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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통합적 노동시장을 위한 정책과제
박태주(한국노동교육원)
1. 들어가는 말
경제의 양극화가 새삼스레 화두로 오르내리고 있다. 수출과 내수, 중화학공업과 경공업, 대기업과 중소기업, IT 산업과 비IT 산업간의 양극화가 서로를 기대고 서로를 강화하면서 진행되고 있다(한국은행, 2004). 이러한 경제의 양극화는 사회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고용과 소득의 양극화가 자리하고 있다.
소득격차의 주원인은 노동시장에서 적정한 소득을 실현시킬 수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노동시장에서 탈락?배제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장체제의 미비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점에서 노동시장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경제활동인구의 대다수가 임금노동자이며 이들에게는 임금이 핵심적인 소득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민의 정부 이래 노동연계적 복지(workfare)가 강조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비정규직의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와 “지나치게 낮은 임금 때문에 노동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수단이 되지 못”하고 말았다(Toynbee, 2003: 25). 즉 노동이 복지의 출발점이 되기는커녕 ‘복지없는 노동’이 일반화되면서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의 ‘먹고 사는’ 문제가 우리 사회가 감당하여야할 주된 문제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는 국정지표로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과 이를 통한 사회통합의 실현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성장의 과실은 분배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다시 분배의 악화는 다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특히 기존 축적방식의 양적?공간적 확대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내수시장은 소비시장의 확보와 더불어 국내 기업간 산업간 연관의 확대를 가져오는 핵심적인 요소로 등장하고 있다(유철규, 2004).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임금과 장기적이고 반복적인 실업은 그 자체로서 내수의 부진을 낳아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노동시장 구조가 갖는 문제점의 중심에는 무엇보다도 일자리의 부족과 더불어 노동시장내 격차의 확대를 의미하는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자리하고 있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한 편으로 하면서 실업자와 비정규노동자, 중소영세업체종사자를 다른 한 편에 배치하는 구조이다. 노동시장의 이러한 이중구조는 임금수준의 격차는 물론이거니와, 고용 안정성의 격차, 기업복지 및 사회복지의 격차, 나아가 노동운동의 격차로 나타나고 있다.
이 글은 사회통합이라는 관점에서 현 한국노동시장의 상황과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정책과제를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결론적으로 이 글에서는 세계화의 흐름 등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는 노동시장 모델로서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의 창출과 ‘유연안정성 모델’(flexicurity model)을 제시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일자리의 창출을 위해서는 경제의 성장 이외에도 성장대안적인 일자리 창출, 즉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나누기와 사회적 일자리의 창출의 중요성을 지적할 것이다. 또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비정규직의 보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추진, △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 그리고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가 유기적으로 결합될 필요가 있음을 밝힐 것이다.
2. 심화되는 한국노동시장의 양극화
(1) 노동시장 양극화의 현상
먼저 몇 가지 노동시장 양극화의 지표를 살펴보자. 첫째는 실업자의 규모이다. 먼저 한국의 실업률은 2003년 현재 ILO 기준 3.4%(OECD 기준 3.6%)로 미국(6.0%)이나 독일(11.7%)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유럽의 관점에서 보며 완전고용을 실현하고 있다거나 자연실업률에 근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표실업률은 그것이 구직단념자와 불완전 취업자(추가구직희망자 포함)를 제외하고 있다는 점에서 체감실업률과 괴리를 갖는다. 예를 들어 황수경(2004)은 2002년도의 경우 3.1%의 실업률(70만명)에도 불구하고 불완전 취업자나 실망실업자 등은 80만명(3.5%)에 이르러 넓은 의미의 유휴인력비율은 6.6%라고 진단하고 있다. 또한 최영섭(2004)은 20대 졸업자중 유휴인력(실업자 및 비경제활동인구중 통학 제외)은 2002년 현재 26.2%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당시의 청년실업률 7.0%를 크게 웃도는 수치이다.
한국노동시장의 특징을 이루는 또 다른 요소는 비정규직의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이들의 노동조건이 극히 열악하여 그야말로 사회통합의 아킬레스건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비정규 노동자의 규모는 2003년 현재 783만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55%를 차지하고 있어 정규직의 그것을 능가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노동조건은 정규직보다 더 긴 시간을 일함에도 불구하고 절반의 임금을 받는데다 사회보험의 혜택으로부터 배제되는가 하면 고용마저 불안정한 실정이다(<표1> 참고).
