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을 맛
은행잎 구릿한 된장 맛일까
단풍잎 매콤한 고추장 맛일까
느티나무 갈색은 곰삭는 간장 맛
가을 낙엽을 갈아 마시면
커피 맛이 날 거야
온갖 향기 날리는 가을
춤추는 색들이 가을 맛으로 익어 가고 있다
맛깔스런 색으로 산이 물들고 있다
가을 소리
숲속에서 슬며시
가을이 왔다고 속삭인다
가을 가을~
한여름 소리 지르던 매미
아직 짝 찾지 못한 못난이
너는 쉰 목소리로 울고 있는가
남겨진 제비 한 마리 애처롭구나
가을은 익고 있겠지
귀뚜라미 소리랑
감자떡
어설프게 갈아
한 국자 두툼하게 두르고
지글지글 누렇게 익힌다
굵은 비 내리는 날
빗소리로 떠오른 감자떡
흘러내리는 빗방울 소리에 섞여
기름 냄새 방안에 가득 자리 잡는다
왕 대추
지 혼자 커질 수는 없다
바람과 햇살 맞고 큰 거지
나비에게 수술 주고
벌레에게 옆구리 주고
벌에게 꿀을 주고 나니
빨간 가을이
높은 하늘에 대롱대롱
고발
도로에서
나를 주시하는 카메라
귀찮아
시골길인데 뭘
찰칵
경고장이 날아 온다
경찰서로 오시오
두 노인 가슴이 서늘
경찰서 가는 길
방향등 신호 없이
쓰윽 들어오는 차
나 혼자 당하기 억울해
너도 같이 경찰서 가자
국학 기공
쟁기 자세로 눕다
허리가 삐긋
꼬부라질 듯 안 펴지고
숲속 산책으로 통증 달래질까
할미들 스트레칭하고 있네
흉내 내 보자
무대 위에서 자세 잡는
머리 하얀 할미들 속에
어리버리 땜방 노인도 신나
국학기공
아슬아슬한 허리
우두둑
우두둑
허리 펴지는 소리
굴렁쇠
한 바퀴 두 바퀴
골목길을
돌고 돌고 돌아가는
동그란 굴렁쇠
세 바퀴 네 바퀴 돌아
바람 불고 눈이 와도
동네 몇 바퀴 돌고 돈다
개짓는 철이네 집
또 가보자
타조
엄청 커
날지는 못해
가장 빠른 롱 다리
안 날라도 상관없어
발가락 두 개
그래도
달리기 선수야
사막에서도 일등이야
경강선 열차
화사한 벚꽃 피어난 날
고라니가 곤지암 역에서
이 열차 어디까지 가요
청설모도 멀뚱멀뚱
꽃동산 가고 싶은데
경강선 열차 타도 될까요
오르락 내리락
마음만 설렌다
바다로 간다
1-5 김단아
코코낫으로 배 만들고
야자수 이파리로 노 저어
바다로 간다
돌고래와 놀고
갈매기 먹이 주러
바다로 간다
모래하고 놀아보자
파도하고 놀아보자
영차 영차
바다로 간다
산타의 존재
여덟 살 단아
초등학생 되더니
나는 안다 다 안다며
엄마를 당황시킨다
다섯 살 나나동생
귓속말해도 이해 못해
어리둥절
그래도 성탄절 밤 기다리고
크리스마스트리에 달린
선물 확인하고
환호 올리네
나나가 예쁠 때
입 크게 벌리고 맘마 받아 먹을 때
두 눈 꼭 감고 손 모으고 코- 잘 때
참 예쁘다
편의점에 무언가 사러 뛰어가는 뒷모습
할미 도와준다고 설거지 물놀이 할 때
참 예쁘다
빨래 널고 개고
색칠공부하고
가위로 종이 싹뚝싹뚝 오리고
피아노 건반위에 손 얹을 때
참 예쁘다
응아 다 했어 당당하게 소리칠 때
잠자리 살금살금 가서 열 마리도 더 잡아서 날릴 때
손톱 열 개 모두 봉숭아 드리고
산타 기다리는 마음도
눈이 오는 겨울이 생일이라서
