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우자동차 직원들에게 해고통지서를 배달하는 모습을 TV 뉴스에서 보았다. 우편배달부의 가방에서 뭉텅이로 나오는 통지서들. 대우자동차 직원들이 많이 사는 어느 아파트에는 백 수십 통이 한꺼번에 배달되었단다.
반응도 가지가지이다. 들어서 예상은 하고 있었다지만, 막상 받아들고는 망연자실하는 여인. 눈물이 글썽한 채 내가 무슨 죄냐고 항변하는 직원. 거칠게 울부짖다 눈물범벅이 되어 말을 잇지 못하는 여인. 혹시나 해서 우편배달부에게 와서 묻는 애 업은 여인. 이런 일이 우리 나라에 일어나고 있다.
무엇이 잘하는 것인지, 누가 잘못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경제를 모르기도 하지만,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라의 말을 가장 못 믿기 때문이고..
봄은 오는데, 경제 위기를 극복했다는 平和국가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아저씨 아저씨 우체부 아저씨
큰 가방 메고서 어디 가세요
큰 가방 속에는 해고 편지 들었지
오늘은 내 마음 아주 무겁다
해고요 해고요 싫어싫어 안돼요
이 겨울 어디서 우린 살아요'
누구의 작품인지 몰라도 세상에 떠도는 가사를 옮겨 보았다.>
영어로 된 속담에 'Only the brave deserves the beauty' 또는 'None but the brave deserves the fair'라는 것이 있다. 뭐.. 같은 말이다. None but에서 but은 without의 뜻을 가지니까, 그 말은 only와 같은 뜻이 된다. the fair는 the beauty와 같은 뜻으로 '미인'이라는 뜻의 집합명사이다. 마찬가지로 the brave는 '용감한 자', 줄여서 '용자(勇者)'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속담의 뜻은 '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얻을 자격이 있다.' 라는 뜻이다. (다 아는 걸 가지고 잘난 척은..)
나는 이 속담이 Shakespeare의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아니..확신했다. 영어로 된 말 중에서 폼 나고 그럴싸한 것은 거의 다 Shakespeare 아니면, Beatles 의 것이니까. 그런데 혹시나 해서 (만약 그의 말이 맞다면 작품까지 밝히려는 친절함이 발동을 해서) 이 글을 쓰기 전에 열심히 찾아보았는데, 어디에도 이 말이 Shakespeare의 문장이란 언급이 없었다. 물론 Beatles의 가사라는 근거도 없었고. 그냥 속담인가 보다.
그런데 속담치고는 좀 곰팡내가 난다. 요즘 젊은이들의 정서라면 이랬을 거다.
'Only the beauty deserves the beauty.' 예쁜 자만이 미인을 얻을 자격이 있다.
내가 이 속담을 처음 들었을 때, 아니 보았을 때 (정통종합영어?), 이건 정말 서양 속담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하고는 뭔가 정서가 정확히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서양 사람들은 'coward' 라든가, 'loser' 라든가 하는 말을 정말 싫어한다. 아울러 'chicken'이란 말도 비겁하고 소심하다는 뜻으로, 놀릴 때 많이 쓰이는 말이다. 두 팔꿈치를 펄럭이며 '꽤객객객..' 하는 닭 짓는 소리를 내면서 주인공을 놀리는, 나쁜 나라들을 영화에서 숱하게 보았을 것이다. (대개 그러다 한 대 맞는다)
(아~ 잠깐! 혹시 별명이 '닭' 또는 '닭x가리'인 독자들은 기분 나쁘겠다. 그러나 이건 서양의 사고방식이니까 신경 쓰지 말길 바란다. 우리 나라에서는 그런 뜻으로 안 쓴다. '머리가 나쁘다'는 뜻으로 쓰이지..)