<표1>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근로조건 비교
(단위: %)
자료: 한국비정규노동센터(2003)
비정규직의 증대는 양질의 일자리가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1993-2002년간 500인 이상 대기업 종사자는 211만명(17.2%)에서 127만명(8.7%)으로 줄어든 데 반해 100인 미만 사업체 종사자는 같은 기간동안 845만명(69.0%)에서 1,141만명(78.1%)으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고용구조의 하향집적화는 고용형태별?기업규모별 임금격차의 확대라는 점에서 그 실질적인 내용을 획득한다. 즉 상용직 대비 비상용직의 임금비율은 2000-2003년간 186.9%에서 191.9%로, 500인이상 대기업과 5-9인 영세기업간의 임금비율은 같은 기간 중 172.2%에서 197.2%로 늘어가고 있다.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상대적?절대적 빈곤층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지니계수나 소득 5분위배율의 악화 및 노동소득 분배율의 저하 등으로 나타난다. 더욱이 이러한 노동시장의 양극화에 대해 사회보장체제의 미비는 소득분배의 불균형을 치료하는데 거의 무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유경준외, 2004). 소득 불평등의 확대와 저임금은 사회적 배제를 가져오는 주요한 요인이 된다. 즉 소득으로부터의 배제는 교육권, 내구 소비재의 사용, 의료권, 주거권, 환경권이라는 사회적인 기본권으로부터의 배제를 낳는 것이다. 특히 교육비의 지출규모의 차이는 빈곤의 대물림을 가져오는 요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령 2000년 기준으로 소득 최하위 10%의 연간 교육비지출은 81만원(소득대비 8.1%)인 반면 최상위 10%의 경우에는 484만원(동 14.6%)으로 약 6배의 격차가 나며 사교육비 지출액 격차는 9배에 달한다(한국은행, 2004). 교육이 더 이상 ‘기회의 재분배를 가져다 줄 핵심적인 영역’이 아니라 ‘새로운 불평등 시대를 여는 주범’이 되고 있는 것이다(Cohen, 1997: 100).
(2) 노동시장 양극화의 원인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가져오는 원인으로서는 크게 경제의 양극화 심화와 더불어 소득분배효과(trickle-down effect)의 감소, 그리고 노동조합의 규제력 약화와 같은 노사관계적 요인을 지적할 수 있다.
먼저 경제의 양극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중화학공업과 경공업, IT산업과 비IT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격차에서 드러나고 있다. 이는 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생산성의 격차, 나아가 지불능력의 격차를 낳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설비 및 부품 원자재의 높은 수입의존도에서 보듯 산업연관효과가 미약하여 선도부문의 성장과실이 다른 부문으로 파급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중소기업은 소요자본의 조달이 어려워 투자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요인이기도 한다. 특히 고용의 요람이랄 수 있는 중소기업의 부진은 고용흡수력의 저하뿐 아니라 이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은 청년들이 고용을 기피하게 만들어 구인기업과 구직자가 공존하는 현상을 낳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제여건이나 환경이 차이이외에도 예를 들어 대기업-중소기업간의 하도급구조 역시 기업규모간 임금격차를 낳아 고용구조를 계층화할 뿐 아니라 노동자들을 최하층으로 집적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조성재 외, 2004: iv).
<그림1> 연도별 소득분배 추이
노동시장의 이중화, 나아가 소득분배구조의 악화를 초래하는 두 번째 요인은 소득분배효과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성장 후분배’정책이라 불리는 성장지상주의 아래에서 성장이 분배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복지의 소득개선효과가 미흡할 뿐 아니라 고용구조가 악화되는 가운데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정책이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취약계층에 대한 정부의 방치가 비정규직의 급증은 물론 상대적 빈곤층의 집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IMF 위기 이래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집착함으로써 비정규직을 ‘경제성장이 잊어버린 사람’으로 만들고 말았다.