겨울이 좋다는 나나
분꽃 씨 모으고 메발톱 꽃씨 모아서
하비농장에 심는다고 하는 나나
참 예쁘다
정말 정말 예쁘다
<나나>는 주인공
캠핑 가는 날
밥 안 먹고
돌아다니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천방지축
고집불통
말괄량이
찡찡이
울보 종합 판
도로 갓길 안전지대에서
시원하게 응가하며 씩 웃는다
트렁크에 응가 통은 필수
다섯 살부터 앞니 다쳐서
앞니 빠진 증강 새가 된 나나
주인공답게
해맑게 웃는 모습이
귀엽다
<나나>의 한복 팻션
추석전날
한복치마를 간신히 입었다
멋진 삼층 속치마는
절대로 안 입겠단다
간지럽다고
이제
저고리만 입으면 된다
저고리를 입히는 순간
불편하다며
앙탈을 부린다
어쩔 수 없이
저고리는 가방에 넣고
한복치마만 입고 유치원에 간다
한복 치마 휘날리며
달려가는 뒤태가
너무나 섹시하다
오후에 학원 버스에서 내리는 나나
선생님이 잘 달래서 입혔는지
한복 잘 차려 입고 웃는 모습이 예쁘다
참 이쁜 우리 나나
품에 안고
한 바퀴 돌았다
손녀와 할미
세 살 손녀
환갑 할미
내기할까 멀리 싸기
동그라미보름달 둘이
나란히 앉아 쉬 한다
졸졸졸 그림 그린다
멍멍
응원하는 누렁이
개구리 하얀 나비
같이 놀자 모여 든다
얘들아 너희는 아냐
고라니와 멧돼지
양떼 목장
1-5 김단아
대관령 양 떼
몽실몽실
보들보들 부드러운 털
먹이 주는 손에
혀 닿으니 간질간질
손바닥 문지르며
까르르
셀 수 없이 많은 양 떼
순하고 착한 양
친구들이 많아
좋겠다
외롭지 않겠다
언니와 동생
다섯 살 언니
퇴원 하는 날
두 살 동생 아파서 입원 했다네
엄마는 병원에서 집에 못 오네
할미는 동생과 언니
바꿔서 집에 데려 왔다네
엄마와 할미는 집 병원
넘나들며 언니 동생 돌보네
엄마 할미 언니 동생
넷이는 똘똘 뭉쳐
동생을 치료 했다네
달의 다이어트
동쪽 하늘에
둥근달이 나를 보고 웃고 있네
보름달 닮은 찐빵 한입 물면
달콤하고 포근하고 마음에 둥근달 둥둥
몸도 달처럼 둥그레 지겠다
할머니의 바늘
침 묻은 실이 바늘 코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다
실 바늘이 하나 되면
초승달 눈웃음 지으며 행복한 바느질
보름달 무릎 삐꺽이고
반달을 향해
한 걸음 두 걸음
매미
한여름 숲의 향연
왼 종일 연주하는 그들
지쳐 바닥에 누었다가
개미에게 영차영차 끌려가요
참새가 쪼아도 뒤집어 졌다가
다시 쓰러져요
매미가 죽었어요
이제 막을 내려야 겠어요
망사 옷 접고
여기 저기
개미들이 검은 옷 입고 애도해요
펭균
바닷가
파도 보러
바람 언덕 갈매기 보러
드넓은 물결 앞에
넘실대는 바위섬에서
누구를 기다리나
턱시도 입은 펭귄
하늘을 봐 떠오르는 해를
숨바꼭질
곤지암천 흐르는 곳
징검다리 여기저기
비가 많이 와 물밑에 숨었네
어디 어디 숨어있나
나와라
징검다리야
건널 수가 없잖아
복숭아 같이 볼 그래한 볼
너는 참 복숭아 닮았네
복숭아 닮았다고 하지 마세요
엉덩이가 생각나요
볼이 볼그래하고 예쁜 여자 아이는
복숭아 닮은 볼이 싫단다
엉덩이와 복숭아가 닮았나?
