 참석했지만 대구와 부산에서도 일이 있어서 서울, 대구, 부산을 돌아 왔습니다. 함께 고향 나들이 하시죠. <글.사진=정연진>
깨어나는 새벽의 서울. 코엑스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 밤새 비가 내려 촉촉해진 아스팔트 길을 자동차 하이라이트가 비추며 서울의 분주한 아침을 열고 있다.
코엑스에 근접해 있는 절인 봉은사. 새벽부터 불공드리기 위해 절을 찾은 사람들이 많다. 새벽의 봉은사 큰 부처상 앞. 가부좌를 하고 불상 앞에서 명상에 잠긴 사람들. 실내가 아닌 실외에 대리석판을 크게 깔고 방석을 깔고 앉은 모습이 이채롭다.
봉은사에 아침 햇살이 드리운 모습. 서울의 장점은 도심 한복판에도 이렇게 고즈녁한 곳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컨벤션 센터인 코엑스 바로 길건너 코앞에 있는 절이 봉은사이다. 아침 햇살이 청명하다. 이렇게 흙을 밟으며 산책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고국에서 밟는 땅은 더욱 푸근하다. 심호흡을 길게 해본다. 지금은 9월 중순이지만 얼마 안 있으면 나뭇잎들이 색색으로 물들어 사색을 독촉하는 그윽한 그림자를 드리우겠지…. 나뭇잎 떨어지는 그 가을의 흙 위를 마냥 거닐 수 있었으면…. 봄의 아지랑이, 여름의 소나기, 가을엔 낙엽, 거울에는 고드름과 함박눈.. 4계절의 정경을 만날 수 있는 땅에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벅찬 축복일까.
지하철 3호선에서 한강철로에서 내려다 본 한강변. 올 여름 엄청난 폭우가 많이 왔다지만, 한강변은 여느 때처럼 말쑥하게 단장되어 있다. 사실 도시 한 가운데 이만한 크기의 강이 흐르는 도시도 찾기 힘들다. 재작년 파리에 가보고는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말로만 듣던 세느강, 한껏 낭만적일 것이라 상상해왔던 세느강은 너무나 폭이 작아서 도대체 볼품이 없었다. 요즈음 젊은 세대는 한강에서 선상 결혼식도 하고 구혼할 때도 한강에 띄운 배에서 풍선과 폭죽 터뜨리면서 일생을 약속한다고 한다. 한강도 이제 자동차와 기차들만 오가던 삭막한 강에서 평생 동안 소중한 기억을 새길 수 있는 낭만적인 강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세종문화회관 뒤 많은 시민들의 약속장소였던 분수대는 온데 간데 없고 그 대신 멋들어진 조각공원이 들어섰다. 나무로 만든 벤치도 여기저기 넉넉하게 많아서 앉아서 대화를 즐기고 편하게 쉬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왼쪽에는 장미 밭과 산책길이 있다.
2008년 10월 개장한 광화문 광장은 꽃단장한 상단부와 세종대왕상이 들어설 예정인 중단부, 그리고 충무공 동상 주변인 하단부로 구성되어 있다. 가족들과 나와 꽃밭 사이로 산책하고 사진 찍는 시민들의 모습이 9월인데도, 마치 봄날의 나들이를 즐기는 것 같다.
광화문 광장을 쉽게 오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지하도 대신 횡단보도를 상하좌우로 대폭 늘리고 광화문 광장의 상단부와 하단부 사이를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게 지하터널을 만들어 쉽게 오갈 수 있게 했다.
땅에서 여기 저기 갑자기 물이 솟구치는 분수대 (L.A. 유니버설 시티에 있는 것과 같은)가 앞뒤로 있어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고 있는 충무공 동상 주변.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어린 아이부터 10대들까지 크고 작은 아이들이 웃음 속에 뛰어 놀고 있는 충무공 동상 주변. 근엄하기 만한 충무공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지긋이 자애로운 웃음으로 지켜볼 것만 같다. 그리고 보니, 서울이 2010년 세계디자인도시로 선정되었다는 뉴스가 생각난다. 친환경, 사람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는 도시로 탈바꿈한 서울을 세계가 인정한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까. 21세기의 대세는 디자인이 결정하게 될 것임 (Whole New Mind 라는 책에서)을 생각할 때 서울이 디자인도시로서의 탈바꿈은 결코 범상치 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광화문의 뒷골목은 오피스텔 촌이다. ‘용비어천가’ 라고 이름 붙여진 한 오피스텔. (한자 ‘노래 가’ 가 아니라 ‘집 가’ 자를 썼음) 초등학교 친구가 세들어 있는 단지는 ‘경희궁의 아침.’ 이름도 참 잘도 지었다. 이름만 보면 들어가서 살고 싶다. 서울은 워낙 부동산가격이 높다 보니, 전반적인 사무실 임대료가 비싸서, 이렇게 비교적 저렴한 가격대의 소규모 오피스텔이 자본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의 사업진입을 용이하게 해주고 있다.
