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리도 사리도 맞지 않는 판결 이유들
얼마 전 대법원은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의 선거법 위반 상고심 판결에서 검찰의 공소장이 일본주의의 원칙에 위배된 것을 인정하면서도 "피고인이 애초 공소장에 기재 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심증이 확증된 이후 공소장일본주의를 주장하면 적법성에 대해 다룰 수 없다"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형을 확정하였다.
대법원은 창조한국당 측이 중앙선관위로부터 "적합하다"는 회신까지 받고 발행한 당 채권이 당 대표의 의원직을 박탈하고 향후 10년간 공직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박탈해야할 만큼 중대한 범법행위로 보고 철퇴를 가한 반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있었던 검찰의 증인 회유 및 협박 같은 불법행위 그리고 공소장일본주의 위배 그리고 불고불리의 원칙에 위배한 재판부의 판결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았다.
며칠 뒤 용산참사와 관련한 1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참사의 직접 원인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3000여 쪽 분량의 경찰 수사기록 공개 거부에 대해 "공개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라고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판결은 검찰의 기소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참사의 책임을 모두 농성자들에게 돌리고, 과잉진압 시비가 있었던 경찰의 진압방식은 "정당했다"며 면죄부를 부여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경찰 특공대의 증언이 엇갈리는 것에 대해서 "긴박한 상황에서는 관련자의 증언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는 설시를 곁들였는데, 이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설시는 이제까지 다른 재판에서 증언의 신빙성을 인정하는 데 있어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는지의 여부가 관건이었음으로 미루어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문법과 방송법 표결과정에서 대리투표와 일사부재의의 원칙 위배는 인정하지만 법안 가결은 유효하다"는 헌재의 판결 요지 또한 해괴하다. 일사부재의란 '회기 내에는 부결된 의안을 다시 상정할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따라서 표결 과정에서 일사부재의의 원칙을 위배한 점이 인정된다면 표결 행위 자체를 무효로 보는 것이 옳다. 물론 헌재에 의해 사실로 인정된 대리투표행위 역시 "단 한건만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표결 자체가 무효"라는 것이 헌법학자 다수의 견해이므로, 의결과정에서의 불법을 인정하지만 법안은 유효하다는 판결은 법리는 물론 사리에도 맞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법치주의를 포기한 심약한 법조인들
'만민 앞에 평등한 법'은 그야말로 법치주의의 근간을 상징하는 말이다. 참된 법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법을 다루는 자가 권력을 가진 강자 앞에서 비굴하지 않으며 상대적 약자를 배려하는 태도를 견지할 때 비로소 '만민 앞에 평등한 법치'의 구현이 가능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위에 언급된 최근 사법부의 판결은 권력을 가진 정부나 권력자의 잘못이나 과오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거나 탈법. 불법을 용인. 옹호하는 한편, 상대적 약자들에게는 가혹하리만큼 엄한 처벌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작금 대한민국 사법부의 현주소라 할 것이다.
오늘날 권력 분립은 민주주의의 상식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력의 독주가 이어지는 것은 정치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권한을 정권의 양보를 통해 편안하게 누리려는 종사자의 심약함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재판부가 주요 사건에서 시류에 영합하는 기회주의적 판결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법부 종사자들이 권력과 적당하게 타협하여 권력으로부터 자신들의 지위를 인정받고, 사법권의 독립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잘못된 권력 작용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거나 권력의 폭주를 용인하는 판결로 독립성 쟁취의 기회를 저버리고 있는 행태로 나타나는 것인데, 이것은 법치주의의 중심에 우뚝서야할 사법부가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권력의 시녀로 전락시키는 비굴하고 심약한 태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대한민국의 법치주의의 보루가 돼야 마땅할 사법부가 마치 내각의 일부처럼 스스로의 몸을 낮추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이 대통령 휘하의 법조부장관으로 전락한 것 같아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