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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11회 전국동기회 대구대회 구미금오산 나들이
2015. 4. 28 <만 남>
<호텔금오산>의 위치도
우리를 태운 버스는 구미시가지를 벗어나 금오산 도립공원 입구에 위치한 <호텔금오산>을 향하여 달린다. 버스는 금오지(金烏池)의 서편을 감돌아 도로 양쪽에 도열해 있는 멋스런 메타스퀘어(metasquare) 숲의 환영을 받으며 <호텔금오산>에 도착했다. 안동 친구들이 벌써 와있어서, 주최인 대구회원들이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안동 친구들 오느라고 수고 많았다. 첫 눈에 봐도 <호텔금오산> 얼굴이 마음에 썩 든다. 주변 경관이 울창한 숲으로 에워싸여 있어서 유럽의 어느 산속에 위치한 휴양지의 리조트(resort)의 풍광을 연상하게 한다. 서울 친구들도 밤잠과 아침밥을 설쳐가며 장시간 원거리를 달려왔으니 너무나 반갑고 기쁘다.
휴양지의 리조트(resort)의 풍광을 연상하게 하는 <호텔금오산>
<호텔금오산>에서 친구들과의 회우 1
<호텔금오산>에서 친구들과의 회우 2
깔끔하게 안내된 전국 안사 11회 전국 동기회
사파이어 연회장 내부 모습
인사말씀하는 대구회장 류진상
동기회 총회를 사회하는 안국환 회원
전체회원들의 기념 촬영
이젠 모두가 산수(傘壽)를 바라보는 연륜(年輪)이다. 한해 두해 해가 바뀌면서 얼굴에 노색(老色)이 묻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젠 여생(餘生)이 얼마나 될지 아무도 장담 못한다. 여태까지도 전국 동기회를 잘 해 왔지만 남은 기간 열심히 참가해서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해야 한다. 이젠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친구들아!
대구동기회 총무국장의 바쁜 업무 수행
전에 보이던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다. 물론 개인적인 용무 때문이지만, 모두가 가정에 유고(有故)한 일이 있어서 참석 못했다고 한다. 본인들의 지병(持病)으로, 또는 배우자의 병구완으로 참석 못한 친구들의 안타까운 심정을 헤아려 본다. 병이 나기 전에 예방이 제일이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내 몸에 알맞은 운동을 찾아서 꾸준히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 만약 몸에 조그마한 이상이 생겼다면 가족도 모르게 먼저 병원을 찾아가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담소하는 회원들
그래도 모든 일 제처 놓고 참석한 회원님들이 너무나 고맙다. 서울회원 21명, 안동회원 6명, 대구회원 37명 도합 64명이니 많은 회원이 참석한 것이다. 참석한 회원들은 주최 측의 계획대로 회순에 따라 총회를 성대히 마무리했다.
국민의례를 하는 회원들
<채미정 (採薇亭)>
채미정이 있고 좌측(左側)에는 구인재(救仁齋)전국동기회 총회를 마치고 야은(冶隱) 길재(吉再)선생의 충절(忠節)과 학문(學問)을 추모(追慕)하기 위하여 창건한 채미정(採薇亭)을 찾았다. 계류(溪流)에 걸린 석교(石橋)를 건너면 흥기문(興起門)이 나온다. 이 흥기문을 들어가면 우측(右側)에 채미정이 있고 좌측(左側)에는 구인재(救仁齋)가 있다.
채미정으로 가는 아름다운 메타스퀘어 가로수 길
흥기문(興起門)을 들어가야 채미정 경내로 들어갈 수 있다
채미정 (採薇亭) 건물
경모각(敬慕閣)과 길재의 유허비각(碑閣)이 있는 건물
길재선생 유허비각
길재선생 유허비
채미정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채미정 공간 구조를 보면, 중앙 1칸은 온돌방으로 꾸몄고 사방 둘레에 모두 우물마루를 깔아 대청(大廳)으로 꾸몄다. 온돌방의 사면에는 각각 2분합(二分合) 들문을 설치하였으며, 대청사면이 벽체 없이 개방되어 있다. 잘 다듬은 장대석(長大石) 기단(基壇) 위에 원통형으로 치석(治石)한 화강석 주초(柱礎)를 놓고 원주(圓柱)를 세웠다.
> 채미정 해설을 열심히 하는 이평직 회원
구인재는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중앙 2칸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양측 면은 2통 칸 온돌방으로 꾸며 전퇴(前退:집체의 앞쪽으로 있는 물림)를 둔 초익공(初翼工)의 백골집(白骨家: 칠을 안 하고 목재 면을 그대로 둔 집)이다.