슈가 보이
달콤한 맛
결코 포기 못 해
달콤한 커피 이 맛이야
아주 행복해
소금 빵 너나 먹어
달콤 크림 듬뿍 든 빵
오늘은 참아야 해
구수한 구운 감자
뒹굴뒹굴 굴러다녀
단맛을 입고 와라
맛없어서 못 먹겠다
버터 설탕 찍어 먹으니
달콤한 맛 황홀하다
옆구리 살 통통
<봄이>의 기도
노란 병아리 키울 거야
세 번의 눈물겨운 실패를 맛보고
부화기에 넣은 유 정란 세알
오랜 기다림 속에 달그락달그락
삐삐 소리 나더니
알이 금이 가고 젖은 날개 보인다
봄이가 두 손 모아 기도하며
부르던 노래로 드디어 성공
세 마리 모두
삐약 삐약 환성을 올린다
드디어 보았다
알이 병아리가 되는 것을
고객님
눈가리개 하면 잠이 안 올 때
바로 꿈나라 갑니다
코끼리 상가에서
아빠랑 계산하고 집에 거의 왔어요
따르릉
계산만 하고 물건 두고 가셨어요
고객님
다시 찾은 눈가리개
지하 주차장 바닥에 흘리니
지나가는 자동차가 바큇자국
무늬를 만들고 갔어요
빨간 그림자
연산홍이 꽃을 활짝
그림자도 새 빨갛다
그늘 속에 참새 까치가 숨바꼭질한다
참새 까치도 빨갛게 물들었다
봄이 터진다
연분홍 꽃잎 떨어진 자리에
예쁘게 돋아나는 연두 빛 새 순
은행 잎 아기 손가락 엄마 젖 먹고
오동통 나오고
나비 벌 신나
봄이 터진다
하나 둘 셋
어느 봄날
울타리에 흙 고르고
나팔꽃
분꽃
채송화 꽃 씨 심고
할미와 <봄이>의 어느 봄날
파란 조루에 물 담아 시원하게 뿌리고
기다린다
새 싹 언제 나오나
자꾸 흙속을 기웃 거린다
더위야
건드리지 마
내가 만만하게 보이니
주먹 쥐었어
한 방 날려 줄까
까불면 물어뜯을 거야
내가 1번이야
상상 해봤어
내가 힘이 얼마나 센지?
호랑이거든
고양이로 오해하지 마
너구리
너너너 너도 너구리
그렇구나 너구리 세상
겨울에 만나 사랑 나누고
여름에 헤어진다고
화장실
정 나누는 곳 정해놓고
이리 오라고 손짓 한다
갈바람
폭염에 찌든 활기
가을바람이 살랑인다
코끝에 살랑살랑
머리카락 살짝 건드리면
시원하게 숨결 살아나
슬그머니 번져 나는 미소
걸음도 가벼워
투스텝으로 붕붕 뜨는 발바닥
콧노래 부르며 보는 하늘
초록 달개비도 좋아라
따라 온다
베짱이
메뚜기 닮은 베짱이
여치 아닌 베짱이
가늘고 연약하고 날씬
쓰이익 쩍 게으름쟁이
겨울에 어디서 살까
검은 다리 긴 긴 날개
어린이날
<봄이>가 농장에 왔어요
아빠는 키 큰 두룹 따고
봄이는 잎 넓은 상추 따요
파랑 조루에 물 담아 뿌려요
엄마 닭이 낳은 알 따뜻해
알속에서 나온 병아리 세 마리
모래목욕 시키고
할미가 싸온 김밥
누렁이와 나눠 먹어요
하늘이 파랗고 눈 부셔요
뻐꾸기도 배가 고파 새끼를 불러요
뻐꾹 뻐꾹
산골 밥상
쏟아지는 별 무리로 밥 짓고
싱그런 소나무 솔잎으로 바람 국 끓이고
윙크하는 달빛 섞어 고사리나물 무치고
커다란 초록빛 잎새 뜯어 쌈 하고
다리 놓은 무지개 잘라
일곱 가지 맛나는 차 끓여 마실까
음덕굴 꽃동산
봄이면 뒷동산
개나리 진달래
겨울엔 가랑잎 긁어
군불 때는 아버지 어깨
아궁이 소죽 쑤는 불
황소 검은 눈 마주 보며
얼기설기 나무 놓고
그 밑에 종이로 불 지핀다
연기가 눈물 되어
훌쩍이며 같이 탄다
활활활 하늘 위 구름
활짝 웃는 아버지 얼굴
소죽이 익어 가요
장학사 참관 수업 날
“여 러 분, 쉬!