세 번째는 노사관계적 요인이다. 최근 들어 대기업노동조합이 이중노동시장의 형성, 나아가 노동시장 양극화의 주범이라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다. 이는 고전적인 내부노동시장 이론을 거쳐 최근에는 ‘내부자-외부자이론’ 나아가 ‘핵심-주변부모델’(유연기업모델)로 구체화되고 있다. 내부자-외부자 이론은 내부자들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시장지배력(높은 대체비용(turnover cost))을 활용하여 경제적 지대(rent)의 분배과정에 참여하는 반면 외부자들의 신규진입과 임금인상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부자들은 외부자들을 수탈하여 임금격차에 따른 고용구조를 계층화시킬 뿐 아니라 하향집적화를 초래한다(Lindbeck and Snower, 2001). 또한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기업으로 하여금 기업(내지 기업집단간)내의 노동자들을 중심부와 주변부로 나누어 후자를 수량적 유연화의 지렛대로 삼는다(Kalleberg, 2001). 반면 내부자(핵심부문 또는 정규직)에 대해 사용자들은 한편으로는 효율임금을 통하여, 다른 편으로는 노조 포섭전략의 일환으로 개별 기업차원의 임금인상을 허용하여 왔다(유철규, 2004 참조). 노동조합이 이러한 고용구조의 하향집적화를 규제하기는커녕 때로는 이러한 이중구조의 상층부에 안주하여 온 측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의 노조활동에 대한 정규직 노조의 반응에서 잘 드러난다(강현아, 2004 참고). 비정규직에 대한 노조가입자격의 제한이나 무관심, 심지어는 적대적인 대응 등이 그것이다. 이는 독과점 대기업에 뿌리를 둔 기업별 노조와 경제적 실리주의의 결합이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보건의료부문이나 금속 및 금융부문에서 나타나는 산별구조로의 이행과 산업별 최저임금의 설정, 그리고 제한적이나마 연대임금정책의 추구 등은 적극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취약노동자들에 대한 정부의 이러한 방치와 노조의 낮은 저항능력은 노동자들을 기업의 단기적인 노무관리전략의 희생양으로 만들었다. 세계화와 급격한 기술혁신, 그리고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의 대두는 자본의 노동력 활용방식을 노동의 외부화와 비정규직화에서 그 해법을 찾아온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경제구조의 양극화와 정부의 방치 그리고 노동조합의 역할에 의해 형성되는 측면을 지닌다. 따라서 이를 일방적으로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의 산물로 보는 것은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노동시장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통합의 노동정책적 과제를 일자리 만들기와 노동시장의 유연안정화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3. 일자리 만들기
(1) 성장의존적인 일자리 창출의 한계
일자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과 가족의 생계유지를 위한 소득확보의 유일한 수단이다. 이러한 점에서 일자리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만나는 접점이자 사회통합의 출발점이다. 따라서 일자리가 없다는 사실은 공적인 사회부조가 미비한 상태에서 개인을 ‘쓸모없는 잉여인간’(Forrester, 1996: 28)으로 내몰 뿐 아니라 가족의 위기와 사회적 배제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간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런데 이 경우 주요한 일자리 창출정책의 중심에는 무엇보다도 성장(투자활성화)을 통한 일자리 만들기가 놓여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몇 가지 점에서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첫째는 경기침체기에는 그 효과가 크지 못하다는 점이다. 투자가 부진하고 그나마 실제로 투자를 하더라도 수출에 필요한 설비 및 부품을 해외수입에 의존할 경우 그 고용효과는 더욱 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투자의 활성화가 대기업을 주된 대상으로 삼아 이루어진다면 대기업 고용의 감소경향을 감안할 때 그 효과는 더욱 반감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의 투자활성화노력은 자칫 고용을 창출하기보다는 기업측에 규제완화나 비정규직의 창출, 또는 정부재정의 부담을 기업의 이윤으로 전가시키는 효과만을 안겨줄 수도 있다
.
두 번째는 성장에 따른 고용창출능력이 점진적으로 저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고용구조의 하향집적화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성장의 고용창출효과가 제한적일 뿐 아니라 그것은 경기의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음으로써 경기침체기의 고용창출정책으로서는 한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실제로 1%p 경제성장시 유발되는 취업자의 수도 1995년의 112천명에서 1995년에는 105천명, 그리고 2000년에는 96천명으로 줄었다(한국은행, 2003). 또한 10억원 산출시 유발되는 취업유발계수도 1990년의 42.7명에서 2000년에는 20.1명으로 절반이상으로 줄었다.
<표2> 산업별 취업유발계수 추이
단위: 명/10억원
자료: 한국은행(2003).
