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숨진 스티브 잡스 애플 전(前) CEO가 남긴 10계명 가운데 식품명이 들어가는 것이 하나 있다. 직원들에게 ‘채찍보다는 당근을 많이 줘라(Use more carrot than stick)’는 계명이다.
‘당근’은 직원의 사기·애사심을 높일 뿐 아니라 건강에도 이로운 채소다. 토끼·말이 좋아하는 당근은 홍당무라고도 부른다. 수확 시기는 1년에 두 번(여름·가을)이다. 연하고 수분이 많으며 맛이 좋기로 소문난 것은 가을 당근이다.
원산지는 중동·아시아다. 한반도엔 13세기께 중국을 통해 전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당나라에서 들어와 당근(唐根)이라는 이름이 불었다.
칼슘(뼈 건강에 유익)·비타민A(눈 건강에 유익)·비타민C(항산화 효과)·식이섬유(변비 예방·콜레스테롤 낮춤)가 풍부하다는 것이 영양상의 강점이다. 100g당 열량이 34㎉로 다이어트 중인 사람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채소다.
뭐니 뭐니 해도 당근의 대표적인 웰빙성분은 오렌지색 색소이자 카로틴의 일종인 베타카로틴이다. 당근의 영어 단어인 ‘carrot’도 카로틴(carotene)에서 유래했다. 같은 당근이라도 속살이 진할수록 베타카로틴의 함량이 더 높다. 베타카로틴은 몸 안에 들어가서 필요한 만큼만 비타민A로 바뀌고, 나머지는 베타카로틴 상태로 남는다. 당근·귤 등을 과다 섭취하면 얼굴·손 등이 노래지는 것은 베타카로틴이 피부에 쌓인 결과다. 피부의 황변(黃變)은 건강에 해롭지 않고 일시적이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당근 섭취를 줄이면 곧 정상 피부색으로 돌아온다.
베타카로틴은 비타민C·E와 함께 3대 항산화 비타민으로 체내에서 유해산소를 없애 준다. 적당량 섭취하면 노화를 억제하고 면역력을 높여 주며 암 예방도 돕는다. 당근을 항암식품으로 기대하는 것은 이래서다.
당근의 베타카로틴을 많이 섭취하려면 깨끗이 씻은 뒤 껍질을 최대한 얇게 벗겨 먹어야 한다. 베타카로틴이 껍질에 풍부해서다. 생으로 먹거나 주스를 만들어 마시는 대신 익히거나 기름에 살짝 볶아서 먹으면 베타카로틴의 체내 흡수율이 높아진다. 베타카로틴도 비타민A와 마찬가지로 지용성(脂溶性)이기 때문이다. 또 당근을 미리 잘게 잘라 두면 베타카로틴이 산화되므로 요리의 마지막 단계에 당근을 썰어 넣는 것이 좋다.
당근의 효능 가운데 일반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눈 건강에 이롭다는 것이다. 눈 건강을 돕는 비타민A·루테인·리코펜이 풍부하다. 특히 야맹증은 비타민A가 부족하면 발생하는 질환이다. 이와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은 야간 공중전에서만큼은 영국 공군의 ‘밥’이었다. 영국 조종사들이 당근을 많이 먹은 덕분이란 소문이 돌았다. 독일 공군도 조종사들에게 전투기를 타기 전에 당근을 먹으라고 명령했다. 당근이 조종사의 야간 시력을 높여 줄 것으로 기대해서다. 그러나 당근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영국 공군에 번번이 당했다. 야간 공중전의 승패를 가른 것은 당근이 아니라 당시 발명된 레이더였다. 레이더의 개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영국군이 독일 첩보국에 당근을 슬쩍 흘린 것이었다.
당근은 생으로 먹기도 하고 수프·샐러드에 흔히 들어가나 즙이나 주스를 만들어 마시면 한 번에 다량의 섭취가 가능하다. 특히 당근 즙은 암환자에게 권할 만하다. 꾸준히 마시면 식욕이 좋아지고 변비에도 효과를 볼 수 있어서다. 주의할 점은 당근을 과일·채소와 함께 갈면 당근에 든 아스코르비나아제(비타민C 분해효소)가 과일·채소의 비타민C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타민C를 보전하려면 식초나 레몬즙을 곁들이거나 살짝 데친다.
구입할 때는 형태가 바르며 표면이 매끄럽고 진한 것을 고른다. 단단하고 머리 쪽에 푸른 부분이 없으며 뿌리 끝이 가늘수록 상품이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개발된 단맛 강한 오렌지색 외에도 붉은색(동양종)·노란색·진홍색·보라색 등 다양한 품종이 시장에 나와 있는데 전체적으로 색이 일정한 것이 좋다. 깨끗이 씻어 밀봉하거나 흙이 묻은 채로 신문지·비닐 등에 싸서 냉장고에 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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