조 용 조 용
다들 제자리에 앉아요.“
으하하 아이들 폭소
꽈당
의자가 뒤로 넘어지고
“선생님 늘 하던데로 하세요.”
선생님을 놀린다
선생님 치마랑 부라우스 이뻐요
목소리가 부드러워요.
‘얘들아
그만 그만
공부해야지.“
그래
선생님도 너희들이 예쁘다
지금은 더 예쁘다
제발
소란 피우지 마라
장학이가 오는 날
지구가 이상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심술이 너무 심해요
꽁꽁 바람 겨울의 심술
봄꽃들이 덜덜덜덜
여름엔 너무 더워
가을이 주춤주춤
날로 성깔이 사나운 계절
도대체 지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나뭇잎
초록 나뭇잎
해님과 바람과 비
푸른 숲 하늬바람
사이좋은 나무들이
어느새 갈색 잎 한들
갈바람 불어
한 잎 두 잎
바람 타고 난다
코끼리와 고래
코가 길어 코만 보여
너무 넓어 등만 보여
아 해봐 코 밑에 입
커다란 고래와 코끼리
눈 떠봐 더 크게 떠봐
아이쿠 뜨나 마나 눈
우린
친구하기 어렵겠다
콩 타작
정성으로, 사랑으로 자란
콩알 콩알 형제
도리깨질이 등을 때린다
아야 아야 도망가자
통통통 굴러가자
콩깍지 속 형제들
헤어지기 싫어도
통통통
아지랑이
손으로 붙잡을 수 없어
분명히 보이는데
숨 쉬며 움직이는 것
머리와 꼬리가 있어
듣기나 하는 걸까
슬그머니 지나가는 아지랑이
멀리서는 손짓하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사라지네
파리
어떻게 이곳까지
올라왔니 대단하다
바람 타고 왔을까
구름 타고 왔을까
방충망 뚫고 들어와
잘못했다고
두 손 모아 비는 파리
쫓을까 말까
파리채 찾다가
창문 열고 훨훨
멀리 가 거라
다시는 오지 마라
자라
자라야 그만 일어나
잠자다가 잡혀갈라
모가지 쑥 내밀고
구석으로 도망치는 자라
이리와 나하고 놀자
거기는 너무 어두워
모가지 건들지 않을게
꼬랑지 만지지도 않을게
가난한 이의 시
아무도 욕심내지 않는
하얀 뭉게구름
내가 가져가도 되지
넓고 넓은 하늘
파란 보자기에
넣을 수 있을 만큼 가져 갈래
쉬지 않고 흐르는 시냇물
두 손으로 가득 퍼 올려
꽃나무에 뿌려줄래
하늘과 땅을 이루는 것들은
누구의 것도 아닌 자연
누가 만들어 저리 아름다울까
가을날에
아직은 초록 숲
여름 끝자락 나뭇잎들
옷 갈아입을 준비하고 있어
과실나무마다 누렇고
밤나무 아래 산길
알밤이 깔렸어
호두나무가
얼룩얼룩 입 벌려
호두가 천지야
그냥 갈 수 없잖아
잣송이도 있으니
몇 개 따가야지
그래도
다람쥐 청설모 몫은 남아 있으니까
거미
아침 깨우는 가야금 소리
숲을 울린다
달빛 머금은 이슬방울
털어내는 소리일까
한 줄 튕겨 소쩍새 재우고
두 줄 튕겨 달빛 묶어
한밤을 타고 놀던
숲속의 향연
줄마다 맺힌 햇살로 깨어난 아침
소나무와 참나무를 이어 그네를 탄다
떠오른 햇살에
딩동 딩동 가야금 탄다
나뭇잎
초록 나뭇잎들
해님과 바람과 비
푸른 숲 하늬바람
사이좋은 나무들
어느새 갈색 잎 한들한들