물론 성장이 고용, 특히 괜찮은 일자리 만들기의 핵심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성장전략을 추구할 경우 무엇보다도 산업연관효과의 개선, 중소기업의 신용애로의 타개, 불합리한 하도급 구조의 개선 등을 통한 중소기업의 육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을 것이다(조성재 외, 2004 참조).
(2) 대안적인 일자리 창출 방안
1)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성장의존적인 일자리 만들기가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면 성장대안적인 일자리 만들기가 갖는 의미는 더욱 증대한다. 대안적인 일자리 만들기는 무엇보다도 노동시간의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사회적 일자리의 창출에서 주어진다. 먼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지난 100여년간 유럽의 노동조합들이 취해왔던 핵심적인 전략의 하나이다. 예를 들어 Bosch(1999: 135)는 “의심할 나위없이 (유럽에서) 지난 100년간 노동시간의 단축은 주로 입법적인 변화와 단체협약의 결과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광범위하게 실업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단기적인 이윤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이 노동시간의 단축을 자발적으로 실현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기업측에 대해 노동은 준고정적인 생산요소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입법이 노동시간을 단축시키는 주요한 수단이었다면 독일은 단체협약이, 그리고 네덜란드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노동시간을 단축시켰다고 할 수 있다. 서로 다른 외양을 띠기는 하였으나 그 밑바닥에는 노동조합의 압력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법정노동시간의 단축이 ‘실노동시간의 단축 → 고용창출’로 이어지려면 노조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가 필수적이다. 초과노동시간의 제한, 유급 휴가?휴일의 확대 및 사용강제, 교대제의 도입 등은 노조의 의식적인 노력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으로서는 기존의 고용파괴형 구조조정을 대신하여 고용안정형 내지 고용창출형 구조조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라도 노동이 먼저 이를 의제로 형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 경우 주요한 관심은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의 보전을 둘러싼 노사간의 대립이다. 이 경우 임금의 비례적인 감소도 곤란하지만 전액 유지도 곤란할 것이다. 사용자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생산성 향상의 효과(노동과정의 재조직, 노동시간의 유연화 등)를 감안하여야 하지만 노동조합 역시 고용의 보장과 더불어 고용의 창출이나 소득의 재분배라는 사회적 연대를 동시에 감안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이러한 노동시간 단축은 그 자체가 개별적이거나 단순히 노동시간-임금의 딜레마로 다룰 것이 아니라 기업내부의 일괄합의(package deal)의 한 형태로 추진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임금의 보전 이외에도 연례적인 임금인상률, 고용의 보장 및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고용창출), 직업훈련, 노동시간 활용 및 기능적 유연성의 제고, 작업조직의 변경 등이 포함될 것이다.
또한 정부로서도 법정 노동시간의 단축이외에도 또한 정부도 사회적 타협 및 단체협약의 유도, 노동시장에서 숙련부족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직업훈련의 강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재정적 인센티브의 제공 등을 통해 노동시간의 단축이 고용의 창출로 이어지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특히 소득불평등과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노동시간 증가의 원인이 된다는 점에서 소득불평등을 확대하는 탈규제 노동시장정책이 노동재분배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은 중요하다할 것이다(Bosch et al. 2001).
2) ‘사회적 일자리’의 창출
정부가 ‘마지막 수단으로서의 고용자’ 역할을 간접적으로 수행하면서 고용을 창출하는 또 다른 방법은 사회경제부문(social economy sector) 또는 제3섹터라 불리는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안이다. 특히 사회적 일자리는 취약계층의 취업뿐 아니라 이를 통해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서구에서 사회경제부문의 확대는 이른바 1970년대말 이래 전개된 유럽복지국가의 위기와 가족구조의 변화와 연계된다(Borzaga et al., 2003 참조). 그 결과 EU 국가의 경우 사회경제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비율은 전일제 노동자로 계산하더라도 민간 노동고용의 6.57%에 이른다(CIRIEC, 한국노동연구원, 2003).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일자리 개념이 등장한 것은 국민기초생활 수급자를 대상으로 한 자활사업이 실시된 2002년도의 일이다. 그런 만큼 사회적 일자리 개념은 사회적으로 정착되었다기보다는 갓 첫걸음을 떼었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일자리는 공공부문의 고용증대가 쉽지 않고 민간부문의 고용흡수력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일자리 창출원으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사회적인 서비스의 제공이라는 노동의 성격으로 인해 사회적 연대의 강화와 복지국가의 재편을 의미하기도 한다(Defourny, 2001: 1).