반면에 우리 나라, 아니 동양 삼국에서는 사뭇 다르다. 한때의 굴욕을 꾹 참아내고, 비겁하게(?) 살아남아 훗날 큰 뜻을 펼쳤던 사람을 칭송한다. (일일이 예를 들지 않겠다. 다만 우리 나라의 '만년2인자'는 아직 그 반열에 들지 못한다) 반면에 욱하는 성질 못 이겨서 말달려 앞서 나가다 '낙양성 십리허(十里墟)'에 목 따로, 몸 따로 흩어진 유골들은 경솔하다고 낮춰보았다. 역시 이 차이를 봐도 思惟가 중시되었던 동양과 'physical 함'이 우선이었던 서양의 차이가 보인다. 하여간 그 속담은 지략있는 자보다는 힘센 놈이 대접받던 서양 취향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힘센 놈이 여자를 차지해야 한다' 느니 '머리 좋은 놈이 여자를 차지해야 한다' 하는 선정적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여자가 물건인가? 차지하게.. 소유하거나 소유 당하는 거지..)
나는 'deserve' 라는 단어를 보면 신기하단 생각이 든다. 그 단어는 '~할 만하다', "~할 자격이 있다', '~할 가치가 있다' 등의 뜻이다. 몇 글자 안 되는 영어단어가 그렇게 긴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 (사실 이러한 것이 남의 나라 말을 배우는 재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물론 우리의 단어도 외국인에게는 훨씬 더 긴 의미로 풀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을 것이다.)
'~할 자격이 있다'
'자격'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자격(資格)'의 사전적 의미는 '~에 필요한 요건, 조건'이다. 이 것을 조금 더 확대해서 생각해 보면, 무슨 사물이건, 지위이건, 또는 정신적인 것이건 간에 그 혜택을 받으려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구조건이 바로 '자격'이다. 그래서 '자격'은 무서운 것이기도 하다.
생각하기 쉽게 남녀간의 사랑을 예로 들자.
(자고로 '남녀간의 사랑'이라는 주제엔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이 없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 졌기 때문이다. 일례로, 오늘 아침에 민방위 훈련을 받았다. 교육의 하나로 '동영상'을 보았다. -요즘은 '영화' 또는 '비디오'라는 표현을 쓰면 촌스럽다. 동영상이라고 해야 n세대이다.- 동영상의 주제는 직장내 성희롱. 여느 때 같았으면 미진한 잠들을 자느라 푹푹 꺽어졌을 머리들이 모두 바딱 서 있다. 교육의 주제가, 동영상의 제목이 '성'이라 그럴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만들어 졌다.)
사랑하는 남녀는 서로 상대방의 사랑을 요구하게 된다.
물론 '사랑이란?' 물음의 답변 가운데 '주는 것'이라는 것도 있다. 그러나 그건 만남의 초기, 즉 마음속이 애틋함으로 가득 찼을 때에 있을까 말까한 감정이지, 실제로는 상대방의 사랑을 갈구하는 것이 사랑의 요체인 것이다.
(Beatles의 멤버였던 John Lennon도 'Love'라는 노래에서,
Love is wanting to be loved
Love is asking to be loved
Love is needing to be loved 라고 갈파하였다.
즉 '사랑은 사랑 받길 원하는 것, 사랑 받기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이가 생기면 듬뿍 주리라 하고 생각하는 single들은 마음 고쳐먹는 것이 좋다. 사랑은 달라고 하는 것이지, 주는 것이 아니다. 잘못 주면 후회한다. 그건 그렇고, 이 Lennon 卿이 이른 나이에 암살을 당하지 않았으면 훗날 큰 철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상대방의 사랑을 갈구하면서 흔히 범하는 오류가 바로 자신의 '자격'을 잊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상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생각조차 안 해보고,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투정하고, 불평하고, 스토킹 하고, 심지어 성질 급한 놈은 불지르고 하는 일이 다반사인 것이다. 사랑에 문제가 있으면 자신이 'deserve loving'이 되어 있는지 먼저 살펴 볼 일이다. 아직 single들도..
(질문이 있을까봐 미리 해설. 'deserve to love'는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란 뜻이 된다. '사랑 받을 자격'이란 뜻으로는 'deserve loving'이 옳다. 또 잘난 척.. 이러다 언제 임자 만나지..)