갈바람 불어
한 잎 두 잎
바람 타고 난다
날아 다니는 침대
아픈 주사
독한 약
지구처럼 내가 돌아
허름한 철 침대는
알라딘이 가져다 줬나
눈 감으면
어느새 집에 와 있어
벌써 왔나 하면
침대는 스르르 병원으로 들어왔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미국 손녀들과 깔깔 거려
할미 우리 할미
그러다 눈뜨면
환자복 입은 이빨 빠진 사자들이
콜록콜록 앉아 있어
잠자다 문득문득 눈떠보면
낯선 풍경들이 지나가
로봇다리가 멋지게 돌아다녀
도토리 세 자매 소풍 간다
고만고만 동글동글
운동화 청바지 모자
뽀글뽀글 파마머리
손잡고 가을 나들이
가을 숲
키 재면서 뒤뚱뒤뚱
정겨운 모습 세 자매
도토리 굴러다니다
한 할미 길을 잃었어
어디로 갔을까
숲속으로 들어가 보고
언덕으로도 올라가 봤어
어떻게
찾을 길이 없어
당황한 도토리들
친구 찾아 굴러다닌다
등목
향나무 늘어진 우물가
구름 바람 지나가는 곳
아들은 웃통을 벗고
엄니는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려
엎드린 등에 부어 더위를 내 쫓았다
꼬리치는 누렁이
마당 지키는 수탉도 잠시 멈춰
물기를 털어내던 옛터의 추억
사립문 열고 들어가면
아궁이에 밥 짓는 마누라가
행주치마 붙잡고 나왔는데
지금은
누렁이와 수탉도 없고
퍼부을 바가지도 없는 욕실에
두 손 펴고 엎드린 영감이 난감하다
맷돌 호박
손톱보다 작은 씨앗
흙 속에서 생명이 솟아올라
줄기 잎 꽃 열매
커다란 풀밭에 맷돌 호박
여기저기 낳아 놓았어
겉옷 힘들게 벗기고
뜨거운 물속에서 숨을 죽이고
방망이 위력으로 죽이 되었어
찹쌀과 어울리니 달콤 구수한 맛
도깨비방망이가 살아
뜨거운 죽 그릇이 맛을 보여주네
앗 뜨거워 화끈화끈
빨간 꽃이 물집도 혓바늘 만들었어
싹 돋아 넝쿨 뻗어
봄 여름 지켜낸 사랑 빛 맷돌호박으로
죽 만들어 나누는 기쁨
돌돌돌 돌아 가슴에 안기네
물 봉선화
자두나무 근처
머위가 잎을 뒹굴 뒹굴
멋지게 굴리고
칡이 씩씩하게
여기 저기 손을 뻗치며
자두나무 목을 조른다
물봉선화 한무리 곱게 피었다
고라니 청설모 손발에 물이 들었다
개구리 사마귀 손발에 고운 물 들었다
고운 손 발 친구에게 자랑 하러
뛰어 간다
바람아
그냥 불러 봤어
털어 달라 안 했는데
후두둑 후두둑
은행 터는 바람아
데려가라 안 했는데
후루루 후루루
향기 데려가는 바람아
그냥 불러 봤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니
되돌아보지 않는
바람아
손 편지
할미 할비 보고 싶자는
<나나>의 편지에 눈물이 울컥
할미 할비랑 쌈박질 그만해
<단아>의 편지에 웃음이 활짝
눈 빨간 토끼가 되어 숲으로 간다
훌쩍이며
싱글거리며
여름내 울던 매미
망사 옷 깔고 누워 있는 숲길을
깡충 깡충
행복이 가슴속 가득 담겨 걷는 길
발걸음이 둥 둥 떠 있다
손주들 편지로
아버지의 헛기침
우리 집에 우기가 찾아오면
아버지는 삽을 들고 논으로 나가서
