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식 전 서울신문사장(대한언론인회 고문)이 9월 22일 별세했다. 향년83세. 고인은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신문에 입사 문화부장 주일특파원 전무이사 사장을 역임햏다. 서울신문 사장 재임시엔 여성월간지 '퀸'과 주간지 '피플'을 창간했고 퇴임후엔 한국언론연구원장,한국영상자료원 원장을 지냈다. 유족으론 장녀 경순씨와 사위(한국 철도 책임연구원)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은 9월 26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도 양주시 승동 동산이다. 대한언론인회는 9월 25일 오후 4시 고인의 빈소에서 추도식(사진)을 거행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대한언론인회 제재형 홍원기고문, 김은구 명예회장, 박기병 6.25참전언론인회 회장, 이병대 회장 등 회원 다수와 서울신문 사우등 30여명이 참석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다음은 최서영 전코리아헤랄드 사장의 조사 전문이다.
신우식 형 영전에
최서영(전 코리아헤랄드 사장)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 하지만 형의 부음이 너무 뜻밖이어서 아직도 어리둥절 합니다. 돌이켜보면 형과 나는 지난 1957년 봄 서울신문사 견습기자로 함께 언론계에 들어오면서 금년이 꼭 60주년 회갑이 되는 해가 됩니다. 그 동안 옛 견습동기들이 많이 세상을 떠났지만 형과 나는 그런대로 건강을 유지하면 서 그럭저럭 살아왔는데, 오늘 형을 떠나보내니 이 적막함을 어찌해야 할지 인생의 무상함이 격렬히 느껴집니다. 이제 고인이 된 형은 몇가지 점에서 특이한 족적을 남긴 언론인이셨음을 추모하게 됩니다. 우선 형은 견습기자로 입사하여 한번도 직장을 옮기지 않고 한 우물만 파 면서 성장하여 그 신문의 사장자리에 오른 몇 안 되는 언론인의 한 사람이었 습니다. 뿐만아니라 형은 서울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그 전문성을 살려 평생 문화부 기자로 일관했던 전문 저널리스트이기도 했습니다. 일본 특파원 시절에는 한-일 간에 있었던 고대문화교류의 흔적을 비롯 수준높은 기사를 많이 썼고 한일문화교류 촉진에 힘쓴 기자였습니다. 신문사 사장 자리를 물러난 후에는 대한언론인회 회장을 맡아 노후가 쓸쓸한 퇴역언론인들의 권익을 높이는데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퇴역 문화부 기자들의 친목모임인 고철회(古鐵會)를 조직해 많은 활동도 했습 니다. 고철이란 녹쓴 낡은 쇠붙이란 뜻인데, 쇠는 모든 건축물의 핵심재료가 될 뿐아니라 온갖 장식물의 원료로 쓰이는 문화의 상징성이 있어 언론인다운 이름이라는 칭송을 받기도 했습니다. 신우식 사장. 형이 겪어왔던 우리나라의 지난 세월은 한시도 편한 날이 없었던 격변의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언론계는 더 고단했습니다. 이제 모든 짐 을 내려놓고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이승에서 이루지 못했던 참된 문화생활을 그 곳에서 맘껏 누리시를 간절히 바랍니다. 거듭 두 손 모아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