한국에서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를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 개념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주요한 과제로 나타나고 있다. ‘사회적 목적을 가진 기업’으로서의 사회적 기업은 협동조합적인 요소와 비영리조직의 요소를 결합한 성격을 지닌다. 이는 한편으로 이윤의 창출보다는 회원 또는 공동체에 봉사하는 성격을 지니며 동시에 비영리조직과는 달리 협동조합적인 성격, 즉 수익의 일정 부분을 구성원에게 배분하는 기능을 배제하지 않는다. 사회적 기업으로의 이행은 공공재정 의존의 축소와 기업적 요소의 도입, 사회서비스의 질적인 향상과 고용구조의 개선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제3부문 또는 사회적 기업은 공공부문에 종속되거나 그 하위부문이 아니다. 독립적인 경영과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이야말로 이를 공공부문과 구분하는 핵심적인 기준이다. 그러나 제3부문은 준공공적인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함으로써 자원의 재분배에 참여하며 이러한 자원의 상당부문을 공공재정에서 충당된다는 점에서 정부측 파트너의 역할은 중요하다. 여기에는 노동부나 보건복지부 등 중앙부처 외에도 그것의 대부분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지방자치단체가 포함된다. 추진주체와 관련하여 특히 비정부기구(NGO)의 역할을 평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부가 최후의 보루자라는 전통적인 역할로부터 후퇴한 가운데 이러한 진공상태를 메우고 나타나는 게 비정부기구이며 실제로 서구의 경우에서 보듯 비정부기구들이 사회적 기업의 핵심적인 주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일자리의 창출은 괜찮은 일자리의 창출(decent work)로 이어져야 한다. 최근 청년실업과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병존하는 등 인력수급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이면에는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로조건과 대기업과의 확대되는 임금 및 복지격차가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일자리 늘리기 정책만으로는 현재 노동시장이 안고 있는 사회갈등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노동시장의 전반적인 구조개편이 요구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하에서는 이를 ‘유연안정성 모델’로 정리할 것이다.
4. 사회통합적 노동시장구조의 형성: 유연안정화 모델을 통한 이중구조의 완화
노동시장에서 유연안정성이란 유연성(flexibility)과 안정성(security)이라는 얼핏 보아 상호 모순되는 개념의 연계를 의미한다. 유연안정성은 두 개의 목적, 즉 노동시장, 작업조직 및 노동관계에서 유연성을 높이는 동시에 노동시장 안팎의 취약그룹에 대해 고용 및 사회적 안정성의 제고를 추구하는 전략을 말한다(Wilthagen, 2003).
즉 ‘안정성을 전제로 한 유연성의 제고’를 말하는 것으로서 안정성을 제고시키기 위한 조치로서는 비정규직에 대한 보호와 사회안전망의 확보, 그리고 학습복지(learnfare)를 통해 고용가능성(employability)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 포함된다. 이와 동시에 이러한 정책은 정부만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당사자들의 참여와 합의 속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지적할 수 있다.
<그림2> 노동시장의 유연안정화를 위한 전략적 구상
(1)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비정규직의 보호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필요하다. 이러한 점에서 ‘정규직=선, 비정규직=악’으로 보는 시각은 곤란하다. 국제경쟁의 심화와 시장의 불확실성 증대라는 경제환경의 변화와 산업구조의 서비스화에 눈감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성의 단시간 노동욕구 등 노동공급측의 요인이 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언술이 정규직 고용의 원칙을 포기하는 것으로 비칠 이유는 없다. 필요한 경우에 한해 비정규직의 사용은 제한되어야 하며 또한 비정규직을 사용할 경우에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최소한 차별금지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방향은 수량적 유연성을 축소하고 기능적 유연성을 제고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기능적 유연성은 노동자들이 고용과 생활의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기업이 지속가능한 경제우위를 원천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특히 수량적 유연성에 대한 강조는 기능적 유연성의 제고를 저해하는 측면을 지닌다(Lodovici, 1999).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고용의 창출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는 무엇보다도 단시간 근로의 확대로 나타난다. 그러나 전체 단시간 노동자의 23.6%에 이르는 비자발적 단시간 근로는 부분실업(partial unemployment)의 전이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황수경, 2004).