그런데 사실은 사랑이야기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는데.. 심각한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는데 예를 들다 보니..
나는 요즘 가끔 치매(痴?)와 같은 '생각의 침잠(沈潛)'에 빠진다. 치매와 같다고 하는 이유는 생각의 뒤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내가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그리고 왜 기억이 나지 않는지를. 내가 침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이유는 답답함 때문이고,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은 그 생각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버려야 얻는다 -김수환 스테파노-)
요즘 생각하는 것은 '자격'이라는 것이다.
나는 주위가 혼란스러울 때면, '이민 생활 1년반 후'를 떠올린다. 내가 이국에서 1년 반이 지날 무렵 겪었던 향수병(鄕愁病, nostalgia) 때문이었다. 지독한 홍역 같은 병을 앓고 난 후 주위의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그 즈음에 한번 씩 앓는 병이라고 하였다. (내가 향수병을 앓았던 이유를 술이나 보x탕과 연결시키지 말기를 바란다. 물론 정겨운 향토견鄕土犬이 그립긴 했었지만..)
주변에 아는 이도 많았고, 곧 돌아갈 처지인데도 그리 아픈데, 타향에서 몸을 뉘어야할 사람은 오죽할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렸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나라가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도 즐겨 땅을 밟고 싶어했었다. 내 나라니까.
그런 내 마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유는 참으로 많고도 넝쿨같이 얽혀있어서 어디서부터 거론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 나라는 '자격'이 있는가?" 하는 생각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라: 여기서 '나라'라는 것은 백성이 아니다. 우리의 잘 난 어른들은 걸핏하면 백성 탓을 한다. 백성이 못되었다느니, 뜯어 고쳐야 하느니 하면서. 그래서 '민족개조론'을 떠들었고, 심지어 친일파의 간판 스타 '윤치호'는 그 론을 친일의 근거로 삼기도 하였다. 또 어느 '좌충우돌 전직 나랏님'은 우리 백성을, 홍해를 건너와서도 40년 동안 광야를 떠도는, '못된 유대 백성'으로 치부하고 자신은 그들을 뜯어고치는 '여호수와' 예언자라고 하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백성이 왜 못 되어졌겠는가? 심은 대로 거두고, 일한 대로 먹고 살았다면 왜 독해졌겠는가? 정치하는 놈들이, 나라 살림하는 놈들이 그리 만든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내가 말하는 나라는 백성이 아니다. 권세를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나라의 장래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 집 '독시무스'도 외우는 '敎育百年大計'대로 '교육'인가?
높은 이들은 누구나 외우는 '과학기술'인가?
미국식 자유무역주의인가? 아니면 국제금융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무엇이든지 만들고 고치지 (유식한 말로 '財貨를 生産하지') 않으면, 사회도, 경제도, 나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 놓고 돈 먹기'로는 아무 것도 만들지 못하고, 그래서 미래가 없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미국식, 민주주의적, 국제적, 세계적, 인권..' 등을 떠들면서도, 자기를 욕한다고 언론을 째려보는 나랏님. '누구는 기회주의자, 언론은 조폭, 누구누구는 돌대가리..' 하면서 좌충우돌하는 장관. 세금으로 나라 일하러 미국 가서는 식당 교포아줌마나 꼬셔서 건드리는 젊은 민주투사 국회의원.
이젠 '제대로' 교육받은 이들이 나라를 설계하고 다스려야 한다. 정상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이 어찌어찌 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짓거리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그래야 교육부가 그리 떠드는 '교육의 정상화'도 백성들에게 먹힐 것 아닌가?
그 때가 되면 어찌 바뀌려는지 모르지만, 지금 이 나라는 '자격'이 없다.
교육, 과학, 연구, 기술, 개발, 노력, 성실.. 이런 덕목을 받을 '자격'이 없다.
많은 청소년들이 외국으로 가버리고 부모는 버는 것을 내보내는 이유는, '노력의 댓가'는 받을 '자격'이 있는 나라를 찾아가기 때문이다. 이 나라는 아니다.
<너무 무거워졌나? '월곡重담'을 하나 만들까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