> 구인재(救仁齋)
채미정 뒷 편에는 길재선생의 충절에 감격하여 읊은 숙종(肅宗)의 어필 오언구(五言句)가 보존되어 있는 경모각(敬慕閣)과 비각(碑閣)이 나란히 서 있다. 경모각 안 벽면에 붙여있는 오언구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경모각
<숙종어필(肅宗御筆) 오언구(五言句)>
歸臥烏山下(귀와오산하) : 금오산 아래 돌아와 은거하니 淸風比子陵(청풍비자릉) : 청렴한 기풍은 엄자릉에 비하리라 聖主成其美(성주성기미) : 성주께서 그 미덕을 찬양하심은 勸人節義興(권인절의흥) : 후인들에 절의를 권장함일세
숙종어필(肅宗御筆) 오언구(五言句)와 길재선생 초상화
길재에 대해서 알아보면 후세 사람들은 고려 왕조에 충절(忠節)을 끝까지 지킨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를 일컬어 삼은(三隱)이라고 부르며 숭상하고 있다. 삼은(三隱)은 익히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이색의 호인 목은(牧隱)과 정몽주의 호인 포은(圃隱) 그리고 길재의 호인 야은(冶隱)에서 비롯된 말이다. 아름다운 채미정의 경관
이색과 정몽주가 이성계 세력과 끝까지 맞서다가 내쫒기거나 살해당한 반면 야은 길재는 일찍이 고려의 멸망을 짐작하고 노모에 대한 봉양을 이유로 사직한 후, 초야(草野)에 묻혀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또한 조선이 개국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관직을 제안 받았으나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忠臣不事二君)며 완강하게 거절했다.
길재는 일찍부터 자신의 고향인 구미에서 후학을 기르는 데 힘을 쏟은 결과, 성리학을 빛낸 대학자들이 모두 길재의 학맥(學脈)을 통해 배출되었다. 길재의 문하(門下)에서 비롯된 조선 성리학은 김숙자(金叔玆)에서 김종직(金宗直)으로, 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을 거쳐 조광조(趙光祖)로 이어졌으며, 성리학은 양반사대부 계층의 정신세계에서는 승리를 거둔 셈이다. 우리들이 많이 읊는 길재의 회고가(懷古歌)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회고가(懷古歌) 시비
<회고가(懷古歌) 야은(冶隱) 길재(吉再)>
오백년 도읍지를 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人傑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五百來都邑地 蕭蕭匹馬夕陽還 오백래도읍지 소소필마석양환
산천의구인하재 연월의희몽이한
<금오산(金烏山) 산행>
산행 안내도
금오산 산행은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하고 하산은 숲속 등산로를 걸어내려오기로 했다. 회원들은 <호텔금오산>을 빠져나와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향했다. <오텔금오산>에서 계류에 걸쳐있는 출렁다리를 건넜다. 석재포장이 된 등산로 양쪽에 울창한 송림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산기슭에 펼쳐진 녹색의 향연 이 회원들의 눈을 매료(魅了) 시킨다. 드디어 케이블카 3층 탑승장에서 케이블카를 탔다. 탑승거리는 1km가 못되는 800m를 6분 주행해서 금오산 중턱 해운사 옆에 위치한 도착지점에 까지 왔다. 서쪽으로 빠져나오니 해운사(海雲寺) 사천왕문(四天王門)이 나온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니 해운사(海雲寺) 경내다. 석가탄신일을 축하하는 오색찬란한 축하연등(祝賀蓮燈)이 경내에 가득하다 머지않아 석탄일이 가까워짐을 알려주는 것 같다.