여성인력의 활용도가 낮을 뿐 아니라 상당수의 여성이 실망실업자나 경계실업자로 노동시장 밖에 머무는 현상을 감안할 경우 이들을 자발적으로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노동시장 유인책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 경우 다양한 단시간 고용형태의 개발과 더불어 특히 비례보호원칙의 확립은 유효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표3> 단시간 노동자가 전체고용에서 차지하는 비율
단위:%
자료:OECD(2003).
참여정부는 출범이래 ‘남용방지 차별해소’를 비정규직 정책의 핵심으로 천명하여 왔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입법예고된 정부의 비정규직 보호법안은 몇 가지 문제를 갖고 있는 듯이 보인다.
첫째로 남용방지의 원칙이 훼손되고 있으며 이는 파견대상업종의 개방이나 일정한 기간(3년) 이상 종사한 기간제 노동자에 대한 ‘무기계약 간주의 원칙’이 지켜지지 못한데서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이와 더불어 차별해소의 실효성이 의문시된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사회적 합의의 기반을 송두리째 내팽개치고 있다는 점이다. ‘합의에 의한 변화’ 나아가 ‘규제된 유연화’가 지켜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법안을 계기로 노정간 전운의 기운이 감돈다면 노조의 참여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타협은 그 의미를 잃고 만다.
마지막으로는 비정규직의 보호를 법제도적 영역으로 축소시켰다는 점이다. 정책적?행정적 측면을 도외시함으로써 최저임금제의 개선, 사회보험 적용율의 확대, 인력파견업체의 대형?상용화, 불법파견의 단속강화, 그리고 노동조합의 자조노력(산별노조의 추진 및 파견노동자의 사용사업주와의 교섭권 등) 지원 등이 병행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유연안정성 모델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도 안정성을 바탕으로 유연성이 도입되어야 하며 이러한 안전성은 사회안전망의 확충과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2)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적극적 노동시장정책(active labor market policy)은 실업자의 생계보장에 중점을 두는 수동적 노동시장정책과는 달리 실업자의 조속한 노동시장 복귀를 돕는 다양한 서비스를 말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공공고용서비스의 확충, 직업훈련 및 특정집단의 고용창출 기회의 제공 등을 실시한다. 이러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은 실업자의 고용가능성을 높일 뿐 아니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완화하는 기능을 갖는다.
먼저 공공고용서비스의 확충과 관련하여서는 대표적인 공공 고용서비스 제공기관인 고용안정센터의 역할 재정립을 들 수 있다. 특히 지난 해 직업상담원의 파업에서 보듯 공무원과 직업상담원간의 갈등심화로 인한 업무의 효율성 저하는 고용서비스의 안정적인 제공에 심각한 장애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는 인력과 조직의 확대를 통해 one-stop 서비스 및 맞춤식 심층 서비스를 제공할 필요도 있으나 더욱 중요하게는 고용안정센터와 중앙고용정보원(산업인력공단)을 통합하여 새로운 고용안정기구(고용청 또는 고용안정공단 등)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할 것이다. 이를 중심으로 지역별로 지자체와 지역 노사정 등이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지역노동시장의 허브(hub) 기능을 수행토록 하는 조치가 필요한 것이다(김형주, 2004 참고).
그동안 한국경제의 주된 성장동인의 하나는 높은 교육수준으로 인한 우수한 인적자원이 풍부하였다는 사실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더욱이 생산요소의 투입을 늘려 성장을 도모하는 양적성장시대가 마감되고 이른바 질적 성장 내지 ‘혁신주도형 성장’을 실현하기 위해서도 인적자원의 중요성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Galor, 2000). 두 번째는 실업자를 위한 재취업 교육 및 취업자의 기능향상훈련의 중요성이다. 세 번째는 인구의 고령화와 출산율 저하에 따른 양적 인적자원(생산가능인구)의 부족을 메꾸기 위해서도 양질의 인적자원 확보는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정부가 청년실업을 줄이기 위해 고용장려금을 지급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고용보조금에 대한 증대되는 의존은 고용을 촉진시키는 효율적인 접근이 아닐 수 있다. 그러한 정책을 사용한 다른 OECD 국가에서는 하중손실과 대체비용(deadweight and substitution cost)이 90%에 이르기도 하다”는 OECD(2004)의 지적을 되새길 필요가 있을 것이다.