도시로 나간 큰 아이의 아쉬움을 손질한다
여름 장마로 유실된 채소들은
아버지의 헛기침을 기억한다
하얀 소금 꽃이 피어 있는
아버지의 굽은 등은 언제나 과묵하다
멀리서도 잘 들리는 헛기침이었다
삽과 함께 장마 속으로 들어간
아버지의 등에서는
더 이상 소금 꽃이 피어나지 않고
헛기침 소리만 거듭 된다
네 남매 지켜낸 농기구도
메마른 눈물로 슨 녹을 닦아 낸다
어부바
할미 등에 업혀
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흥얼거리는 자장가로 잠재운다
할미는 잠이 오는 등을 가지고 있나보다
칠순 넘은 할미
6.25 피난살이 할머니 등에서
이웃집 국수 냄새
배고픈 칭얼거림에
훌쩍이는 할머니 눈물 보고 자랐다
울음이 멈추는 곳
등은 넓고 따뜻하다
편안하다
등에서 등으로 전해지는 선물이다
엄마 향기 품은 꽃
철을 잊은 듯 사시사철
꽃이 피어 있는 옷장
하늘로 가신 엄마가 그리운 듯
꽃무늬 옷들이
문을 열 때마다 활짝 웃는다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는 여름에도
동백꽃이 미소 짓고
하얀 겨울날
벚꽃들이 뻥튀기 튀겨
몽글몽글 나온다
옷장을 열 때마다
꽃향기보다 진하다
엄마가 곱다고 하신
연두색 꽃무늬 셔츠
입을 때마다
내 엄마
그리움이 사무친다
여름비
여름내 쉬지 않고
세차게 쏟아지는 비
마을을 삼켜
소들이 둥둥
넘치는 빗물에 떠내려간다
논밭이 없어 졌어
시원한 수박도
물놀이 공 되었어
목마르면 무얼 먹지
물은 저렇게 넘치는데
오월은
옹달샘에 놀러 온
열여섯 살 소녀의 얼굴
하얀 손가락에 끼어있는
처녀의 꽃반지
우물가에 너울너울 춤추는
보랏빛 수국
꼬부랑 할미에
가슴 두근거리는 마지막 사랑
하늘에 올린 꿈 피어나
온 누리에 꽃이 넘친다
5월은
요조숙녀 같은 알밤
속옷 훌러덩 안 벗더라
떨어져 고슴도치 돋친 가시
조심히 헤쳐야
도란도란 세 자매 만날 수 있어
꺼내어 껍질을 벗기면
까슬까실한 속옷
이걸 곱게 벗겨야
뽀얀 속살 볼 수 있어
촘촘한 가시를
어떻게 뚫고
하얀 애벌레는 들어갔을까
토실토실 살 오른 육질
먹음직 스러워
가만히 만져보면
이런 촉감이 어디 있을까
은행 털기
장대로 두들기기 전에
스스로 바람 불어
가을비와 같이 흙 위에 안식
지독한 향기 속으로
스며든 과육
물속에 넣으면 탱글탱글
겉옷 벗기고
속껍데기까지
발로 밟고 손으로 문질러도
두 번째 문이 잠겨 그냥 안 벗겨져
뜨거운 불 맛
냄비 속에서
초록 작은 알갱이
쫄깃쫄깃 최고 맛
건강을 지켜주는 바람의 열매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시간의 역사
주는 대로 받아 자연을 읽는다
은행잎
달랑 버스 한 대 <초월읍> 빙빙 돈다
20분 간격에
아, 차 꽁무니를 보면
그만큼의 여유가 생겨
팔랑팔랑 샛노란 은행잎과 대화
어디서 왔니
은행나무가 웃으며
내려다보고 있는데
왜 떨어져 뒹굴지
책갈피에 넣으려고
곱게 다듬어 펴
손가방 구석에 넣는다
가을 한 토막이 머리맡
시집 속에 들어왔어