금오산 도립공원 등고선 지형도
우리 회원들이 탑승할 케이블카
케이블카의 로프 웨이
아름다운 금오산의 짙어가는 신록
해운사의 사천왕문을 통과하여 해운사 경내로 들어 갈 수 있다
대웅전과 연등
이 심산유곡(深山幽谷) 절벽(絶壁) 기슭에 해운사(海雲寺)라니 사찰이름이 아이너릭 하다. 차라리 바닷가에 자리 잡은 절이라면 운치(韻致)있는 사찰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해운사는 신라 말기에 도선(道詵:827~898)이 창건하였다고 하며, 창건 당시에는 대혈사(大血寺)라고 하였다고 한다. 고려 말에 길재(吉再:1353~1419)선생이 이 절과 절 뒤에 있는 도선굴(道詵窟)에 은거하며 도학(道學:성리학)을 익혔다고도 한다. 이후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다가 1925년 복원되었다고 하는데, 이때 절 이름을 해운암(海雲庵)이라고 바꾸었다.1956년 대웅전을 신축하였으며, 이후 꾸준히 불사를 진행하면서 다시 절 이름을 해운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지장보살을 모신 지장 보궁
대웅전 현판
대웅전의 주불
해운사에서 개울을 따라 서북쪽으로 약 200m 올라가면 대혜폭포(大惠瀑布)가 나온다. 대해폭포는 금오산(金烏山, 977m) 대혜골의 발고도 약 400m 지점에 있는 폭포로, 높이는 28m이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가 금오산을 울린다 하여 명금폭포(鳴金瀑布)라고도 한다. 폭포 아래에 형성된 넓은 소(沼)는 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즐기는 곳이라 하여 욕담(浴潭) 또는 선녀탕이라고 한다. 물이 떨어지는 바닥에 움푹 파인 곳에 연못(潭)이 생겨났다. 전설에 의하면 선녀들이 폭포의 물보라가 이는 날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주변경관과 옥같이 맑은 물에 탐하여 목욕을 즐겼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한 가지 특기할만한 사항은 이곳 대혜폭포에 자연보호 활동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수행원과 이곳에 흩어져 있던 휴지조각, 깨진 유리병 같은 쓰레기를 청소한 것이 효시(嚆矢)가 되어 전국적으로 자연보호 운동이 퍼졌다고 한다. 참으로 대혜폭포의 환경청결 활동이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환경보전과 자연보전의 시금석(試金石)이 되었다니 감회가 새롭다.
범종각건물에 현판이 걸려있다
대혜폭포와 욕담(浴潭)
자연보호 운동의 시원지 표지석
지금은 갈수기(渴水期)라서 실오라기 정도의 빈약한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다. 장마철 풍수기(豊水期)에 와서 웅장하고 떨어지는 물줄기의 장관(壯觀)을 꼭 보고 싶고, 명금폭포의 진가를 확인하고 싶다.
갈수기(渴水期)의 실오라기 같은 빈약한 물줄기
대혜폭포의 유래를 알아보면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금오산 정상 근처 산성 안에는 1595년경 임진왜란 당시 만들어진 아홉 개의 우물(九井)과 일곱 개의 못(七潭)이 있어 거기서 비롯된 큰 계곡을 대혜계곡이라 하였으며, 그 곳에서 형성된 폭포를 대혜폭포라고 하였던 전설이 있다. 다른 하나는 그 물이 여울을 이루어 구미지방의 관개용수(灌漑用水) 공급에 큰 혜택을 주었다는 의미에서 대혜폭포라 불렀던 설도 있다. 후자의 설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고르지 못한 자갈길을 내려오니 해운사 사천왕문 남쪽 언덕아래 영흥정(靈興井)이란 석간수가 나오는 샘물이 있다. 오늘도 등산객들이 목을 축이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험한 자갈길을 또 한참 내려오니 금오산성 외성(外城)이 나온다. 병자호란(丙子胡亂)과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군관민(軍官民)이 함께 피난을 했던 금오산 동쪽 계곡을 막은 금오산성(金烏山城)의 외성이 보인다.
사천왕문 남쪽 언덕 아래 영흥정(靈興井)
영흥정(靈興井) 표지석
금오산성 안내도
금오산 외성의 성문인 대혜문(大惠門)
외성의 아취형의 성문인 대혜문(大惠門)을 통과하여 빠져나오니 등산로 왼쪽 산비탈에 있는 자연석 바위에 각자(刻字)한 초서체(草書體) 글씨가 보인다. 조선조 중종(中宗) 때 명필가(名筆家)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가 쓴 것으로 금오동학(金烏洞壑)> 글귀가 보인다. 금오동학(金烏洞壑)은 “금오산은 깊고 그윽한 절경”임을 뜻이고, 이 초서체의 글씨는 극치(極致)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얇게 음각(陰刻)되어 있는 글씨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이 황기로의 글씨는 중국의 명필가 왕희지(王羲之) 다음가는 일인자라하고 초성(草聖-초서의 성인 대가)이라 했으니 가히 그의 존재를 짐작 할 수 있다.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가 쓴 <금오동학(金烏洞壑)> 글귀
잘 정비된 데크로
석재와 타이어로 포장된 등산로
잘 정비된 목제 데크로를 따라 내려가니 여기저기에 <돌탑> 군락이 보인다. 구미시민들이 구미시의 발전을 기원하는 뜻을 모아 돌탑을 1999년에 쌓았다고 한다. 또 조금 내려오니 <금오산성사적비(金烏山城史蹟碑)>도 보인다. 그리고 <자연보호운동발상지> 기념비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날 환경보전(環境保全)의 시금석(試金石) 역할을 하는 기념비이다. 울창한 송림(松林) 아라 조성된 하산 길은 목제(木製) 데크로 라서 아주 편안하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걸었다. 안사11회 동기회원들이 함께하는 이번 산행은 회원들에게 많은 생각과 의미를 부여하였다.