(3) 사회안전망의 정비
한평생을 가난의 덫에 걸려 살다가 이를 대물림까지 하는 구조는 사회보장체제의 정비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사회안전망은 빈곤의 해결을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완성도 높은 사회안전망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가져오는 조건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복지제도를 살펴볼 때 눈에 띄는 현상은 공적 복지체제의 미흡과 기업별 복지제도의 상대적인 발전이다. 국민의 정부 이래 국가주도의 사회복지가 커다란 향상을 이룬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일정한 궤도에 올랐다고 보기는 힘든 실정이다. OECD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은 GDP의 8.3%(2000년)를 사회복지에 지출한 데 반해 OECD 국가의 평균은 23.4%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공공복지의 지체는 이를 보완하는 기업주도형 복지시스템의 상대적인 발달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업중심적이고 수익의존적인 사회복지체제하에서 실업자는 물론이거니와 중소기업 종사자 및 비정규 노동자는 각종 사회보장의 보호범위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노동자 계층내의 불평등 구조가 복지측면에서 재생산되는 것이다(이병훈 외, 2002; 이주재, 1999). 더욱이 실직은 취약계층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은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을 더욱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1964년에 도입된 산재보험은 2000년 7월부터 1인 이상 전 사업장에 적용되고 있다. 또한 1995년에 시행된 고용보험은 1998년 10월 이래 1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되어 시간제 고령노동자 및 외국인 노동자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그리고 2004년 1월부터는 고용기간이 1월 미만인 일용노동자(주15시간 이상, 월 56시간 이상)까지 적용이 확대되었다. 사실상 위 두 가지 사회보험의 경우 수혜대상이 전체 노동자로 늘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사각지대는 존재한다. 자영업주와 특수형태 근로종사자가 그들이다. 예를 들어 고용보험의 경우 낮은 수급액과 짧은 지급기간도 문제지만 2003년말 현재 취업자 대비 고용보험 피보험자수는 32.6%에 불과한데다 전체 실업자 대비 구직급여 수급율도 15.9%에 지나지 않는다(『고용보험 통계연보』, 2003). 자영업자와 같은 비임금 노동자가 배제되고 있을 뿐 아니라 수급조건 역시 까다롭기 때문이다. 또한 <표4>에서 보듯 비정규직의 보험적용율은 여전히 낮은 실정이다.
<표4> 비정규직 노동자의 사회보험 적용률
단위:%
자료: 노동부 내부자료(2004.9).
실업에 대한 1차 안전망은 고용보험의 확충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2차 안전망은 저소득 계층에 대한 공공부조 프로그램, 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특히 고용보험은 실업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의 중심이라는 점에서 고용보험 적용대상의 확대와 수급요건 완화를 통한 적용대상자 비율의 확대는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실업부조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장기실업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연장급여제도를 활성화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4) 사회적 합의의 달성
참여정부는 그 출범당시 국제기준의 준수와 자율적인 노사관계의 확립, 중층적 교섭구조의 정착을 모두에 내걸었다. 일정한 정도의 진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의 마련이나 병원노조 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을 자제함으로써 산업별 교섭구조로의 이행에 바람막이를 놓았다는 것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기구의 미정상화와 산업별 교섭구조의 미발달 등 중층적 교섭기구의 부재는 참여정부의 노동정책을 결과적으로는 노조배제적으로 귀결짓고 있는 실정이다.
노동시장을 ‘개혁’하는 과정에서 노조의 참여는 그것이 ‘참여적인 사회통합정책’을 이끈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진다. 실제로 일자리 창출(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의 자제나 노사관계의 안정 등)은 물론이거니와 노동시장내 격차의 완화나 사회안전망의 구축 등에서 노조의 역할은 커다란 중요성을 가진다. 이는 무엇보다도 정부혼자의 힘으로는 ‘노동개혁’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을 출발점으로 한다.
이와 더불어 노동조합의 역할로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취약노동자에 대한 노조의 집단적인 자조노력(collective self-aid)이다. “노동력 제공자들의 저가경쟁에 하한선을 설정하는 메커니즘이 없으면 위험스러울 정도로 빈곤이 심해지는 과정이 발생할 것이다”. 울리히 벡(1999: 161)의 말이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과 관련하여 노조의 노력으로서는 △비정규직의 조직화 △산별노조로의 이행, △비정규직을 위한 대리교섭의 수행이나 단체협약의 효력확장, △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사회적 압력의 조직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노동조합으로서는 대기업-중소기업간의 불합리한 하도급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도 필요하며 이는 산별노조의 건설과 맥을 같이 할 것이다.