외우며 읽던 그 자리에
장독대
종이 버선 오려
거꾸로 붙여 귀신 쫓는 할미
새끼줄 꼬아
솔가지 고추 숯덩이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장 항아리
반짝이게 닦는 엄마
까망 분꽃 씨앗 심고
언니 시집가는 날 잡고
기도 한다
항아리마다 출렁출렁
하늘이 담기고
아침저녁 꽃잎 매만지던 언니
나날이 얼굴 붉어지던
장독대
참새
작은 발 꽁지깃에
노란부리 꼬마야
두발로 통통 뛰며
먹거리 찾고 있니
짹짹짹
꽂 피는 봄날에
윙크하며 짝 찾는다
새 양말 새 구두
어디에 두고 왔니
우리 집 신장 속에
꼭꼭 숨겨 놓았니
후루룩
할배 따라서
친구 찾아 날아 간다
초록 쫄깃 은행 알
삐딱한 내 의자 뺀 자리에
진한 냄새 풍기며
작은 우주 알갱이가 점령했다
깍쟁이 흉내 내며 산골 여자 유세 떤다
새벽에 우주 알 한 움쿰 냄비 뚜껑 닫고
불 위에 달군다
앗 뜨거워
튀어 오르기 기다려
껍질 벗겨 쫄깃함을 맛 본다
초록 빛깔 우주 맛
초록 호박
강보에 꽁꽁 싸
쪽지 하나 끼워놓고
남의 집 대문 앞에서
돌아서는 어미 마음
누구 손에 안겨
어느 문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
꼭지가 떨어진 초록 호박
눈물 흘리며 울더니
하얀 벌레들 몰려든다
아직 멀쩡한 놈 골라다가
이웃 집 현관 앞에 두고 돌아서면서
집안에 들어가
된장국 속에서 사랑받기를 빌며
초록 덩이 맛을 떠 올린다
친구
감나무야
도마뱀 친구 어떠니
자꾸 숨어 다니니 시간이 없어
그럼 호박은 어떠니
알 낳기에 바빠서
관심 없나 봐
칡넝쿨은 어때
너무 힘주어 감싸니
숨쉬기 힘들어
그럼 누가 좋아?
까치는 매일 와서
얘기해 주네
주인 손이 닿지 않는 곳
감 너 다 먹어 까치야
우린 친구니까
할머니의 목탁
동족상잔의 난리 중에
시집온 어머니
할머니의 목탁 소리로
나를 키우셨다
뱃속에 든 나를 부등 켜 안고
방아 찧던 어머니는
할머니 목탁소리로 잠을 청했다
화천사 범종 소리 들으며
부처님 말씀 따라 자애가 넘쳐
인근에 소문이 자자했다
목탁을 치며 시작한 하루가
골짝을 어둠으로 채워도
할머니 방에서는 목탁 소리가 울려 나왔다
어느새 커버린 손녀와 찾은 화천사
목탁 소리에 문득 떠오른 할머니
살며시 열어본 법당 안에
다소곳이 앉아 계신다
행복한 선물
곤지암천 산책길
봄바람과 찾아온 민들레 제비꽃
키 작은 짝꿍
초록 풀이 가득한곳 애기똥풀 놀다
응가하고 간 자리
노랑 냄새 난다
강한 햇살과 함께 찾아온 개망초
온 들녘 바람 속
흰 물결 손잡고 춤 춘다
달님과 달맞이꽃
밤새운 사랑놀이
해님 앞에 고개 숙이고
가을이 오려나
달개비꽃들이 살그머니
우듬지마다 피운 꽃
내 곁을 따라오는 나비 두 마리
외로운 걸음에
짝이 되어준다
흰 물결
하얀 텐트의 물결
하얀 텐트 가진 캠핑 맨들
텐트 치고
자연 속에서
숨쉬고
다슬기 잡고
잠자리 잡았다가
날려주고
어깨가 으쓱 으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