금오산성 사적비
자연보호운동발상지 표지비
자연보호 헌장비 조형물
구미하면 보릿고개를 없애준 박정희 대통령, 우리나라 근대 산업화의 요람지, 전자공업의 메카, 자연보호운동의 발상지, 도립공원의 효시를 생각하게 한다. 금오산 <호텔금오산>의 안사 11회 전국대회가 회원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되기를 소망한다. 친구들 고맙습니다. 먼 길 마다않고 참석해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모두들 건강하십시오. 이젠 얼굴이 더 이상 변하지 말고, 이대로의 모습으로 내년에는 더욱 건강한 모습으로 만납시다. 안녕히 가십시오.
등산로 입구에 있는 뜻을 알수 없는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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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윤중선생! 김기현님... 이번 행사에 사진촬영하고 카페에 게재하고 하니라 수고가 많았구려.
당신이 있어서 이 행사가 한결 빛나 보이네요. 수고 했어요.
윤중이는 언론사 주필겸 사진부장이제?
참 잘 쓰시네. 진상류가 이름 나게 되었군 경제부총리?
역시 '에브노말'은 전문가야!!!
내 눈엔 안보이는 곳이 '에브노말'에겐 보이니....
샅샅이 올려 준 자료 잘 보았습니다.
직접 보지 못한 것도 김기현의 덕택에 보게 되어서 고마워요.
아름다운 멋진 영상을 잡아오느라 수고 많았고 고맙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편집하셨네.臨事周詳이라는 말이 그대를 두고 한 말일세 그려.ㅋ.ㅋㅋ
진상 회장님- 이번 모임을 잘 이끄셔서 고마와요.
날씨 부조를 잘 받아서..너무나 따스하고, 향스러운 날씨였다오.
진상 - 대구 회장님, 모두 즐겁고 기쁜 하루였다오. 감사. 감사 하오.
"향 스러운 날씨"라고?
표현 재미 있다!!!
코뿔소님...채미정의 ..역사 이야기를 어찌 그리 잘 해설해 주시나요.
문화 역사 해설사 자격증을 언제 받았나?
어디든지 앞장서서...길 잡이로.. 안내를 잘 해 주어서 고마왔다오.
경제 부총리...오늘을 기획하고 설계하는데 - 공로를 덧셈하신 분.
....그대의 뒷 다리를 만져 보니 어찌 그리도 튼튼하오.
....대구의-모두들 튼튼한 다리. 강건한 육신을 유지하는데도...공과를 세우신. 경제 부총리.
"공로를 덧셈하신 분"
맞다!!!
*대혜폭포- 욕담(浴潭) 에는- 옛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을 한 곳이 아닌가.
나뭇꾼이 살금살금 가까이 가서 훔쳐 보다가...그만 욕심이 나서... 선녀의 옷을 훔쳐 감추었지.
선녀가 욕담에서 나와 옷을 찾아도 없으니.....어찌 할 줄을 몰라하는데...
나뭇꾼이 꼬셔서...자기집으로 데려 가서...선녀를 아내로 삼은거지...
..그래서 금오산 밑은 "하늘의 신령한 기운"이 내려오는 곳.
앞으로도 귀한 인물이 태어날 장소이니....누구든지 먼저 선점하시면...하늘의 복을 받게 된다오.
龍潭은 용이 거기서 승천했거나 용이 멱 감은 곳 아닐가?
폭포라고 다 '나뭇꾼과 선녀'에다 갖다 붙이는 건 비약!!!
@夢谷 우리 모두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서 나누는 거지.
옛 이야기...용담. 용이 승천하고...용이 멱 감고... 이 모두 만든 이야기가 아닌가!!!
몽곡께서- "그 옛 날에 목욕을 한 곳" 이다..라고 이야기 만들면 되지...지지지지지
이번 모임에-향기로움이 .. 많이 참석하여 기분이 좋았다오.
봄.봄.봄 .봄이 우리를 맞이하고.
꽃이 피고 잎이 싱그럽고. 나비가 나풀나풀 날개치며 날아다니고
하늘에 새가 날아 다니면서, 우리들을 반가와 하고,
호텔의 인물 좋은 분들이...우리를 안내 하시고.
*특히 " 아름다운 분"=꽃 보다 여자" 분들이 많이 참석하셔서...기쁘고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에브노말님, 자네 글에 자꾸 이런게 보이는데 뭔가?
무려 24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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