노동정책의 수행과정에서 특히 노조의 참여는 사회적 대화를 통한 정책참여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시대, 그리고 경제위기의 시대에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의 필요성은 적지 않다. 먼저 사회적 합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이자 계승자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Eder, 2002). 달리 말해 사회적 대화는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규제장치로 기능함으로써 ‘규제된 세계화’(regulated globalization), '선택된 유연화'(selective flexibilization)를 실현시킨다는 의미이다. 이를 통해 세계화에 대한 주체적인 대응, 만들어가는 세계화가 가능하여지는 것이다.
두 번째로 최근 사회적 대화는 경쟁적 코포라티즘(competitive corporatism, Rhodos)의 성격을 갖는다. 이는 사회적 대화의 필요조건으로서 중앙집중적인 노조조직이나 사회민주당의 존재보다는 정부의 설계사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즉 합의 이행의 관료적 성격은 민주적 조율시스템으로 대체되며 사회민주당의 존재는 정부의 ‘개혁 노력’이 대신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대화의 실행자로서 합의의 이행자로서 정부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말한다.(이탈리아에 대해서는 Baccaro, 2003; 아일랜드에 대해서는 박태주, 2003을 참조). 예를 들어 사회적 주체들간의 불신이 높은 상태에서 노사의 변화도 필요하지만 정부의 우선적인 변화를 바탕으로 노사의 변화를 유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세 번째로 최근의 경제위기와 관련하여 사회적 대화는 그 구원투수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이 경우 중요한 것은 합의의 의제(agenda)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부는 공공성을 강화하되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의식하고 노조는 생산성의 향상에 노력을 기울이는 내용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각 주체의 자발적인 희생 몫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대화인 것이다(구체적인 것은 박태주, 2004a를 참조).
사회적 대화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동관이 바뀌고 이를 바탕으로 일정부분 개혁을 수행하면서 사회적 당사자간 신뢰의 공간을 확보하여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상대방에게 탓을 돌리기보다 정부가 설계사이자 집행책임자로서 역할하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래 사회적 대화기구의 파행운영이 지속되고 것은 정부측에 책임이 있다할 것이다.
5. 맺음말
최근 참여정부의 경제사회정책 초점이 성장인가 분배인가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그러나 상대적 빈곤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고 게다가 그것이 내수부진으로 이어져 경기의 회복과 성장을 지연시킨다는 점에서 이러한 이분법적인 논란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노사분규에 덧보태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사회갈등으로 전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동시장의 개혁 - 일자리 창출과 유연안정성의 실현 - 은 분배는 물론 성장을 위해서도 시급한 과제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한마디로 괜찮은 일자리의 창출로 요약된다.
우리가 세계화라는 기차의 흐름을 중단시키거나 역행시킬 수는 없다. 그러나 기차의 목적지나 거기에 이르는 궤도나 속도까지 사전적으로 프로그램화된 것은 아니다. 각국은 주체적으로 세계화의 흐름에 대응하면서 독특한 사회경제모델을 구축하여 온 것이다. 이러한 주체적인 사회경제모델의 구축에서 노동시장의 개혁 -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는 괜찮은 일자리의 창출이다- 은 뺄 수 없는 과제에 속한다. 그것은 사회통합과 성장의 양대 축이 만나는 접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서 제시한 일자리 창출과 유연안정화는 독립적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구조로 얽혀있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은 개별적으로 추진되기보다는 전체적인 조망하에서 종합적인 국가행동계획(National Action Plan)속에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통해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연계 내지 조화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무엘슨은 그의 『경제학원론』(Economics)에서 경제학은 기본적인 세 가지 질문에 답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
무엇을’(what?), ‘어떻게’(how?) 그리고 ‘누구를 위해’(for whom?)가 그것이다.
이중 ‘누구를 위해’는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관한 선택을 의미한다.
즉 이러한 질문은 사회적인 대답없이 경제적인 질문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노동시장에서 괜찮은 일자리의 창출은 이러한 점에서 사무엘슨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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