정말 얼마 만에 보는 신설로인가.. 광화문에서 조금 내려가 청계천이 시작하는 골목에 <한미리> 라는 퓨전 한식집인데 한식을 어찌나 깜찍하리만큼 아름답게 차려 놓았는지, 메뉴도 정말 창의적이고, 애피타이저, 본 음식 몇 개, 후식 이렇게 코스로 나오는 음식이었는데, 음식이 하나 하나 나올 때 마다 먹기 아까울 정도로 모양이 예뻤다. 거기에 맛도 지극히 훌륭하기까지. 총각김치도 아삭 아삭 너무나 맛있었다. 후식으로 나온 두룹떡은 머리가 좋아지는 떡이라서 임금님들이 먹던 떡이라나. 서비스도 일품. 정말 강추!! 한정식 집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내부가 한식집이 아니라 마치 갤러리에 온 것 같다. 이 식당의 디자인 컨셉은 ‘정갈한 선비의 방’을 공간주제로 하여 ‘임금이 뛰어난 선비에게 내리는 아름다운 만찬’이라고 한다. 가격대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주 비싸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젊은이들이 단연코 많이 찾는 곳은 아무래도 한식보다는 양식. 광화문에 있는 뽐모도로 라는 이태리 스파게티 하우스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 불경기를 잊은 곳이다.하기야 한국의 이태리 음식점들은 우리 입맛대로 다시 만들어서 인지, 미국의 이태리식당보다는 더 맛있었던 것 같다.
광화문에 오피스텔을 가진 초등학교 친구는 세 마리들의 개와 함께 종로구 부암동에 살고 있다. 삼청동에서 10분 정도 북악산 쪽으로 올라가면 이렇게 환상적인 숲길이 바로 집 앞에 펼쳐진 동네가 부암동이라는 곳이다. 광화문에서 차로 15분 거리. 최근까지 제한구역으로 묶여있다 풀려서 부동산 가격도 그리 높지 않단다. 이 연못터는 ‘백석동천’이라는 조선 선조대 이항복의 여름 별장터라고 한다. 가을에 나뭇잎이 색색으로 물들면 이 곳의 풍취는 그 아름다움 속에 넋을 잃을 정도라고 친구가 말한다.
개도맹 서포터즈?? 대체 무슨 뜻일까? 그야말로 한국어의 수난시대이다. 서울사람들은 말을 사정없이 줄여 앞머리만 가지고 약어를 만들거나 거의 토시만 빼고 모두 영어를 쓰는데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개구리-도룡뇽-맹꽁이 보호를 위한 자원봉사자’를 이렇게 표현해 놓았으니, 아연실색할 수 밖에… 신세대들이 ‘감동스럽다’라는 의미로 쓰는 ‘필이 꽂힌다’ 라는 표현도 한국어 대신 영어의 ‘필링’을, 그것도 절반만 뚝 잘라서 필, 여기에다 느끼다 대신에 ‘꽂힌다’ 라는 센 어감으로 표현한다. ‘이메일 보낸다’ 라고 하지 않고 ‘멜 때리다’ 라고 한다. 무슨 일을 있는 힘껏 한다는 말을 ‘빡~쎄게 한다’고 한다. 말이 왜 이렇게 경박하고 쎄지는지… 세태를 반영하는 것이리라. 하기야 우리도 ‘내가 밥 살께” 때신 “내가 쏜다” 라고 쓰니 누구를 탓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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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 사진과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국에 가본지 오래 되신 분들에게 반갑게 다가갔으면 합니다.
양 박은 '한국어 수난시대'가 넘 재미 있는거 있죠 '필이 힌다'는 정말 특상감예요.
실감나는 언어와 '느낌있는' 사진으로 보여주는 최신 고향소식, 반갑게 봄니다. 내년이면 고향 떠난지 40년으로 접어들지만 제가 정작 그동안 고국방문은 몇번 해보지 못했거든요. 후배님의 좋은 글 자주 뵙기 기대하겠습니다. (2년 전인가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이선명 선배님과 함께 우리 만난적 있지요, 반갑습니다.)
좋은 사진과 글, 감사합니다. 서울의 모습이 날로 달라져가네요. 시민들의 쉼터가 많이 늘어나고 세계 디자인도시로 선정 될 정도로 아름답게 변한 모습이 감격스럽습니다. 점점 발전하는 겉모습에 맞춰 내면의 성숙함도 보여주는 고국의 모습을 기원합니다.
정연진님, 반갑습니다. 여전히 사진도 글도 멋지십니다. '정겨운 고향땅'이라 하시니 더욱 애잔한 기분도 듭니다. 제가 묵었던 인터콘티넨탈의 그 자리에서 사진 찍으셨네요. 반가워요^^* 광화문에 가셨으면 교보문고를 꼭 들러 보셨겠지요? 전 그 거대한 교보문고의 팬이랍니다. 정연진님 부라보!!!
부암동에 저도 거처하고 있습니다. 이 일대 산들은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